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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상영을 기획한다는 것 – '씨네미루' 첫 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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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0. 12. 15.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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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온라인영화제와 OTT 서비스의 가속화를 이끌었음에도 어떤 영화들은 관객과 직접 대면할 장을 요구한다. 이번 상영회에서 상영된 세 편의 영화는 각 영화가 다루는 소재 때문에라도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공간에서 모인 관객들을 필요로 한다.”

[ACT! 123Me,Dear 2020.12.16.]

 

공동체상영을 기획한다는 것 – '씨네미루' 첫 상영회

 

박동수 (ACT! 편집위원)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04, 나와 김세영이 씨네미루라는 이름으로 함께 기획한 상영회 게임, 가상, 영화: 처음 보는 영화들이 열렸다. 시작은 지난 8월 홍성윤 감독의 <그녀를 지우는 시간>을 함께 보고 난 뒤, 단 세 명밖에 없던 상영관의 분위기가 아쉬워 더 많은 이들과 이 영화를 함께 관람하고 싶다는 욕구였다.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를 많은 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경험하고 싶다는 것, 단순한 욕구에서 시작된 상영회는 <그녀를 지우는 시간>을 비롯해 정여름 감독의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박윤진 감독의 <내언니전지현과 나> 등 세 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세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씨네미루라는 이름은 세영의 반려묘 이름인 미루에서 따왔다.

 

▲ 씨네미루 첫 상영회 ‘게임, 가상, 영화: 처음 보는 영화들’ 포스터

 

  개인적으로 상영회 기획을 처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기획에 참여했던 것은 2016~17년도에 잠시 활동했던 씨네클럽 FoFF에서 주최한 씨네마 도디앙스(Cinéma d'audience)’라는 이름의 상영회이다. ‘씨네마 도디앙스는 번역하면 관객의 영화관이라는 뜻이다. “관객이 그리워하는 영화의 어떤 것을 이전의 영화들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의 한국영화, 혹은 한국의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소재, 주제, 장르 등을 과거의 영화들에서 찾아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고자 했었다. 여성 주연영화, 호러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영화 등을 테마로 <마빈의 방>, <여고괴담>, <아기공룡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 <삼거리극장> 등을 상영했고,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의 박효선 감독, 장르영화 팟캐스트 배드 테이스트, 성상민 만화평론가, 전계수 감독 등을 초청해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었다.

 

두 번째로 참여했던 상영회는 2018년 합정동 안티카페 손과 얼굴에서 주최한 ‘Anti Theater’ 상영회이다. 오랜 시간 함께하고 있는 영화동아리 우리가 목매는 것들의 친구들과 함께 기획한 상영회로, 민제홍 감독의 <소음들>, 장은주 감독의 <안과 밖>, 김응수 감독의 <우경>을 상영하고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이때의 상영회에서는 상업영화관에서 접하기 어려운 실험, 독립, 단편영화들을 모아 상영하고자 했으며, 특히 응시라는 테마를 잡아 영화적 체험이 주는 언어적 경험 밖의 것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이 두 번의 상영을 통해 상영회를 기획할 때 필요한 것들을 알아갔고,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어떤 주제로 어떤 영화들을 묶어내야 하는지를 공부했다. 다만 두 상영회에서 배급사와 직접 연락해 작품을 수급하거나 대관장소를 섭외하는 등의 실무를 담당하진 않았다. 기획에 참여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내 역할은 영화를 선정하고 테마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 씨네미루 GV, 박윤진 <내언니전지현과 나> 감독 (왼쪽)

   

  그래서인지 처음 상영회를 기획하자는 이야기를 나눴을 때 망설였다. 영화의 수급 여부와 장소 대관 등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본적도 없었고, 앞선 상영회들에서 모더레이터로 나섰던 GV들을 다시 떠올려보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여파로 상영료나 대관료를 나누어 낼 관객을 얼마나 모객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사실 이번 상영회를 기획하게 된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영화들이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없었다는 상황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하다. 이번 상영회에서 상영된 세 편의 영화는 각각 전주국제영화제와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첫 선을 보였고, 이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주혼듸독립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춘천영화제 등 국내의 여러 크고 작은 영화제들에서 상영되었다. 무엇보다 팬데믹이라는 상황을 맞이한 영화제들이 온라인영화제로의 전환을 택한 상황에서, 이 세 편의 영화는 온라인상영을 진행하지 않거나 극히 제한적인 횟수로만 온라인상영을 진행했다. 그 말은 곧, 영화제나 이번 상영회와 같은 기회가 아니라면 이 영화들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이 영화들이 좋았고, 주변 사람들이 이 영화들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도, 이 영화들이 주는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장은 열리지 않았다.

 

  공동체상영은 그런 장이다.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어딘가로 사라진 영화들, 개봉은 했지만 순식간에 예매창에서 사라진 영화들, 어떤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 한 함께 영화를 경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영화들의 경험을 나눈다. 그러한 경험의 일차적 제공자인 영화의 감독, 스태프, 배우 등과 이야기를 나눈다. 씨네미루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게임, 가상, 영화: 처음 보는 영화들의 시작과 상영회 제목은 그렇게 지어졌다. 코로나19가 온라인영화제와 OTT 서비스의 가속화를 이끌었음에도 어떤 영화들은 관객과 직접 대면할 장을 요구한다. 이번 상영회에서 상영된 세 편의 영화는 각 영화가 다루는 소재 때문에라도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공간에서 모인 관객들을 필요로 한다.

 

▲ 씨네미루 GV, 홍성윤 <그녀를 지우는 시간> 감독(오른쪽)

 

  <그녀를 지우는 시간>은 장르영화다. 다만 하나의 장르로 규정되지 않는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는 데스크탑 필름(*1)이라는 하위 장르를 취하고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로맨스에서 시작해 호러와 코미디를 넘나든다. 다른 데스크탑 필름이 대부분 화상통화를 사용함으로서 컴퓨터 화면 밖의 영상을 끌어온다면, 이 영화는 한 영화감독이 촬영한 단편영화가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채운다. 영화 속 영화의 오케이 컷에 귀신이 나타나자, 영화감독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편집자를 찾아가 영화를 편집하는 과정이 <그녀를 지우는 시간>의 내용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장르영화라는 탄탄한 기반 아래서 영화 만들기라는 지난한 과정에 대해 재고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그라이아이><내언니전지현과 나>는 게임을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전자는 스마트폰 게임이자 증강현실을 활용하는 포켓몬 고, 후자는 넥스의 고전 MMORPG 게임인 일랜시아를 다룬다. <그라이아이>는 현실 위에 덧씌워진 포켓몬 고의 세계를 통해 유출되는 용산미군기지의 이미지를 탐색한다. 그곳은 물리적인 장벽으로 인해 그 안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스마트폰 게임이라는 가상을 통해 그곳이 현실의 토대 위에 세워진 전략적, 군사적, 제국주의적, 정치적 가상임이 폭로된다. 다시 말해, 게임 녹화영상과 각종 뉴스, 선전영화, 유튜브 클립 등을 통해 제작된 이 영화는 현실과 유리된 것으로 생각되는 가상의 공간에서 이미 가상인 현실의 이미지가 유출되고 있음을 파헤친다.

 

  반면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똑같이 게임을 다루고 있지만, 게임이 만들어내는 가상 대신 게임의 가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게임을 현실의 도피처로 보는 고정관념에 반대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과 그곳이 아닌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첩시킨다. 영화 내에서 진행되는 인터뷰는 감독과 인터뷰이들이 물리적으로 만난 공간에서도, ‘일랜시아안에서의 대화를 통해서도 진행된다. 때문에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보여주는 게임의 가상과 현실이라는 두 세계는 어떤 위계가 존재한다기보다는, 항상 서로 교차될 수밖에 없는 복수의 세계이다. 박윤진 감독을 비롯한 게이머,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은 복수의 세계를 오가는 이들로 존재한다.

 

▲ 씨네미루 GV, 정여름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감독(왼쪽)

   

  이 영화들이 영화제에서 온라인상영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언뜻 간단해 보인다. 온라인상영을 통해 PC나 스마트폰으로 이 영화들을 본다면, 그것은 이 영화들이 소재로 삼은, 그것이 컴퓨터 스크린이든 게임이든, 그 세계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영화를 보는 상황이 된다. 정여름 감독은 이 영화를 온라인으로 보면 아무 의미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거기서 다 나온 영상들 아닌가. 굳이 그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걸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까?”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었다.(*2) 씨네미루의 이번 상영회가 세 편의 영화가 보여준 영화와 게임의 가상 세계와 코로나19를 비롯한 여러 사정으로 극장을 찾지 못한 관객들의 세계가 만나는 장이 되었길 바란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씨네미루의 다음 상영회 또한 그런 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첫 상영회에서 이런저런 실수가 많았다. 상영회 장소인 미디액트 건물에서 엘리베이터 공사가 진행 중인 것을 미리 알지 못해 소음 문제가 있었고, 첫 영화인 <그녀를 지우는 시간> 상영 때 영상이 끊기는 사고가 있기도 했다. 사전에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잘못이다. 지면을 빌어 상영회를 찾아 주신 관객들과 소중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해준 감독들에게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씨네미루 게임, 가상, 영화: 처음 보는 영화들상영회에서 배포된 박동수의 글은 아래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 Movie Collector https://dsp9596.blog.me/222107362643

 

*

1)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화면만으로 진행되는 영화. 대표적인 예시로 영화 <서치><언프렌디드> 시리즈가 있으며, 최근엔 ZOOM화면을 활용한 OTT 서비스 셔더의 오리지널 영화 <호스트>가 인기를 끌었다.

 

2) http://reversemedia.co.kr/article/384

 


글쓴이. 박동수

-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영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계속 보고 듣고 읽고 씁니다. 123호부터 ACT! 편집위원으로 결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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