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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제작지원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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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0. 6. 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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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우리 모두 서로의 제작을 기쁜 마음으로 응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ACT! 120Me, Dear 2020.06.05.] 

나의 제작지원 도전기

 

  몇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어갈 때면 언제나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했다. 첫째는 영화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다시 찾아올지에 대한 고민이었고, 둘째는 영화제작의 여건을 마련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운이 좋게도 전자의 고민은 큰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지만 후자의 고민이 문제였다.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항상 어려웠다.

  학부를 다니던 시절에는 어떻게든 제작비를 줄이는 방법을 생각했다. 주된 방법은 시나리오를 고치거나 학부에서 제공하는 장비만을 사용하거나 학부 내의 다른 학생들과 노동력을 품앗이 하고 연기를 전공하는 선후배동기에게 페이 없이 출연을 부탁하는 일들이었다. 이렇듯, 영화제작에 필요한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제작비를 줄이는 선택들을 했었다. 학부를 졸업한 이후에 한 편의 영화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뜻을 모아 함께 영화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서로 돕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돈 없이 영화를 만드는 것은 분명 가능하다.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좋은 영화, 뛰어난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쩌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금액마저 외면한 채 영화를 만드는 일이 이제야 나는 부끄러워졌다.

  2020, 새로운 시나리오를 썼고 어떻게든 이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졌다. 제작비를 구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으면 했다. 인건비를 지급하고, 원하는 장비를 대여하고, 제작비에 연출을 맞추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시나리오 안에서 돈이 필요한 부분들을 골라내어 요약하고 수치를 내어 정리해보았다. 이런 작업의 반복 끝에 내 앞에 나타난 액수는 약 15,000,000원이었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니, 생각보다 답은 간단했다. 직접 버는 것과 지원을 받는 것. 정기적인 수입 중 일부를 영화제작비로 저축하는 한편, 그동안 시도해보지 않았던 제작지원에 도전하기로 했다.

  제작지원과 관련된 지인들의 의견이나 경험담을 듣기 시작했다. 조금씩 알아보니 생각보다 더 다양한 단체에서 제작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 CJ문화재단, 신영균문화예술재단, 각종 영화제, 기관, 지역의 미디어 단체와 영상위원회 등에서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천여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독립 단편영화에 지원하고 있었다. 나는 20202월부터 준비를 시작해서 현재까지 총 6개의 사업에 응모했다.

▲  2020 년  5 월  25 일 현재까지 접수한 제작지원사업들 .

 

  사업에 응모하면서 처음으로 고민되었던 것은 중복지원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제작지원 사업들 중 타 기관의 제작지원과 중복수혜가 가능한 곳이 있고 불가능한 곳이 있기에 이 점을 유의하여 지원단계부터 향후 일정을 고려해야했다. 또한 단체마다 지원자격을 다르게 두기 때문에 이 점도 잘 살펴보아야 했다. 지원할 사업을 정한 뒤 지원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여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으로 지원했다. 세세한 부분들은 기관마다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신청서와 시나리오, 제작계획서를 제출해야 했다.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마저 쉽지 않았는데,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에 대해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지, 왜 이 영화가 만들어져야 하는지를 설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신청서에는 영화의 개요와 시놉시스, 기획의도 등을 작성하여 어떤 영화인지에 대해 설명해야 했고 시나리오는 독창성과 창의력 그리고 기본적인 구성의 탄탄함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제작계획서는 제작비를 어떻게 운용할지와 제작 전반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 작성해야 했는데 지금껏 한 번도 작성해본 경험이 없는 탓에, 작성하는 동안에도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야만 했다. 기관과 단체마다 양식을 지정해주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기에 더욱 꼼꼼히 서류를 작성하고 확인해야 했다.

▲ 영화진흥위원회 제작비 예산내역서 양식. 생각보다 훨씬 더 세세하게 기입해야 한다.

 

  준비한 서류를 접수한 이후부터 1차 서류 평가의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는 초조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제작지원사업에는 적게는 수 십 편에서 많게는 수 백 편 가까이의 작품이 접수된다. 이 중 10-30편 정도가 1차 합격을 한다. (더 적은 곳도 많다.) 1차 합격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2차 면접평가가 남아있다. 1차 합격 작품의 대다수를 지원해주는 사업도 있지만 과반수를 떨어뜨리는 사업도 있다.

  이 사이에서 지원자는 어떤 가늠도 할 수 없다. 정해진 점수 기준이나 평가에 대해 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따라서 스스로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진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 단계마다 결과를 기다리고 한 단계를 넘어가면 다음 단계에서 요구하는 것을 열심히, 정말 열심히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작지원사업에 떨어지는 것은 또 다른 거절의 경험이었다. 이전까지 겪었던 거절과 달리, 제작지원사업에서의 거절은 영화의 형태를 만들기도 전에 그 형태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듣는 것만 같았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도전한 제작지원인데 그 도전은 무의미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제작지원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사업이 단편영화 제작자로서 누구나 도전하여 제작비를 투자받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지원작의 편수에 비해 선정할 수 있는 작품의 수와 지원할 수 있는 예산에 한계가 있다는 사업주체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가기에, 거절을 경험하더라도 그저 묵묵히 털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여섯 곳의 지원사업에 도전했던 결과, 한 기관에서 제작비의 일부를 지원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목표로 했던 제작비에는 모자라다. 그 과정을 거쳐 왔음에도 제작비가 부족하다는 생각과 이만큼의 돈이라도 얻어낼 수 있음에 감사하는, 복잡한 마음의 요즘이다.

▲ 2020년 하반기 필름게이트 제작지원 최종선정 공지 중 일부, 443편의 응모작 중 5편의 작품이 최종 제작지원작이 되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여러 가지 조건을 타협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제작비를 축소한다. 누군가는 어떻게든 돈을 구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대출을 받기도 한다. 주변 지인이나 부모님에게 얼굴 붉히며 손을 벌리기도 한다. 이런 많은 방법들 중 제작지원이라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경험해보았다. 몇 군데 제작지원사업에 도전했을 뿐이고 따라서 제작지원이 어떤 것인지, 제작지원이 가지는 문제점이나 향후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제작지원의 혜택을 받는 작품이 늘어나고 지원금의 액수가 늘어 날 수 있을지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없다. 

  다만, 영화를 만든 사람들 뿐 아니라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름조차 거론 되지 못 한 많은 작품들이 있다. 그 작품들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내가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이번 도전기에서 느낀 것은 이것이다. 우리 모두 서로의 제작을 기쁜 마음으로 응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나는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적금을 깰 예정이며 향후 진행 될 제작지원사업에도 계속해서 도전할 계획이다. 영화를 만드는 이상 나의 제작지원 도전기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글쓴이.

몇 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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