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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플래닛’은 유튜브의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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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20. 4. 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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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는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굳건한 차별의 벽을 뚫고 좁은 틈에라도 비집고 들어갈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좁은 구멍도 통과할 만큼 유연하고 재치 있게,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올 수 있도록 밀도 있고 단단하게 만드는 일을 동료들과 함께 해내고 싶다."

[ACT! 119호 Me,Dear 2020.4.14.]

‘큐플래닛’은 유튜브의 고수다.


준짱(유튜브채널 ‘큐플래닛’ 편집자)


  나는 식재료로 고수(Coriander)를 좋아한다. 음식이 달고 짜기만 해서는 안 되고 위에 고수도 좀 올라가고 그래야 맛이 풍부해진다. 자극적인 유튜브 콘텐츠를 달고 짠 것에 비유한다면 퀴어방송국 ‘큐플래닛’은 바로 이 고수라고 빗댈 수 있다. 

▲ 고수(Coriander) 


퀴어 방송은 어디에 있을까

  TV를 켜보자. 성소수자의 모습이라곤 온데간데없고, 자꾸만 이성애 연애와 결혼을 부추기고, 성폭력 가해자들은 자기 연민을 쏟아내며 씩씩하게 재기한다. 그나마도 가뭄에 단비 같았던 콘텐츠들은 인기를 얻은 맥락과 무관하게 성격이 바뀌거나 폐지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넷플릭스를 보면 되지! 그래서 <섹스 에듀케이션> 이미 다 봤고 다음 시즌은 왜 이렇게 나를 기다리게 하는지. 누구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유튜브는 어떨까. 조회수를 얻기 위한 온갖 자극적인 영상들로 들썩인다. 여성게임유저를 성희롱하는 겜방, 물을 튀기며 발버둥치는 해양 동물을 통째로 입에 집어넣는 먹방, 부모에게 거짓 커밍아웃을 하는 몰래카메라, 여성아이돌의 특정신체부위가 노출되는 것만 모아놓은 직캠 영상 등 흥미를 유발하는 방식이 대체로 폭력에 기반 해 있다. 퀴어 콘텐츠 역시 ‘일반’으로부터 구별 짓고 거리 둘 수 있는 과장된 콘텐츠에 호응도가 높기 때문에 퀴어 당사자가 운영하는 채널이라고 해도 그 스스로 혐오나 편견을 재생산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퀴어의 삶에 성기와 섹스만 있는 것이 아닌데 유튜브 화면을 보면 꼭 그렇게만 보인다. 흥미 본위의 콘텐츠만 해도 이런 상황인데 작정하고 혐오하는 경우는 눈뜨고 못 봐줄 정도다. 기독교계 혐오세력들이 빵빵한 자본과 조직력으로 생산하고 전파하는 가짜뉴스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페미니즘을 가장해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는 혐오 콘텐츠도 우후죽순 늘어났다. 

  그때 큐플래닛이 등장했다. 2018년 동성애조장방송을 폐지하라는 혐오단체의 요구에 따라 EBS로부터 일방적으로 프로그램 하차 통보를 받은 은하선, 이에 연대의 의미로 프로그램 참여를 보이콧했던 손희정이 큐플래닛에 출연하기로 했고, 기획과 촬영도 정해졌고, ‘구독&좋아요’는 내가 할게. 편집은 누가할래? 네,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영상편집은 화면과 소리, 내용을 모두 고려하여 필요한 부분을 다듬어 적절한 시간에 딱 맞게 집어넣는 조리과정과 같다. 맛있는 요리의 레시피처럼 방송은 으레 이래야지 싶은 것들이 있다. 시청자들 역시, 먹어 버릇한 음식에 입맛이 맞춰지듯 기존 방송들이 쌓아온 편집 문법에 익숙해져 있다. 절망이 있으면 반드시 이겨내는 짠내 나는 감동의 그림, 적의 외압에 맞서 통쾌한 한 방을 날려주는 사이다 그림이 나와줘야 한다. 그런데 큐플래닛은 이런 그림들이 좀처럼 잡히지 않아 어려웠다. 

▲ 유투브 채널 ‘큐플래닛 - 뉴스 읽어주는 퀴어’의 한 장면 



큐플래닛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혐오세력들이 퍼뜨리는 왜곡된 정보에 대항해 사실을 바로 잡는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왜곡된 정보가 우습고 유치하다고 내버려뒀다가는 살아있는 퀴어 한 사람 한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어쩜 그리 생산 속도도 빠르고 때깔도 좋은지, 언뜻 무기처럼 보이지도 않을 때도 다반사다.
  우리의 출연진 손희정, 신필규, 은하선은 곧장 무기를 박살내기 보단 ‘사람들이 무기를 왜 만들까’를 고민한다. 차별의 현장을 기록하고 어떤 이가 다쳤는지를 돌아보면서, 혐오를 추동하는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탐색한다. 가짜뉴스의 조악한 논리에 와하하 통 크게 웃어주기도 한다. 이것이 큐플래닛 출연진들의 문제해결방식이다. 유튜브 생태계에 맞지 않게 너무 착해빠졌지는 않나 편집자로서는 조바심이 날 때도 있지만, 나는 단짠의 세계에 우리 출연진들의 이러한 면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진을 도려내고 문을 걸어 잠가 우리만의 안전하고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더 넓은 세상으로 함께 가자는 배포. 둥둥둥 혐오세력의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춰버리는 퀴어함. 달고 짠 차별과 혐오로 후덥지근해진 세상에서 입안이 개운하도록 고수를 곁들여 먹는 지혜. 그래서 큐플래닛은 고수의 맛이다. 



나는 미디어 활동가

  나는 영상편집 이외에도 웹자보며, 만화며, 책 디자인이며, 걸개그림까지 손재주를 필요로 하는 운동사회 곳곳의 부름에 응해왔다. 맡게 되는 일이 늘수록 현장보다는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에 따라 실제 활동판과 교감하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이 남고 외로울 때도 있었다. 고용된 형태가 아니다보니 일의 성과가 곧 나에 대한 평판으로 여겨질까 봐 잠 못 자는 일도 많았다. 내세울만한 개인작업도 없고 그렇다고 상근활동가로서의 경험을 쌓고 있지도 못한 내가 사실은 둘 다로부터 도망쳐온 것은 아닐까 자괴감이 들었다. 

  지금은 아니다. 2019년 3월 개국 이후 내가 편집한 큐플래닛 영상만 60개가 넘는다. 5일에 1개는 제작한 셈이다. 성소수자 인권 이슈를 연속적으로 읽어내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10분 내외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1시간 정도 되는 원본 소스를 수백 번 반복해서 보게 되는데, 출연진들 이야기하는 소리를 내내 옆에 끼고 사는 것 같다. 웃음소리는 또 얼마나 우렁찬지 외로울 틈이 없다. 내 나이 곱절의 삶을 먼저 살아낸 퀴어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면, 실제로는 도달할 수 없는 시간의 너머까지 닿은 듯 한 기쁨도 느낀다. 용기와 위로를 얻었다는 댓글을 통해 다른 많은 퀴어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이제 나는 나를 자신 있게 미디어 활동가로 소개한다. 큐플래닛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고 세상을 만나게 하는 데에 완전히 고수(高手)인 것이다! 퀴어는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굳건한 차별의 벽을 뚫고 좁은 틈에라도 비집고 들어갈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좁은 구멍도 통과할 만큼 유연하고 재치 있게,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올 수 있도록 밀도 있고 단단하게 만드는 일을 동료들과 함께 해내고 싶다.

  큐플래닛 구독자 수를 늘려보려 했는데 고수맛이라고 써놔서 사람들이 도망갈까 걱정된다. 특유의 향 때문에 호불호가 큰 식재료지만, 한번 잡숴보시면 그 매력에 푹 빠지시리라 장담한다. 매콤한 맛, 건강한 맛, 시큼한 맛도 만들고자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으니 일단 구독하시고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한국인은 고수로 김치도 담가 먹는다니 이도 저도 안 되면 김치 맛으로...) 

ps. 실은 큐플래닛에도 단짠단짠이 있다. 궁금하시면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에 방문해주세요!

 

▮ 관련 사이트
- 새로운 무지개가 떠오를 그 곳, 퀴어방송국 큐플래닛 
https://www.youtube.com/channel/UCRU4HI2dS_SplHaRc9cVKiQ/featured

 

큐플래닛

새로운 무지개가 떠오를 그 곳, 퀴어방송국 큐플래닛

www.youtube.com



글쓴이. 준짱

유튜브채널 큐플래닛의 편집자
눈치 채셨겠지만 언어유희를 좋아합니다.
동물을 먹고 전시하고 실험용으로 쓰는 것에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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