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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서 우리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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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10. 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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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한국 청년들이 여성주의적 공동체를 꾸리고 그들과 경험을 나누며 서로를 지지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다름과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삶. 그 삶 속에서 계속해서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담아내고 싶다."

 

[ACT! 116호 Me,Dear 2019.10.17.]

 

이런 세상에서 우리와 나

김세영

 

  "세상이 왜 이따위냐." 대학 입학 후 언론영상을 전공하면서 미디어와 사회를 점점 알아갈수록 끊임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도 기성세대가 장악하고 있는 주류 언론에 '20대, 여성'의 목소리는 담기고 있지 않다고 한탄했다. 나는 운 좋게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시바뉴스'라는 미디어 활동 팀을 꾸렸다. 20대 여성의 시선과 이야기를 우리가 배운 지식들을 통해 전달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시위 현장으로 나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시선을 바꾸다'는 의미의 시바뉴스 팀이었다.

  시바뉴스 활동으로는 주로 여성들이 겪는 부조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콘텐츠나, 묻혀가는 여성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콘텐츠를 제작했다. <한남패치, 메갈패치 그리고 한국사회의 이중잣대 (1, 2편)>,  <임신중단합법화 (1, 2편)>, <시바위바 여성 독립운동가 (1, 2편)>, <서울시 일본군 '위안부' 콘텐츠: 바람>,  <미투 프로젝트 (1편 남자들은 불편하다, 2편 우리가 말하지 못한 이유)> 등의 영상을 만들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시위 현장으로, 편집실로 향했고 지금 돌이켜보니 참 열심히도 활동했다. 오랜만에 약 2-3년 전의 시바뉴스 활동을 되짚어보다 우연히 2년 전 작성한 메모를 발견했다.

 

나의 여성연대 (작성일 : 2017년 7월 27일)
  최근 2년 사이 많은 것들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우연과 필연의 흐름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체감하고 있다. 그럴 수 있었던 시간 뒤에는 같은 과 동기들과 정기적으로 가지는 독서모임, 함께 시사이슈 콘텐츠를 만드는 시바뉴스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어떤 특별한 시간을 가지려고 하지 않아도 일상 곳곳에서 젠더 불평등을 발견할 수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에 대한 풍부하고 다양한 논의를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친구들로 이루어진 모임에 엄청난 무한 신뢰와 믿음이 생기면서 내가 독립적으로 가지는 '생각하는 힘'과 그것들을 어떤 것으로 풀어가는 지구력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자괴감에...

 


  대학 졸업이 다가오자 우리는 학업과 미디어 활동을 병행하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에 지쳤다. 동시에 졸업 이후 각자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큰 일이었다. 내 인생을 강력하게 뒤흔든 이 여성연대로부터 과연 내가 독립하여 홀로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작업을 계속해서 나갈 수 있을지, 이 친구들과의 관계가 여전히 지속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나는 분리불안 증세처럼 이상하게 '우리'라는 강박 속에서 정작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채 걱정하고 있었다. 졸업 후 결국 우리는 더 이상 '시바뉴스' 활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한동안 부적응 기간을 보내며 괴로워했다. 앞으로 함께 작업할 새로운 여성 동료들을 찾으려 애쓰다 번번이 실패했고 시바뉴스 친구들에게 야심차게 제안한 프로젝트는 정중하게 거절되었다. 그럴수록 나에게 있어서 명확해지는 한 가지가 있었다. 하고자 하는 일이 같더라도 함께 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며 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더라도 각자의 영역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따로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바뉴스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미 페미니즘은 우리 삶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함께 여성주의 미디어 활동을 했던 친구들이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을 하겠다고 할 때 처음 느낀 불안은 점차 사라졌고 이제는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서의 페미니즘적인 경험과 시각을 공유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시바 친구들' 이라고 부른다. 많은 한국 청년들이 여성주의적 공동체를 꾸리고 그들과 경험을 나누며 서로를 지지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다름과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삶. 그 삶 속에서 계속해서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담아내고 싶다. □

 


글쓴이. 김세영

 

 

- 영화를 보고 페미니스트 친구들,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에서 힘을 얻는다.
여남 관계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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