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외로움을 혼자 걷는 법, 은 사실 잘 모릅니다. - 얌운센

전체 기사보기/Me,Dear

by acteditor 2019. 11. 27. 14:00

본문

"혼자 걸으며 보았던 그 모든 아름다운 풍경이 내 안에 있음에도. 혼자 걷던 그 순간 나는 타인의 용인 없이 나 자신으로 중요했음에도, 그 기억을 꺼내 보려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편집자 주] ‘Me,Dear’는 일상에서 느낀 소소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소박하고 소중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길 기대합니다. 


 

[ACT! 117호 Me,Dear 2019.12.16.]


외로움을 혼자 걷는 법, 은 사실 잘 모릅니다.

얌운센

 


  작은 다큐멘터리 제작사에서 취재작가로 일하고 있다. 사람들에게서 차분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카페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 조용히 혼자 책을 읽고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때론 혼자가 지겹다. 이 지면에서 최근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 풀어놓아도 된다고 해서, 나는 ‘걷기’와 ‘외로움’에 대해 말해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가 홀로 외로움과 싸워내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했다거나, 영화 <와일드> 속 주인공처럼 혼자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하이킹을 떠나본 사람은 아니다. 나는 다만 매일 동네 공원을 한 시간 즈음 산책하는 사람. 약속을 마치고 집까지 뚜벅뚜벅 걸어보는 사람. 별것 아니지만 좋아하는 노래 속에 걸으며 하루를 돌아보거나, 배경음악마저 성가실 만큼 날선 날엔 휴대폰을 꺼두고 나와 만나는 시간을 내본다.  

 

▲ 영화 <와일드> (장 마크 발레, 2015) 


  명치가 막힌 듯 답답한 날 나는 걸었다. 볕이 희미하게 드는 정사각의 원룸에 살고 있어서, 정당하게 말대꾸를 했어야 했는데 어물쩍 넘어가버린 내가 미련해서, 갑자기 고장나버린 노트북에 카드값이 막막해서.. 그 중에서도 나를 걷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의 실패였다. 하지만 그걸 사랑이라 말할 수 있었을까. 사막 같은 이번 생을 걷다 만나는 선인장꽃이나 샘을 나는 텅 빈 마음에 쉽게 담았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낸 그 사람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보고 환해지는 내 마음이 좋았을 뿐, 사랑받고 싶어 먼저 사랑을 시작했을 뿐이다. 그 사람을 잘 알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가짜 마음은 늘 실패했다.   

  걸어도 걸어도 앙금으로 남아 있는 ‘나는 왜 혼자서도 충분하지 못할까?’ 같은 질문들은 뭔가를 보거나 읽게 했다. ‘사랑은 사치일까’(벨 훅스)에선 사랑에 대한 여자들의 집착에 가까운 애착은 타고난 것도 아니며, 첫눈에 반해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라 말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우리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가부장적 세계에서는 결코 충분히 훌륭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사랑에 대한 집착은 시작되며,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성은 그리 가치가 높지 않은 존재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여자들은 소녀 때부터 자연스럽게 여성으로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지를 걱정해야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성적 대상화 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저 일하는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퇴근 후 못 견디게 외로운 날엔 그저 ‘물리적 여성의 몸’으로서 데이팅 어플을 켜서 ‘물리적 남성의 몸’을 찾기도 했다. ‘예쁘다’고 평가되는 이미지보단 편함을 택해 숏컷을 하고 품 넓은 바지를 입지만 주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싹싹함이나 꼼꼼함을 내세우며 ‘쓸 만한 취재작가’를 연기하기도 한다. 여성으로서 사랑받는 일을 포기하는 것, 그저 나라는 한 사람으로 걸어가는 일은 어떻게 가능해지는 것일까. 모순 속에 살아가는 나는 여전히 모르겠어서 걷고, 모르겠어서 보고 읽는다. 


  영화 <와일드>는 온전한 자신을 찾으려 혼자 걷는 여자, 셰릴의 여정을 담았다. 가난과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던 유년을 지나 사랑하는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낸 그는 헤로인과 원나잇에 취해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만 있었다. 원치 않은 임신 이후, 돌아가신 엄마에게 나아가 자신에게 떳떳한 삶을 시작하고자 3개월간의 하이킹을 떠난다. ‘혼자 험한 길을 걷는 여자’로서 셰릴은 이상한 시선과 동시에 환대의 주인공이 된다. 호텔 주인은 동행 남성이 있을 거라 의심하며 1인분의 방값을 탐탁지 않게 받는다. 트레킹 길에서 만나는 남성들은 함께 걷는 동료로서 응원을 아끼지 않는 한편, 겁탈하려는 사람을 만나 도망치기도 한다. 여정의 끝에 다다를 즈음, 셰릴은 처음으로 여성 동료를 만나고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 

 

▲ 영화 <와일드> (장 마크 발레, 2015) 


외로워요? 
솔직히 내 진짜 삶에서 더 외로운거 같아요. 
친구들이 그립긴 하지만 집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당신은 어때요, 왜 왔어요?  
내 안의 뭔가를 찾아야겠다 싶어서요. 제대로 온 것 같아요. 보세요. 
보기만 해도 재충전되는 풍경이에요. 
저희 엄마가 지겹게 하던 이야기가 있어요. 
일출과 일몰은 매일 있으니까. 네가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어. 
너도 아름다움의 길에 들어설 수 있어.

 

  셰릴의 엄마가 남기고 떠난 말처럼, 우리에겐 일출과 일몰이 매일 있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움의 길에 들어서는 방법을 놓쳐왔던 것 같다. 나는 그걸 누군가와 꼭 함께 봐야만 한다고 믿었다. 혼자 아름다운 것을 보는 일은 슬프다고, ‘노을이 참 아름다워’ 자신에게 말하는 일은 처량하다고 스스로를 누추하게 만들었다. 이 세계 안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함께하는 일만을 갈구했다. 그러니 아무리 내처 걸어보았자 여전히 가슴께가 답답했던 건 아닐까.  


  혼자 떠난 제주 박수기정의 은은한 해질녘, 오후 4시 즈음 속초 바다의 윤슬, 파주 하늘을 날아가던 철새들. 혼자 걸으며 보았던 그 모든 아름다운 풍경이 내 안에 있음에도. 혼자 걷던 그 순간 나는 타인의 용인 없이 나 자신으로 중요했음에도, 그 기억을 꺼내 보려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나는 여전히 외로움을 혼자 걷는 법을 잘 모른다. 
그저 내일도 내가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을 수 있기를. □


글쓴이. 얌운센 

산책과 얌운센을 좋아합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