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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언니전지현'과 '나' 사이의 공간 -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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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20. 8. 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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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만 반복하고 앉아있는 것을 대화라고 부를 수 없는 것처럼 현실에 갇히거나 영화 이미지 속에 갇혀있는 것을 다큐멘터리적인 대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일랜시아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은 다큐멘터리라는 영화적 형식과 현실 사이에 끝없이 오가는 순환을 직관해야만 가능하다."

 

[ACT! 121호 리뷰 2020.08.14.]

 

'내언니전지현''' 사이의 공간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리뷰

 

김혜림(비평공유플랫폼 콜리그운영자)

 

 

▲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박윤진, 2019)

 

  RPG(Role Playing Game)의 본질 중 하나는 플레이어와 게임 속 캐릭터가 완전히 겹쳐지지도, 그렇다고 아예 다른 존재로 분리되지도 못하는 '걸쳐있는 상태'일 것이다. 20년의 시간동안 일랜시아라는 게임을 지탱한 플레이어들은 현실에서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유로움과 더불어 정해진 루트를 정확하게 수행하기, 매크로를 통해 쉽게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등, 가상세계 내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을 실현시킨다. 이때 발생하는 역설은 일랜시아가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기에 인기를 얻었으나, 플레이어들은 정해진 루트를 짰고, 그 루트에 맞추어 자신의 캐릭터를 육성해나갔다는 지점이다. 본의 아니게 폐쇄된 게임 속 환경에서 플레이어들은 루트를 정확하게 따르기 위해 '부주(대리)'를 맡기거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기도 한다. 아이디와 닉네임만으로 구성된 캐릭터는 실제 플레이어가 누군지, 그들이 가닿고자 하는 캐릭터의 이상향이 무엇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RPG의 캐릭터는 플레이어의 분신인 동시에 게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완벽한 가상 존재다. 박윤진 감독의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이 지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듯하나, 동시에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움직임을 뒤섞어놓으면서 21세기의 한국을 겨냥한다. 일랜시아가 플레이되었던, 그리고 플레이되고 있는 한국의 상황과, 그에 발맞추어 플레이어들이 성장해가며 마주했던 실제 삶의 사건들을 인용하며 영화는 일랜시아라는 게임의 특성을 바라본다. "넥슨의 모든 게임은 돈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고스펙 유저가 될 수 없"지만 일랜시아는 유저들이 만들어 배포한 불법 매크로를 통해 게임을 벗어나는 내파의 계기를 마련한다. 그러나 그렇게 마련된 것은 루트, 버그 등에 의한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위협으로 가상공간과 현실세계는 비로소 만나게 된다(한편, 이를 '만남'이라는 표현으로 축소할 수 있을까?).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일랜시아를 향한 그 위협은, 특정 캐릭터를 마주하면 게임이 느닷없이 종료되는 이른바 '팅버그'. 이 때문에 일랜시아의 유저들은 정상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린다. 이때 감독이 취한 움직임은 게임 속 세계를 초과하는 것이다. 넥슨의 고객센터를 직접 찾아가 현재 일랜시아에 퍼져있는 버그에 대한 시정 조치를 요구하기도 하고, 넥슨의 노조인 '스타팅포인트'를 방문해 포괄임금제 등 게임업계에 퍼진 노동문제를 조명하기도 한다. 넥슨의 최소한의 개입으로 팅버그가 사라지자 일랜시아의 유저들은 현실세계에서 변화를 이끌어낸 연출자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순환이 일어난다. 게임이라는 가상 속 버그가 현실에서의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이 움직임이 다시금 게임의 가상공간 속으로 번역되어 들어간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내언니전지현'에서 '', 그리고 ''에서 다시 '내언니전지현'으로 순환한다.

 

  가상적인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가상공간과 실제 공간은 분리할 수 있는가? <내언니전지현과 나>버츄얼’(Virtual)의 영화다. 가상과 실제가 연결되어 끊임없이 서로를 간섭하고, 인용하는 형태. 보이지 않는 전염병으로 인해 실제 삶의 모든 면면이 훼손되는 때, 예술 작품들의 경향에 대한 논란이 실제적 변화로 이어지기를 요청받는 때, 이 영화는 결코 하나의 가상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버츄얼을 경유할 때 비로소 흥미로워진다.

 

  터키의 영상작가 메모 아크텐(Memo Akten)은 인공지능의 학습능력을 사용하여 얼핏 실제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를 이미지화한다. 메모 아크텐의 작업 <Learning to See>(*1)는 세 단계를 통과해 가상적 세계를 만든다. 첫째, , , 하늘, 물과 같은 몇몇 물질들의 실제-물리적 형태. 둘째, 실제-물리적 형태를 딥러닝하는 인공지능. 셋째, 이미지화된 가상-물리적 형태와 동떨어진 또 다른 실제-물리적 형태. 쉽게 말해, <Learning to See>는 꽃, , 하늘, 물과 같이 실제 세계의 모습을 학습하고, 딥러닝을 통해 실시간으로 카메라에 비추어진 다른 사물을 그 모습으로 바꾸어낸다. 아크텐의 이러한 작업은 버츄얼의 극단, 즉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가상으로 존재하는 것을 오가며 양 끝단이 서로를 구성하고, 끝없이 ()전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작업적 특성은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관통하는 핵심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이때 '내언니전지현'이라는 일랜시아 게임 속 닉네임과 ''라는 실체 사이에 존재하는 스페이스는 그 전유의 틈을 바라본다.

 

▲ 메모 아크텐의 작업 <Learning to See>

 

  내언니전지현-()-나 사이에 존재하는 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보이지 않는 힘들이 맞물려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1997IMF 이후 가속화된 삶의 변화들은 일랜시아의 내부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때 일랜시아 내부의 움직임은 단순히 반영론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 실제 세계는 굴절된 채 게임 속에 개입되어 있다. 시간을 들이는 만큼 그것이 결과로 즉각 드러나는 RPG의 특성상, 그리고 본의 아니게 관리되지 않은 게임 속 환경 때문에 버려진 일랜시아는 각종 불법 매크로와 루트를 통해 캐릭터를 키워나갔다. "매크로가 도입된 이후 유저들은 가장 강하게 키우기 위한 루트를 만들어 공유했고 모두 이 길로만 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게임 속 환경은 단순 가상공간에만 한정지을 수 없다. 감독이 자신의 길드원을 실제로 만나고, 일랜사아에 관련한 인터뷰를 진행할 때조차도, 현실은 끊임없이 침입한다. 학창시절 학원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이야기, 대학 재학 중 공모전과 교수에 관련한 이야기 등. 플레이어의 모든 모습은 일랜시아와 떨어져있지도, 완전히 접착되어 있지도 않은 채 서로를 느슨하게 언급한다.

 

▲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박윤진, 2019)

 

  나는 여기서 다큐멘터리의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프랑수아 니네는 다큐멘터리는 "오직 내용(정보)으로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형식(카메라와 세상의 상호작용)과 관객에게 요구된 표현양식(믿음직한 것), 믿음의 방식(역사적이고 인류학적인 것)"(*2)을 통해 정의된다고 말했다. 영화로 번역된 다큐멘트는 어떻게든 현실을 초과해야 하고, 동시에 영화 내부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벗어나 대화해야 한다. 같은 말만 반복하고 앉아있는 것을 대화라고 부를 수 없는 것처럼 현실에 갇히거나 영화 이미지 속에 갇혀있는 것을 다큐멘터리적인 대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일랜시아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은 다큐멘터리라는 영화적 형식과 현실 사이에 끝없이 오가는 순환을 직관해야만 가능하다. 다큐멘터리는 버츄얼해야 한다. 단순히 현실과 가상을 만나게 하는 것을 넘어서, 서로가 서로의 영역에 침입하고, 바꾸어야 한다. '내언니전지현'''가 결코 분리될 수도, 분리되어서도 안 되는 이유다.

 

*

1) http://www.memo.tv/portfolio/learning-to-see/

2)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프랑수아 니네, 2012312)

 


글쓴이. 김혜림(비평공유플랫폼 콜리그운영자)

- ‘콜리그라는 비평공유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상비평전문지 오큘로(OKULO) 온라인 콘텐츠 필진으로도 활동합니다. 영화비평계에 남아서 꾸준히 영화 이야기를 하고, 글을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콜리그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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