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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목소리로 담담히 끌어올린 세월호의 기억과 질문 <부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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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0. 4. 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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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대비에 손을 놓고, 적절한 재난 대응을 하지 않고, 재난 이후에 국민의 일부를 버리는 국가는 곳곳에 있다. 세월호를 포함한 모든 재난들은 특수하지만, 어떤 점에서 모두 같은 이야기이다."

[ACT! 119호 리뷰 2020.4.14.]

절제된 목소리로 담담히 끌어올린 세월호의 기억과 질문
-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


박상은 (사회학과 대학원생. 플랫폼C 활동가)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뉴스 속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부재의 기억>이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본상 후보에 올랐다는 뉴스를 보았다. 2018년에 공개된 이 다큐멘터리는,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며 세계 뿐 아니라 한국에도 다시 세월호를 떠올리게 했다. 
  ‘참사의 책임소재와 그 원인에 집중하는 기존의 다큐멘터리’와 다르다는 공식 영화 소개에서 말하듯, <부재의 기억>은 답을 내리고자 하지 않는다. 대신 29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질문을 건져 올린다. 제작사인 ‘필드 오브 비전’이 단편을 보여주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에 감독은 30분을 넘지 말아달라는 의견을 따랐다고 한다. 많은 기록을 짧게 담아내는 것에는 대단한 절제가 필요하다. 그 덕분에 <부재의 기억>은 감독의 말대로 ‘긴 시’같은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부재의 기억>(이승준, 2018) 

담담히 끌어올리는 질문 

 영화는 바다 위를 쭉 따라가다 최초 신고로 시작한다. 전반부는 2014년 4월 16일 당일의 이야기다. 배 안에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던 상황, 현장 상황이 긴급한데도 영상만을 독촉하는 청와대, 배가 이미 가라앉은 뒤의 소용없는 지시들, 배에 올라가서 구조하는 ‘좋은 그림’을 만들었어야 한다는 통화내용, 선내에 사람이 남아있지 않을 거라는 잘못된 보고… 선체인양 후 발견된 블랙박스 영상 외에는 모두 대부분 참사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봤을 영상들이다. 그렇게 영화는 모두의 기억 속에 있지만 잊힌 것들을 끄집어낸다.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잊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 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후반부는 4월 17일 이후의 과정으로, 민간 잠수사들의 증언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VIP가 지켜보고 있으니 에어포켓에 공기를 주입하는 시늉이라도 하라는 지시, 희생자의 수습조차 민간 잠수사들에게 맡겼던 국가, 국정조사와 청문회에서의 책임회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세월호의 인양…. 참사 이후 몇 년간의 긴 과정을 영화는 빠르게 따라간다. 2014년 이후에도 세월호 참사에 관한 사안을 따라온 사람이라면 역시 새로운 내용은 아니겠지만, 후반부부터는 처음 알게 된 사실을 접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을 것이다. 
  나에게 흥미로웠던 점은 세월호 참사 이후를 대부분 시계열로 따라가다 마지막에 다시 故김관홍 잠수사의 이야기로 돌아간 편집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은 2017년 3월, 세월호가 목포신항만에 거치된 것은 2017년 4월이지만, 故김관홍 잠수사의 사망은 2016년 6월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한국사회의 변화의 열망이 투영된 촛불과 그 결과인 탄핵인용을 보여줬다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간다. 어떤 질문들은 2017년 봄 이후가 아니라 2016년 여름인 채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그렇게 영화는 전반부에는 우리의 기억상실에 대한 말걸기를, 후반부는 촛불과 탄핵과 정권교체를 겪으면서도 계속 그대로 남아있는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며 다시 질문을 던진다. 왜 그날도, 그 이후로도 국가는 부재했는가.     


질문에 답하려는 두 길

“나는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열심히 살아서 세금 잘 내고 자식 잘 키우는 것밖에 없어. 근데 당신들이 왜 그래. 구해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바다에다가 풍덩 더 가라앉혔어. 대통령이 왔는데 해결을 이것밖에 못해줘?” 

  영화에서 호성엄마 정부자 씨는 에어포켓 공기주입 후 배가 더 가라앉는 것을 보며 느낀 심정을 위와 같이 증언한다(이후 밝혀진 사실이지만 객실 내 에어포켓은 없었다). ‘재난 시에 국가는 국민을 구할 것이다.’ 호성엄마 뿐 아니라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이라면 믿고 있었을 이 원칙이 한국에 없다는 것을 세월호 참사는 알려 주었다. 
  참사 이후 6년여 간 국가가 부재했던 이유를 찾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없지 않았다. 이는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눠진다. 첫째는 국가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구성한 이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는 것이다. 법정에서는 세월호를 안전하지 못한 배로 만든 책임은 적극적으로 물었지만, 구조실패의 책임은 거의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6년 세월호 특조위가 해경 지휘부에 대한 특검 요청서를 제출하고, 2019년 4.16가족협의회 등이 검찰특수단에 세월호 참사 책임자를 고소고발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력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지난 1월 해경 책임자 6명의 영장은 모두 기각되었다. 이들은 불구속 기소되어 곧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지만 법리상 현장에 직접 나가지 않은 사람들에 쉬이 유죄가 선고될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렵다.
  둘째는 국가를 특정 주체로만이 아니라, 제도들의 집합이자 체제로 이해하며 사회 시스템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더 어렵다. 몇몇 책임자를 도려내도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고용 문서 작성을 위해 구조현장을 들들볶는 행태,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구조훈련은 소홀히 했던 관행,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해도 된다는 정부의 신호와 사회 전반의 메시지… 이것이 바뀌었을까? 시스템의 문제는 근원적이지만 책임자를 특정하는 방식보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은 독특하게도 시스템, 사회구조의 문제를 묻는 것이 마치 책임의 문제를 회피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통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와 그 이후, 국가를 부재하게 만든 시스템의 문제는 아직 그 실상조차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참사 발생 후 6년이 지나도록 국가의 부재의 이유를 묻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절망스럽다. 제대로 된 책임을 묻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 시스템의 문제가 몇몇 정부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가 부재한 그 때와 다른 사회를 살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 이후 6년이 지난 지금, 영화 <부재의 기억>이 다시금 상기시키는 질문이다.

 

▲<부재의 기억>포스터 (이승준, 2018)



특수하지만, 결국 보편적인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귀국 기자간담회에서 이승준 감독은 해외 반응을 전하며 “세월호와 비슷하게 국가가 제대로 기능을 못해 많은 사람이 희생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공감해줬다”고 말했다. ‘재난 시에 국가는 국민을 구할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재난 시에 국가는 종종 없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은 일반인은 연간 1mSv에서 20mSV로, 노동자는 5년간 100mSv에서 250mSv로 방사능 노출 기준을 높인 후, 그에 따라 피난구역을 해제하고 노동자들을 핵발전소 수습업무로 내몰았다. 일본의 사회운동과 학자들은 이를 대표적인 기민(棄民: 국민을 버리는) 정책이라 비판했다. 저소득층과 이민자들이 살았던 런던의 공공 임대 아파트인 그렌펠 타워는 값 싼 자재와 스프링클러 등 화재 대비 설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재난 대비에 손을 놓고, 적절한 재난 대응을 하지 않고, 재난 이후에 국민의 일부를 버리는 국가는 곳곳에 있다. 세월호를 포함한 모든 재난들은 특수하지만, 어떤 점에서 모두 같은 이야기이다. 아마도 <부재의 기억>의 울림은 그 보편성에서 나왔을 것이다. □

▮ 관련 사이트
- <부재의 기억> 보러가기
https://youtu.be/Mrgpv-JgH9M



글쓴이. 박상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존엄안전위원회,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했다. 현재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 다니며 재난조사위원회에 관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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