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한국퀴어영화사』가 출간된 지 5개월이 지난 현재의 고민들

전체 기사보기/리뷰

by ACT! acteditor 2020. 4. 1. 11:42

본문

"자료와 연구의 척박함, 극소수인 연구자 환경 속에서도 한국퀴어영화는 꾸준히 제작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관객들이 호응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퀴어영화 연구/비평 또한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한국퀴어영화사』가 바로 그러한 상황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작은 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ACT! 119호 리뷰 2020.04.14.]

『한국퀴어영화사』가 출간된 지 5개월이 지난 현재의 고민들

이동윤(『한국퀴어영화사』 책임편집자) 


  『한국퀴어영화사』는 한국 최초의 퀴어영화 연구서라는 의미를 지닌다. 척박한 퀴어영화연구 환경 속에서 본격적으로 그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씨앗을 심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퀴어영화에 대한 연구는 이룬 것 보다 이뤄야 할 것들이 더 많다. 그래서 첫 시작을 열었다는 것만으로 안주하기엔 이르다. 본 글은 이에 대한 여러 고민들을 공유하는 장이 될 것이다. 『한국퀴어영화사』의 성과와 의미를 돌아보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이뤄야 할 것들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는 자리이길 바란다. 본 글이 한국퀴어영화 연구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계기였으면 한다. 

▲ 연구서 『한국퀴어영화사』 (출처: 픽쳐리스) 


  『한국퀴어영화사』는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한국퀴어영화’에 대한 이론적 개념화를 시도한다. 한국에서 제작된 퀴어영화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떤 작품들을 ‘퀴어영화’라 규정지을 수 있는지 기준을 세우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퀴어영화에 대한 담론은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90년대 이후 체계화 되어 왔지만 한국에서는 한 번도 논의된 적 없었으며 미국에서의 담론을 그대로 한국적 상황 속에 대입하는 것에도 무리가 있다. 한국영화의 특정성을 바탕으로 퀴어영화에 대한 담론을 새롭게 세워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론적 작업을 선행하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작품들에 대한 경향 분석을 먼저 시도했다. 그래서 한국퀴어영화만의 특정성을 먼저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퀴어영화에 대한 거대담론을 제시하고자 했다. 하지만 절대 거대담론은 단 한 번의 연구결과로 구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수의 연구들이 서로 경합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1장에서 제시된 연구는 많은 비판의 지점 또한 지닌다.

  먼저 장준안의 연구에서 제시된 비성소수자 감독이 만든 퀴어영화에 대한 긍정적 분석은 퀴어영화에 대한 논의를 당사자성이라는 한계 속에 국한시킨다. 이미 제작된 영화는 창작자의 손을 떠난 하나의 생명체로서 관객에게 다가간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창작자의 당사자성은 분석의 극히 작은 부분에 해당한다. 퀴어영화에 대한 규범은 당사자성을 넘어서서 작품에 대한 해석 주체의 시선에 담겨질 수 있다. 김경태의 연구는 다양한 성소수자를 재현한 작품들 중에서 시스젠더 남성 동성애자를 재현한 작품들을 주로 대상에 삼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의 한계성을 지닌다. 오히려 김경태의 연구를 바탕으로 레즈비언 영화, 트랜스젠더 영화, 그리고 다양한 성소수자를 재현한 작품들에 대한 담론 구성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퀴어영화를 시스젠더 중심으로 규정해왔던 과거를 강하게 비판했던 루비 리치의 ‘뉴퀴어시네마’ 담론은 이런 상황에서 유용한 참고점이 될 수 있다. 김경묵 감독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퀴어영화의 ‘작가주의’를 논의한 얼 잭슨의 연구 또한 퀴어영화를 독립예술영화 영역에 국한 짓는다. 퀴어영화가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예술영화 영역에서 더 많이 제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는 퀴어영화의 가능성보다 한계로 인식된다. 그만큼 퀴어 소재는 자본의 검열로부터 배척되고 외면당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얼 잭슨의 연구를 바탕으로 퀴어영화의 작가성이 어떻게 상업적 영역 내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지를 보다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한다. 퀴어영화의 확장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비판적 시선이다. 

▲ 영화 <금욕>(김수형, 1976) 스틸컷 


  2장에서는 총 53편의 한국퀴어영화들을 가급적 자세히 소개하려 노력했다. 기획단계에서는 대략 50여 편의 작품을 선정하여 시놉시스와 간단한 평을 더해 본 장을 구성하려 했다. 50편이 많지 않다고 판단한 이유는 선정한 작품들 다수의 시놉시스가 이미 한국영상자료원 데이터베이스에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평론 내용만 준비하면 되니 불가능한 작업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작품을 감상하며 확인한 작품 다수가 시놉시스와 내용이 전혀 달랐다. 시놉시스는 성소수자 주인공들을 비극적 인물이나 부정적 존재로 묘사하고 있었지만 영화 속 그들은 본인의 목소리를 당당히 드러내는 주체적 인물들이었다. 너무도 극명한 해석의 차이 속에서 대부분의 많은 시놉시스들을 폐기한 채 새로 써나갔다.

  이것은 한국퀴어영화가 처한 현실을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일례이다. 한국퀴어영화는 적극적으로 발굴되고 호명되어야 하는 존재들이다. 하나의 작품을 퀴어영화로 호명한다는 것은 영화 속에서 재현되고 있는 성소수자를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고통으로 울부짖는 영화 속 성소수자들의 목소리에서 ‘퀴어성’을 배제해버리면 그 고통의 목소리는 추상화되어 버린다. 고통의 근원을 충분히 이해하고 영화 전체를 분석하는 작업은 그들의 목소리를 현재화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작품을 퀴어영화로 규정하는 것은 이와 같이 영화 속 퀴어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사회적 차원과 연결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2장에서는 총 4편의 평론 글을 더했다. 한 번도 퀴어영화로서 분석되지 않았던, 하지만 다수의 비평작업이 선행되었던 작품들을 바탕으로 작품 분석의 관점이 보다 확장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책에 실린 작품들 이외의 작품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퀴어영화로 호명하는 것이다. 이는 어느 한 두 사람만의 관심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많은 연구/비평 영역 내에서 퀴어영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수행되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3장에서는 한국퀴어영화를 역사적 관점에서 풀어보려 노력했다. 영화사를 연대별로 바라보는 것은 그 나름의 분명한 장단점을 지닌다. 단점부터 언급하자면, 연대별로 정리된 영화사는 시간의 선형성 속에서 각 시대별의 차이를 지워버린다. 그럼에도 연대별로 일별한 이유는 먼저 한국퀴어영화의 역사적 지도를 그려보는 게 중요하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도는 하나의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다. 정확히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그 경로를 그려나갈 수 있다. 연대별 연구는 그런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지니지만 대신 한국퀴어영화사의 또 다른 담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 영화 <불온한 당신>(이영, 2015) 스틸컷 


  현재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와 한국퀴어영화에 대한 연구서를 연속으로 발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아마도 이후의 프로젝트는 통사적 연구를 넘어서 공시적 관점으로 한국퀴어영화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될 예정이다. 미리 올해의 연구 과제를 먼저 소개하자면, ‘한국 퀴어/트랜스젠더 영화와 이미지’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며 선행 작업들을 바탕으로 트랜스젠더를 재현한 영화들이 주된 분석 대상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공시적 연구 과제들은 통시적 연구 속에서 발굴되기 힘든 영화 속 퀴어 존재들을 발굴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시스젠더 성소수자 중심이 아닌 다양한 정체성들을 발견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 퀴어영화의 담론을 다양화하는데 있어 중요한 시도들이기도 하다.

  4장에서는 퀴어영화를 만든 감독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성소수자가 주체적으로 재현된 퀴어영화를 만든 감독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했고 영화를 만들며 이어온 그들의 고민과 비전들을 살펴보려 노력했다. 각 개별 인터뷰에는 퀴어영화연구에 대한 다양한 주제가 담겨 있다. 김조광수 감독은 상업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으로서 퀴어영화가 상업영화 영역에서 제작하는 데 어떤 한계와 어려움이 존재하는지를 전달한다. 여성 퀴어 다큐멘터리 영화감독들의 대담에서는 퀴어영화와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교차점, 문화상품으로서 영화가 성소수자의 현실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고민하게 만든다. 연분홍치마 감독들의 인터뷰는 앞으로 퀴어영화가 지속적으로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대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사유하게 한다. 이들의 고민은 한국퀴어영화의 미래를 고민하는데 중요한 화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화두를 중심으로 또 다른 연구과제들이 구성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퀴어영화사』는 이룬 업적보다 과제들을 더 많이 남긴 책이다. 그 과제는 퀴어영화 연구/비평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퀴어영화 관련 서적의 출판까지도 포괄한다. 먼저『뉴퀴어시네마(New Queer Cinema)』(루비 리치, 2013)는 반드시 번역 소개되어야 할 책이다. 루비 리치는 92년 ‘뉴퀴어시네마’ 논쟁에 불을 지폈고 이로서 퀴어영화에 대한 담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장본인이었다. 사이트 앤 사운드에 기고했던 당시의 글을 다시 수정하고 확장시켜 2013년, 단행본으로 출간하며 퀴어영화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가능케 했는데 미국의 퀴어영화에 대한 역사와 이전 비평의 한계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들에 대한 루비 리치의 주장은 동시대 한국퀴어영화를 연구함에 있어 많은 영감을 제공할 수 있다.

  만약 90년대 이전 미국의 퀴어영화에 대한 보다 자세한 분석 결과를 살펴보고 싶다면 『셀룰로이드 클로짓: 영화 속 동성애(The Celluloid Closet: Homosexuality in the Movies)』(비토 루소, 1987)도 중요한 참고 서적이 될 수 있다. 비토 루소는 자신의 학위 논문을 책으로 출간한 뒤 1995년,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발표했다. 미국 초기 영화에서부터 80년대 작품까지 영화 속 동성애자가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지 일련의 흐름을 살펴보는 퀴어영화사 연구서인데, 각 시대별로 다르게 표현되는 영화 속 동성애자의 모습들에 대한 비판적 해석과 논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었다. 한국퀴어영화사를 정리함에 있어 중요한 참고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아쉽게도 추천할 만한 퀴어영화 연구서가 전무하다. 주진숙 한국영상자료원장이 중앙대 교수 제직 시절, 대학원생들과 함께 세미나의 결과물로 출간한 『레즈비언 게이 퀴어 영화비평의 이해(호모 PUNK 이반)』(바바라 해머, 주진숙 역, 1999)라는 편집 번역서가 유일하다. 그 외 몇 편의 연구 논문과 학위 논문이 존재하지만 한국퀴어영화를 역사적 관점에서 주도면밀하게 분석한 글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의 퀴어영화연구자 또한 「친밀한 유토피아 : 동시대 한국 남성 동성애 영화가 욕망하는 관계성」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경태 박사가 유일하다. 관련 자료와 연구의 척박함, 극소수인 연구자 환경 속에서도 한국퀴어영화는 꾸준히 제작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관객들이 호응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퀴어영화 연구/비평 또한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한국퀴어영화사』가 바로 그러한 상황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작은 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



글쓴이. 이동윤(『한국퀴어영화사』 책임편집자)


-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연출, 시나리오, 영상이론을 공부하고 현재 시나리오 작가와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영화를 만들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영화를 통해 현실을 사유하는 모든 일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형태의 글을 쓰고 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