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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이 아닌 연대로 - 미국 독립영화계 코로나19 대응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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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0. 6. 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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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영화 분야를 지원하는 중앙 정부 기관은 따로 없지만 문화예술분야를 지원하는 연방정부 및 주정부 차원의 기관과 비영리 단체들, 영화 관련 기업 및 단체 등에서 독립예술영화 종사자들에 대한 지원과 연대 활동을 매우 활발히 펼치고 있다."

[ACT! 120호 미디어 인터내셔널 2020.06.05.]

자선이 아닌 연대로

- 미국 독립영화계 코로나19 관련 대응 현황 

김지현(독립미디어연구소)

 

코로나19가 가져온 새로운 성찰의 기회

 

  2019년 말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고 한국과 이탈리아, 이란 등을 거쳐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선포한 지 어느새 3개월이 되어간다. 202069일 기준, 세계 감염자 수는 704만 명, 사망자 수는 40.4만 명. 이 수치는 아직도 증가 중이고,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이 수치가 어디까지 올라갈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 초유의 사태 앞에서 영화계 또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같은 위험과 위기라 해도 각자가 처한 위치와 조건, 사회적 대응 방식에 따라 피해는 다르게 경험된다. 그런 점에서 세계 각국의 독립영화계가 코로나19 상황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비교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까 한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 미국의 경우를 통해 우리의 상황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미국 독립영화계로부터 배울 점

 

  미국은 20201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래 확진자와 사망자 수 모두 세계 1위를 기록하는 등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다. 하지만 독립영화계의 대응만큼은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영화 분야를 지원하는 중앙 정부 기관은 따로 없지만 문화예술분야를 지원하는 연방정부 및 주정부 차원의 기관과 비영리 단체들, 영화 관련 기업 및 단체 등에서 독립예술영화 종사자들에 대한 지원과 연대 활동을 매우 활발히 펼치고 있다.

 

1) 활발한 정보 공유

 

  가장 주목할 만 한 점은 코로나19 대응 관련 정보 공유가 매우 활발하다는 점이다. 독립영화 관련 단체나 기관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코로나19 위기와 관련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원(resources)들의 목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팬데믹을 선포한 311일 경부터 각 단체마다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코로나19 관련 창을 개설하고 지속적으로 관련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음은 몇 가지 그런 사례들이다.

 

Art House Convergence (311일부터 운영)

Women Make Movies (313일부터 운영)

Creative Capital (313일부터 운영)

Kickstarter (317일부터 운영)

Dear Producer (317일부터 운영)

Independent Filmmaker Project (319일부터 운영)

Field of Vision (417일부터 운영)

 

  이 사이트들에서는 단지 자신들의 단체가 모아놓은 코로나19 관련 자원들 뿐 아니라 언론 보도를 포함해 다른 단체나 기관, 개인 블로그 등에서 모아놓은 자원들도 적극적으로 게시한다. 또한 혹시 공유하면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담당자에게 알려달라고 요청하거나 직접 정보를 추가해달라고 권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사이트에 올라온 정보들은 다른 곳에서 정리해놓은 리스트업들의 리스트이거나 다소 내용이 중복적일 때도 있지만 최대한 많은 정보들을 수집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흔적을 보여준다.  

 

▲ 3월 11일부터 운영된 ‘Art House Convergence’의 코로나19 관련 페이지

 

  공유되고 있는 정보 및 자원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고 세분화되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입은 경제적 타격에 대한 각종 지원제도에 관한 정보들 뿐 아니라, 코로나19와 그 위험성에 대한 일반적 정보부터 해당 단체의 특성에 따라 그들의 커뮤니티에 도움이 될 만하다고 여겨지는 다양한 자료까지 활발하게 생산, 공유되고 있다.

 

독립영화인들이 재정적 지원제도에 원활하게 신청하는 방법

( Filmmaker's Guide To Applying For US Coronavirus Federal Relief )

독립영화인들이 재정적 지원제도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체적 행동 지침

( a letter co-authored by Art House Convergence and Film Festival Alliance )

코로나 기간 동안 독립예술영화관이나 영화제, 영화교육기관 등이 취해야 하거나 취할 수 있는 운영 관련 노하우, 온라인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

( Together Films Digital Distribution Webinars )

재개관이나 활동 재개에 관한 전망과 판단 기준

( How Film Festivals Can Navigate the Risks and Rewards of Reopening Analysis )

독립영화 제작자들을 위한 무료 온라인 컨설팅 서비스

( Sundance Co//ab Free Programs )

코로나 시기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관련 리스크 평가 가이드

( Independent Documentary: Filming in the Time of Corona )

비영리 단체나 독립영화 제작자들을 위한 원격 근무 팁

( Nonprofit Resources for Remote Work During the COVID-19 Outbreak )

 

▲ ‘Indiewire’에 실린 재개관이나 활동 재개에 관한 전망과 판단 기준 관련 글 이미지

 

2) 공적 지원에 대한 적극적 정책개입(Advocacy)

 

  지원 제도의 경우 연방정부 및 주정부 차원의 공적 지원과 비영리 단체, 영화관련 기업 및 단체 등에서 운영하는 민간 차원의 구호활동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미연방정부는 327일 코로나로 인해 멈춰버린 미국 경제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경기부양법안인 CARES Act’(Coronavirus Aid, Relief, and Economic Security)를 발표한다. 이에 따라 개인은 각 주에서 정한 실업수당 외에 추가 실업수당(매주 600달러씩 최대 39주까지)과 긴급구호금(75,000달러 미만의 소득 기준 성인 1인당 1200달러, 자녀 1인당 500달러)에 신청할 수 있다. 기존의 규제로는 실업수당을 신청할 수 없는 임시직 및 프리랜서 노동자들을 위해 임시 실업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한편, CARES Act’에서 마련된 500인 미만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제도로 임금보호프로그램(Paycheck Protection Program과 경제적 피해재난 융자금(Emergency Economic Injury Disaster Loans) 등이 있다. 임금보호프로그램의 경우 월평균 급여비용의 250%까지 지원받을 수 있으며 상환 의무는 없다. 경제적 피해재난 융자금의 경우 임금보호프로그램과 겹치지 않는 운영비로 사용할 경우 1만 달러까지는 상환 의무가 없다. 이 지원 제도들의 신청대상에는 1인 기업, 독립형 계약자, 비영리 단체도 포함된다.

  실제로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독립영화인들이 이러한 공적 지원제도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영화계와 문화예술단체들에서는 매우 적극적으로 정책개입 활동을 조직하고 있다. 영화 제작스태프들의 노동조합인 ‘IATSE’(International Alliance of Theatrical Stage Employees)에서는 코로나 구호 패키지에 일자리를 잃은 엔터테인먼트 노동자들이 포함될 수 있도록 미의회에 요구하는 탄원서를 작성했는데,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Tell Congress to include displaced entertainment workers in relief package )

  ‘Americans for the Arts’70여개 단체들도 코로나 시기 비영리 예술 분야를 위한 지원으로 40억 달러(약 4조 8천억 원)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319일부터 64일까지 8차례에 걸쳐 캠페인 업데이트 현황이 올라와있다. ( Americans for the Arts and the Arts Action Fund are standing up for the arts in America during COVID-19! )

  ‘Americans for the Arts’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조사도 실시하고 있다. 영화분야를 포함해 코로나19가 문화예술 단체들에게 미친 영향에 관한 조사(Impact on Nonprofit Arts and Cultural Sector), 코로나19가 문화예술 종사자들에게 미친 영향에 관한 조사(Impact on Artist/Creative Workers), 연방정부의 구호기금이 실제로 문화예술인들에게 얼마나 도달했는지 추적하는 조사(CARES Act Arts Funding Tracker), 코로나 시기 문화예술분야가 미국인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조사(COVID-19 and Social Distancing: Impact of Arts and Other Activities on Mental Health) 등이 그것. 이 조사들은 미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120일부터 현재까지의 영향을 계속해서 축적해가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COVID-19’S IMPACT ON THE ARTS: RESEARCH & TRACKING UPDATE June 1, 2020 )

 

3) 자선이 아닌 연대로

 

  (독립)영화 관련 민간 기관 및 단체, 영리 회사, 유명 인사 및 개인들은 어려움에 처한 동료 독립영화인들 뿐 아니라 일반 시민을 위해 지지와 연대 차원의 다양한 상호부조(Mutual Aid)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성 창작자, 퀴어 창작자, 유색 인종 문화예술가, 다큐멘터리 창작자, 시나리오 작가, 프로듀서, 배우, 제작 스태프, 영화관 종사자, 학생, 커뮤니티 조직가, 액티비스트, 비평가, 문화전략가, 문화예술단체 종사자 등 업종이나 장르별로 매우 세분화된 긴급 구호금이 마련되고 있을 뿐 아니라 법률 자문, 의료 지원, 돌봄 지원, 사회적 고립감 및 우울증에 대한 지원 등 도움의 형태도 다양하다.

  글로벌 기업 넷플릭스와 워너미디어, 소니 등은 코로나 관련 각각 1억 달러(1,212억 원) 규모의 긴급구호기금을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이 기금은 주로 자사의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는 제작진과 배우, 제작 파트너들을 위해 쓰일 예정이지만 일부는 독립 창작자들에게 할애된다. 이밖에 선댄스, 트라이베카 등 세계 20여개 국제영화제들이 모여 유튜브에서 공동으로 큐레이션 하는 디지털 영화제 WE ARE ONE: A Global Film Festival (529~67)에서도 UN재단을 위해 코로나 긴급구호금을 모금 중이다. 비단 영화 커뮤니티를 넘어 이루어지는 민간 차원의 이러한 노력들은 어려운 시기 공적 지원의 공백을 메우거나 새로운 사회 참여 모델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 유튜브 공동 큐레이션 WE ARE ONE: A Global Film Festival

   

4) 새로운 실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협력을 통한 상생

 

  한편,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의 독립영화계가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에 많이 진출했던 것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315일부터 현재까지 많은 예술영화관들이 임시휴업 상태에 들어간 가운데, 독립예술영화 배급사들은 비메오나 자체 VOD 플랫폼을 이용해 각 지역의 독립예술영화관들을 지원하는 버추얼 시네마(Virtual Cinema) 이니셔티브를 운영하고 있다. 버추얼 시네마란 다른 VOD 플랫폼에서는 제공되지 않는 영화들을 관객이 가정에서 유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온라인 상영방식을 말한다. 관객이 배급사 플랫폼이나 자신의 지역 예술영화관 홈페이지에서 버추얼 티켓을 구매하면 일시적으로 다양한 기기에서 해당 영화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 이를 통해 지역 예술영화관들은 코로나 시기에도 평소처럼 프로그래밍 기능을 유지할 수 있으며 티켓 수익은 예전처럼 극장과 배급사가 나눠 갖는다. 현재 키노 로버(Kino Lorber)를 비롯해 약 30개의 배급사가 이 사업에 함께 하고 있다

 

▲  배급사 키노 로보의 버추얼 시네마 플랫폼  ‘ 키노 마퀴 ’ https://kinomarquee.com/

 

  영화 중심 크라우드펀딩 및 SVOD 플랫폼 회사인 ‘Seed&Spark’에서도 코로나19 시기 영화제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2020년 영화제 생존 서약(The 2020 Film Festival Survival Pledge)’ 캠페인을 실시하고 온라인으로 영화제를 운영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 플랫폼을 통해 영화제들은 온라인에서 유료 상영회와 시간 기반 행사들, 라이브 Q&A 세션 등을 진행할 수 있으며, 많은 영화계 인사들이 Q&A 행사에 무료 진행자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주었다.( Seed&Spark 온라인 영화제 지원 플랫폼 )

  독립영화 전문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Magnolia Selects’도 예술영화관 관객들이 그들의 서비스에 가입할 경우 630일까지 구독료의 100%를 해당 극장에 지원하고 71일부터는 5050으로 나누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 온라인 영화제 지원 플랫폼을 마련한 ‘Seed&Spark’

 

미국 사례가 던져주는 시사점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의 여파를 다른 나라보다 한 달 가량 먼저 경험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독립예술영화계의 피해는 여느 나라와 다름없이 컸던 반면, 피해에 대한 현황 파악과 분석, 지원 정책에 대한 개입은 다소 느린 대응을 보여준다. 다행히 4월 초부터 코로나19독립영화공동행동이 꾸려져 독립영화계의 피해현황에 대한 실태조사와 정책제안이 이루어지고 있다. 5월 초에는 코로나19의 피해로부터 전국 독립예술영화관을 지키기 위한 후원 캠페인 #SaveOurCinemaSNS를 통해 진행 중이다. 그리고 시네광주1980, 전주국제영화제 등 영화제를 중심으로 온라인 공간에 대한 실험도 간혹 눈에 띈다.

 

▲ 전국 독립예술영화관을 지키기 위한 후원 캠페인 ‘#SaveOurCinema’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례와 비교해볼 때, 독립영화계 자체의 활발한 정보공유와 다양한 논의, 연대와 협력에 대한 실험은 그다지 활성화되고 있지 못하다. 임시적일지는 모르지만 온라인을 통한 기존의 활동 유지 혹은 확장에 대한 모색도 그다지 시도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교적 성공적인 방역으로 미국처럼 강력한 셧다운이 실시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또는 독립영화계의 인력 및 인프라가 그만큼 열악하기 때문일까? 코로나19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파가 향후 우리 사회와 영화계의 미래를 크게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의 사례에서 현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글쓴이. 김지현

- 미디액트 정책연구실과 ACT!편집위원 활동 등을 거쳐 독립영화, 퍼블릭액세스, 공동체 미디어, 영화/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등 다양한 대안 미디어 실천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현재 독립미디어연구소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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