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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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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이 형 작품이 기다려졌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찍고 싶었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강길이 형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그가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내가 가야 했던 곳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강길이 형에겐 왠지 모를 부채감이 있었다. 동시에 왠지 모를 연대감도 느껴졌다."

 

[ACT! 118호 이강길 특별호 2020.03.13.]


감사의 인사


김성환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강원도 원주에서 ‘다큐 보기’를 하면서 가장 기다렸던 작품 중의 하나가 강길이 형의 <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이었다. 지난 8월, 기다렸던 작품과 형을 만났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감독과의 대화시간에 “항상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라는 짧은 소감을 전했다. 그는 “또 카메라 들고 현장으로 가라는 이야기”라며 여전히 까칠하게 응대해주었다.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투쟁을 함께했던 원주 분들과 간단한 뒷풀이를 하고 “작업실에 가서 간단하게 한잔 더 할까?” 물었는데, 강길이 형은 “야, 너 작업실에서 재우려고 그러지. 나 요즘 힘들어 좀 편히 자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내일 서울서 촬영 있어 일찍 일어나 가야된다고.
  강길이 형의 작품은 완성되면 매번 원주에서 상영회를 열었다. 그때마다 강길이 형을 초대했고 깊은 밤을 함께 보내곤 했다. 아쉽긴 했지만 그 당시 나도 다음 날 일정이 있어 강길이 형의 ‘약한 모습’이 오히려 부담 없이 느껴졌다. 터미널 근처에 모텔을 잡아주고 강길이 형에게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감사의 인사였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 2019.08.12. 원주 모두극장 - &lsquo;다큐나무&rsquo; &lt;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gt; 상영회 (사진 제공: 김성환)&nbsp;


  강길이 형을 처음 만난 건 ‘다큐 공동체 - 푸른영상’에서 활동할 때였다. ‘푸른영상’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스펙을 가진 강길이 형은 그냥 담담하게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당시 ‘푸른영상’은 수개월의 수습 기간과 실습작품을 통해 다큐멘터리 감독의 성장을 돕는 시스템이었다. 처음 강길이 형은 김동원 감독님 작품과 류미례 감독 작품의 촬영을 도우며 ‘푸른영상’에 적응했다. 그러다 실습작품을 할 때가 되었는데 마침 새만금에서 촬영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동강은 흐른다>(1999)를 끝내고 다음 작품을 준비 중에 있었는데 새만금 작업이 끌렸다. 하지만 회의 결과 강길이형이 새만금으로 가게 되었고 나는 ‘김종태 열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맡게 되었다.

  그 후 강길이 형을 자주 만나지 못했다. 항상 그렇지만 촬영 기간은 길어졌다. 촬영과 편집까지 석 달이라는 한정된 실습작품이었는데, 강길이 형은 그 곳에서 어부가 되었다. 강길이 형은 ‘푸른영상’의 제작시스템보다 현장의 목소리에 충실했고 현장의 카메라가 필요한 이유를 몸소 보여주었다. <김종태의 꿈>(2002) 작업을 마치고 ‘푸른영상’을 나오게 됐고, 원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강길 형을 만날 기회는 줄어들었다. 그가 작품을 완성하면 그때야 작품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항상 기다려지는 작품들이었다.

▲ (왼쪽부터) 김성환 감독과 이강길 감독.  2016.1.30. 원주지방환경청 앞 (사진 제공: 김성환)   


  그는 항상 먼저 가 있었다. 강길이 형 작품이 기다려졌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찍고 싶었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강길이 형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그가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내가 가야 했던 곳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강길이 형에겐 왠지 모를 부채감이 있었다. 동시에 왠지 모를 연대감도 느껴졌다. 실질적으로 함께 하고 있진 못하지만 항상 각자 위치에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막연한 연대감이었다.

  나는 <야만의 무기>(이강길, 2010)를 인생 영화로 꼽는다.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의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걸작이었다. 순간의 기록이 어떻게 역사가 되고 진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끈질긴 촬영을 통해 말해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했었다. 강길이 형의 몸과 바꾼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미덕이라는 생각도 했기 때문이다. 그저 꿋꿋이 현장을 지켜준 그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할 뿐 그런 제작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진 못했다. 관행이라면 관행이었다. 감독 혼자 모든 걸 감내해내는 관행, 그것이 작품의 미덕이 되었던 관행. 결국 우리는 역사적 작품을 얻었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왠지 모를 부채감과 연대감이 왜 공동작업으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나는 왜 그토록 가고 싶었던 현장에서 강길이 형을 도우며 카메라를 들지 못하고 강길 형에게 감사의 인사만을 전했을까. "또 카메라 들고 현장으로 가라는 이야기네"하며 까칠한 웃음 지었던 강길이 형이 몹시 보고 싶은 밤이다. □

 

 



글쓴이. 김성환
- 영화제작사 ‘미디어나무’ 대표이며, 원주 다큐멘터리 동호회 ‘다큐 나무’ 활동도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동강은 흐른다>(1999), <김종태의 꿈>(2002), <우리 산이야>(2003)을 연출했으며, 최근 월성 원전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월성>(2019)을 공동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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