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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과 이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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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맞이한 슬픔이 아직도 앙금처럼 남아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떠난 뒤 함께 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지 않고, 아쉬움만 가득한 날들입니다. 설악산과 케이블카 그리고 이강길 감독을 띄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싸움판에 이강길 감독이 함께 했었음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강길 감독이 꿈꾸었던 세상으로 부지런히 가는 것이 그를 위한 길이라 여깁니다. 짧은 글 보냅니다.” - 설악산에서 작은 뿔 박그림



[ACT! 118호 이강길을 기억하며 2020.03.13.]


설악산과 이강길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


  거친 바람과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대청봉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피켓을 든다.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든 거친 바람으로 체감온도는 뚝 떨어지고 온몸이 오그라드는 추위와 맞서며 내 앞에 그가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

▲ <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 촬영 현장 (사진 제공: 박그림) 


  모든 자연조건이 결코 만만치 않은 설악산을 오르내리며 기록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안다. 케이블카 반대 1인 시위를 하러 대청봉에 오를 때마다 배낭을 벗어버리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두운 밤 혼자 대청봉에 올라 별들의 흐름을 카메라에 담고 달빛이 쏟아지는 설악산의 밤 풍경을 찍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설악산이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 궁금했었다. 케이블카 예정 노선 조사를 할 때도 우리의 생각과 달리 영상 작업은 더디고 힘든 작업이라 그가 뒤처질 때가 많았다. 삼각대가 매달린 무거운 배낭과 손에든 카메라를 볼 때마다 보는 사람도 힘이 들었고, 가끔은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고 가자고 말을 건넸을 때 그는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었다. 장비는 곧 그의 몸의 일부가 되어 움직이는 물건이었다.

▲ 산을 오르고 있는 이강길 감독의 뒷모습 (사진 제공: 박그림) 


  기록물이 쌓여가는 만큼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투쟁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강원도청 앞 천막농성 443일, 원주지방환경청 현관 앞 비박농성 364일, 광화문 광장 노숙농성 50일, 서울역 환경부 서울청사 앞 천막농성 40일, 그리고 헤아릴 수조차 없는 1인 시위와 집회, 기자회견. 그때마다 그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리를 지켰고 케이블카 반대 투쟁의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때론 카메라가 아닌 그의 까칠한 성격에서 나오는 의견들도 영상이 되어 수많은 영상기록들과 함께 쌓여 갔다. 강원도와 양양군이 설악산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여기며 집요하게 매달리는 만큼 케이블카 싸움은 끝을 알 수 없었고 그가 해야 할 일도 많았다. 현장에서의 기록을 했음은 물론이고, ‘케이블카반대대책위’가 양양주민들과 케이블카 설치를 전제로 한 대화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주민들과 대화했던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질문하고 이야기를 담았던 것이다.

▲ (오른쪽) 이강길 감독, 설악산에서 


  5년 가까이 끌었던, 피를 말리는 케이블카 반대 투쟁은 2019년 9월 16일 환경부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부동의 결정을 내림으로서 끝이 났다. 그의 기록이 어떻게 편집이 되어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드러날지 궁금했으나 그가 해온 일을 생각하면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윽고 <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2019)이라는 제목으로 그동안의 케이블카 싸움의 기록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가 상영되었고, 감독과의 대화에 초청을 받아 같이 무대에 올랐었다. 그가 말했었다.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끈질기게 이어온 케이블카 싸움과 더불어 케이블카반대대책위의 내부적인 갈등에도 초점을 맞추었다.”라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싸움은 상대적인 것이고 관계의 문제이기에 참고 견뎌야 했던 날들을 떠올렸었다. 행정심판과 소송으로 이어지는 케이블카 싸움 속에서 제대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끝을 볼 때까지 싸움을 붙들고 가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영상 작업은 어떻게 마무리가 되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설날 아침 느닷없이 들려온 죽음의 소식으로 인해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지난 일들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소식을 사실로 믿고 싶지 않았고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장례식장으로 가면서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한 그의 모습과 말들이 눈물이 되어 흘렀다. 갑자기 맞이한 죽음 앞에서 그는 말을 남기지 못하고 떠났지만 이미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동안 해온 영상기록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강길 감독! 이강길! 강길아, 잘 가! □

 



글쓴이. 박그림
- ‘녹색연합’ 공동대표이자, ‘설악녹색연합’과 ‘산양의 동무 작은 뿔’ 대표다. 저서로는『설악산』(1995),『산양똥을 먹는 사람』(2000)이 있다. 산양이 뛰어 노는 설악산을 꿈꾼다.

 

박그림(녹색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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