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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되다 -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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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도 좋지만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를 투쟁의 현장에서 만난다는 건 너무도 고마운 일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서로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기도 했지만 강길이는 여전한 걸음걸이를 하며 털털하게 웃고 있었다."

 

[ACT! 118호 이강길을 기억하며 2020.03.13.]

 

별이 되다 - 살기 위하여

연영석(문화노동자)

 

 

털털한 깡통로봇 이강길

 

  강길이를 생각하면 깡통로봇이 떠오른다. 넓적한 체구에 건들거리며 털털하게 말을 던지던 모습이 깡통로봇을 떠오르게 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는 뒤쪽에 강길이는 주로 중간쯤에 앉아 있었다. 돌이켜 보면 강길이와 난 교실에서의 거리만큼의 그런 친구였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그 시절 강길이를 생각하면 과묵했지만 약간의 장난기 섞인 말투와 웃음, 그리고 깡통로봇 같았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강길이에게 난 아마도 그림 그리기 좋아하고 놀러 다니기 바빴던 그런 친구로 나에게 강길이는 나보다 공부 잘하고 털털한 깡통로봇 같은 친구로 남아있었다.

 

 

카메라를 든 이강길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나대로 강길이는 강길이대로 서로의 삶과 길을 만들고 있을 때쯤, 우리는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군산에서였다. 투쟁의 현장에서 노래를 부르던 난 기타를 들고 있었고 강길이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함께 학교를 다닐 때는 정말 상상도 못했던 모습이었다.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도 좋지만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를 투쟁의 현장에서 만난다는 건 너무도 고마운 일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서로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기도 했지만 강길이는 여전한 걸음걸이를 하며 털털하게 웃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감독 이강길

 

  그렇게 우연히 만난 뒤 강길이와 난 서로 비슷한 일을 하는 친구들과 가끔씩 만나게 되었다. 서울에 마땅히 작업실이 없었던 강길이는 함께 아는 친구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고 나 또한 그곳에서 가끔씩 신세를 지고는 했다. 같이 작업 이야기도 하고 함께 밥도 해 먹었으며 학창시절 이후 오랜만에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때 강길이가 끓여준 김치찌개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얼마 후 강길이는 나에게 새 작품의 내레이션을 부탁했다. 내레이션을 해본 적이 없는 난 혹시라도 작업을 망칠까 망설이긴 했지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함께 하게 되었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작업이 <살기 위하여>였다.

 

 

별이 되다 - 살기 위하여

 

  설날 아침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있을 것 같았던 강길이가 이른 새벽 먼 곳으로 떠났다. 그렇게 황망하게 보내고 한참 동안 머리가 아프고 문득문득 허공을 바라본 채 공허함에 잠겼다. 그다지 살갑지는 않았지만 운동을 하며 만날 수 있었던 어릴 적 친구라며 자랑스러워했었는데, 얼마 전 음반을 낸 나를 도와주겠다며 카메라를 들고 왔을 땐 그저 고마운 마음뿐, 이가 아프다는 소리 말고는 괜찮은 줄 알았다. 촬영을 마치고 그저 저녁 한 끼 나누고 헤어지던 뒷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치료 한 번 제대로 못한 게, 친구라며 건강 한 번 챙겨주지 못한 게, 그저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강길이가 남긴 시선들을 생각해 본다. 카메라 앵글 속에 담긴 우직한 시선들 그리고 강길이가 꿈꾸었던 세상. 살아있는 동안 난 노래를 부르며 강길이와 꿈꾸었던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그러다 문득 먼 곳을 바라보며 ~’ 하고 깊은 숨을 내쉴 것이다. 그리고는 미련한 놈이라고 혼잣말을 내뱉으며 잠시 먼 곳을 멍하니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제 부디 모든 걸 내려놓고 훨훨 날아가길 바랄 뿐.

 

▲ 이강길 감독은 <살기 위하여> 내레이션이 끝나고 디지털 카메라를 선물했다. 그 카메라 안에 있던 사진 (사진 제공: 연영석)

 

 


글쓴이. 연영석

- 문화노동자. 1997년 데뷔했으며, 201911월 정규 앨범 <서럽다 꿈같다 우습다>를 발표했다. 이강길 감독의 대표작 <살기 위하여>(2006) 내레이션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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