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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장비 사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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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할 때만큼은 어울리지 않는 재롱까지 피웠다.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강의하려고 애쓰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현장에서는 까칠하기로 소문난 그지만, 교육에서는 저런 면이 있나 싶게 친절한 강사였다."

 

[ACT! 118호 이강길을 기억하며 2020.03.13.]


“비싼 장비 사지 말아요.”
- 감독보다는 형이었던 이강길 감독


조현지(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미디어교육팀장)



  두 달 전 통화가 마지막 통화였다니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이강길 감독의 갑작스런 부고 소식을 듣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믿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지금이라도 전화해 이것저것 이야기하면 “네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라고 말하며 특유의 뉘앙스로 껄렁껄렁 대답할 것만 같다. 이 감독과 올 2월에 교육을 함께 하기로 했었다. 교육 준비 때문에 연락해야 했는데, 명절 지나고 해야겠다며 차일피일 미뤘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미리 전화하지 않은 나를, 지난 가을 피곤해 보여 “병원 좀 가 봐”라고만 하고 무심히 지나친 나를, 스스로 질책하며 2주를 보냈다. 교육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새로운 강사를 찾고 신청자들에게 강사가 변경됐다 연락하면서 이 감독 생각이 많이 났다. 책임감이 누구보다 강한 그였기에 본의 아니게 강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걸 무척이나 미안해했겠다 싶다. 가시는 길 마음이라도 편하게 못해 드린 것 같아 더욱 미안해졌다.

▲ 이강길 감독, 미디어교육 현장에서 (사진 출처: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이강길 감독과의 인연은 조금 오래되었다. 정확히 어디서 처음 만났는지 기억은 나질 않는다. 광화문 주한미국대사관 앞인지, 부안 계화도인지, 익산인지. 어딘지는 모르지만, 시기는 2000년대 초반 그즈음이었을 거다. 현장에서 만난 인연이 어쩌다 미디어센터와도 연결됐다. 교육 때문에 자주는 아니라도 꾸준히 연락하는 관계였다. 그래서 나에게 이강길 감독은 ‘감독’이나 ‘강사’라는 역할보다 ‘형’이라는 호칭이 익숙하다. 현장에서 캠코더 들고 있는 나에게 종종 안정적으로 촬영하려면 어떻게 자세를 잡아야 하는지, 잘 꼬이는 마이크 라인은 어떻게 감아야 하는지를 특유의 오지랖으로 알려주던 그는 나에게 ‘아는 형’이다. 그래서 교육자로서 이강길 감독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물음에 아주 난감했다. “감독님 교육은 어땠나요?”라는 질문에 “형, 교육은 엉망이지요.”하며 농담을 했다. 그만큼, 편한 아는 형이자 동료였던지라 교육자로서 면모를 얼마나 이야기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저 교육 때 그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왜 미디어교육 기획자인 나는 이 감독과 교육을 계속 했을까 정도를 말할 수 있겠다.

 

▲ 이강길 감독, 미디어교육 현장에서 (사진 출처: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미디어교육자 이강길

  교육자로서 이강길 감독은 2008년 익산에서 미디어센터를 준비하며 교사양성과정 영상기초교육에서 만났다. 그때부터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와는 지금까지 꾸준히 함께한 강사다. 내가 알기론 상당히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참여자들에게 강의한 걸로 알고 있다. 미디어센터는 물론 대학교, 공공기관, 공동체 등을 대상으로 짧은 촬영이나 편집교육부터 2~3달가량 긴 호흡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교육까지 1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교육자였다. 미디어센터 실무자의 눈으로 보자면 이 감독은 미디어센터의 역사와 역할과 지향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교육자이다. 영상에 대한 기본을 잘 잡아주는 강사다. 자칫 영상을 처음 제작하려는 시민에게 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을 알려준다거나 고급 장비에서나 유용한 내용을 알려주기 쉬운데, 그가 교육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비싼 장비 사지 마세요.”, “영상은 무엇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가장 중요해요.”, “사회적 의미를 담아내려고 노력해야 해요.”였다.

  교육 할 때만큼은 어울리지 않는 재롱까지 피웠다.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강의하려고 애쓰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현장에서는 까칠하기로 소문난 그지만, 교육에서는 저런 면이 있나 싶게 친절한 강사였다. 영상의 기본적인 이론부터 장비 운용을 위한 기본 팁과 함께 영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것을 고려해야하는지 등 현장경험과 연결한 교육은 나도 함께하며 많이 배웠다. 현장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되는 영상 제작이나 촬영 기본 이론과 실무는 초보자들도 이해하기 쉬웠다. 제작자에게는 유용했다. 현장에서 주변 지형지물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촬영하는 방법과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서 소소한 스토리가 있는 강의여서 재미있었다.

  이강길 감독은 오랜 창작 경험으로 다져진 실력과 다양한 강의 경력이 있어 믿고 맡기는 교육자다. 더 나아가 익산 지역 특징이 교육에도 고려돼야하는데, 이 감독은 부안에서 오랫동안 있었고 전북 지역에 대한 이해가 넓었다. 부안은 웬만한 지역 사람보다 잘 안다. 전북에 대해서도 잘 알아 지역 수강생들과 소통이 원활했다. 이를 바탕으로 영상을 기획할 때 이야기할 수 있는 점도 많았다. 교육기획자에게는 다른 지역에 사는 강사인데도 지역 강사처럼 여겨진다고나 할까? 이 감독에게 굳이 익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어떤 점에선 익산에 사는 나보다 많은 정보와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 이강길 감독, 미디어교육 현장에서 (사진 출처: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오지라퍼’ 이강길

  이 감독은 강의 여건과 상관없이 아주 적은 강사료에도 멀거나 불편한 지역도 마다않고 필요하다거나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강의 요청을 수락하는 사람이었다. 예산과 거리 등 한계가 많은 지역이지만 그래서 강의를 부탁할 수 있었다. 작년 지역 어딘가에서 적은 강사료와 불편한 교통편 등으로 강사 구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이 감독에게 했더니 필요하면 이야기하라며 가겠다고 말했다. 이쪽에서는 손에 꼽는 전문가라 소위 ‘몸값’ 생각도 할 법한데 그런 게 없었다. 

  게다가 이 감독은 다른 건 몰라도 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해진다. 교육으로 다 해결할 수 없을 때, 누군가 영상을 만들기 위해 도움이 필요할 때 ‘오지라퍼’가 돼 도와줄 방법을 찾아 애썼다. 그래서 간혹 나와 다른 미디어센터 직원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경험은 이 감독과 인연 있는 다른 미디어센터에서도 많았을 것 같다. 한번은 교육과정이 끝나고 상영회까지도 잘 마무리했는데 제작 과정에서 시간이나 여타 상황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아내지 못한 참여자가 걱정돼 강의도 없는데 내려와 그와 셋이 다시 만나기도 했다.

  이 감독의 오지랖에 많이 궁시렁궁시렁 했는데 이 감독 오지랖에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사람도 역시 나다. 개인적으로는 영상 관련 활동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내가 미디어센터 일이나 영상 작업을 하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 역시 이 감독이다. 전라도 사투리로 내가 ‘찌댈(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내 무식함을 그대로 드러내도, 고약한 성미를 다 드러내도, 그가 이해하고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내게 있다. 그래서 일하며 어렵거나 잘 모르는 건 형에게 가장 먼저 부탁했다. 그때마다 불편한 내색 없이 도와준 고마운 존재다. 오두희 감독의 <스와니-1989 아세아스와니 원정투쟁의 기록> 사운드 믹싱을 못해 동동거리고 있을 때도 이 감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무식하니 용감하다’고 편집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 출품하고, 상영이 결정돼서야 사운드믹싱 할 곳을 찾으니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비용도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이 들어 어쩔 줄 몰라 애먹다 결국 ‘이강길 카드’를 썼더랬다. 이후 영화제 상영 경험이 많이 없던 내게 이것저것 도움을 준 이도 이 감독이었다.

 

▲ 이강길 감독, 미디어교육 현장에서 (사진 출처: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늘 아쉬울 때 연락하던 내게 1~2년에 한두 번 만나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편안했던 사람이다. 30대 때 형은 바닷바람에 그을린 검은 얼굴과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50대가 되자 까만 얼굴은 그대로인데 눈빛이 서글서글해졌다는 느낌이 작년에 부쩍 많이 들었다. 자칭 ‘인간 트라이포드’라며 어떤 상황에도 삼각대 없이도 촬영한다는 호기롭고 건장했던 30대 모습이 사라졌다. 휑한 머리숱이 눈에 들어와 형도 많이 늙었다는 생각에 속상한 마음이 더 컸다. 매번 교육만 덜렁 맡기고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하며 “형, 이번에 내려오면 맛난 거 사줄게.”라고 공수표만 날렸는데, 이제 영원히 회수할 수 없게 됐다. 지난 가을밤, 강의 끝나고 형과 육아 이야기와 지인 뒷담화부터 미디어센터의 나아갈 길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수다 떨며 보낸 시간이 그립다. □ 

 

 


글쓴이. 조현지

- 미디어교육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꼴리는 대로 살아보자는 포부는 저 멀리 발끝으로 보내고 컴퓨터와 씨름하며 사는 임금노동자입니다. 

 

조현지(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미디어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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