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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주연, <거리 속 작은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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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감독님이 나오지 않으나 내 눈길이 가는 그곳에 감독님이 있었다. 나의 기억에는 그 영화 모든 곳에 감독님이 있다. 나에게 이 영화의 주연은 이강길 감독님이다."

 

 

[ACT! 118호 이강길을 기억하며 2020.03.13.]


이강길 주연, <거리 속 작은 연못>


유의선 (정치발전소 교육국장, <거리 속 작은 연못> 출연자)


  새까만 옷, 새까만 카메라. 새까맣고 긴 삼각대. 
  이강길 감독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6개월 동안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한 감독님이 새까만 옷 이외의 색깔 옷을 입었었던가? 기억에 없다. 감독님이 찍던 내 노점박스는 밝은 연두색. 네모나고 연두연두한 노점박스의 대각선 옆으로 약간 빗겨나 새까맣게 서있던 감독님과 감독님의 카메라. 2012년 가을부터 금천구 시흥동 홈플러스 건너편에서 쉽게 볼 수 있던 모습이다. 

▲ 다큐멘터리 <거리 속 작은 연못> (이강길, 2014)  


  그 때 내가 속한 금천의 노점상 조직에서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마을공동체라디오 교육프로그램을 신청하여 선정이 됐었다. 장비도 공간도 없었던 우리는 관악FM에 가서 교육을 받고 실습을 하곤 했다. 감독님은 관악FM을 찍고 있었다. 새만금에서 보냈던 길고 긴 시간 이후에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카메라에 담아보겠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관악FM이라는 곳은 지역라디오 방송을 하는 곳인데, 다양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의 현장을 담아내던 감독님에게는 꽤나 심심하게 느껴지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리를 만났다. 노점상이 라디오를 한다고? 감독님은 바로 카메라를 들고 우리의 노점이 있는 거리로 나왔다. 금천구의 노점상들의 일상으로 스윽 들어왔다. 

  “세금을 내지 않고 노점을 하는 건 정당한 일은 아니잖아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점을 한다고는 해도 그것이 권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감독님의 생각이었다. 감독님은 표정이 다양하지 않기도 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엄청 정색을 하며 말한다. 

  “노점이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노점상의 생존권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도둑질을 하거나 살인을 하는 등의 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관리를 위해 행정상 정해놓은 질서 안에 들어가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잖아요!”

  이러한 대화는 이후로도 계속 반복되었다. 내가 속한 금천의 노점상 회원들과 친해지고, 노점에서의 노동과 어렵게 모여 공동체라디오를 해보려는 노력이 지속되는 과정에서도 감독님은 둘이 조용히 이야기 나눌 시간이 생기면 늘 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언젠가는 변하지 않은 질문에 지쳐 살짝 언성을 높인 적도 있었다. 

  “아니, 노점상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왜 우리를 찍어요? 이해도 용납도 안 되는 존재를 뭐 그렇게 열과 성의를 다해서 찾아와 찍냐고요. 그럴 거면 찍지 마세요!” 

▲ 다큐멘터리 <거리 속 작은 연못> (이강길, 2014)  


    그러한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는 가운데 노점단속과 노점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노점 단속의 타깃은 노점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였다. 지역의 다른 노점상 조직이 가산디지털단지 쪽에 3~4개의 노점을 새로 깔면서 내 노점에 대한 민원을 마구잡이로 넣었다. 새로운 노점 입장에서는 원래 있던, 내가 속한 노점 조직의 점포가 장사를 망친다고 봤고, 서로 장사를 못하도록 노점을 가로막는 등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었다.
  혼자 뚝 떨어져 시흥동에 있던 나의 노점을 지키는 길고 긴 날들이 시작되었다. 노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3개월 동안 박스를 지키며 박스에서 잠을 잤다. 나의 그 날들의 곁에 감독님이 있었다. 

  날이 점점 추워지던 어느 날 이른 아침, 단속이 나왔다. 단속반은 나를 박스 안에서 끌어내야 박스를 들어낼 수 있다. 나는 박스 안에서 버티며 싸웠다. 문을 억지로 열려는 단속반에 맞서 장렬하게 싸웠다. 밀렸다. 나는 박스 안의 선반 기둥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이때 감독님이 헐레벌떡 도착해서 단속 상황을 찍기 시작했고, 뭘 찍냐고 단속반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감독님. 단속반에게 크게 흥분하지도 않으면서 엄청 냉정하게 ‘우다다다’ 쏘아붙였다. 우와. 저렇게 말을 많이 잘 하는 사람이었구나. 단속반이 물러갔다. 

  ‘노점을 인정 못 한다더니 잘 만 도와주는구만....’

▲ 다큐멘터리 <거리 속 작은 연못> (이강길, 2014)  

 

  <거리 속 작은 연못>이 가편집 상태일 때 감독님은 영상을 보여줬다. 문제가 되는 게 있으면 말하라고. 나는 항의했다.

  “엄청 없어보이네! 매달려 있기 전에 겁나 멋지게 싸웠는데, 감독님이 늦게 왔잖아요. 나 엄청 잘 싸우는데, 영상만 보면 불쌍해 보이잖아요. 아우 자존심 상해!”

  감독님이 씨익 웃었다. 

  내가 그 겨울 세 달 동안 마차를 지키며 봉고차와 노점박스에서 자는 동안, 감독님은 나보다 더 추운 밖에서 나와 우릴 촬영했다. 

  “감독님, 이거 촬영해봐야 망해요. 라디오 찍다가 웬 노점상이며, 하물며 노점상끼리 싸움이라니. 스토리가 말이 돼요? 추우니 들어가세요. 찍을 거 없으니 안에라도 계세요.”

  감독님이 씨익 웃고 만다. 웃기도 잘하네.

  결국 나의 노점박스는 실려 갔고, 그러고도 얼마간 싸움은 계속됐다. 나는 더 이상의 노점 일을 포기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고가 밑에 내 노점박스는 옮겨졌고, 마지막 짐을 정리하러 가는 날. 감독님이 함께 했다. 대화할 사람은 이강길 감독님밖에 없었다. 이 날 대화의 내용을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거리 속 작은 연못>에 이 날의 장면이 나온다. 내가 핸드폰케이스를 정리하며 감독님의 질문에 내가 대답하는 장면. 

  노점 정리 후 나는 그 지역에서 녹즙배달을 시작했고, 어느 새벽에 감독님이 나를 촬영하러 나왔다. 녹즙을 실은 자전거를 타고 건물마다 배달하는 모습을 찍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길. 이강길 감독님이 함께 했다. 

  그랬다. 영화에는 나와 우리의 모습이 나오지만. 여럿이 함께 하거나 혼자 있는 모든 시간, 나의 모습을 찍고, 나와 대화하던 사람이 이강길 감독님이다. 영화에는 감독님이 나오지 않으나 내 눈길이 가는 그곳에 감독님이 있었다. 나의 기억에는 그 영화 모든 곳에 감독님이 있다. 나에게 이 영화의 주연은 이강길 감독님이다. 

 그랬던 감독님이 이제 내 눈 맞춰질 곳에 없다. 영화 찍기는 끝났으니까. 그렇게 나와 우리를 찍어놓고, 그 많은 영상을 편집하면서 그렇게나 보고 또 봤으면 그립기도 할 만한데, 훌쩍 설악산으로 떠났던 것처럼 떠났다 한다. 

  <거리 속 작은 연못>을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 번 보고, 서울독립영화제 때 한 번 더 봤다. 그리고 <거리 속 작은 연못>은 더 이상 상영되지 않았다. 나와 같이 영화에 나온 분이 개인적인 문제에 걸려 감독님은 이 영화를 더 이상 상영하지 않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밝혀져 다시 상영하는 것이 가능할 텐데, 그 결정을 할 감독님이 없다고 한다. 감독님이 <거리 속 작은 연못>을 다시 상영하는 게 어떻겠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텐데.
 
  “아니, 지루한 지역공동체라디오 얘기에 노점상이랑 노점상이 싸우는 이야기를 누가 본다고요. 생명과 평화의 감독이라는 타이틀에 누가 된다고요!”

  그럼 아마도 씨익 웃고 말 감독님이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 

  나는 생각한다. 영화에 보이지 않으나 나의 모든 기억 속에 내가 아니라 감독님이 보이는 것처럼,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영화와 함께 그가 있다. 이강길 감독님이. 씨익 웃으며. □

 

 



글쓴이. 유의선
- 빈민운동을 하다가 노점상이 되었지만 생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가난한 이들의 민주주의가 무엇일까 고민하며 정치발전소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유의선(정치발전소 교육국장, <거리 속 작은 연못> 출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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