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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재난’을 감각하기 - 영화 <엑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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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19.10.0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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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호 리뷰 코너에서는 영화 <엑시트> 비평을 소개합니다. ACT!의 독자라면 <엑시트>가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조금 이례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 지금까지 많은 미디어운동 단위가 국가적 재난과 폭력이나 재난 이후와 트라우마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2019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우리는 재난 이후를 어떻게 다시 말할 수 있을까요? 안소현의 「‘한국적 재난’을 감각하기 – 영화 <엑시트> 리뷰」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것입니다. - 임종우(ACT! 편집위원)


[ACT! 116호 리뷰 2019.10.17.]


‘한국적 재난’을 감각하기
- 영화 <엑시트> 리뷰


안소현



  “재난 탈출 액션.” 7월 말 개봉한 대중 상업 영화 <엑시트>의 홍보 문구다. 영화 장르에 걸맞은 표현임에도, 재난과 탈출 그리고 액션이라는 이 세 단어의 조합은 어쩐지 기이하다. 아마도 ‘탈출 불가능한’ 재난을 목격했던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 때문이지 않나 싶다. 재난 이후의 시대를 산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시사하지만, 적어도 2014년 이후 한국 영화에서 재난의 이미지를 맞닥뜨릴 때 세월호를 떠올리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반사적인 감각으로 자리잡게 됐다. 2016년 <부산행>, <터널>, <판도라>가 잇따라 개봉했을 때 범람하다시피 했던 반응들이 이를 방증한다. 다시 ‘재난 탈출 액션’으로 돌아와서, 어쨌건 <엑시트>는 재난에 대한 탈출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재난을 모사한 듯한 서사에 기대기보다는 재난에 대한 감각을 동력으로 삼는 장르영화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용남(조정석)은 매일같이 철봉 운동을 연마한다. 하지만 한적한 동네 놀이터에서 능숙하게 실력을 뽐내 봤자 ‘바보 철봉남’이라는 소리나 들으며 조카에게조차 외면당할 뿐이다. 큰누나 정현마저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산악 동아리나 했다고 타박을 준다. 시험 준비를 관두고 컨벤션홀에서 일하는 의주(임윤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부점장이라지만 아르바이트와 별 차이가 없는데다 번번이 추근대는 점장까지 마주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상황은 그다지 유별나지 않은 일상처럼 여겨진다. 재난을 둘러싼 인식은 취업난보다도 무감하다. 갑작스럽게 재난 문자 알림이 울리지만 호프집 안의 누구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용남의 산악부 선배만이 “너 지금 재난 안에 있어. 우리 지금 상황이 재난 그 자체야!”라며 취업이 되지 않는 처지를 한탄할 뿐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고희연 회장에서 용남과 의주의 어색한 재회가 이루어지고 나면, 갑작스럽게 유독가스가 도시를 덮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청년의 현실과 재난은 병치된다.

▲ <엑시트> 공식 스틸컷 ⓒ외유내강, 필름케이 

   
  <엑시트> 속 재난이 발생하는 방식과 경과는 허술해 보일 만큼 단순하다. 뉴스 속보 영상에 뒤이어 유독가스 제조 시설을 살피는 경찰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사고 이전 시점에서 가스를 실험하는 테러 용의자 일호의 얼굴을 비추다, 곧바로 사건 발생 후 탱크로리에 기대 쓰러져 있는 일호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우발적인 사고나 자연재해로 벌어진 것이 아닌 명확한 인재(人災)임을 알리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고의 인과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기업과 일호 사이 빚어진 갈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시민 제보를 가장해 드론 촬영을 사주한 방송국 보도국장의 행동에 대한 부연이 일절 없다. 당연히 그에 따른 가치판단도 하지 않는다. <연가시>, <감기>, <더 테러 라이브>, <터널>, <부산행>, <판도라> 등 한국 재난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컨트롤 타워 및 시스템의 부재나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사상자 수와 같은 구체적인 피해 규모 역시 알 수 없다. 재난이라는 대사건에 으레 딸려있을 법한 크고 작은 서사는 의도적으로 생략된다.

  오히려 스포트라이트는 재난이 빚어내는 일상적인 공포를 향한다. 문화적 기억을 주장했던 알라이다 아스만의 말처럼, 트라우마란 신체에 각인되는 것이지 서사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컨벤션홀에 발이 묶인 용남의 가족들은 뒤늦은 재난 문자를 일제히 들여다본다. 용남의 사촌들 중 막내인 용혜는 스마트폰으로 SNS에 접속해 상황을 살핀다. 하지만 재난은 이런 통신 수단조차 한순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계단으로 옥상에 올라가다 미끄러진 의주는 그만 연기 자욱한 난간 밑으로 휴대폰을 떨어트리고 만다. 용남의 핸드폰 역시 얼마 가지 않아 방전돼 버린다. 쓰레기봉투와 방독면으로 무장한 용남과 의주가 아수라장이 된 도로를 비집고 내달릴 때, 길바닥에 흩어진 휴대폰 곳곳에서 전화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가스 연기와 주인 잃은 벨소리로 가득 찬, 그야말로 마비된 채 호흡이 불가능한 도시 풍경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것은 트라우마 ‘이후’의 감각이다. 세월호 사건이 한국적 재난 상황에 남긴 중대한 트라우마는, 선박이 침몰해가는 과정을 실시간 중계 화면을 통해 목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맴도는 상황에서 ‘이미지 재난’의 공포는 어떤 구체적인 사실보다도 압도적인 실체로 남는다.
  
  거대한 재난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개인은 많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 여러 재난 영화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손쉽게 입을 다문다. 예컨대 <터널>에서 라디오를 통해 세현(배두나)로부터 구조 작업이 끝났다며 “기다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들은 정수(하정우)는 사력을 다해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구조대에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린다. 그리고 영화는 곧바로 붕괴 35일째로 훌쩍 뛰어넘어 정수가 구조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극한의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생략한 채, ‘살아있어야 하니까 살아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재난 탈출 액션’이라는 구호가 미심쩍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엑시트>는 자력구제라는 공허한 믿음을 부르짖는 영화일까?

▲ <엑시트> 공식 스틸컷 ⓒ외유내강, 필름케이 


  용남과 의주 세대의 청년들은 인사치레 같은 희망을 믿지 않는다. 연회장에서 먼저 취업에 성공한 사촌 용민이 상투적인 위로를 건네자 용남은 “밑도 끝도 없이 잘 될 거라 하는 게 유행이냐”며 화를 낸다. <엑시트>는 그런 청년들의 모습을 실마리로 삼는다. 영화는 청년의 삶과 재난을 의도적으로 겹쳐 놓지만, 이들은 경쟁에서 낙오할지언정 재난 탈출에서까지 낙오하지는 않는다. 감염된 상태로 열차에 올라타 연신 ‘죄송하다’고 중얼거리는 <부산행>의 가출 소녀(심은경)나, 오랜 취업 준비 끝에 첫 출근을 앞뒀으나 터널 붕괴 사고로 사망하고 마는 <터널>의 미나(남지현)처럼 쓰러져 죽어가는 청년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이다. 비단 의주와 용남처럼 잘 단련된 운동신경을 발휘하는 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청년들은 상황을 중계하는 데 앞장선다. 용남이 구름정원 외벽을 타자 용민은 창밖으로 몸을 뉘여 용남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고, 그 영상을 용혜가 영상통화로 가족들에게 보여준다. 옥상에서 노래방 마이크를 잡고 “사람 살려달라”며 절박하게 소리치는 역할 또한 언뜻 소심해 보이는, 삼수를 경험한 용수의 몫이다. 방송국의 사주를 받아 강변에서 드론을 조종하던 이들 또한 2, 30대 남짓한 청년이다. 용남더러 “아무것도 하지 말라”던 아버지는 이들에게 간곡히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방송사가 시민 제보를 가장해 독점 방영하던 드론 영상은 병원 텔레비전, PC방 모니터, 곳곳의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해 광범위한 공중으로 확대된다. 라이브 스트리밍을 진행하는 크리에이터들은 이 상황을 1인칭 액션 게임처럼, 먹방 컨텐츠처럼 중계한다. 드론이 추락하며 영상 중계가 중단되자, 익명의 시민들은 체념하는 대신 직접 드론을 날려 보내며 구조 헬기보다도 빠르게 재난을 들여다보는 쪽을 선택한다. <엑시트>가 어떤 믿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개개인의 역량이 아닌 공중의 미디어 네트워크에 내거는 낙관일 것이다.

 

▲ <엑시트> 스페셜 포스터 ⓒ외유내강, 필름케이


  하룻밤 사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 유독가스는 갑작스러운 비에 거짓말처럼 씻겨 내려간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재난 탈출 액션’ 영화의 장르적 컨벤션이 제안하는 달콤한 판타지에 불과하다. 용남과 의주에게 떼지어 날아온 드론을 보여주는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모두가 재난을 목격했음에도 구경꾼에 머물러 있었다는 죄의식을 씻어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엑시트>는 지금 닥친 재난에만 온전히 집중하며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데 집중한다. 유별난 악한을 징벌하거나 낭만적인 정의감에 빠지는 대신, 평범하지만 상식과 선량함을 지닌 인물들의 뜀박질에 기대를 건다. 보습학원 안에 갇힌 아이들을 용남과 의주의 시점 숏으로 포착하며 현실의 비극을 이미지로 섣부르게 소비하지 않는 태도 또한 제 몫을 다한다. 언뜻 재난의 본질을 말끔히 표백해버린 듯하지만, <엑시트>는 이전의 한국 재난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선명한 동시대적 감각과 정치성을 선취해낸다.

  지난 9월 22일, 국토교통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고층 다중이용 건물을 중심으로 옥상 출입문에 자동 개폐 장치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굳게 잠긴 채 탈출을 어렵게 했던 <엑시트> 속 옥상 문이 회자된 덕이다. 어쩌면 그만 하더라도 <엑시트>는 대중 상업영화로써 자신의 소임을 다한 듯하다. 재난의 기억은 영화 안에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인 파국의 풍경을 그려내곤 한다. 이제 우리의 몫은 그 풍경 끝에 놓인, 실현되지 않을 듯한 미래의 가능성을 다시금 현실로 되돌리는 것이다. □

 


글쓴이. 안소현
- 학부 시절 영화이론을 전공했습니다. 지금은 꾸준히 할 수 있는 글쓰기를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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