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문이 열린다>는 하루하루 고독하고 고요하게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서로를 응시하는 힘의 위대함을 믿는 영화다. 자신을 닮은 타인을 목격하고 그를 향해 마음을 여는 것. 그리고 말을 건네기까지의 용기는 영화 내내 음울한 표정이나 어두운 하늘과 거리가 주는 감상과는 별개로 잔잔하고 담담한 위로로 남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된 밤들
타인이라는 존재는 정말이지 어렵다. 있으면 불편하고 없으면 공허하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타인이라는 존재의 필연적 불확실성과 예측불가능이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또 이해받지 못하게 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몇 안 되는 타인과 끊어질 듯 말 듯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던 혜정은 인적 드문 소도시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혜정은 어느 날 누군가의 칼부림으로 혼수상태에 놓이고 유령이 되어 눈을 뜬 자신을 발견한다. 그의 시간은 하루하루 거꾸로 흘러가고, 혜정은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들을 다시금 마주하면서 타인을 ‘만나게’ 된다.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곁에 없는 사람처럼 보였던 혜정은 타인과 아주 질기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죽음과 가까워지고 나서야 알게 된다.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타인의 일부가 혜정이고 혜정의 일부가 타인이라는 게 묘한 위로가 된다. 혜정이 만나게 된 인물들 모두 사실은 혜정만큼이나 외로워하고 있었다는 것, 대화할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가닿기 위해 각자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영화가 주는 위로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혜정의 밤, 수양의 밤, 효연의 밤들이 서로 어떻게 엮이게 되는지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혜정이 다른 인물들과 ‘진짜’ 만나게 되는 시간은 밤이다. 이 영화의 주된 시간대가 밤인 것은 밤이라는 시간이 주는 어떤 힘 때문일 것이다. 영화 상영 후 한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해인 배우는 ‘밤’의 의미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밤이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면서 놓치던 부분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지잖아요? 그래서 저는 열려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보통 밤이라고 생각하면 외로운 이미지, 어두운 이미지 혹은 어딘가에 갇힌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 영화를 통해 밤을 희망과 삶으로 가는 길이라고 인식하게 됐어요.” 밤은 사람을 투명하고 취약하게 만들어 더 이상 숨을 곳을 없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낮에는 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보일 때가 있다. 혜정이 홀로 떠도는 수양을 발견한 시간도, 방에만 숨어있던 효연을 발견한 시간도 모두 밤이다. 위에서 언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전소니 배우는 밤이 누군가에게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시간이라고 이야기했다. 효연에게 있어 밤은 숨통이 트이는 시간일 것이다. 언니의 방에 몰래 숨어 사는 효연은 악에 받친 얼굴로 이야기한다. “소리 지르면서 뛰어다니고 싶다”고. 깜깜하고 작은 방 안에서 들리는 효연의 목소리는 결연하고 절박하다. 우리 사회가 간과하는 존재일수록 낮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살아 움직이는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와 숨을 쉬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민낯은 낮보다 밤에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밤의 문이 열린다>의 밤들도 우리가 직면하지 못했거나 마주하지 않았던 밤들이다.
문이 열린다.
영화 내내 누군가 방문을 여는 시퀀스가 자주 등장한다. 자신의 방문, 함께 사는 다른 이의 방문, 누군지 모르는 사람의 방문을 여는 행위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일으킨다. 사채업자 인 광식의 딸 수양은 아빠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폐가처럼 보이는 골목 어귀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유령이 되어 수양의 죽음을 지켜보던 혜정은 수양이 오고 갔던 문들을 열게 되고 그와 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로소 마음을 연다. 혜정은 수양을 쫓아가던 중 광식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 끝에서 자신의 룸메이트인 지연의 동생 효연을 만난다. 효연은 혜정과 대조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어찌어찌 살고는 있지만 의욕도 감정도 없어 보이는 얼굴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혜정과 달리, 효연은 매우 의욕적인 인물이다. 자기는 못 해본 게 너무 많다고,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던 효연은 잘 살고 싶다는 욕구를 넘어 광식을 살인하기까지 한다. 이때 효연이 살인을 결심하기까지의 내면적 충돌이 영화에선 잘 설명되지 않는데, 이 부분은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 7000만원 빚을 지고 신체포기각서까지 작성한 효연은 자신을 지켜야한다는 집념 하나로 광식의 사무실에 잠입해 그에게 칼을 꽂는데, 그 큰 사건까지의 동기가 급작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혜정은 보편성에서 많이 벗어나는 인물이다. 한국사회의 20대 여성을 떠올렸을 때 흔히 묘사할 수 있는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그는 대학생도 취업준비생도, 멀끔한 정장을 입은 신입사원의 모습도 아니다. 외곽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다. 혜정은 이미 너무 많이 살아버린 것 같은, 무기력한 얼굴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밤의 문이 열린다>에서 유은정 감독이 포착한 20대 여성은 꽤 낯선 모습을 하고 있다. 유은정 감독이 쓰고 연출한 <낮과 밤>의 ‘현영’이라는 인물 역시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나도는 것 같은 사람이다. 유은정 감독은 인터뷰에서 왜 주로 주변부 인물들을 주목하느냐는 질문에, 감독 자신이 서울의 변두리에서 살아가고 있고 사회가 말하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이라는 점이 아웃사이더처럼 밖에 있는 인물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웃사이더로 대변되는 인물이 ‘사람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본연의 생동감과 입체성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유은정 감독은 유령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선택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혜정은 유령이 된 이후 점점 더 사람처럼 보인다. 죽음이 닥쳐서야 다른 사람의 문을 두드리고, 조심스럽게나마 열기 시작한 것이다. 혜정은 스쳐지나갔거나 궁금하지 않았던 타인들을 마주하고, 그 결과로서 그는 변화한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위로를 건넨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문을 굳게 걸어 잠갔던 혜정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문을 열게 된다. 죽음과 유령이라는 어두운 설정을 취하고 있지만 이 영화가 희망을 말한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이 ‘열림’에 있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하루하루 고독하고 고요하게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서로를 응시하는 힘의 위대함을 믿는 영화다. 자신을 닮은 타인을 목격하고 그를 향해 마음을 여는 것. 그리고 말을 건네기까지의 용기는 영화 내내 음울한 표정이나 어두운 하늘과 거리가 주는 감상과는 별개로 잔잔하고 담담한 위로로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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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문이 열린다> 인디토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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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스페이스] 살아있는 유령과 살고 싶은 유령이 건네는 위로
: <밤의 문이 열린다> 유은정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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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마리솔
-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하는 사람. 섬세한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 가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주로 연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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