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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와 여성 창작자, 어떻게 지지할 것인가 - 토크쇼 '여성주의, 스토리텔링을 질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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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8. 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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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는 무엇일까? 여성을 주연으로 삼거나 여성 창작자가 만든 작품이 페미니스트로서 실망스럽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정한 요소들을 갖춘 작품만이 여성주의적으로 의미 있을까? 지금의 지지가 창작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을까?

 

[ACT! 115호 페미니즘 미디어 탐방 2019.8.14]

 

여성 서사와 여성 창작자, 어떻게 지지할 것인가 

- 토크쇼 '여성주의, 스토리텔링을 질문하다'

 

이세린 (ACT! 편집위원)

 

 

 무엇을 볼 것인가.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며 반복하여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다. 남성 중심의 주류 서사에는 여성의 삶이라곤 담겨 있지 않아 재밌지도 않고,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성별 불평등을 발견해내지 못하거나 오히려 재생산하는 불편함을 안겨 준다. 그러나 이 콘텐츠들은 ‘한국 문학’이라는 권위적인 이름으로, ‘천만 영화’라는 모습으로 대중과 만나며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여기에 편승하지 않고 여성 서사를 소비하며 여성 창작자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오늘날 페미니즘 운동의 주요한 한 모습이다. 


 그런데 ‘여성 서사’는 무엇일까? 여성을 주연으로 삼거나 여성 창작자가 만든 작품이 페미니스트로서 실망스럽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정한 요소들을 갖춘 작품만이 여성주의적으로 의미 있을까? 지금의 지지가 창작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을까? 지난 7월 3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여성주의 스토리텔링을 질문하다> 토크쇼는 현재의 ‘여성 서사’ 논쟁에 담긴 복합적인 문제들을 짚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여성주의 문화운동을 지속해온 언니네트워크와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로 ‘다른 서사’를 선보여 온 연분홍치마의 고민이 담긴 기획이었다. 100석 규모의 극장을 가득 메운 페미니스트들도 소비자로서, 또 창작자로서 자리에 함께했다.

 

▲ <여성주의 스토리텔링을 질문하다> 토크쇼 포스터. 언니네트워크와 연분홍치마의 15주년 기념 행사였다. 


 이날 토크쇼의 패널로는 다양한 매체로 주목받는 작품을 선보여 온 여성 창작자들이 자리했다. 정주리 감독은 영화 <도희야>에서 청소년인 도희와 성인인 영남, 두 여성 사이의 관계와 감정을 전면에 드러냈다. 박민정 작가는 소설 <미스 플라이트>에서 세상을 떠난 유나가 가졌던 시선을 탐색하고 그에 비친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드러냈다. 들개이빨 작가는 웹툰 <먹는 존재>에서 주인공 유양의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을 중시하는 오롯한 삶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토크쇼에서 서사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가졌던 고민과 현재 창작자로서 체감하는 물리적 현실을 전했다. 한편 남성 중심적 문단과 평단의 한계를 드러내고 새로운 독자층과 작품성에 주목한 오혜진도 비평가의 시선으로 함께해 논의를 확장시켰다.

 

▲ 패널석 왼쪽부터 오혜진 평론가, 정주리 감독, 박민정 작가, 손혜정 평론가. 들개이빨 작가는 텔레그램을 통해 토크쇼에 함께했다. 한편 3시간이 넘는 시간 내내 동시 수어 통역이 이루어졌다. 


 누가 왜 ‘여성 창작자’를 호명하는가
 토크쇼의 물꼬를 튼 첫 번째 주제는 ‘여성 창작자’라는 호명에 대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지지하기 위해 이런 호칭을 쓰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류 작가’와 같은 구분 짓기와 멸시도 남아 있다.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가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 만큼 공존하고 있다. 
 정주리 감독은 “제가 여성 감독이라 불리는 건 그만큼 여성 감독이 적어서라고 느낀다. 여성이 많아진 시나리오 영역에서 ‘여성 작가’라는 말을 덜 쓰듯이 연출, 기술 영역도 점차 호칭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한편 박민정 작가는 “문예창작학과를 보면 여성인 작가가 훨씬 더 많은데도 섹터를 나누려 여성 작가라는 호칭을 쓰기도 한다”면서 이견을 내놓았고, 한편으로는 여성 작가로 불리고 싶기도 한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최근 단행본을 발간한 오혜진 평론가는 “책의 내용을 보지 않고 여성 평론가이기 때문에 지지한다면 스스로 노력한 부분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고 느껴져 찜찜하다. 하지만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라고도 생각한다. 어떨 때는 감사하고 어떨 때는 이에 싸우고 싶다”고 밝혔다. 

 여성 서사를 판별할 수 있는가
 이어진 주제는 ‘여성 서사 판별기’였다. 아주 쉬운 조건으로 구성된 ‘벡델 테스트’도 통과하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은 여성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최근에는 여성 창작자와 여성 서사에 대한 지지가 커지면서, 여성 서사가 무엇인지를 보다 자세히 규정지으려는 시도가 온라인 일각에서 일고 있다. 이 기준들은 소위 ‘알탕 서사’로 불리는 남성 중심 서사의 안티테제라는 맥락이 있지만, 정치적 규율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점, 여성 개인의 커리어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요소들은 배격하는 온라인 여성주의 운동의 일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 등이 논란이 되었다.

 

▲ 한 온라인 페미니스트가 제작한 ‘여성 서사표’ 


 이어 ‘탈성애’ ‘꾸밈노동’과 같은 키워드에 대한 비슷한 맥락의 논의도 이어졌다. 여성이 로맨스와 성애로 인해 남성에 종속되어서는 안 되고, 여성만이 꾸밈에 따르는 비용과 삶의 제약을 감당해서는 안 된다는 맥락의 용어인데, 일각에서는 작품에 나오는 여성 또한 이러한 모습을 보이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들개이빨 작가는 “(벡델 테스트의 경우) 여성서사 판결을 하기에는 헐겁다고 생각한다. 여자 둘이 나와 게장만 담가도 통과하는 기준이다. 하지만 못 통과하는 영화를 놀려먹기에 좋다”고 전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박민정 작가는 “경직된 상태로 이야기를 쓰기는 어려운데, 탈성애 등 다양한 기준을 고려하고 쓸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는 고민을 전했고 “작가들 자신의 꾸밈에 대해 공격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면서 고통스러웠다. 언어가 너무 한정적이고 남성 중심적이어서 경각심이 들었다”는 경험을 전하기도 했다. 오혜진 평론가는 강남역 사건 이후 작품들에 '폭력과 매매가 아닌 방식의 성애'가 담기기보다는 성애 자체가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짚고, 성애나 꾸밈의 여부보다 강제된 규율에 반대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여성 쿼터제와 ‘영혼 관람’, 창작자에게 힘이 될까
 이어지는 주제는 ‘여성 쿼터제’였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낯설게 다가오는 단어지만 실제 과도하게 기울어진 성비의 제작현장 속에서 정책 방향으로서 제안되고 있다. (☞ 관련 기사 "여성 영화=실패? 성평등 혁명 절실한 이유“ (2018.06.14. 노컷뉴스))
 정주리 감독은 작업 현장 내 성희롱 등의 문제를 논하며 “스웨덴에서는 40% 이상 할당제가 적용되는 동시에 탁아소 등 제반 시설도 잘 갖두고 있다고 한다. 불가능하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본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편 관람하지 못하는 영화의 표를 사는 일을 일컫는 ‘영혼 관람’에 대해서도 논했다. 자신이 지지하는 여성 감독의 영화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보태고자 거듭 표를 구매하며, ‘영혼만 보내 영화를 관람한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정주리 감독과 박미진 작가는 이에 찬성하며 실제로 창작자들에게 유효한 힘이 되는 실천이라고 보았다. 오혜진 평론가는 맥락에 동의하면서도 “중요한 건 (여성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아닌) 그 서사의 내용이어야 한다. 내용을 보지 않고 무조건 밀어주는 것은 여성의 역량을 평가절하하는 것”이라며 이견을 밝혔다. 정당한 평가 또한 여성의 권리라는 것이다. 들개이빨 작가는 이에 동의하면서도 “(여성 서사에 대한) 비합리적 공격에 비합리적 소비로 맞서려는 합리적 현상이다”라는 의견으로 마무리했다.

 

 

▲ 패널석 왼쪽부터 오혜진 평론가, 정주리 감독, 박민정 작가, 손혜정 평론가.



 ‘착한 이야기’라는 프레이밍을 넘어
 마지막 주제는 여성 서사의 내용에 대한 어긋나는 기대와 오해였다. 박민정 작가는 “문학계에 여성 작가들이 인기를 끌면서 ‘역사’와 ‘노동’ 이야기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힘들었다. 두 주제는 창작에서 계속 고민하는 주제인데도 그렇게 여겨진다. 나이든 남성 작가의 이야기가 오히려 소소하고 좁아 터지지 않았나” 하고 역설했다. 정주리 감독은 <도희야>의 착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도희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고자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이후 ‘착하고 소소하고 말랑한’ 시나리오들만을 제안받았던 경험을 밝혔다. 오혜진 평론가는 여성 창작자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내용의 콘텐츠만 창작한다는 비판은 여성 작가들을 둘러싼 상황을 보지 않는 편향된 견해임을 지적했다.

 토크쇼의 다양한 이야기는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하지 않았다. 여성 서사를 추구하면서 고민과 딜레마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토크쇼를 통해 ‘여성 서사’에 대한 이견과 이를 둘러싼 지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토크쇼 이후 플로어의 참석자들은 여성 서사에 대한 자신의 의미를 ‘여성 서사는 OOO이다’ 라는 형태로 발표했다. 각기 달랐던 키워드만큼 다양한 여성 서사의 가능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더 나은 창작과 연대의 방향을 계속해서 논의할 수 있었으면 한다. ■

 


 

글쓴이. 이세린 

공동체미디어의 힘을 믿는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인터넷 인간'이라 불리는 SNS 중독자  
다양한 사회 운동을 좋아하는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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