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14호 페미니즘 미디어 탐방 2019.05.25.]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까?’
- 연극평론집단 시선 수다회
권세미 (미디액트)
젊은 창작자들의 화제작이 올라가는 공연장을 자주 찾는 관객이라면 ‘월간시선’을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월간시선’은 무가지 형식에 공연 시작 전에 술술 읽을 수 있는 짧고 솔직한 리뷰가 특징인 월간 평론지이다. 입센, 셰익스피어, 체홉, 장주네, 몰리에르의 이름을 차용한 편집진의 필명부터가 이들이 고분고분하게 기성 연극비평을 답습하지 않을 것임을 표명하고 있다. 2년 만에 벌써 두 권의 평론집을 내고 관객과의 대화, 페미니즘연극제 등에서 전방위로 활동하고있는 연극비평집단 시선을 만나 ‘시선’의 시선은 무엇인지 수다를 청해보았다. 수다는 정중한 높임말로 진행되었으나, ‘시선’의 평론집 대담 스타일대로 편하게 옮겨보았다.
수다 멤버 : 입쎈, 셰끼스피어(이후 셰끼), 최홉, 장준애(이후 준애), 졸리에르(이후 졸리)
정리 : 권세미, 녹취 : 이세린
매월 비평지를 내는 젊은 연극 평론가집단 - ‘연극비평집단 시선’
세미 : 어떻게 연극평론집단 시선을 결성하게 됐어?
준애 : 미투로 인해 분연히 떨쳐 모였다고 해야... 하면 좋을 거 같은데, (웃음)
입쎈 : 사실 모인 계기는 거창하지 않아. 평론가로서 무슨 활동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서울시 청년예술단 지원 신청을 하려고 보니, 자격 조건이 혼자는 안 되고 최소 세 명은 모여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입쎈, 셰끼스피어, 최홉 셋이 모여서 시작했어. 이 셋은 각자 연극 관련 단체 간사를 하고 있었는데 평론에 관심이 있다고 알음알음 모였어.
세미 : 그래도 서로 삘이 통하는 게 있었던 거 아니야?
최홉 : 방향성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있었지. 웹진을 제외하면 기존 평론 매체는 주로 계간지 형식이잖아. 그리고 그런 평론지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작품은 기성 연극인의 작품인 경우가 많고. 거기에 우리가 원하는 작품을 쓰려고 하면, 유명하지 않아서 안 된다든지, 협회 회원이 아니어서 안 된다든지 그런 제약들이 있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자유롭게 쓰는 지면을 만들고 싶었어.
셰끼 : ‘시선’에서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쓰고 싶었어. 다른 지면에 글을 쓰려면 일정한 형식을 요구 받기도 하고, 쓸 작품을 요구받기도 하거든.
준애 :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참여한 거 같아. 작년 초에 연극 평론 시작했는데 그 무렵 시선을 같이 하자고 제안 받았지. 평론을 시선으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냐.
입쎈 : 장준애는 내가 섭외를 했어. 용감하게 ‘시선’을 시작은 했지만 기존 멤버 셋이서 월간지를 내는 게 어렵더라고. 활동할 사람을 찾던 중에 미투 터지기 직전에 졸리에르가 들어왔고, 이후에 장준애가 들어왔지.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학회나 대학원에서 마주친 인연으로 함께하게 됐어.
셰끼 : 판이 좁아서...(웃음) 그래도 함께할 사람들을 찾으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건 있어. 사실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애초에 성향이 너무 다른 사람은 함께하기 어렵다는 걸 전제했던 게 있었지.
준애 : 내 경우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였어. 적어도 나한테는 그런 기준이 있었어.
최홉 : 신규 멤버를 모집할 때 그 부분을 가장 걱정했고 중요하게 봤던 거 같아.
세미 : 젊은 평론가 집단이라 평론 활동의 방향성에 대해 포부를 밝힌 선언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홈페이지 소개에 보면 평론할 작품 선정은 내부 기준, 개인에 따른다고만 되어 있더라? 혹시 다른 곳에서라도 ‘시선’만의 시선에 대한 의견을 밝힌 적은 있어?
최홉 : 그 얘기를 많이 들어서 슬슬 써야할 거 같아. (웃음) 작품 선정 기준을 내부 기준이라고 한 가장 큰 이유는...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작품 청탁이 오기 시작했는데, 그런 걸 배제하고 싶었어. 그건 기성의 평론지가 굴러가는 방식이거든.
입쎈 : 맞아. 광고비가 들어오면 그걸 싣는다든지. 협회원이 공연을 올리면 써준다든지…
최홉 : 그래서 엄격하게 썼던 것도 있어. 우리가 무슨 공연을 보더라도 내부 기준에 의한 거니까. 굉장히 예외적으로 지원금이 끊겼던 기간에 썼던 리뷰 중에 남산(남산예술센터)에서 하는 공연의 광고를 받은 적이 있었어. 그래서 이왕 받을 거 광고 받고 쓰는 리뷰라고 대놓고 써놨어.
입쎈 : 돈을 받지만 솔직한 리뷰라고(웃음)
최홉 : 맞아. 그래도 내부기준이 뭐냐고 한다면, 기성 작품보다는 젊은 창작자들의 작품을 챙기는 것 정도? 그리고 사회적 이슈나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연극에 자연스럽게 눈이 많이 가는 거 같아. 그게 모두가 공유하는 기조이긴 하지만 합의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냥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거야.
입쎈 : 기준이 추상적이고 막연하긴 하지만, 내부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게 각자 성향이 맞았어. 글들을 모아놓고 보니 자연스럽게 흐름이 생겼달까.
셰끼 : 처음 시작할 때는 신진 창작자를 조명해보자, 기성 작품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얘기를 하긴 했어. 하지만 꼭 이래야지 했던 것보다는 그냥 그런 쪽에 흥미가 있었던 것 같아. 각자 그런 작품들을 찾아가다보니까 그게 우리 팀의 색깔이 된 거 같고.
최홉 : 분명 시선의 활동을 하면서 정치적 스탠스가 확립된 부분이 있을 거야. 그런데 역으로 의도를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도 있어. 연극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페미니즘 연극과 비평이고, 우리도 페미니스트로서 당연히 우리도 페미니즘적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외에의 것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작년 같은 경우 장애인 연극이나 초단막에 대해서도 글을 쓰기도 했고. 주류가 아닌 마이너리티나 변방의 작품들에는 전부 시선을 보내고 싶어.
‘시선’의 시선은 슬로건보다 수평적인 관계성
세미 : 맞아. 그래서 더 의외였던 거 같아. 실제 ‘시선’의 활동이나 글을 보면 그런 방향성이 확연하게 잘 읽히거든.
준애 : ‘시선’이 슬로건은 없지만 큰 틀에서는 ‘뭘 하지 말자’라는 건 있어. 국공립극장에서 올라가는 건 다루지 말자, 기성 평론지에서 하지 않는 것을 하자는.... 스타 극단은 우리가 다룰 필요도 없고 ‘시선’에서 만큼은 그걸 하고 싶지는 않거든.
‘페미니즘 비평을 하자!’ 라는 슬로건은 없었어. 그런 게 있었다면 페미니즘 연극이 무엇일까를 정리해야한다는 부담을 가졌을 거 같아. 강제하지 않는 선에서 커다란 방향성이 있기 때문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거 같아.
슬로건보다는 팀 안의 관계성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 각자 하고 싶은 걸 얘기하면 그게 자연스럽게 기획회의가 되거든. 슬로건이 있다고 하더라도 팀 조직원리가 보수적인 경우도 많잖아?
최홉 : 예를 들어서 나는 이 팀에서 가장 어리거든. 처음 제안 받았을 땐 28살이었고 이쪽을 전공하지 않았고 석박사도 아닌데 다른 멤버들은 문학 계통 전공자거든. 처음 평론 시작할 때는 그게 콤플렉스기도 했어. 근데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게 시선의 힘이 아닐까 싶어. 서로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는 데에 주저함이 없거든. 서로 용어나 표현을 봐주기도 하고.
셰끼 : 수평적인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게, 각자 잘 아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물어보고 확인받고 싶어 해. 그러니 자연히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거 같아.
이윤택 공연 보이콧, 관람도 글을 쓰지도 않을 것
세미 : 관계성 얘기를 하려면 미투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 거 같아. 지금 연극계의 중요한 고민은 ‘어떻게 위계적인 관계를 바꿔낼 수 있는가’ 인 거 같아. 시선에서도 미투를 굉장히 중요하게 다룬 걸로 알고 있어. 작년에 미투 관련해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어?
최홉 : 시작은 설 연휴였던 거 같아. 각자 다 흩어져서 집에 있는데 페이스북에 이윤택 성폭력 범죄에 대한 고발 글이 올라왔어.
입쎈 : 연휴 훨씬 전에 이명행 배우에 대한 미투 글이 올라왔고 연휴 직전에 이윤택 연출에 대한 글이 올라왔던 걸로 기억해. 덕분에 연휴 내내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지.
최홉 : 그때 다급하게 회의를 했지. 우리의 입장을 빨리 말하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을 했어. 연극 협회들 반응이 늦을 것은 뻔했고. 그렇다면 트위터라는 가장 빠른 매체를 가지고 가장 기동성이 좋은 사람들이 있는 우리라도 의견을 밝히자 싶어서 성명서를 낸 거야. 이후 이윤택 작품은 보이콧 한다, 만약 다룬다면 그의 범죄에 한정해서 다룰 거라고.
입쎈 : 빨리 대응해야겠다 생각한 게, 아노미 상황 속에서 피해자들이 그냥 노출되어있더라고. 그래서 성명서도 빨리 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고 미투 호외편도 냈지. 그 전까지는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암담했는데 호외 기사를 쓰면서 우리 스스로도 문제를 정리하게 되더라. 그리고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연극계에서 글로도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셰끼 : 호외편을 쓸 때 각자 쓰고 싶은 걸 썼지만, 피해자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은 염두에 뒀어. 입쎈은 그동안 평론 혹은 평론가의 문제는 없었던가를 돌아보는 글을 썼고 나는 개인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우리 모두가 피해자나 방관자일 수도 있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썼어. 이윤택 기자회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글은 최홉이 썼지.
졸리 : 나는 2차 가해의 문제를 다뤘어.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나중에 호외가 책에 실릴 때는 가해자들이 돌아오는 문제나 그들을 무대 위에 세워주는 사람에 대한 비판도 실었어.
셰끼 : 이 글들은 안 읽으면 그만이고 수면에 잠길 수도 있는 글이지만 한 글자라도 진심이 오갈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어. 다른 곳에서도 사건에 대해서는 다루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개한다거나 진심이 오가는 글을 쓰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거든, 각 매체마다 그 성격이 있으니까.
입쎈 : 호외는 적극적인 행동인 거잖아. 월간 발행과 다른 판에, 우리가 직접 디자인을 해서, 직접 비치하고 사람들이 와서 찾아갔으니까. 그런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행위들이 있을 때 피해자들이 조금 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졸리 : 나는 평론가들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평론가로서 경력이 길지는 않지만 문제를 반성하고 딛고 나가야 된다고 봤어. 아쉽게도 다른 평론 집단이나 단체에서는 자기반성을 볼 수 없었던 거 같아.
관객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뒤집은 여성 관객들
최홉 : 집회가 나한테는 큰 자극이었어. 어떤 집회였냐면, 온라인에 사람들이 공연 정보나 리뷰 올리는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관객들이 성폭력 가해자와 그의 작품을 무대에서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게릴라식으로 집회를 연거야. 그게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더라고.
그간 연극의 주요한 관객이면서도 무시당하고 멸시 당해 온 여성 관객들이 실제로 광장에 나타나서 이렇게 만들지 말라고 요청했던 것이 나에게는 혁명적이었어. 관객 집단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뒤엎은 거니까.
졸리 : 그 이후로 공연장에 가면 관객 분위기가 달라진 게 느껴져. 여자 배우들의 활약에 박수를 치는 분위기가 있고 관객 주도적으로 여성 배우의 팬덤이 형성되기도 하고, 대본도 많이 바뀌고 있는 거 같아.
세미 : 그러고 보면 우리가 더 느리고 관객들이 더 빠른 것 같아.
최홉 : 맞아. 관객들이 더 행동하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우리도 덜 무력했던 거 같아.
세미 : 나도 미투 초기에 ‘시선’의 성명서를 SNS에서 봤어. 굉장히 빠르게 올라와서 인상적이었고, 나도 여성 창작자로서 지지받는 느낌을 받았거든. 혹시 직접적인 독자의 피드백도 있었어?
최홉 : 누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갔더라고. 비판도 있었지. 평론가들은 그동안 뭐했냐, 평론가들이 이윤택 띄워주기만 한거 아니냐라고.
졸리 : 우리가 이윤택 보이콧하겠다고 하니까 얘네는 이제 와서 이러냐 하는 반응도 있더라고.
최홉 : 그런 욕을 듣더라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해.
셰끼 : 그런 반응을 보면서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창작자를 대표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
최홉 : 지면으로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은 페북이나 SNS에 분노를 표현하는 것과는 다르구나 하는 무게감의 차이가 있었어. 호외를 쓸 때는 본명을 썼었고, 누군가 나에게 나댄다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 그때는 글을 쓰는 게 우리 모두 기성에 싸움 거는 것이기도 해서 무섭기도 했어.
연극계 미투가 만들어낸 변화와 남은 숙제
세미 : 미투 이후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 싶어. 평론집에도 썼지만 미투가 안주거리가 되어버리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있어. 미투가 우리에게 어떤 걸 남겼는지 얘기해줄 수 있어? 남아있는 숙제가 있다면 어떤 거라고 생각해?
연극계에서 미투 관련해서 많은 시도와 운동이 있었는데도 한 발짝만 나가면 외부사람들은 잘 모르더라고.
입쎈 : 미투가 터지고 기자들한테 종종 연락이 왔어. 한 두달쯤 지났을 때였나? 미투 상황에 대해 이런 저런 걸 물어보는데, ‘미투 이후에 연극계가 침체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화가 났어. 그래서 그 기자에게 지금 당장은 사람들이 안 볼 수도 있지만 그게 계기가 되어서 연극계가 바뀌면 분명히 더 많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가능성을 봤다고 얘기했지.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2차 가해라고 지적하기도 했고. 근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확신이 없기도 했어. 정말 변할 수 있는 걸까?
최근 들어서 작품 만드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잖아. 창작자도 자정작용을 하면서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창작 규칙을 정하기도 하고. 부적절한 발언이나 행동이 지탄받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제작되는 작품을 봐도 예전만큼 불편한 작품들은 나오지 않는 것 같아. 그런 면에서 이제는 예전보다 우리가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어.
졸리 : 예전보다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작품에 대해 비판을 하기가 좀 더 쉬워지기도 했어. 그런 작품은 다 같이 비판하는 분위기도 있고.
특히 여자 배우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들이 눈에 띄어. 이윤택 같은 사람에게 갔던 기회가 여성 창작자에게 돌아오기도 하고 그 기회를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아. 여성들끼리 하는 작품도 늘어나고 있는데 그런 작품이 매진이 되니까.
여성 배우들의 적극적인 팬덤이 생긴 점도 있지. 김신록 배우는 <비평가>라는 연극에서 팬덤도 형성되고 자발적인 관객모임이 만들어져서 작품에서의 젠더 얘기를 하기도 했지.
셰끼 : 남은 숙제도 있어. 영화계도 그렇겠지만 가해자가 현장으로 돌아오고 있는 문제. 더 화나는 건 가명을 쓰거나 다른 장르로 슬쩍 돌아온다는 거야.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이건 어이가 없는 행위인 거지. 우리는 돌아오는 이 가해자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이게 연극계에서 지금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미투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할 거고. 어려운 문제지만 지금 해야만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
졸리 : 이런 상황을 계속 알리고 비판하는 게 중요할 거 같아. 근데 가해자들이 자꾸 너무 돌아와...
최홉 : 이런 문제에 대해 남성 창작자와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일사부재리의 원칙 어쩌고 얘기를 하더라. 한번 자숙했는데~하는 거지. 근데 순간 거기에 반박을 못하겠는 거야.
졸리 : 글쎄? 반성을 했을지. 가해자들 대부분이 제대로 처벌을 받고 돌아오는게 아니지 않아? 남자 창작자들끼리 ‘조금만 숨죽이고 있으면 다 지나간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다들 가해자를 알음알음 써주는 것도 문제야. 아직 기사화가 안됐을 뿐인 가해자들이 많거든. 다들 알지만 명예훼손 등 때문에 안 터진 것도 많지.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알려져야 하는데.. 요원하다..
셰끼 : 만약 가해자가 현장으로 돌아오기 위한 조건을 논의한다면, 피해자의 회복이 전제가 되어야한다고 봐. 가해자의 철저한 반성은 물론이고. 피해자가 아닌 제3자가 가해자의 복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생각해. 그런데도 과연 가해자가 스스로 판단해서 나올 일일까?
졸리 : 피해자는 다시 못 돌아오는 일도 흔한데... 거꾸로 된 것 같아.
준애 : 일종의 백래쉬라고 생각해. 기존 집단은 가해자가 복귀할 수 있도록 뒷문을 열어주고, 가해자들도 어느 정도의 자숙기간을 가지고 돌아오면 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안타깝게도 한자리 하시는 협회나 기관 분들은 다 남자니까. 공고한 남성연대 구조가 강한 상황에서 가해자를 걱정하는 건… 필요 없는 일로 느껴져.
앞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일이 너무 많지. 안전한 작업 환경을 위한 규약 같은 것이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중재해 줄 시스템이 있어야 해. 문제를 판단해서 자체적으로 중재 가능한지 법적으로 넘겨야 하는지 아닌지 결정해줄 수 있는. 기초적인 장치나 제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걸 마련하는 것부터 생각해야 해.
셰끼 : 이런 논의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활발히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연극이 사회와 어떻게 맞닿고 있는지 연결고리를 찾는 비평
세미 : 조금 정리를 해볼까? ‘시선’이 처음 결성하게 된 이유도 그렇고 미투 이야기하면서도 나왔지만 기존 평론계, 기존 연극계에 일종에 어떤 불만이랄까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거 같아. 나는 개인적으로 ‘시선’의 멤버들 외에는 현장에서 젊은 평론가 못 만나봐서 더 이런 ‘시선’의 목소리들이 특별하다고 느껴져. 어때?
최홉 : 평론 방식이나 방향성에 대해서는 많이 얘기하는데. 기존 평론들은 형태가 정해져있다는 느낌이 들어. 줄거리를 대략적으로 쓰고 안 좋았던 점 살짝 말하고, 앞으로 기대한다고 하고. 논술처럼. 잘했다 못했다를 말하는 글을 많이 보게 돼. 그런데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라 이 연극이 지금 왜 필요한지 사회와 어떻게 맞닿고 있는지 연결고리를 찾는 글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셰끼 : 기성 평론과 연극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기는 하는데 그보다는 신진 창작자를 더 조명하려고 하지. 기존 연극계의 제도 문제와 국공립 문제, 기존 평론이 미처 보지 못하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최홉이 얘기한 것처럼 잘했다 못했다 분별하는 글, 이분법적인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고 대신 작품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글, 사회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게 문을 열거나 작품에 대해 또 다른 감각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글을 쓰자고 얘기하는 편이야. 재단하는 식으로 평론을 하지는 않아.
최홉 : 사실 재단하는 부분도 있긴 한데... (웃음) 신진 창작자들의 작품을 보는 것도 좋은데 기존 작품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지 않냐는 얘기를 들어서 기라성 같은 작품을 다루기도 했어. 이번에 박근형 연출의 ‘청춘예찬’도 다루고, 고전이다 위대한 극작가다 하면서 무비판적으로 지위를 누렸던 작품을 지금의 시선에 맞게 비평해보는 코너도 시작했어.
준애 : 비주류라고 해서 반드시 소수성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해. 청년 연극인이라고 해서 기존 구조 답습 안하는 것은 아니더라고. 연극영화과에서 많은 작업자가 배출이 되는데, 손쉽게 배운대로 기존 구조에 빨려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 수업의 일환으로 이상한 걸 시키기도 하고.. 제자사랑이라고 하는 것들이 보수적이고 위계적인 제작환경을 유지시키는 데 일조하기도 하지. 세대나 담론이 바뀌기도 하지만 바뀌지 않는 오래 지속되는 구조도 있다고 봐. 제작환경도 그렇고 미학적인 부분도 그렇고.
셰끼 : 미투 이후 과제라고 했을 때 그 얘기를 하고 싶어. 이 현상이 세대 간 교체 문제가 아니라는 점. ‘기성세대가 문제였고 젊은 세대는 다를 것이다.’라는 게 절대 아니거든. 젊은 세대도 기존 질서를 내면화하기도 하고 기성의 잘못을 답습하기도 하잖아. 영화든 연극이든... 젊은 세대 내에서도 분명히 자정을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해.
최홉 : 그렇지. 안티페미니스트 정체성 가장 강한 집단은 20대 남성 아닌가? 페미니즘에 대한 불만을 가진 양비론적 태도가 젊은 창작자의 작품 중에도 많이 보여.
졸리 : 여성 창작자들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지. 양쪽 다 고르게 얘기해야 한다는 식이니까. 휴머니즘을 주창하지만 실은 여성 배제로 가는 거지.
준애 : 지원받는 제작비가 높아지면 양비론이 되더라.(씁쓸)
최홉 : 양쪽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는.
또 ‘페미니즘 연극’이냐고?
세미 : 맞아. 몇 년 사이에 페미니즘 연극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부각됐잖아. 제목도 특이한 게 많다보니 눈에 잘 띄기도 하고. 그런데 불과 1~2년 만에 ‘또 페미니즘이냐’ 하는 반응이 여기 저기서 보이고, 제작 지원 면접 가보면 이게 다른 페미니즘 작품과 뭐가 다른지 증명하라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잖아?
입쎈 : 으으 너무 싫다...
최홉 : 그 동안 남성 서사가 수없이 재생산 되었잖아. 근데 이제 겨우 활발해진 페미니즘 연극은 잣대가 너무...
페미니즘을 걸고 나온 작품 중에 보고서 고루하거나 고민의 층위가 얇다고 느끼는 작품도 가끔 있지. 그치만 여성 소수자 작품이 실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얄짤없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한 얘기잖아! 라고 하면서 입센의 ‘인형의 집’ 이랑 뭐가 다르냐고 하니까. 이런 비난의 시선이 내재화되다보니 자기검열을 하게 되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엔 이런 논의를 활발하게 이어가는 게 연극계 지평을 바꿀 거라고 생각해.
셰끼 : 사회가 달라졌고 겪고 있는 삶이 달라졌으면 작품도 달라졌을 거야. 그런데 여전히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건 사실 사회가 그만큼 변하지 않았다는 걸 역설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또 페미니즘 연극’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리고 마냥 똑같은 이야기도 아닐 거야. 시대에 따라 감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운동권 시대의 페미니즘과 지금의 페미니즘은 또 좀 다르잖아. 여성억압이나 가부장제가 더 내면화되고 세밀하고 자본과 결탁된 형태로 드러나니까. 그런 미세한 차이들을 눈여겨봐야 하고, 동시에 사회가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도 인식해야지. 무작정 ‘또 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어.
준애 : 그러고보면 우리가 이행기를 가진 적이 있었나 싶어. 한국 연극판이나 연극계의 전방위적인 지각변동을 지속적으로 가져가면서 이행기로 만들어본 적이 있었나? 어떻게 보면 지금이 첫 이행기인 게 아닐까. 한편으로는 빠르게 변화를 보려는 성급함이 이행기를 오기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 반세대 위인 사람들조차 벌써 싫증난다는 소리도 하더라고. 길게 보고 차근차근 했으면 좋겠다.
졸리 : 20년 전 30년 전 페미니즘 연극 붐이 일었을 때와 지금은 달라. 당시에는 외국 페미니즘 연극을 수입해오거나 이런 게 더 많았는데 지금은 우리가 생각하는 걸 무대화하는 경우가 많거든. 지금 페미니즘 연극 자체가 우리나라 연극사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해.
최홉 : 이런 건 있어.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공연이라고 해서 힘을 실어주자 하고 막상 가보면 여혐 연극인 경우도 있었어. 그냥 단순하게 핍박 받는 여자에 대해서 얘기하자고 하는 공연도 난무하고.
셰끼 : 작년까지는 지원금 제도에서 페미니즘, 젠더 이슈를 다루는 게 유리한 측면이 있어서 키워드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이런 공연은 제도가 변하거나 흐름이 바뀌면 사라질 문제고 진짜로 페미니즘 이야기가 하고 싶은 창작자는 꾸준히 할거라고 봐. 다만 이런 백래쉬로 인해 일종의 붐이 사라질 때 페미니즘 이야기를 꾸준히 하려는 작품들까지 변방으로 내몰리게 될까 걱정이야.
세미 :이런 조급증이라면 내년이면 페미니즘이 붙은 공연에는 제작 지원이 잘 안 될 거라는 생각도 들어.
새로운 시도가 미학과 맞닿는 지점 – 1인 창작자, 배우 중심, 인큐베이팅
세미 : 마지막으로 ‘시선’에서 관심을 가지는 페미니즘이나 젊은 창작자의 창작작업이 미학과 맞닿을 때 정말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비평을 하면서 그런 소중한 지점을 발견한 경험이 있어?
최홉 : 요즘 주의 깊게 보는 건 1인극이야. 요즘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는데, 배우 1명나오는 공연을 넘어서 1명의 아티스트가 작/연출하고 출연도 하는 작은 공연이 매력있고 흥미로워. 성수연 배우의 ‘액트리스원’이나 김신록 배우의 ‘김신록의 뫼르소’도 있었고. 그게 어떻게 보면 배우 창작자들이 그 전에는 오디션으로 뽑히길 기다리는 대상으로서 연출 권위 하에서 소모되는 부분이 있었잖아. 그게 배우에 대한 우리 전 세대의 인식이라면 요즘에는 배우들이 역할로서가 아니고 자기 스스로를 이야기하고, 자기 의지를 가지고 활동하는 게 인상적이더라고.
졸리 : 맞아. 연출이 시키는 위치에 서고 움직이는 데에 갈증을 느낀 배우들이 뛰쳐나왔던 거 같아. 특히 여배우들. 1인극도 그렇지만 얼마전 산울림에서 공연한 ‘환희 물집 화상’은 정윤경이라는 배우가 직접 번역했거든. 배우가 하고 싶은 작품을 직접 찾아서 공연화한 경우지. 그리고 자기가 직접 쓰는 경우도 많고. 이런 시도가 늘어나고 있어.
셰끼 :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인큐베이팅으로 나오는 작품이야. 예를 들어 두산아트랩이나 남산예술센터 서치라이트에서 나오는 아직 날 것인 작품들. 대부분 낭독공연에다 신진 창작자들 작품인데 미완성인데도 흥미로워. 미완성이라 솔직하다는 느낌도 들고.
그 외에 작품으로서는 작년에 공연된 <모던걸 타임즈>가 여성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접근한 점에서 흥미로웠어. <모던걸 타임즈>는 90대의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그 분들의 다큐를 연극화 한 작품이야. 덕분에 세대를 초월하여 연대한다는 것이 어떠한 건지 체감할 수 있게 됐어. 우리는 늘 가까이 있는 여성 세대들에 공감하고 연대의식을 공유하곤 하는데, 어쩌면 내 곁에 있는 나의 할머니가 여성으로서 선배이고 모던걸일 수 있구나. 그런 감각을 느끼게 만든 작품이었어. 그 후로 노년 여성의 서사에도 관심이 가.
입쎈 : 미학적 부분을 얘기하자면... 미투 이후 공연 결과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 우리의 평론도 그에 따라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 공연을 보고 페미니즘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작자의 인터뷰 보니 의도가 전혀 달랐다거나 하는 경우에 이걸 어떻게 봐야하나 하는 새로운 고민이 생겨. 전에는 결과물만 봤을텐데 이제는 그게 만들어진 배경도 보게 되고.
(성별을 교차하거나 바꾸어 배우를 캐스팅하는) 젠더프리 작품들이 늘어나는데 위험한 맥락이 있기도 하더라. 그간 소외되었던 주요 배역이나 캐릭터에 여성을 캐스팅해서 주체성을 강화하는 의미라고 생각했는데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예민한 모습이 여성에 어울리기 때문에 여성을 캐스팅했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아직도 어려워.
준애 : 트위터에서 한국 연극 거르는 기준을 본 적이 있는데, ‘여기 한 남자가 있다’로 시작하면 거르라는 거야. 그리고 공연을 통해서 시대와 현실을 분석한다고 하면 거르라고 하고. 여기 공감하거든.
세미 : 거르는 기준? 내 기획서에 뭐라고 썼는지 다시 한 번 봐야겠다.(웃음)
준애 : 다시 한 번 봐봐. 최근 페미니즘 연극이 좋은 게 시대나 역사를 짊어진다는 생각하지 않는 거야.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로부터 출발해서 연기로서 얘기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겠다는 느낌이었어.
자신들의 연극을 통해서 시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기만 해도 사실 연극은 훨씬 나아질 수 있는 거 같아. 관객으로서도 홀가분하게 오글거리지 않으면서 공연을 볼 수 있더라고. 페미니즘 연극에서 그런 걸 경험한다는 게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그동안은 남성 주인공이 자신을 시대 정신의 주체로 자임하는 연극을 양산해왔잖아.
왜 이런 연기를 보는 게 즐거운가 생각해보면 외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신체나 호흡부터 시작을 해서 자신이 접촉할 수 있는 면으로부터 연기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진실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 거기에는 외부에서 씌워놓은 의무감이나 이데올로기가 없다는 것 같아. 나는 반대로 페미니즘이 이데올로기라고 말하는 분들에게 그 말 그대로 돌려주고 싶어.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 연극의 미학은 그런 데에서 시작하는 거 같아. ■
글쓴이. 권세미
미디액트 마을미디어교육실에서 일하며 종종 연극작업을 한다. 창작이 제일 괴롭고 즐거운 취미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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