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12호 페미니즘 미디어 탐방 2018.12.14.]


    Stand, Together: 내 옆, 너의 일상과 함께

    - 한국성폭력상담소 2018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생존자의 자리’


    동희 (퀴어페미니스트) 



      올 한 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강타한 단어가 바로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나도 말한다’,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이슈들이 지속되어 왔지만, 사회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 15년째 성폭력생존자 말하기대회를 준비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고, 끊임없이 말해온 성폭력피해생존자들과 이야기의 장을 만들어온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03년부터 진행해온 행사입니다.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말하기, 참여자 간의 긴밀한 소통을 기대하며 올해 14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성폭력 피해경험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생존자들이 안전한 장소에서 자신의 경험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함으로써 서로 공감하고 지지하는 치유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 동안 사회가 강요해온 피해생존자들의 침묵을 깨고 ‘말하기’와 ‘듣기’를 통해 사회 변화를 만들어가는 연대와 변화의 장이기도 합니다.


    ▲ 2018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생존자의 자리’



      지난 2018년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생존자의 자리’에 처음으로 참여했습니다. ‘듣기 참여자’로 참여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사람들이 공통의 경험, 감정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 남성, 직장 내 성희롱 피해생존자, 미(비)혼모, 중년 여성 등의 피해경험들을 들 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듣기 참여자들은 지지와 공감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본인의 피해경험이 생각나서였는지 중간에 행사장 밖으로 나가서 쉬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일련의 모습들을 보면서 말하기 참여자와 듣기 참여자가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되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경험 속에서 나눌 수 있는 ‘우리’의 행사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러한 행사를 기획하고, 장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경험과 의미를 갖고 있을지 궁금해, 지난 11월 14일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앎 활동가, 예술인 김졍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 * *


    생존자의 변화를 목격했던 대회 준비 과정


    동희 : 먼저, 두 분 소개 부탁드려요.


    앎 :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앎 활동가구요. 작년 1월 말쯤 입사를 해서 이제 2년차가 되었어요. 작년에는 원래 생존자말하기대회를 담당하시던 분이 사고를 당하셔서 생존자말하기대회 진행을 돕게 되었는데요, 올해는 더 잘해보겠다는 각오로 행사 기획에 참여했습니다.

    정인 :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하는 예술인 파견사업을 통해서 성폭력상담소와 관계를 맺게 되었구요. 이를 인연으로 올해 말하기대회 준비를 같이한 김정인이라고 합니다. 


    동희 : 올해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를 준비하시면서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으세요?


    앎 : 그 이야기에 앞서, 원래 기획에서는 법정을 중심으로 성폭력과 관련한 법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의 인식, 주변인의 인식, 본인의 삶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고, 중간에 원래 기획했던 법이라는 주제를 좀 미뤄놓고, 지금의 ‘생존자의 자리’라는 형태로 기획이 변경되는 과정이 있었어요.


    ▲ 2018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생존자의 자리’는

    직장, 학교, 집, 공동체 등 일상의 여러 공간 어디에나

    생존자의 자리가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김졍 : 말하기 참여자 중 화를 잘 못 내던, 화내기가 어렵다는 분이 있었어요. 그 참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제가 여러 가지를 제안했지만 표현이 힘들다고 말을 했었는데. 그 분께서 어떤 방법을 찾았어요. 북을 두드리는 거였는데, 그걸 이용해서 점점 소리도 내고, 연기도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터트리는 것을 봤을 때 정말 놀라웠어요. 저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에요. 어쩌면 분노를 드러내는 것에 마음의 걸림이 있어서 잘 못하는 것이었을 텐데, 어쩌면 본인에게 엄격하게 대하면서 이겨낸 것일 텐데. 그 과정을 옆에서 보면서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희열을 느꼈던 것은 한 분이 유리감옥에 갇혀 있다가 마지막에 부수고 나오는 모습이었는데, 이런 것을 해보시죠라는 언질도 안했는데 본인이 스스로 하고 싶다고 먼저 말씀을 하셔서. 그 말하기 대회 날 처음에 박차고 나오신 거죠.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동희 : 이미 우리에게는 자리만 주어지면 말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거 같아요.



    일상에서 생존자와 함께하기 위해 필요한 것


    동희 : 다양한 말하기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듣기 참여자들의 태도도 중요할 것 같아요. 생존자의 경험을 듣는 이들의 태도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앎 : 어려움을 듣거나 문제 상황을 알게 되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죠. 그런데 그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먼저 숙고해보면 좋겠어요. 생존자가 때론 그것이 성폭력인지 인식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주변인들이 본인의 경험으로 판단하거나 추측을 하거나 여러 가지 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작동하여 말하는 경우도 있어요. 일단 멈추고, 본인이 왜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다양한 생존자의 모습을 향해 ‘그럴 수 있다’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 생존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어떨까 해요. 


    김졍 : 내가 당사자일 때 듣는 사람이 ‘불편해. 피하고 싶어’라고 느끼는 그 감각을 아주 빠르게 캐치하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구나 듣기 힘드니까 피하고 싶어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듣겠다는 자세로 들으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 태도 자체가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앎 : 듣기 힘든 이야길 수 있고, 듣는 사람들도 준비가 안 되어 있을 수 있죠. “안 들어주면 2차 피해다”라고 하는 게 아니라, 듣기 힘들지만 지지와 공감을 나누고, 힘들지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예요. 소통하는 과정에서 진정성은 다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서로를 믿는 태도도 중요한 것 같아요.


    ▲ 2018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생존자의 자리’



    피해경험의 선정적 재현 대신 다양한 삶으로


    동희 : 다양한 듣기 참여자들 중에 특히 미디어에 표현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하실 말씀 있을까요?


    앎 : 생존자가 재현이 되었을 때, 오히려 고정관념이 생기도록 포커싱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란 고민이 있어요. 예를 들어 미디어에서 우리가 봐온 생존자들을 생각하면 우울하거나 자살했거나 귀신이 되거나 그렇게 묘사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너무 끔찍하고 진인한 분위기로 성폭력을 묘사해서 누군가 겪어온 하나의 경험으로 생각하기에 어렵게 만들고 끔찍하게 만드는 것을 강화하고 있지 않은가란 생각이 들어요. 포르노적으로 묘사하는 부분도 있는 거 같고요. 등장인물에게 시련을 주기 위한 도구적으로 성폭력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성폭력 피해경험과 구체적인 내용에 집중하는 것보다 때론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늦게 피해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는지, 말하지 못했는지 등 생존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드러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계약직이어서 말을 하지 못하다가 정규직화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었던 피해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는 거구요. 본인의 작업이나 영상물이 어떤 피해자상을 강화하는지 고민하면서 책임감 있게 임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졍 :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여성들은 모두 성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성폭력 피해경험은 모두에게 다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조장하는 힘이 분명 있고 그 영향력에 미디어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불안한 경험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서 문제인 거지. 많은 부분 불안을 조장하는 거 같아요. 저열한 사회일수록 불안을 조장하는데 여성들에게는 성폭력인 거 같고 미디어가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에서 문제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익숙해져야 하는 경험들을 유별나게 만드는 거죠. 왜냐하면 너무 보통의 경험이기에. 그런 감각들을 느낄 수 있게 미디어가 도움을 줘야한다고 생각해요.


    앎 : 영상의 경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영상화하거나 끼워 팔려는 태도를 삼가하고 그 영상이나 기록들을 사건의 당사자나 주변인들이 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고민 없이 만들어진 거라면 언제든지 문제제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감안해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요. 요즘은 사건이 발생하면 빠르게 영화 등이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고민을 충분히 하지 않고 제작되는 건 아닌가라는 고민도 들고요.



    생존자의 말하기는 이미 변화를 만들고 있다


    김졍 : 연극 내 성폭력 공론화라는 경험을 계기로 관련한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요. 관련 국공립 단체에서는 성폭력 관련 교육을 필수로 하고 있어서 들었던 적이 있는데. 맨 처음에는 다들 두려운 마음으로 들었는데, 나올 때는 우리 모두가 들었어야 했던 이야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비단 성폭력의 문제뿐만 아니라 권력의 관계, 위계까지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사회가 발전되고 있다.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앎 : 지금의 미투 운동들도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동안의 반성폭력 활동의 성과들, 법제도를 바꾸고, 폭력예방교육을 의무화해 온 그 20여년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성인지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판례들도 만들어지고 있고요. 지금은 미흡하지만 ‘미투법안’처럼 만들어지는 법과 제도들에 더 여성의 목소리가 더 잘 들어갈 수 있도록 싸우고,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문제제기를 늘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하는 사회의 백래시와 싸우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 * *


      인터뷰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 모르겠습니다. 때론 성폭력 이슈에 있어 너무 답답한 나머지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하지마라’라는 등의 ‘정답’을 구하려고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앎님, 김정인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 ‘정답’은 각자 있는 곳에서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생존자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인지, 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인지 성찰하고 개선해나가는 것. 그 과정에는 정답이 없겠지요. 그 과정이 수고롭고 번거롭고, 힘들겠지만 포기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더 많은 말하기를 위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일상에서 생존자들과 함께 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글쓴이. 동희(동글)



    청소년을 만나 성교육과 성평등교육을 하는 활동가

    퀴어, 페미니스트 그리고 퀴어페미니스트인 활동가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