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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3호 페미니즘 미디어 탐방] 철학으로서의 페미니즘, 그리고 전기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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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3. 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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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3호 페미니즘 미디어 탐방 2019.03.14.]

 

철학으로서의 페미니즘, 그리고 전기가오리

- 번역자 강은교, 김혜연, 운영자 신우승 인터뷰

 

이세린 (ACT! 편집위원회)

 

 서로 연고도, 공통점도 없는 주변의 ‘글 읽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전기가오리다. 전기가오리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는 참 어렵다. 여러 개의 철학 공부 모임이 진행되고, 철학 도서를 출판하고, 후원자들에게 간단한 문제를 풀어보는 워크시트를 보내주고, 책을 설명해주는 모임을 연다. 이 형용하기 힘든 철학 서비스 플랫폼은 꾸준히 기반을 늘려 2019년 3월 현재 1,500명이 넘는 후원자를 갖추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관심을 모을 수 있었을까? 나의 경우 전기가오리가 출판한 페미니즘 철학 도서로부터 전기가오리와 철학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다. 그 책들은 전기가오리의 공부 모임에 함께해 온 여성 참여자들에게서 번역되었다. 지난 2월 14일 전기가오리의 페미니즘 철학 텍스트 번역에 꾸준히 참여해 온 강은교, 김혜연 씨와 운영자 신우승 씨를 만났다. 



 왼쪽부터 번역자 김혜연 씨, 강은교 씨, 전기가오리 운영자 신우승 씨.

 


질문에 답하는 스스로의 논리

서양 철학의 논문들


 김혜연 씨는 한 편의 논문이 담긴 서양 철학의 논문들시리즈에서 <낙태에 대한 옹호><“그치만 엄마, 배꼽티는 진짜 예쁘잖아요!”>를 번역했다. 미술 작업을 직업으로 삼고 있고, 철학은 전공하지 않았지만, 문어발 같은 관심이 있다고 스스로 소개했다.

 

혜연 : 처음부터 번역을 하려고 참여했던 건 정말 아니었어요. 그때가 2013. 칸트에 대한 쉬운 입문서를 읽는 모임에 참여했는데, 책을 언제 끝내든 천천히 같이 읽는 모임이라는 소개가 인상적이었어요. 한편으로는 저의 미술 작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참여했던 것 같아요. 한편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항상 제 삶과 작업의 바탕에 깔려 있었는데, 신우승 씨가 번역을 시작하시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글도 번역을 하실 거라고 하셔서 참여를 하게 되었어요.



그치만 엄마, 배꼽티는 진짜 예쁘잖아요!” | 2018 | 샐리 해스랭어 저

 

 <낙태에 대한 옹호>(이하 <낙태>)는 낙태 반대론자들의 생명권 옹호가 자연히 낙태 반대라는 결론으로 직결되지 않음을 논증하고 있다, <“그치만 엄마, 배꼽티는 진짜 예쁘잖아요!>(이하 <배꼽티>)는 배꼽티가 예쁘고 츄리닝은 촌스럽다고 주장하는 딸과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부모라는 퍼즐로부터 이데올로기 비판의 인식론적 성립에 대해 논한다. 이 논문들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지, 왜 번역에 참여했는지 물었다. 김혜연 씨는 감정적인 직관을 스스로 납득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혜연 : 책마다 상황이 다 달랐어요. 전기가오리가 낸 <페미니즘의 주제들>의 저자로 해스랭어를 알게 됐는데, <배꼽티>는 솔직히 논문 제목이 너무 재밌어서 읽고 싶었어요. 여성으로서 제가 고민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 궁금했던 것 같아요. <낙태>는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둔 시기가 중요했고요.

<배꼽티>를 번역하고 나서 제가 참여하는 다른 책모임에서 함께 읽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재밌어하는 분도 계셨지만, 이런 접근을 낯설어하는 분들도 솔직히 있었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철학 책이 도움이 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저는 뭔가가 제 안에서 납득이 되는 설명이 되는 게 정말 중요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저뿐만 아니라 많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게 설명이 된다’ ‘내가 설명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고, 그래서 텍스트를 읽는 게 스스로에게 힘이 됐어요.

신우승 씨도 말씀하셨지만 트위터에서 SOUP룩에 대한 논쟁(*1)이 있었을 때, 감정적으로 처음에 오는 생각이 있는데, 이거를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대뜸 그 의견은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저 스스로도 납득이 잘 안되는 부분이 있고. 그런 부분을 책을 읽으면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김혜연 씨는 7월 발행을 목표하고 있는 <퀴어 이론 이후 페미니즘의 연대>라는 논문을 번역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고용에서의 성차별이 뜨겁게 문제제기 되는 동시에 단일한 여성정체성을 질문하는 퀴어 이론을 배격하려는 흐름이 존재하는 요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주제다. 신우승 씨는 전기가오리의 출판이 페미니즘 내의 논쟁에서 의견의 복수성을 받아들이고, 공통의 지반 위에 합의의 선을 명확히 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우리의 논쟁에도 계보가 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의 항목들

 

 스탠퍼드 철학백과(https://plato.stanford.edu/)는 사전 형태로 다양한 철학 개념을 둘러싼 설명을 제공한다. 전기가오리는 이 백과의 특정한 항목을 선택하여 지속적으로 공부 모임을 진행하고, 그 텍스트를 번역하여 출간하고 있다. 그래서 책에는 역자의 이름이 길게 나열되어 있다. 강은교 씨는 <섹스와 젠더에 대한 페미니즘의 관점들>, <성 시장에 대한 페미니즘의 관점들>을 비롯한 전기가오리의 번역과 공부 모임에 참여해왔다. 이 항목들은 전통적인 철학 영역에서 다루지 않았던 젠더, 성 시장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텍스트인 한편, 출간 이후 국내의 여성학 수업에서도 자주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성 시장에 대한 페미니즘의 관점들 | 2018 | 로리 슈라지 저 


우승 : 어떤 주제의 철학이든 처음에 누군가를 통해서 그 논의에 들어가게 되잖아요. 버틀러라거나 칸트라거나.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을 너무 좋아하게 되는 경향이 생겨요. 스탠퍼드 철학백과는 사전 식이라 어떤 학자와 함께 그 사람을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이론이나 철학자를 상대화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은교 : 읽어보면 비교적 짧고 간단한 서술이라고 느낄 수 있는데, 사실은 엄청 압축적이고 행간이 많은 텍스트예요.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주장이 어떤 맥락과 계보에 있는지, 왜 이렇게 분류되는지를 갈라주는 글이라 도대체 뭘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할 때 읽어도 좋고, 원전이라고 얘기되는 중요한 텍스트를 먼저 읽고 보면 새로이 보이는 텍스트라 생각합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의 페미니즘 항목은 개념과 이를 둘러싼 논쟁을 한눈에 구조를 이해하기 쉬운 사전식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강은교 씨는 한편 이론으로서의 페미니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전기가오리의 활동이 여성운동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물었을 때, 페미니즘이 운동뿐 아니라 이론임을 강조한 것이다.

 

은교 : 페미니즘이 어떤 경험, 운동, 임파워먼트이기도 하지만 이론이고 동시에 학문이기 때문에, 전기가오리와 같은 모임이 운동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운동과 학문 중 어떤 것이 선제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페미니즘의 첨예하고 밀도 있는 학문적 논쟁, 이론적인 측면에 접근하기 쉽도록 도와주는 텍스트들이 조금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론적인 작업들은 사실 읽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들잖아요. 뭔 말인지 모르겠고. 전기가오리가 그런 것을 접근성 있게 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요즘 굉장히 많은 출판사에서 페미니즘 번역서를 내고 있지만, 대부분 실용서, 지침서, 혹은 경험에 대한 서적 위주로 출판된다고 봐요. 그런 책들도 의미가 있고 중요하지만, 페미니즘이 최신의 흐름인 것뿐만 아니라, 훨씬 더 오래전부터 무겁게 흘러온, 수많은 학자의 치열한 이론적 논쟁으로 지속되어 온 장이라는 것이 알려졌으면 해요. 한편으로 이런 작업이 운동에 굉장히 필요하기도 하고요.

 

강은교씨는 스스로를 2015년 이후의 영영 페미니스트라 생각한다고 한다. 이전부터 페미니즘을 알았을지라도 그 이후의 흐름에 함께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런 동시대 페미니스트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적 작업이 더 알려지기 바란다고 강은교 씨는 말했다.

 


출판사가 아닌 문제 해결 집단

전기가오리의 출판과 운영

 

 김혜연 씨와 강은교 씨와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편으로 이 공부 모임을 운영하고, 책을 출판하는 운영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현재 전기가오리의 운영 방향을 결정하거나, 그에 필요한 행정적인 실무를 하는 것은 운영자 신우승 씨 1인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페미니즘을 비롯해 언어철학, 의학철학, 회의주의와 같은 분야에 전기가오리가 왜 관심을 두고 있는지를 신우승 씨에게 물었다.


우승 : 말씀하신 개별 영역은 당연히 다 중요한데,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소개된 게 거의 없으니까요. 저희가 연구를 하지는 못하지만 소개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강은교 씨가 말씀하신 대로 페미니즘의 경우에는 이론 측면에서 어떠한 것들이 벌어지는지를 좀 더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의학철학 같은 경우도 산재 문제와 연결했을 때, 일한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그게 공장이 원인인지, 유전자가 원인인지를 논하는데 여기서 이기려면 원인개념을 새로 써야만 하죠. 또 회의주의도 중요한 인식론의 분파인데 한국에서는 소개가 거의 안 되어 있어요. 이런 주제들이 논문은 나오긴 해요. 그런데 DBPIA에 깔리는 거랑, 알라딘에서 살 수 있는 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논문들을 책으로 만들어내려는 거고요.

그리고 한편으로, 가끔 철학 어떻게 공부하면 되냐고, 책 추천해달라고 메일을 받는단 말이예요. 그런데 사실 한국은 철학 입문서가 되게 많거든요. 그런데도 철학에 못 진입하는 이유는 그걸 안내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런 주제들과 관련해서 한국어 텍스트는 물론이고 저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든 안내자가 항상 준비되어 있다는 걸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신우승 씨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후원자들에게 설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설명 배달 왔습니다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우승 : 전기가오리가 출판이나 공부 모임이나 교육을 진행하면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후원자들이나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더 선명하게 보이길 바래요. 이를테면 공부 모임에서는 적은 양의 텍스트를 촘촘히 읽는다거나, 스터디나 문서에서의 교수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 배우면서 항상 그런 게 불만족스러웠거든요. 학생들이 모르는데도 당연스레 진행하는 것. 그리고 번역문 같은 경우도 너무 기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도착 언어에서 읽을만한 텍스트를 만들어내고 싶고, 독자들이 다른 번역문을 읽었을 때 껄끄럽기를 바래요.

그리고 이건 되게 중요한 건데, 지역 성별 학력 소득 장애 연령 등에서 가능한 격차 없이 공부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당장 눈에 걸리는 게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고 해요.

 

계속되는 전기가오리의 활동은 SNS와 홈페이지를 통해 더 자세히 만나볼 수 있다.

 

(1) SNS에서 순종적인 여성성이 부여된 브랜드의 옷을 입는 개인들의 선택에 대한 페미니스트 간의 논쟁이 있었다.


 

전기가오리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philoelectroray

전기가오리 홈페이지 www.philo-electro-ray.org




글쓴이 이세린

공동체미디어의 힘을 믿는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인터넷 인간'이라 불리는 SNS 중독자. 다양한 사회 운동을 좋아하는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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