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14호 이슈와 현장 2019.05.25.]
봄 프로젝트 10년,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에게 준 변화들
성상민 (ACT! 편집위원)
어떤 영역의 창작이든, 아무런 기반도 없이 도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영상 영역처럼 필연적으로 창작에 많은 시간과 금전이 소모되는 분야일수록 특히나 더욱 그렇다. 여기에 다큐멘터리처럼, 상대적으로 다른 영상에 비하면 필요한 제작비는 낮지만 공개할 창구는 물론 비용을 확보할 수 있는 통로도 더욱 적은 곳일수록 상황은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 정부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지원의 손길을 보내기를 기다릴 수 밖에는 없은 것일까. 지금보다 더욱 지원 경로가 협소하고, 막막하던 시절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스스로 독립영화의 새로운 기틀을 만들자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기틀을 만드는 움직임에는 “다큐멘터리 신진작가 제작지원 프로젝트 – 인디다큐 새얼굴 찾기 ‘봄’”(이하 ‘봄’ 프로젝트)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그리고 2019년, 봄 프로젝트는 대망의 10주년을 맞게 되었다.
척박하던 시대, 하나의 홀씨가 된 ‘봄’ 프로젝트
2009년 2월, 처음으로 시작한 ‘봄’ 프로젝트의 공모글에는 이러한 문장이 붙어 있었다. “할 말 많은 시대에 할 말 많은 다큐멘터리 새 얼굴. 그들이 ‘할 말’을 ‘제대로 할 수 있게’ 인디다큐페스티발과 미디액트가 몸으로 맘으로 직접 밀어드립니다!” 이 공모글에는 다양한 요소가 함축되어 있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집권한 이후, 집권 이전부터 많은 논란에 휩싸이던 정권은 결국 집권 첫 해부터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문제로 촉발된 전국적인 촛불 시위에 강경하게 대처하며 더욱 논란을 부추기고 말았다. 동시에 영화를 비롯한 문화 영역에서는 조금씩 노골적으로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봄’ 프로젝트를 공모하기 바로 직전인 2009년 1월에는 경찰 수뇌부의 지나치게 강경하고 무리한 진압 명령으로 철거민들 다수가 경찰 한 명과 함께 숨진 ‘용산 참사’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지며 용산으로 모인 가운데,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들도 용산에 몰리고 있었다. 이전이라고 시대가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지나치게 마음을 척박하게 만드는 일이 연속해서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그 시기에 ‘봄’ 프로젝트는 ‘할 말 많은 시대’를 ‘할 말이 많은’ 다큐멘터리의 새 얼굴이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주는 하나의 시도였다.
일반적인 영화나 다큐멘터리 지원 제도가 제출한 작품 계획서 등의 서류와 면접 결과를 토대로 제작비를 지원하는 수준에서 그쳤다면, ‘봄’ 프로젝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가장 큰 차이는 이 프로젝트가 ‘신인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위한 것임을 매우 명확하게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2009년 ‘봄’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프로젝트의 지원 자격 조건은 한결같다. 극장, 영화제, TV 등 플랫폼을 통해서 작품을 공개한 이력이 2편 이하인 제작자만이 ‘봄’ 프로젝트에 지원할 수 있다. 이미 실력이 출중하거나 경력이 풍부한 이들 대신, 실제 작품 제작 경험을 통해 실력을 함께 기르를 수 있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뽑겠다는 의지가 담긴 조건인 셈이다.
여기에 지원 내역도 ‘제작비’에 한정되지 않았다. 분명 ‘봄’ 프로젝트가 지원 선정 감독들에게 지급하는 제작비는 영화진흥위원회나 각 지역별 영화제나 영상위원회, 또는 민간 기관이 지급하는 지원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이끈 인디다큐페스티발과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서로가 지닌 자원을 최대한 신진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투자하며, 신인 감독들에게 부족한 다양한 요건을 보조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나갔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프로젝트에 선정된 감독들이 작품을 기획-제작-완성에 이르기까지 1:1 멘토링 교육을 지원하는 한편, 미디액트는 제작에 필요한 장비 대여와 후반 작업을 비롯한 기술 컨설팅을 지원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은 인디다큐페스티발을 통해서 상영될 수 있는 기회까지 마련되었다. 수치로 제시되는 지원금은 많지 않아도, 일반적인 지원 프로젝트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형태의 지원을 통해 다큐멘터리에 처음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이 주체적인 제작자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소중한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봄’ 프로젝트 지원작,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봄’ 프로젝트는 총 35편의 신인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에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중 2019년에 선정되어 제작 중인 6개의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10년 동안 총 29편의 작품이 ‘봄’ 프로젝트의 지원을 통하여 제작된 셈이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이 2019년 개막에 맞춰 ‘봄’ 프로젝트 10년을 되돌아보기 위해 발간한 기념책자 <봄, 10년의 기록>에는 이 29편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무척이나 숨 가쁘고, 격동의 사건으로 가득했던 지난 10년 간 제작된 29편의 ‘봄’ 프로젝트 지원작들에는 대체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었을까?
① 젠더
지원이 막 시작된 2009년의 지원작에서부터 ‘봄’ 프로젝트는 인상적인 선택지를 보인다. 그 해 지원에 선정된 아오리 감독의 <놈에게 복수하는 법>은 성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의 움직임을 그려낸다. 이 단편을 제작한 이후 아오리 감독은 장편 다큐멘터리 <잔인한 나의, 홈>을 통하여 친족 성폭력 피해 당사자의 이야기를 진솔히 그리며 독립 다큐멘터리에 많은 파장을 만들었다. <놈에게 복수하는 법>으로 시작된 젠더의 이야기는 점차 다양한 줄기로 뻗어나간다. 2010년에 제작 지원을 받은 나비 감독의 <송여사님의 작업일지>는 가스검침원이라는, 불안정하고 고된 직종에 종사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이 모습을 계속 밀착 촬영하는 감독이자 딸의 관계 형성을 통하여 노동의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중년 여성과 청년 여성, 그리고 한 가족 내의 여성이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를 인상적으로 드러내었다.
한편 2011년 ‘봄’ 프로젝트에 선정된 고유정, 노은지 감독의 <옥탑방 열기>는 남성 동성애자 커플이자, 함께 HIV/ADIS(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에 걸려 하루하루 병으로 쇠약해지는 두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며 작품이 공개될 당시 주목을 받았다. 쉽게 고치기 힘든 병에 걸렸지만, 지속적으로 성소수자로서 인권 활동을 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옥탑방 열기> 보다 살짝 앞서 발표된 이혁상 감독의 <종로의 기적>과 궤를 같이 하지만, <옥탑방 열기>는 좀 더 현재적인 ‘일상’에 주목한 측면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같은 처지에 놓이며 함께 기쁨을 나누지만, 병은 이미 이 둘을 잠식한지 오래이다. 동시에 매우 씁쓸하지만 같은 처지에 있다고 하여, 언제까지 끝까지 함께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옥탑방 열기>는 그러한 일상의 단면들을 재구성하는 선택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퀴어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응시하였다.
이렇듯 여성이 놓여 있는 다양한 조건과 환경을 드러내는 선택은 이후 ‘봄’ 프로젝트에 지원작들에서 더욱 다양한 형태로 발산되었다. 2012년 지원작인 스이, 케이 감독의 <2의 증명>은 작품이 제작될 당시 법적으로 성별 전환이 인정받지 못해 ‘경계인’으로 살면서 생계를 위해 매일 같이 노동에 나서는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조망하며 젠더와 노동의 연결고리를 인상적으로 드러냈다. 2015년에 제작 지원을 받은 구대희 감독의 <그녀들의 점심시간>은 이를 더욱 확장시켜, 다양한 처지와 환경에 놓여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점심 식사 장면’을 편집하여 드러내는 연출로 ‘여성 노동자의 삶과 일상’을 실험적인 형태로 관객들에게 제시하게 되었다.
또한 <그녀들의 점심시간>과 같은 시기 지원을 받은 강희진 감독의 <꽃 피는 편지>, 산타 모니카 감독의 <날고 싶어>, 그리고 가장 최근에 지원을 받아 공개하게 된 소람 감독의 <통금>은 ‘봄’ 프로젝트의 젠더적 접근이 더욱 다양한 영역을 향하여, 또는 이전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지점으로 향하여 나아감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꽃 피는 편지>는 20대 새터민 여성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이라는 기법을 통하여 접근을 시도한 작품이었다. <날고 싶어>는 이주 노동자 가정의 20대 여성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찍는 모습을 통하여, 당사자 다큐멘터리가 지니는 폭발력과 함께 그간 별개로 이야기되었던 ‘이주민 문제’와 ‘젠더 문제’, 그리고 ‘청년 문제’가 함께 조응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힘을 지녔다. 그리고 <통금>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대두한 한국 사회의 새로운 페미니즘 물결과 궤를 같이하며, ‘여성 인권’과 ‘여성 보호’라는 이분법 아래 감독 자신을 비롯해 아직 독립하지 못한 여성이 쉽게 ‘통금’이라는 굴레에 묶이는 환경에서 시작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문제의 구도가 개인을 넘어 사회 전반의 모순으로 향해야 함을 독특한 연출로 발화하는 작품이 되었다.
② 청년
젠더 문제만큼이나 ‘봄’ 프로젝트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냈던 작품은 ‘청년’ 문제였다. ‘봄’ 프로젝트의 유일한 지원 조건이 ‘극장이나 영화제, TV를 통하여 공개한 작품이 2편 이하인 감독’임을 생각하면 이에 해당하는 지원자는 상당수는 청년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프로젝트에 선정된 감독들은 자신이 현재 경험하고 있는 세대의 문제를 다양한 주제와 연계하며, 또는 다채로운 연출과 함께 병행하며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었다.
2010년 프로젝트 선정작인 강유가람 감독의 <모래>는 청년의 문제를 주거의 문제와 함께 연계하여 드러낸다. 이미 경제적으로 파탄이 난지 오래지만 감독의 부모님은 은마아파트가 재개발될 것이라는 희망 아래 낡은 집을 붙들고 있고, 그 집에서 함께 머물러 사는데다가 최근 직장이었던 시민단체를 그만두고 다큐멘터리 창작자의 길을 나선 감독은 부모와 다양한 갈등에 직면한다. <모래>를 전후로 ‘재개발’에 대한 사적 에세이적 접근을 하는 작품이, 특히 청년의 입장으로서 주거의 문제를 접근하는 작품이 늘었음을 생각하면 강유가람의 <모래>는 청년 문제와 주거 문제가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드러내는 효시에 가까운 시도였다.
이후 제작을 지원받은 작품들은 크게 두 개의 갈래에서 청년 자신의 문제를 드러낸다. 하나는 <모래>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청년이 놓인 환경에서 경험하는 일상과 삶의 다양한 편린을 토대로 사유를 구축하는 작품이다. 2013년 지원작인 김보람 감독의 <독립의 조건>은 감독 자신과 남자 친구 사이의 대화를 중심적인 전개로 놓으며, 불안정한 기틀 위에서 여성-청년이 독립을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시도였다. (이러한 질문은 이후 제작한 장편 다큐멘터리 <개의 역사>로도 이어진다.) 2014년 선정작, 명소희 감독의 <24>는 자신과 어머니 사이의 불편한 관계에서 시작해, 쉽게 드러내기 어려운 감독 자신의 상처와 과거를 드러내면서 여성-청년이 놓인 복잡다단한 심리와 관계망을 조망하는 작품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4>와 같은 해 프로젝트에 선정된 남순아 감독의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이후로는 청년의 삶과 일상에 주목하면서도, 쉽게 변하지 않는 현실에 자조하거나 또는 그 현실에 자신을 맞추려는 시도들이 부각된다.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채 아버지로부터 매달 용돈을 받으며 살아가는 감독 자신의 자조를 기반으로 청년 세대를 조망하는 실험이 담겨 있다. 생계비를 벌기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대다수의 청년과 달리, 감독은 아버지의 재정 지원으로 딱히 모자랄 것 없이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고민 없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아버지의 풍족한 지원은 감독으로 하여금 언제까지 이런 삶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미래의 불안을 낳는다. 제목대로 ‘아빠가 죽으면’ 감독의 삶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노동에 나서지만, 이조차도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를 바꾼다는 이유로 투쟁에 나설 동력을 지닌 것 역시 아니다.
어떤 이들이 보기엔 ‘배부르고 나약한’ 모습이지만, 남순아 감독은 이러한 세태가 자신만이 아닌 청년 세대 다수의 것이며 동시에 이러한 모습이 형성된 것 자체가 한국 사회가 만든 하나의 현실임을 작품을 통해 정면으로 드러냈다. 이렇게 도전과 자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사소해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고민에 휩싸이는 청년의 모습들은 이후 제작된 나바루 감독의 <두 번째 행군>, 박항진 감독의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된다>에서도 감지된다. <두 번째 행군>은 감독 자신이 만든 전작 <바보들의 행군>이 영화제에서 단 한 번도 상영 기회를 잡지 못하며 좌절하던 중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공동 배급 프로젝트 ‘다큐유랑’에 참여하지만, 점차 갈수록 관객이 주는 상황에 다시 좌절하는 모습을 그렸다.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된다>는 서울의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일군의 청년들이 경상남도 남해로 내려가 무작정 시골 생활을 시작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이들 작품 모두 나름대로의 저항을 시도하지만, 뜻대로 잘 풀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실패와 자조의 앙상블이며, 때로는 너무나도 나이브하다 싶은 기분까지 들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습을 진솔한 목소리로 담아냈다는 차원에서, 이들 작품은 점차 구석으로 몰리는 2010년대 한국 청년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이렇게 청년이 일상에서 부딪치는 편린과 자조로 성찰을 추구하는 작품이 한 편에 있다면, 다른 한 편에는 청년이 보다 직접적으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투쟁과 함께하며 싸움을 모색하는 작품들이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나비 감독의 <송여사님의 작업일지>가 가스검침원이자, 너무나도 열악한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노조 결성과 투쟁을 준비하는 어머니와 감독인 딸의 관계를 통하여 청년과 운동의 만남을 넌지시 드러냈다면, 2012년 지원작인 전상진 감독의 <주님의 학교>는 감독 자신이 사학재단에 맞서 투쟁한 기록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2019년 현재까지 재단의 문제가 지속 중인 세종대학교의 실상을 고발하고, 이 안에서 재단에 맞서기 위한 투쟁을 기획했지만 온갖 부침에 시달렸던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기록한 작품은 점차 움직이기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워진 채 ‘취업 기관’으로 전락한 대학교의 모습을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동시에 끝내 투쟁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감독 자신과 청년 세대 전반의 초상을 그리려는 시도기도 했다.
이러한 청년과 학내 투쟁의 만남, 그리고 생각과 다른 실패의 연속을 진솔히 그려내는 시도는 이후 지원작인 이병기 감독의 <같이>에서도 맥락이 이어진다. 감독 자신이 다닌 숭실대학교에서 청소 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에 반기를 들고 파업에 나서지만, 안타깝게도 투쟁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못한다. 도리어 투쟁은 부침에 시달리며, 설상가상으로 감독 자신도 투쟁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망설여한다. 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이를 함께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함께 드러내는 선택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게 변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투사하는 기록이 되었다.
물론 가장 최근에 지원을 받아 공개한 박주환 감독의 <졸업>이 상지대 투쟁이 오랜 싸움 끝에 승리한 모습을 그린 것처럼, ‘봄’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모든 청년에 대한 작품이 자조와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한계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졸업> 조차도 싸움이 장기화되며 투쟁이 지지부진해지자, 그 안에서 고민에 빠진 편린을 부분적으로 그려냈던 것을 생각하면 결과적으로는 승리했어도 마냥 그 승리에 만족하며 넘어갈 수 있는 것 역시 아니다. 오히려 <졸업>까지 함께 아우르며 생각하면, ‘봄’ 프로젝트를 통해 지원한 작품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후반까지 다큐멘터리 제작에 도전했던 다양한 청년 세대들의 삶과 현실이 다층적으로 녹여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봄’ 프로젝트의 새로운 10년, 새로운 상을 고민하기
이렇게 ‘봄’ 프로젝트는 지난 10년간 신진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작품 제작을 지원하며 이들이 작품 제작에 대한 기반을 다지는 것은 물론, 작품을 통해서 한국 사회에 뻗친 다층의 맥락을 다루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감독들, 그리고 ‘봄’ 프로젝트에 다양한 형태로 참여했던 이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봄, 10년의 기록>에 수록된 감독들의 대담, 그리고 ‘봄’ 프로젝트 운영진들의 대담에서는 이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동시에 필자 역시 개인적으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며 ‘봄’ 프로젝트가 개인에게 미친 영향과 의미를 조망하고자 했다.
<봄, 10년의 기록>에 수록된 감독들의 대담과 서면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었던 것은 ‘봄’ 프로젝트가 다큐멘터리 제작 경험이 적거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지만 그럴 여력이 부족한 이들에게 힘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봄, 10년의 기록>에서 <24>의 명소희, <놈에게 복수하는 법>의 아오리 감독은 ‘봄’ 프로젝트가 있었기에 다음 작품인 <방문>과 <잔인한 나의, 홈> 역시 제작할 수 있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의 남순아 감독 역시 서면 인터뷰로 비슷한 소회를 밝혔다. “다큐멘터리 제작 경험이 없었기에 다큐멘터리 제작 방법을 알고 싶었어요. 다큐멘터리는 너무 어렵고 광활하게 느껴졌고요. 동시에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만들어질 가치가 있다는 인정도 필요했다는 마음도 들었죠.”
또한 ‘봄’ 프로젝트에 선정된 감독들은 프로젝트 특유의 ‘멘토링’ 프로그램이 지니는 특징에 대한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들려주었다. <봄, 10년의 기록>에서 <모래>의 강유가람 감독은 멘토링이 ‘제 3자의 시각에서 작품을 봐줄 수 있는 장’이라 생각하며, ‘봄’ 프로젝트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씨없는 수박 김대중>의 이주호 감독은 자신이 만난 멘토 감독이 자신을 ‘동료’처럼 대해주고 정신적인 측면을 신경써줘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꽃피는 편지>의 강희진 감독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 ‘멘토링’이 여러모로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들려주었다. “스스로 제작지원을 받으면서도 오만함이 있었어요. 그저 지원비를 받고, 기자재를 대여 받는 것에 기대감을 가졌죠. 처음엔 멘토링이 그저 사제 지간을 이유로 일방적인 의사전달 같아 많은 부담을 가졌지만, 제가 만난 멘토 감독님들은 제작이 더뎌지거나 지지부진한 상황에서도 압력이나 훈계 같은 강압이나 아니라 조용히 응원을 보내주며 지지를 보내줬어요. 같이 작품을 준비하던 ‘봄’ 프로젝트 친구들의 심리적 연대도 컸고요.”
물론 ‘봄’ 프로젝트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봄, 10년의 기록>에 수록된 감독들의 대담과 필자에게 서면 인터뷰로 답변을 보내준 감독들은 공통적으로 지원 예산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어 더 많은 신진 감독들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는 바람을 보냈다. <봄, 10년의 기록>에서 명소희 감독은 ‘봄’ 프로젝트가 장차 배급-유통을 고민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강유가람 감독은 ‘봄’ 프로젝트가 하나의 네트워킹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다. <봄, 10년의 기록>에 수록된 프로젝트 운영진들의 대담에서도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기 쉬운 멘토링 시스템의 개선과 영화의 제작과 영화제 상영을 돕는 것을 넘어, 배급-유통 등 상영 이후 과정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봄’ 프로젝트가 나아가길 원한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2009년 첫 지원이 시작된 이후 ‘봄’ 프로젝트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정면으로 관통하며 수많은 부침에 시달리면서도 끊임없이 신진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자신의 온전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창구를 마련했다. 이제 프로젝트의 새로운 10년을 모색해야 하는 지금, 독립영화를 비롯해 독립 다큐멘터리 전반이 관객의 급격한 감소로 큰 고민에 시달리고 있으며 동시에 영상 전반이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이 도입된 상황에서 급격한 변화에 놓여진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봄’ 프로젝트는 본래의 목표를 유지하며, 어떠한 변화를 꾀할 수 있을까. 새로운 10년을 위해 한 걸음을 준비하는 ‘봄’ 프로젝트가 앞으로의 신진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물론, 미래의 독립 다큐멘터리 환경을 모색하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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