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워 미디어 3차 회의(OURMedia/NUESTROSMedios III : 2003.5.17 - 20) 참관기 연재
지난 5월, 남미 콜롬비아 북단의 휴양도시 바랑키야(Barranquilla)에서는 미디어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포함된 국제네트워크인 ‘아워미디어’의 3차 총회가 개최되었다. 5월 17일부터 21까지 열린 아워미디어 회의, 그리고 곧바로 이어서 진행된 4차 커뮤니케이션 국제 회의 (IV International Communication Conference organized by the Universidad del Norte)에 참여한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의 참관기를 연재 소개한다. |
1. 아카데미와 대안 미디어의 조우
2. 민중 비디오 운동의 유산과 독립미디어센터의 확산
3. 공동체 라디오 운동의 현재와 미래
4. 첨단 기술과 역동적 사회운동의 결합 : 한국의 위상과 임무
5. 재단의 정치학, 네크워크의 미래
첫 번째 이야기 : 아카데미와 대안 미디어의 조우
김명준 (영상미디어센터 MediACT 소장)
오랜 내전에 시달려온 콜롬비아의 풍경은 처음부터 삭막했다. 공항은 무장한 군인들로 가득차 있고, 공항 출구를 나오자마자 달려드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칠이 다 벗겨져가는 허름한 가옥들의 모습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화해와 투쟁을 동시에 떠안고 가야하는, 극복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 나라, 콜롬비아에서 진보적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를 토론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현실운동과 이론을 끝없이 마주하게 하는 과정일 수 밖에 없었다.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 4일간의 회의를 시시콜콜하게 보고하는 리포트라기 보다는 이 회의를 계기로 삼아서 현단계 미디어 운동의 주요한 고민거리를 정리해보는 의도로 쓰여졌다.
1, ‘우리’의 미디어, ‘그들’의 미디어
진보적인 영상운동 조직치고는 소박한 이름인 ‘아워 미디어’ 네트워크는 2000년에 설립되었으며, “시민 미디어 활성화를 위한 학자와 활동가와 실천가와 정책전문가간의 장기적인 대화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전지구적 네트워크로서, 궁극적으로는 시민 미디어, 공동체 미디어, 대안적 미디어를 일국적 수준에서 그리고 전지구적 수준에서 강화하는 주체를 발굴하고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An emerging global network with the goal of facilitating a long-term dialogue between academics, activists, practitioners and policy experts around citizensꡑ media initiatives.... Ultimately, the goal of OURMedia is to design and develop initiatives that can strengthen citizensꡑ media, community media, and alternative media in national and international policy arenas. 이상 아워미디어 웹사이트에서 :http://www.ourmedianet.org/)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과정은 그리 복잡할 것이 없는 개방적 구조이며, 현재까지 가입된 수백명 회원들의 면면을 보면, 디디 할렉 (‘페이퍼 타이거’ 설립자이자 샌디애고 대학 교수), 존 다우닝 (텍사스 오스틴, <변혁과 언론운동>의 저자), 닉 파울드리 (영국), 크리스 에빗 (스코틀랜드), 도로시 키드 (샌프란시스코) 등 진보적 미디어 운동과 관련된 대표적인 연구자들, 미국 (시애틀,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아르헨티나, 브라질, 남아공 등 각국의 독립미디어센터 활동가들(IMC : http://www.indymedia.org), 그리고 포드, 록펠러 등 미디어 운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미국의 각종 재단 들 등 다양한 주체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프로그램의 순서는 아래와 같다. (자세한 내용은 아워미디어 사이트 참조)
<아워미디어 프로그램>
2003.5.17 카타헤나 지역 프로젝트 방문 오전 : Fundacion Nuevo Periodismo 오후 : Colectivo de Comunicacion de Montes de Maria 2003.5.18 바랑키야 지역 프로젝트 방문 오전 : Proyecto Casa de Justicia del Barrio La Pa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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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5.19 8:30-8:45am 소개 8:45-10:45am 패널 1 : 시민 미디어 프로젝트 평가에 (evaluation) 관하여 10:45-11am 패널 2 : 민주적 미디어와 정보 기술을 보증하는 각국 제도 비교 연구 2:30-4:30pm 패널 3 : IMC 4:45-6:00pm 내부 회의 : 아워미디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 ?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위한 4차 국제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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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5.20 8:30-8:45am 북부대학총장의 환영 메시지 8:45-10:45am 패널 1 : WSIS - CRIS. 11:00am-1:00pm 패널 2 : 미디어와 정보 기술의 민주화를 위한 시민의 운동 2:00-4:00pm 패널 3 : 평화를 위한 공동체 미디어 4:15-6:00pm 사회적 변화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원탁 회의 6:00-8:00pm 쌍방향 포스터 전시회 7:00pm 만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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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5.21 8:30-10:00am 기조 연설 (올란도 팔스 보르다) 10:15-11:45am 사회적 변화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영역에 대한 국제적 경험들 11:45am-1:15pm 사회적 변화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영역에 대한 지역적 경험들 4:00-5:30pm 폐막 연설 : 커뮤니케이션, 문화, 그리고 사회적 변화 : 도전과 미래 (제수스 마틴-바베도) 5:30-5:45pm 폐막 6:00pm 폐막 행사 |
2, 이론과 실천의 국제적 상호 침투 : 미디어 운동의 국제연대와 아워미디어
80년대 이후 20여년간 다양한 지구적 미디어 네트워크들이 있어왔지만, 아워미디어는 그 중에서도 독특한 위상을 점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의 의미를 짚어보기에 앞서서 기존의 국제 미디어 운동의 네트워크들의 상황을 살펴보자.
우선 영상운동의 경우를 보면, 8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다가 20세기말에 접어들며 사라져버린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상운동의 네트워크인 비디아지무스는 주로 진보적 독립영화 제작자와 퍼블릭 액세스 (혹은 공동체 TV)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유럽을 중심으로 지난 수년간 진행되어온 두 개의 흐름인 Nova TV와 개방채널 운동 연합은 전자가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급진적인 TV운동으로 후자는 주로 합법화된 퍼블릭 액세스 구조를 이끄는 주체의 연대체계로 현재도 그 소통체계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다. 아울러, 1999년 시애틀의 WTO 각료회의 반대 투쟁을 계기로 시작된 IMC는 반세계화운동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면서 그 출발선부터 국제주의를 중심에 놓고 있다. 아울러, 비록 정형화된 조직체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국제회의 및 영화제 등을 계기로 형성된 비디오 운동가들의 느슨한 인적 네트워크 또한 새로운 연대체를 모색하기 위한 기초로 존재하고 있다.
인터넷의 경우는 진보네트워크가 소속된 APC (진보통신연합 http://www.apc.org) 가 대표적이지만, APC는 9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왔고, 아무래도 인터넷이라는 매체 자체가 워낙 네트워크이다 보니 다양한 비정형의 네트워크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아울러 광대역 네트워크가 (초고속 인터넷이라는 이상한 상업적 카피를 공식적으로 쓰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확대됨에 따라서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를 고유한 운동 공간으로 삼는 소규모 영상운동 네트워크들도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라디오의 경우는 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공동체 라디오 운동 연합은 (AMARC http://www.amarc.org) 이 분야의 독보적인 네트워크로 존재하고 있으며, 각 대륙별 지부 조직 또한 상대적으로 매우 탄탄하고 안정적이다.
아워미디어는 기술적으로 아직까지는 명확히 구분되는 각 미디어 영역의 이런 네트워크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 기본적인 차이를 압축해서 표현한다면 그것은 “미디어의 경계를 뛰어넘는, 진보적 학자와 실천가들의 연대체계”이다.
불평등한 미디어 현실, 그리고 나아가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미디어 운동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크지 않지만 물론 그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로 자본주의 문화현상에 집중해온 프랑크푸르트 학파나 문화연구 계열의 학자들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정보 불평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진보적 학계가 결합한 맥브라이드 라운드테이블의 보고서가 70년대에 나온 이후, ‘대안적 미디어’에 대한 연구들은 간헐적으로 등장해왔다. 특히 90년대 중반 이후 자본의 세계화가 전지구적으로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그에 대항하는 다양한 운동 형태들을 대상으로 삼은 연구자들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왔고, 그것이 아워미디어 네트워크가 탄생되게 된 기초이다.
이렇게, 진보적 연구자와 급진적 활동가들의 결합이라는 긍정적인 화합은 이 네트워크의 고유한 힘과 고유한 자기 모순을 동시에 가져다주고 있다. 힘과 모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이 글에서 계속 다루게 될 것이고, 여기서는 그 전제가 될만한 이야기를 몇가지 짚어보자.
우선, 학계의 근본적인 제약 조건은 뚜렷하다. 어느 나라든 대학은 다양한 방법에 의해 진보적 담론을 배제하게 마련이며 특히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학과들은 자본의 세계화 과정에 이데올로기로서만 아니라 프로젝트로도 깊숙이 결합되어있다. 게다가, 이런 형태의 회의가 지니는 자생력의 문제도 심각하다. 아워미디어가 주최한 세 번째 회의인 이번 회의의 주요 재정은 뉴욕에 근거지를 둔 포드 재단에서 나온 것이다. (약 1억 2천만원 정도) 비록 포드 재단이 미디어 분야에서 진보적인 역할을 어느 정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영상 미디어 센터들의 상당수는 이 재단으로부터 지난 수십년간 지원을 받아왔다), 나름의 정치적 관점을 가지고 돈을 집행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돈이 끊긴다면 다음 회의가 언제 어디서 가능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실천가와 이론가간의 피드백이 얼마나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도 미지수이다. 회의 기간중 진행된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발표였지 특정한 현실상황과 이론의 상호 토론과 논쟁을 자극하는 프로그램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3, 세계화와 미디어 행동주의
어쨌든 미디어 운동을 대상으로 삼는 진보적 학자들과 진보적 연구 내용이 없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중요한 네트워크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다음과 같은 면에서 지금 시기가 미디어와 연관된 국제적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우선 사회운동 전반의 세계화와 그 속에서 미디어가 차지하는 위상이다. 1999년 시애틀 이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반세계화 국제 운동은 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이 없었다면 현재와 같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며 그러한 미디어와 사회운동의 결합은 특히 올해 이라크전쟁 반대운동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과 국제적 커뮤니케이션 체계의 구축을 통해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메이데이같은 기념일이 아닌) 특정한 날짜에 (베트남전과는 달리)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수천만명의 연대 시위를 전지구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기치하에 자본의 세계화에 대항하고 대안적 사회를 모색하는 운동의 전략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해온 각종 사회포럼들에서 아직 미디어는 중심 주제로 자리잡고 있지 못하며 세계 사회 운동 진영은 미디어에 대한 전략적 관점을 구체적으로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아울러, 올해는 미디어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해이기도 하다. UN의 결의에 기초해서 12월 제네바에서 개최될 정보사회를 위한 세계 정상회의는 (WSIS : 한국 시민사회의 대응은http://www.wsis.or.kr 참조)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과 정보기술에 대한 국제적 의제를 설정하고 합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부 및 기업과 함께 이른바 시민사회를 주요주체의 하나로 놓고 있다는 점에서 UN과 연관된 다른 국제회의에 비해 진일보한 이 회의는 준비과정 자체가 시민사회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 미디어 운동 진영은 아직 개별 국가나 미디어 영역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이론적 전망을 공유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또다른 주요한 계기는 WTO 회의이다. 시애틀, 도하를 뒤이어 올해 9월 멕시코의 칸쿤에서 개최될 예정인 WTO의 주요 의제중 하나는 바로 시청각 부분 (AV sector) 이다. 따라서 반세계화 운동과 함께하는 미디어 운동 진영에게 올해 WTO는 그 자체로 실천운동의 공간일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미디어 환경의 다양성과 공공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중의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이번 아워미디어 회의에서는 WSIS가 주요한 토론 주제로 잡혔을 뿐만 아니라, 공식 일정이 없는 다른 시간대를 이용해서 여러 비공식 소회의들이 열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주로 WSIS와 연관된 CRIS 캠페인 (Communication rights for information society) 회의, 그리고 WTO 대응을 위한 전략 회의였다. CRIS의 경우 진행중인 조직 재편 문제와 아울러 이후 WSIS 준비과정과 연관된 토론이 주로 진행되었는데, 특히 시민사회의 주장을 제한시키는 WSIS의 공식적 과정에 대항하는 대안적 논의와 투쟁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와 관련된 원칙의 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되었다. 반면에 WTO 준비 모임은 매우 구체적인 전술 논의에 집중했다. 잠적으로 합의된 내용은, 칸쿤에서 진행될 반대 시위 과정에서 99년의 시애틀과 유사하게 대안적 뉴스 서비스 체계를 갖추기로 했으며 그 이름은 칸쿤 대안적 미디어-테크 집결(Alternative Media-Tech Convergence in Cancun -http://chiapas.mediosindependientes.org/display.php3?article_id=105313 참조)으로 합의하였고, 각료회의 이전 기간에는 기술 워크숍 및 국제 미디어 운동의 전략 토론회를 동시에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다음 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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