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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0호 연재] [콘크리트 정글 밑 곰팡이 해부하기] 부시를 위한 모병(募兵) 영화,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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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16. 8. 1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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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정글 밑 곰팡이 해부하기]

부시를 위한 모병(募兵) 영화, <300>

최세진 (진보블로그 http://blog.jinbo.net/neoscrum

* 이 글은 영화 <300>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 <300>은 이미 알려진 역사적인 사실을 영화로 만들었지만, 그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려는 분에게는 아래의 글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300>을 드디어 봤습니다. 작년부터 예고편의 그 화려한 그래픽에 자극받고, “100만명”에 맞서는 “300명”에 고무 받아서 장장 몇 달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개봉했다는 소식에 득달같이 극장으로 달려갔지요.

역시 예상대로 영화 <300>은 그래픽 끝내주고, 전투신 화려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들이 엄청난 대군에 맞서 싸우는 허리우드식 전쟁 판타지 그 자체였습니다. 어차피 ‘전쟁 영웅들’에 대한 영화를 보러 간 것이니, 거기에 나오는 근육남들이 웃통을 벗어재끼고, 쫙 달라붙는 수영 빤스를 입고 온갖 ‘후까시’를 잡는 모습이나, 쉴 새 없는 칼부림에 스크린이 피범벅이 되는 모습을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스파르타의 사내들이 화살 날아다니고 칼과 창이 부딪히는 전장에 정말 그렇게 발가벗고 나갔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설마 없겠죠?) 대충 전쟁 영웅들이 주인공인 영화들이 그렇듯이, 시종일관 자극에서 자극으로 넘어가는 이 영화는 어쩌면 그냥 한 편의 컴퓨터 그래픽 화려한 전쟁 판타지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인 레오니다스 왕과 그 친위대들이 “압제와 야만에 맞서 자유와 정의를 사수하자!!”고 외치는 순간부터 아주 피곤해지기 시작하더군요. 다른 나라도 아니고 스파르타가 ‘압제와 야만에 맞서서 자유와 정의’를 외치다니... “내... 참... 니가 부시냐?”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우리나라와 세계가 직면했던 위험은 이제 극복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위기의 시기를 지나 평화를 되찾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며, 승리할 것입니다.

- 조지 부시, 2003년 3월 19일 이라크 침공 직후 대국민 연설 중

만약에 영화 속의 사건이 현재 펼쳐지고 있다면, 즉, 지금 페르시아라는 대제국이 그리스라는 조그마한 도시 국가 연합을 쳐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쩌면 우리는 페르시아 제국과 크세르크세스 대왕을 비난하면서 반전 집회를 열고, 스파르타와 그리스 연합군의 처절한 투쟁에 만세 부르면서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송하며 그 투쟁을 지원할 방법을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2500년 전의 전쟁을 미국의 허리우드가 재생해서 우리 앞에 던져줄 때, 영화 속의 스파르타는 더 이상 스파르타가 아니고, 페르시아는 더 이상 그 페르시아가 아닙니다. 게다가 페르시아라는 제국이 지금은 이란이라는 힘없는 작은 국가의 옛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 사실은 더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역사적 사실들과 스파르타 왕이 늘어놓는 ‘자유’의 선동,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인종주의, 동성애 문제, 장애인 문제까지 가면 여러모로 우리들을 피곤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 명백하게 파시스트의 미학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 Orlando Sentinel
* 미키 카우스(정치 칼럼리스트)의 히틀러 법칙 : 절대로 함부로 히틀러와 비교하지 마라'를 마음속에 새기고 있긴 하지만, 히틀러 소년단들이 영화 <300>의 시사회에서 서로에게 ‘하이 히틀러’라는 손인사를 나누면서 다시 보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까지 이 법칙이 막지는 않을 것이다. - New York Post
* 이 영화는 <불멸의 유대인(The Eternal Jew)>(나찌가 만든 반유대주의 선동 영화)과 함께 오늘날 인종주의적인 판타지와 국가주의적인 신화가 어떤 식으로 전쟁을 고무시키기 위해 봉사했는지 전형적인 사례로서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 Slate


혹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어본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벌였던 전쟁에 대한 기록물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것이 바로 그 <역사>라는 책입니다. 서구에서는 흔히 헤로도토스를 가리켜 ‘역사의 아버지’라고 치켜세우기도 하지만, 냉소적인 학자들의 경우에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역사 기록이 아니라 ‘판타지’라고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 <300>의 경우에는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과 그 친위대 300명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역사>보다도 훨씬 더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고, 과장해서 묘사하고, 왜곡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300>의 영화감독 잭 스나이더는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에 90%는 정확하게 일치한다”면서 어쨌든 이 영화는 “오페라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고 변명했지만, 그 찜찜함은 쉽게 해소되지 않습니다. 아니, 그 감독이 영화를 위해 역사 자료들을 검토했었다는 사실이 더욱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데, 작품 속의 왜곡이 의도적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영화의 제목인 ‘300’부터 보기로 하지요. 과거 역사 기록을 보면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전쟁을 영웅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적군의 숫자를 부풀리고, 아군의 숫자를 축소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것은 수양제의 100만 대군 중 30만을 물막이 땜 한 방으로 끝내버렸다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도 그렇고, 제갈공명이 신기에 가까운 전술로 조조의 100만 대군을 몰살시켰다는 적벽대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현재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에 펼쳐진 전쟁에 대해서는 오직 그리스의 역사기록만 남아 있으며, 페르시아 쪽에서 서술한 역사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니 그 상황은 더욱 더 심각해집니다.

그런데, 그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도 테르모필라이에서 싸운 그리스 연합군 병사의 숫자를 ‘4천2백 명 + 알파’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역사가들은 대체로 ‘7천여 명’의 그리스 연합군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즉, 영화처럼 스파르타의 친위대 300명이 모든 전투를 수행하고, 나머지는 뒤치다꺼리나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중간에 일부가 퇴각하기는 하지만, 최후까지 남아 있는 병사의 숫자도 스파르타군 외에 최소한 1000여명이 넘었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전사한 그리스 연합군의 숫자는 약 14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7천명은 테르모필라이에 있던 병사의 숫자인 것이고, 당시 해상에는 더 많은 병사들이 해상전을 치루기 위해 바다 위에 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군대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더 과장이 심한데, 우선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당시 테르모필라이에 있던 페르시아 군의 그 숫자를 아주 구체적으로는 2,641,610명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펭귄 출판사에서 나온 <The Histories>의 주석을 보면 당시 그리스 측에서는 페르시아 병사 숫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숫자는 '판타지'에 가깝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대 역사가들이 펴낸 자료들을 보면 여러 정황과 그 곳의 지리적 조건으로 보았을 때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페르시아군의 숫자가 적게는 10만 정도였을 것이라고 평가한 책도 있고, 13만, 25만 등 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50만을 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던 남한군과 유엔 연합군이 새까맣게 산천을 뒤덮으며 내려오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1.4 후퇴를 해야 했을 때, 당시 압록강을 넘어 초기에 내려온 중공군의 숫자가 약 3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1백만 대군이라는 기록이 얼마나 과장이 심한 이야기인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10만 명 혹은 최고로 많이 계산해줘도 50만 명을 절대로 넘지 않았을 것 같은 페르시아군의 숫자를 헤로도토스는 약 3백만이라고 뻥튀기하기도 했으니, 영화 <300>에서 1백만이라고 부풀린 정도는 대충 뭐 그냥 애교로 봐주기로 하지요. 그 숫자가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긴 하지만, 우리가 사료를 뒤져서 그 '숫자'를 가지고 논쟁할 것은 아니니까 대충 넘어가 줘도 될 것 같습니다.

진짜 문제는 영화의 주인공인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에 대한 묘사에 있습니다. 먼저, 영화는 대여섯 번에 걸쳐서 레오니다스 왕과 300명 친위대의 입을 통해 “압제와 야만에 맞서서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나섰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영화에서 레오니다스 왕은 ‘이제 새로운 시대가 온다. 자유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는 아주 어처구니없는 연설도 하더군요. 영화는 그 순간부터 전쟁 판타지에서 3류 코미디로 급격히 전락하기 시작합니다. 그 어처구니없는 황당무계한 선동에 '썩소'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그리스에서 민주정에 참여하는 소위 ‘시민’의 숫자는 전체 그리스인 중 14%가 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소 37%를 넘는 사람들이 노예였습니다. 즉, 당시 그리스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보다는 압제와 착취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사회였으며, 노예 착취가 살아 숨 쉬는 노예제의 본고장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스파르타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노예 제도를 가지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스파르타는 결코 그리스인의 자유나 정의를 이야기할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여타 다른 그리스 국가와 달리 스파르타는 그리스 내의 도시 국가를 침략해서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파르타는 바로 옆에 있던 메세니아를 침략해서 그 국민들을 노예로 삼고 그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흔히 알려져 있는 ‘스파르타 체제’는 메세니아의 침공 직후 그 노예를 통제하고, 부의 분배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체제였습니다.

스파르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모든 ‘시민’이 태어나면서부터 군인으로서 교육을 받는, 국가가 곧 군대인 병영제 국가였는데,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이고, 나머지 아이들을 평생 군인으로서 훈련시켰습니다. 이 ‘시민’들은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 활동에 일절 참가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노예를 착취하고, 다른 도시국가들과 전쟁을 벌이는 일만을 평생 동안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모든 시민을 군인으로 만든 것은 시민들보다 20배나 많은 노예를 통제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그리스 도시 국가가 노예를 개인의 소유로 둔 반면, 스파르타는 모든 노예를 국가 소유로 두었기 때문에 개별적인 노예 해방이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고, 길거리에 있는 노예는 주인과 무관하게 누구든지 ‘공공물’처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강력한 군대를 가졌음에도 시민의 숫자를 20배나 넘는 노예들의 봉기를 두려워해서 스파르타는 정기적으로 노예 중에서 건강하고 똑똑한 이들을 무작위로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스파르타는 ‘클립테이아’라는 일종의 특전단 혹은 비밀경찰 제도를 두었는데, 젊은 전사들로 이루어진 ‘클립테이아’는 지방 각지로 파견되어 밤에 길거리에서 잡히는 노예들을 무작위로 죽인다던가, 노예들이 일하는 들판을 지나다가 그 중에서 가장 건장하고 힘센 노예를 골라내서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노예는 자신이 노예 신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매년 일정한 수의 매를 무조건 맞아야 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스파르타는 전쟁에 공을 세운 노예도 이후 노예 봉기의 주모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따로 모아 모조리 죽여 없애는 짓을 했습니다. 스파르타에서 노예가 된다는 것은 ‘죽음’ 말고는 도망갈 길이 전혀 없는 끔찍한 천형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왕이 데리고 나갔던 300명 외에 그들을 도와주는 노예들이 끝까지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를 쏙 빼먹었습니다. 그 노예의 숫자는 300명이 넘었을 것이며, 계곡 옆에 장벽을 쌓는 작업도 그들이 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헤로도토스도 부상자 혹은 전령이 스파르타로 돌아올 때 노예가 그를 수행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과연 그 노예들을 옆에 두고 “이제 자유의 시대가 올 것이다. 압제와 야만에 맞서서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자”라고 외쳤을까요?

또한 민주정을 지지하는 아테네와 달리 스파르타는 참주정을 지지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는 당시 단일한 민족이나 국가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테르모필라이 전투 이전에 페르시아의 1차 침공 당시 아테네는 다급하게 스파르타에 SOS를 쳤지만, 스파르타는 이 요청을 무시했고, 결국 아테네가 허겁지겁 달려 나가서 페르시아군을 막아냈던 싸움이 바로 ‘마라톤 전투’였습니다. 페르시아와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장장 28년간이나 그리스의 패권을 두고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전 이들이 어떤 의미에서든 ‘자유와 정의’를 외쳤으리라고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기자 : 영화 속에서는 소수의 유럽인 자유의 전사들이 대규모 이란의 노예군대를 저지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 영화를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옮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 와이어드 뉴스(Wired News)와의 감독 인터뷰에서

기자 : 바로 이 시점에 당신 영화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 베를린 시사회에서 

영화 <300>은 페르시아인을 ‘Barbarian(야만인, 이하 바바리안)’이라고 지칭합니다. 레오니다스 왕과 스파르타군들의 말 뿐 아니라, 화면상으로도 페르시아군은 괴물들과 쇠사슬에 묶인 노예들로 그려지며,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 역시 화장으로 온몸이 번들번들하고 그 몸에 장신구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미개인처럼 묘사됩니다. 스파르타의 배신자는 등이 굽은 장애인으로 나오는데,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포함해서 제가 찾아봤던 어떤 역사서나 자료에도 그 배신자가 장애인이었다는 기록은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다가 문득 <반지의 제왕>이 떠올랐는데, 페르시아군과 배신자의 모습이 마치 오크와 골룸을 옮겨놓은 것 같더군요. 이런 묘사들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도 분명해서 따로 더 이야기를 보탤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헤로도토스도 <역사>에서 페르시아인을 지칭할 때 ‘바바리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는 전혀 다른 뜻이었습니다. 현대 영어에서 ‘바바리안’이라는 단어는 ‘야만인’을 의미하지만, 본래 고대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이 단어는 ‘미개인’이나 ‘야만인’이라는 뜻이 아니고, ‘그리스인이 아닌 사람들’ 즉, ‘외국인’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말을 ‘쏼라쏼라’처럼 표현하는 것같이, 그리스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언어를 ‘바바’처럼 들었고, 그 소리를 그대로 따서 외국인을 지칭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 단어에는 비하하는 의미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보다도 훨씬 문명이 발달했다고 생각하던 이집트인을 가리킬 때도 ‘바바리안’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에는 많은 서구 역사가들뿐만 아니라 그리스 학자들도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인용할 때 이 ‘바바리안’이라는 단어를 ‘야만인’으로 해석하지 않고, ‘외국인(Foreigner)’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헤로도토스가 그 단어를 사용할 때 ‘야만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 <300>에서는 현대 영어의 ‘야만인’이라는 의미를 그대로 들고 와서 페르시아인을 바바리안이라고 부릅니다. 이 영화를 위해 역사를 충분히 검토했다는 감독이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가 뭐라고 변명하든지 이 영화는 인종주의와 장애인 비하 혐의를 벗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온 '바바리안'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Just non-Greek, Persians in Herodotus's Histories
http://www.iranian.com/History/2003/April/Persians/index/html 참조)

최근 몇 년 사이에 고대 전쟁사를 다룬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영화들을 돌아보는 것도 꽤 흥미롭습니다. 어찌 보면 2000년에 나온 <글래디에이터>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고대사 전쟁에서 몸과 몸이 부딪히는 스펙터클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허리우드가 다시 재발견하여 이런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만 보자면 잘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이나 중국의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 같은 것을 영화로 만들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자기네 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 미국인들이 아시아에서 벌어진 그런 역사적 사실까지 알고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팔리는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요? 일단 아마도 미국이나 유럽의 일반인들의 충분히 알고 있고, 관심을 끌만한 역사적 사건이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것만이 기준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동네에서 펼쳐진 고대사 전쟁 중에서 규모나 볼거리로 볼 때 한니발의 2차 포에니 전쟁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대규모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로 진격하는 장관을 생각해보세요. 게다가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격하면서 5만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약 9만에 가까운 로마군을 완전히 초토화 시켜버렸습니다. 정말 허리우드가 탐낼만한 장관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나요? 그러나 아마도 그들은 까무잡잡한 갈색의 피부를 가진 한니발이 그들의 고대 로마를 박살내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을 영웅적으로 묘사한 영화를 끝내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직후 만든 영화는 그리스인들이 아시아의 작은 도시국가를 침공해서 박살내버렸던 바로 그 <트로이>(2004년 개봉) 전쟁이었습니다. ‘아시아’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것이라는데, 최초로 등장한 문서가 바로 헤로도토스의 <역사>라고 합니다. 헤로도토스는 이 단어를 페르시아와 터키 인근의 소아시아를 지칭할 때 사용했습니다. 그는 <역사>의 첫머리에 ‘트로이 전쟁’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리스(특히 스파르타)가 군대를 일으켜서 아시아의 트로이라는 왕국을 박살낸 사건이 아시아와 그리스(=서구)간에 영원한 원한 관계를 낳게 되었을 것이라며, 그것이 바로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 오랜 원한과 전쟁을 낳은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허리우드는 <트로이>에 이어 페르시아를 콩가루로 만들어서 역사 속의 제국으로 만들어버린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관한 일대기 <알렉산더>(2004년 개봉)를 만들었고, 이 영화에도 여지없이 ‘페르시아인’은 ‘야만인’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올해 다시 아시아에서 몰려온 야만인 페르시아에 맞서 영웅적인 투쟁을 벌이는 스파르타 <300> (2007년 개봉)을 만들었습니다. 만일 허리우드가 계속 이런 경향으로 나간다면, 이제 곧 어쩌면 페르시아의 첫 그리스 침공을 영웅적으로 격퇴시켰던 ‘마라톤 전투’나 그리스의 승리를 굳건하게 만든 ‘살라미스 해전’을 영화로 곧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300>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가 마치 이란과의 전쟁을 앞둔 미국에서 군대를 모집하기 위한 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생각은 저만 했던 것은 아닌가봅니다. 앞서 인용했듯이, 이미 미국 내부와 유럽 등지에서도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영화 <300>이 이란으로 ‘어둠의 경로’를 통해 유입되자, 이란 정부는 이 영화가 이란에 대한 모독이라며 ‘허리우드가 미 정부에 앞서 이란에 전쟁을 선언했다’는 논평을 냈습니다.

이에 영화감독 잭 스나이더와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사는 영화 <300>에는 어떤 정치적인 의도도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는 항상 그렇게 재생산됩니다. ‘아무 의도도 없이 당연한 것처럼’

* 이 글은
<The Histories>, 헤로도토스, Penguin Classics
<스파르타인, 스파르타의 역사>, 윤진, 신서원
<고대그리스 정치사 사료-아테네, 스파르타, 테바이 정치제도> 최자영 최혜영 옮김, 신서원
<페르시아 전쟁> 톰 홀랜드, 이순호 옮김, 책과 함께
<전쟁의 역사> 버나드 로 몽고메리, 승영조 옮김, 책세상
<서양 고대 전쟁사 박물관> 존 워리, 임웅 옮김, 르네상스 등의 책과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위키피디아, 그 외 기타 자료를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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