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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0호 연재] [미디어 만화경의 역사] 소문(所聞)의 소리 소문 없는 귀환(歸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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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16. 8. 1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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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만화경의 역사]

소문(所聞)의 소리 소문 없는 귀환(歸還)

윤상길 (꿈꾸는 미디어史家, cyrus92@dreamwiz.com)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현재 소문(所聞)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고 얘기한다면 혹자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쓴 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장소를 이동하며 휴대폰으로 TV방송도 볼 수 있고, 언제나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세계 곳곳의 정보를 알 수도 있는, 이른바 최첨단 디지털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는 독자들이라면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필자가 보기에 21세기의 현재는 확실히 소문이라고 하는 미디어의 전성시대이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을 상품판매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입소문 마케팅 기법’에 대한 지침서들이 서점가에 자주 소개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또 극장가에 퍼져 있는 관객들의 입소문에 의지하여 자신이 볼 영화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에도 그러하며, 매일매일 수많은 인터넷의 사이버 공간 속에서 (비록 형식은 다르지만 그 메커니즘 자체로는 소문과 동일한) 게시판 댓글들이 무수히 많게 양산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최첨단 기계문명의 한가운데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매스 미디어의 꿈틀거림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오랜 역사를 거쳐 다시금 전성시대를 맞은 인류 최고(最古)의 매스미디어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자.


1. 인류 최고(最古)의 매스미디어로서의 소문(所聞)

대부분의 인간은 주위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적응하지 않고서는 살아 나갈 수 없는 존재이다. 여기서 주위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적응한다 함은, 쉽게 얘기하자면, 자기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대처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세계는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왔고, 또 그럴 때마다 인간은 그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환경의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일생의 대다수 시간을 한 지역에만 머무르면서 얼굴이 친숙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던 근대 이전 사회에선, 사람들이 주위 환경의 변화를 알고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위 환경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사람들의 눈과 귀 노릇을 하는 最古의 매스미디어, 소문(所聞)1)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소문(所聞)은 영어단어 ‘rumour’ 또는 ‘hearsay’의 번역어로 채택되어 별 구분 없이 사용되어 왔다. 일상적인 어법으로 “너 그 얘기 들었어?”, 혹은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2)이라고 말할 때, ‘그 얘기’와 ‘들은 바’가 바로 소문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나 다소 엄격한 의미로 볼 때, 영어단어 ‘hearsay’는 보통 소문(所聞), 전문(傳聞), 풍문(風聞), 풍평(風評), 풍설(風說) 등으로 번역되는 데 반해, ‘rumour’는 유언(流言), 유언비어(流言蜚語) 등으로 번역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각각의 번역어들 간에도 다소간의 의미차가 존재하기도 한다. 가령, 소문(所聞)이나 전문(傳聞)이란 단어는 한자어의 뜻 그대로 “(그 출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전해들은 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항상 전해들은 ‘나’(1인칭)의 입장을 강조하는 용법인데 반해, 風聞, 風評, 風說, 流言은 “바람에 실려 오는 말들”, 혹은 “(사회 내에서) 흐르는 말들”을 의미하여 ‘내용’을 강조하는 용법이다. 하여간 단어의 용법과 의미가 무엇이든지 간에, 일반적으로 ‘소문’이라 일컫는 것은 오늘날의 신문(新聞)에 상당하는 매스 미디어의 면모를 상당수 띠고 있다3). 우선 소문은 오늘날의 뉴스와 마찬가지로 시의성(時宜性)이 관건이 된다. 몇 개월 지난 신문을 읽었을 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시기적으로 뒤처진 소문들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또한 소문은 공공적(公共的)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고 알고 있다더라”라고 말하는 순간, 소문은 공공적인 것이 된다. 또한 소문은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된다는 측면에서도 현대사회의 매스미디어의 면모를 많이 닮아 있다.
그렇다고 소문을 오늘날의 신문과 같은 것으로 상상한다면 오류이다. 문자등장 이전시기에 혹은 문자가 등장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소수의 독점물에 불과하였던 시기에, 소문은 읽고 쓸 수 없었던 대다수 사람들이 유일하게 의존하였던 매스미디어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소문은 (신문에 있어서 종이에 해당되는) 인간의 기억력과 (신문의 활자에 해당하는) 인간의 음성언어, 즉 구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자성(literacy)에 의존하고 있는 신문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매스미디어였는지도 모른다. 우선 소문은 인간의 기억력에 의존하는 탓에 비록 과거의 일들을 다루고는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현재의 사고과정이 개입되기 마련이며, 또한 인간의 사고 작용과 일부 손실된 기억력 때문에라도 항상 현재적이고 소문을 듣는 사람의 자의적인 첨삭과정이 수반된다. 가령, 며칠 전에 들었던 소문의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여 자신의 입장에서 윤색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측면에서, 한스 노이바우어는 《소문의 역사》란 책에서 소문을 구전문학의 한 형태로 파악하고 있기도 하다4). 또한 신문이 중심(편집과 인쇄)과 주변(독자)이라는 위계질서적으로 구성된 체계 안에 있는 데 반해, 소문은 상이한 방향으로 향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소문은 지극히 민중적인 매스미디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기본적으로 인간생활에서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구술성(즉, 목소리)에 의거한 미디어인 소문은 항상 인류의 역사와 동행하는 것이었다. 특히 과거 특정 시기엔 대다수 사람들이 소문에 의지하여 주위 환경 변화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게 됨으로써, 소문은 매스 미디어로서의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로부터 일정 정도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때로 사람들은 그 소문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대체할 만한 것이 마땅치 않은 상황은 소문에 대한 권위부여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을 통해서 우리는 산업사회 이전 시기에 일반 민중들이 소문을 접했을 때 그 소문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문을 들은 당사자 자신은 그 소문이 거짓일 가능성을 충분히 감안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문은 진실에 가깝다’라고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는 일반 민중들의 모습을 말이다. 여기서 일반 민중들에게 그 소문의 진위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소문을 듣는 사람들에겐 이미 소문이 널리 퍼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객관적으로 소문의 진위여부를 따지려 든다면, 아마도 그것은 헛된 수고이리라. 다만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소문 속엔 세상사에 대한 진실이 일부 담겨져 있고, 사람들은 그 ‘부분진실’인 소문에 대해 상당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일 뿐이다. 더 나아가 이 대목에서 오늘날 신문기사에 대해 현대인들이 보이는 태도들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면 몇몇 독자들은 매우 놀랄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무슨 무슨 일 때문에 법원에 출두하였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게 될 때, 흔히들 현대인들은 그 사람의 유죄유무에 대해선 부분적으로만 진실에 담고 있는 그 신문보도에 대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곤 하는 것은 흔히 접할 수 있는 현대의 풍경이다.


앞서의 논의에 대해서 일부분이라도 수긍한다면, 과연 소문과 신문보도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필자는 어디에선가 들었던, 태어나자마자 서로 헤어져 길러진 이란성 쌍둥이의 이야기를 잠시 떠올려 본다. 그리곤 소문과 신문보도가 그 이란성 쌍둥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 그 자체가 사회권력 생성이 되는 시대에, 한쪽은 구술성(口述性, orality)이라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에 박대당하고, 다른 한쪽은 문자성(literacy)이라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에 환대받는 그런 이란성 쌍둥이가 아닐까하고. 여기서 필자는 또 다른 질문을 던져 본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소문이라는 매스 미디어는 인류로부터 천대 받았는가?

소문이 가진 미디어적 성격과 그 사회적 위력에 대하여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던 것은 대체로 인류의 역사가 극단의 시대로 접어들던 20세기 초에 들어서이다. 20세기 전반기 인류가 경험했던 두 번의 전쟁과 파시즘, 냉전은 소문이 가진 매스 미디어적 성격을 여러모로 실험하였던 장(場)인 동시에 그것이 가진 정치사회적 위력을 실감하였던 장이기도 하였다. 특히 전쟁수행 과정에서 유럽 열강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정보전과 심리전은 실질적으로 소문을 주인공으로 한 전투였다5). 그러나 ‘소문’의 미디어적 성격에 대한 관심과 실험 그 자체는 좋았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남긴 역사적 상처는 명백히 치명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냉전종결까지 근 80년 동안 이뤄진 소문에 대한 사회적 활용은 그 역사적 유산으로서 소문에게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당하게도 온갖 부정적이고 몹쓸 이미지들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소문이 가진 집단 창작적 특성은 마치 인간의 통제에 벗어나 자기마음대로 자기증식하는 바이러스와 비슷한 속성인 것으로 폄훼되었고, 소문 속에 담긴 ‘부분적 진실’이 강조되기 보다는 오히려 소문에 담겨져 있는 거짓의 측면이 부각되기 일쑤였다6). 그리하여 마침내 소문은 관변학자들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서, ‘유언비어’라는 정치색 짖은 꼬리표를 부여받기에 이른다. 소문은 항상 비이성적인 집단광기와 관련된 것으로 인식되거나, 항상 사회불안이나 민중폭동을 야기하는 것으로 서술되었다. 심지어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사람을 범죄자로 규정하게끔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소문에 대한 가치폄하가 이뤄지는 원인을 20세기의 역사적 유산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듯하다.


3. 인쇄술과 소문 통제

문자가 발명되고 인쇄술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동서양 간에 다소간의 차이는 존재였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사회의 커뮤니케이션 체계7)는 대체적으로 인간의 목소리에 의존하여 의사소통을 하는 구술적 커뮤니케이션 양식과 문자에 의존하는 문자적 커뮤니케이션 양식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물론 문자적 커뮤니케이션 양식이 대체로 정치지배층에 속한 것이 됨으로써, 한 사회 내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 두 커뮤니케이션 양식은 일정 정도의 상호 겹침만을 허용했을 뿐, 서로 양분된 채로 상호 독립적으로 존재해왔다. 이런 커뮤니케이션 체계에 급격한 변동을 예기한 것은 바로 인쇄술의 발명이었다. 이미 서양사회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으로 인해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을 이뤄낼 수 있었고, 이로써 봉건 체제의 붕괴와 시민혁명에 주춧돌을 마련하게 되었다8). 자국어로 인쇄된 성경의 보급은 그동안 성직자에 의해 독점되어 왔던 종교적 지식의 대중적 확산을 가져왔다. 또한 인쇄술의 발명이 신문발행의 중요한 초석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체계에 인쇄술이 가져다 준 가장 큰 영향은 문자적 커뮤니케이션 양식의 대중적 확산이었다. 
문자적 커뮤니케이션 양식의 대중적 확산은 구술성에 의존하는 매스 미디어인 소문에 대한 일반 민중들의 태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인쇄술의 발명 이전엔, 사실상 회자되는 말들에는 그 주인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가 얘기하는가 보다는 어떤 내용이 얘기되고 있는가가 대다수 민중들의 관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명으로 인하여 상황은 달라졌다. 우선, 말해진 내용들이 책, 소책자, 전단지, 신문들의 형태로 인쇄되기 시작하면서 말한 주체에 대해서도 식별이 가능하도록 그 출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누가 말하였는가’에 대한 식별이 사회적 권위와 권력, 심지어는 재력9)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말해지는 말들에 대해 일일이 ‘누가 말한 것’이라는 식별표가 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처가 불분명하고 그 진위여부 또한 불분명한’ 소문은 당시 지배층에겐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더군다나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한 사회 내에서 떠도는 말들 중에서 상당수는 그 출처확인을 통해 사회에 유통되게 됨에 따라, 그러한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은 말들은 쓸데없는 것이거나 누군가 지어낸 ‘허구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간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은 그들이 보기엔 위험하기까지 하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일단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첫째 소문에 대한 지배층의 적대적 태도10)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 인쇄술의 발명 이후부터라는 점, 둘째 일반 민중들의 교육수준과 문해력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상황에서, 말해진 것 중에서 무엇을 문자로 옮겨 인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대부분 지배층의 권한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쇄술의 발명은 소문통제11)의 필요성에 대한 지배세력의 인식으로 이어졌다고 할 것이다.


4. 미지(未知)에 대한 공포

그렇다면 지배세력은 왜 소문을 통제하려 하는가? 사회 내 급격한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평시에야, 앞서 얘기한 바대로 사회에 대한 정보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신문과 같은 정보중개기관의 제도화를 통해 구축된 소문통제체제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배세력이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자연재해나 역병창궐, 민중폭동과 같이 심각한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생겨난 소문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인쇄술의 발명 이후의 근대사회에선 사회변화의 속도가 보다 가속화되고 그 복잡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좀 더 전문적인 매스 미디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많은 세상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줌으로써 인간의 감각기관을 상당부분 연장시켜 주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매스미디어가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발생한다. 이때 사회대중은 나중에는 그것이 황당무계하다는 것을 쉽사리 판단할 수 있는 말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여 버리며 어떠한 암시에도 간단히 걸려들어 버린다. 이는 마치 눈을 가리고 거리를 걷는 사람에게 ‘물구덩이’가 있다고 얘기해 주었을 때 (몇 주간 좋은 날씨가 지속되어 있었음에 불구하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멈추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12). 사회대중의 이러한 반응은 그들이 미디어의 기능정지로 인해 주위 환경 변화에 대한 무지와 부적응을 예상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그 기능정지의 기간이 누적되면 누적될수록 사회대중의 반응은 불안과 공포로 전환되어 화학반응을 일으킴으로써 때론 대규모의 대중폭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정보관리체제 중의 하나인 매스 미디어가 주위 환경 변화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민중들에게 전달해주지 못하여, 이를테면, 민중들이 정보의 빈곤상태 혹은 ‘정보에 대한 굶주림 상태’에 놓여 있을 때, 혹은 “주위 환경에 대해서 충분한 정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13), 소문은 민중들이 (거의 맹신에 가까울 정도로) 의지할 수 있었던 대안적인 미디어로 재등장하게 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더구나 통상적으로 기존 매스미디어의 기능정지가 주로 자연적 재앙, 즉 천재지변으로 인한 두절(杜絶)과 사회적인 강제, 즉 당국의 명령이나 사회 혼란에 의한 금지로 인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보면,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민중들의 희망과 열망, 불만들이 사회적으로 분출되는 통로로서 소문이 가진 파괴력은 지배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시한폭탄과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배세력이 가진 민중들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공포 수준이다. 더구나 그들의 심정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 공포는 미지(未知)에 대한 공포이다. 특히 특정사회 내에 식민모순이나 계급모순과 같은 모순들이 존재할 경우엔 그 모순들이 자연적 재앙이나 사회적 혼란 속에서 폭발할 수 있기 때문에, 지배세력은 거의 강박증적으로 한편으로는 소문을 적극적으로 통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문에 대한 보고체계를 정비하고자 하였다. 

5. 소문의 정치학

사정이 이즈음에 이르면, 소문을 둘러싼 사회현상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정치투쟁으로 전화(轉化)한다. 소문은 관변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의심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앞서도 지적해왔지만, 그동안 그것을 바라다보는 시선 자체가 가치편향적이었기 때문에, 가치폄하 되어 왔던 것뿐이다. 오히려 소문 그 자체는 불완전한 정보의 공백을 메우려고 하는 데서 비롯된 지극히 자연스런 가치중립적 현상으로서, 그 발생과 유포과정 중에서 ‘정보의 빈 공백’을 어떠한 의미의 연결고리로 엮을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의미투쟁’의 장(場)에 가깝다. 특히 사회체제가 억압적이면 억압적일 수록, 또 한 사회 내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왜곡되면 왜곡될수록, 그 의미투쟁의 장으로서 소문이 가지는 사회적 위상은 매우 높았다. 왜냐하면 문자적인 공식적 정보채널이 차단된 상태에서, 구술성에 기반한 소문은 피지배층의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이해관계를 개입시키기에 아주 적절한 매스미디어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배세력은 소문에 대한 통제를 시도하였는데, 그 통제의 메커니즘도 마찬가지로 소문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어서 소문통제의 일환으로서 지배세력은 소문의 상징 정치에 적극 가담하곤 하였다. 
과거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하에 있었던 한국사회 또한 이러한 소문통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정치권력에 의해 매스 미디어의 기능이 사실상 왜곡되었던 때로서, 시기적으로 보면 식민지 시기로부터 군사통치의 시기에 해당된다. 먼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식민지로 병합한 바로 직후, 기존의 모든 매스 미디어를 장악한 식민지배자는 기층의 조선민중 사이에서 돌고 있는 다량의 소문에 직면하였다. 대부분의 소문들이 거짓 정보에 불과한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식민지적 상황에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왜곡이 야기한 유언비어의 경우에는 반드시 거짓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으며, 이는 또한 기층 피식민지인들의 식민지배 상황에 대한 집합적 해석의 노력으로서 이들의 저항적 의지의 발로이자 억압된 커뮤니케이션 욕구의 분출로 이해된다. 이럴 경우 소문은 피식민자의 식민지배자에 대한 저항적 태도 혹은 피식민의 경험들을 징후적으로 읽을 수 있는 재료들을 제공해 줌으로써, 일종의 ‘저항적 공론장’의 면모를 띠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소문에 지배세력에 대한 도전과 불만이 담겨져 있음을 인식한 1910년대의 식민지배자는 자신의 식민정책을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선전하기 보다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 반박함으로써 점진적으로 편견을 줄이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즉, 항간의 풍문이 조선인민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책임 또한 조선인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전시체제 하에서 공공연하게 유언비어 통제를 시도하였다. 이는 주로 적국에 대한 방첩 활동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미지(未知)의 저항세력에 대한 정치적 평정의 의도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이러한 의도를 읽을 수 있는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1937년 당시 일제는 소문통제의 방법으로서 소문의 유포경로를 파악하여 차단하는 조치들이 취하였는데, 그 조치 중의 하나가 기생과 여급(女給)들에게 함구령을 내리는 것이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 판단의 근거는 “접객업자들이 시국에 관한 유언비어를 많이 유포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직업상 다수 각 방면의 인사와 만나는 기회가 많은 만큼 그 존재가 매우 가장 위험하고 유언비어의 진원지가 된 혐의가 적지 않다”14)는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일제의 소문통제가 아주 구체적인 수준까지 염두에 두고 이뤄졌다는 점이다. 또한, 확증할 순 없지만, 당시로선 드물게 요리집과 카페에는 대부분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일제의 소문통제가 ‘목소리의 확장’이라고 할 전화기에 대한 통제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조선총독부는 1937년 7월 1일부터 전화요금제도를 기존의 연액제(年額制)로부터 도수제(度數制)로 변경시켰었다15). 기존에는 전화가입자가 1년에 일정금액만 내면 언제나 마음대로 통화할 수 있었지만, 도수제의 시행으로 3분 1통화 당 비용을 지불하는 형식으로 제도를 변경시킨 것이었는데, 이로 인해 전화사용은 제한받을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정황 상 전화도수제 실시와 소문통제는 상당히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16)


지금까지 필자는 다소 거칠지만 인류사회에 있어서 소문이라는 최고(最古)의 매스미디어가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소문에 대한 기존의 입장이 마치 장난으로 만든 시한폭탄을 처치 곤란해 하는 어린아이의 심정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 의한 피조물인 프랑켄슈타인이 인류의 통제로부터 혹시 벗어나면 어찌할까 전전긍긍해 하는 ‘기술공포증’의 인간을 보여주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근대 이후 재발견되고 재발명된 소문 속에서 악마성의 모습만 보아왔는지 모른다. 그러는 사이, 극단의 시대17)는 지나가고 어느새 새로운 소문의 전성시대는 도래하였다. 소문의 기반이라 할 구술성이 가진 민중친화력, 그리고 이에 대한 지배세력의 두려움이 여전히 상존해 있는 가운데, 소문은 다른 미디어와의 결합을 통해 자기변신하고 있고, 특히 인터넷의 전지구적 발전은 소문의 소리 소문 없는 귀환을 반기고 있다. 소문과 그 메커니즘이 유사한 인터넷은 이제 소문을 증폭하는 미디어가 되었다. “인터넷이 소문을 가져왔다면, 텔레비전은 이를 함께 만들었고, 인쇄매체는 이를 뒤따른 형국이다”18). 이제는 우리는 민주적 가능성과 파시즘적 가능성 사이에 놓여 있는, 소문의 진정한 가치를 진지하게 사고할 때이다.□


* 다음 연재 글에서는 ‘미디어로서의 도시’를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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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소문을 미디어가 아니라 미디어가 다루는 정보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소문이란 회자되는 세상사(世上事)의 내용에 해당된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소문을 정보로 파악하는 것도 일견타당하다. 그렇지만 소문이 외부환경과 인간을 매개하여 준다는 점에 주목하여 본다면, 이를 미디어로 파악하는 것이 더 합당할 듯싶다. 
2) 또는 소문이란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너 그 소문 들었어?”라고 흔히들 얘기한다.
3) 만일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되어 현재까지 지속되어왔던 미디어와 언론을 모델로 삼아 그 기원을 추적하는 역사서술방식에 대해 필자가 문제제기를 한다면, 일부독자들 뿐만 아니라 기성의 언론학자들에게 외람된 얘기로 들릴는지 모르겠으나, 사실상 이러한 식으로 소급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역사적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 글의 주제인 소문과 관련시켜 얘기하자면, 기성의 언론사(journalism history)에서는 현재의 관점, 즉 “출처가 확실하고 거의 진실에 가까워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뉴스”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문자발생 이전의 신문현상으로서 ‘크라이어’(crier, 뉴스를 외치고 다니는 사람)나 ‘메신저’(심부름꾼), ‘음유시인’을 다루고 있는 데 반해, ‘출처가 확실치 않는 항간의 말들’을 의미하는 소문은 언론이나 미디어로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근대적인 인쇄신문이 등장한 후에도 출처가 불확실한 소문을 문자의 형태로 변형시켜 신문에 게재했던 사례는 무수히 많으며, 실제로 일제시기 당시 ‘사회부 기자의 취재’의 경우엔 ‘거리로 탐문(探聞)하러 간다’라고 표현하곤 하였다. 
4) 한스 J. 노이바우어 (1998), 《소문의 역사》, 박동자, 황승환 역(2001), 서울 : 세종서적 
5) 1914년 이후의 ‘극단의 시대’에 주요 국가들이 인쇄물(삐라) 살포, 그리고 적국에 대한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소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6) 소문을 ‘허위정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7) 다소 어려운 개념인 듯하지만, 인간사회 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전체구조를 역사적으로 파악하는데 있어 유용한 개념이 '커뮤니케이션 체계'(communication system)이다. 커뮤니케이션 체계는 하나의 지배적인 커뮤니케이션 양식과 여러 개의 종속적인 커뮤니케이션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 양식’(communication mode)은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그 수단이 기여하게 되는 사회관계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8) E.L. 아이젠슈타인 (1983), 《인쇄출판문화의 원류》, 전영표 역(1991), 서울: 법경출판사
9) 정보가 상품이 될 수 있는 교두보가 된 것은 바로 저작권법의 등장이었다. 저작권법의 등장배경에는 바로 인쇄술의 발명이 있었다. 
10) 인쇄술 발명 이전시기, 정치지배층의 소문에 대한 태도는 매우 극단적인 형태였다. 완벽히 무시하거나 아니면 완벽히 따르거나. 
11) 따라서 ‘소문통제’에 주목하였던 한스 노이바우어 또한 자신의 연구《소문의 역사》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사례의 대부분을 18세기이후의 것으로 채워놓고 있다. 
12) 淸水幾太郞 (1946), 《流言蜚語》, 이효성 역 (1977), 《유언비어의 사회학》, 서울 : 청람, pp.25 
13) 원우현 편 (1982), 《유언비어론》, 서울: 청람, pp.8
14) 동아일보, 1937.8.14
15) 日本電信電話公社 編 (1953), 《自動電話交換二十五年史》(下卷), pp.427 
16) 서구사회의 경험은 전화가 소문통제의 주요한 수단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한스 노이바우어에 의하면, 전화를 이용한 소문을 통제하는 소위 ‘소문통제센터’는 전후 20년이 지난 뒤에 대규모로 이뤄졌다. 미국에서 소문통제센터가 세워진 계기는 인종폭동 때문이었는데, 인종폭동 당시에 소문이 현대적인 텔레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유포되었기 때문에 이를 따라잡을 필요성이 있었다. 따라서 각 지방행정기관과 경찰서의 대부분은 사회적 소요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주로 시민들의 보고를 위한 수단으로 전화를 활용하였던 것이다(노이바우어, ibid, pp.247-252). 이러한 서구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오히려 일제시기 조선총독부가 식민초기부터 한반도 전국토에 걸쳐 건설하였던 경비전화망은 세계역사상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소문통제 시스템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제는 식민저항세력을 경비할 목적으로 한 각 헌병대와 경찰서, 그리고 우편국을 잇는 통신마을 구축하였다. 이 관련성 또한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17) Hobsbawm, E. J. (1996), Age of extremes: the short twentieth century, 1914-1991, 이용우 역(1997), 《극단의 시대》, 서울 : 까치
18) 한스 노이바우어, ibid, pp.256-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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