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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1호 퍼블릭액세스] 보물상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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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21호 / 2005년 5월 25일 

보물상자 이야기
 
박 승 우 ( 마산 MBC 시청자미디어센터 교육실장 )
 
#1  2005. 3. 25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친구처럼 지내는 마산MBC 김용근PD였다. (마산MBC 얍! 활력천국-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 ‘시청자영상발전소’ 담당PD)

“봄 개편 때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을 편성하려고 하는데... 통짜로 말야. 가능하지? 준비    좀 해줘”
뒤통수를 맞았다. (이런 표현을 쓰는 이유는 대부분의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이 방송국 밖에서 요구하고, 방송사가 수용하는 소극적 방식인데 반해 오히려 방송국 제작부서에서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2  2005. 3. 31  방송설명회 및 시청자영상제작단 모임


  마산MBC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 설명회와 시청자영상제작단 발족 모임을 열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활동가, 지역 영상활동가, 기존의 시청자영상제작단(미디어센터에서 퍼블릭액세스 과정을 마친 회원들과 지역 영상활동가들의 모임) 등 50여명이 모였다. 이틀 전에 급하게 연락을 해서 많이 오지는 못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마산·창원지역에서 퍼블릭액세스에 대한 인식과 기반이 넓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 자리에선 지역에서 ‘퍼블릭액세스’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쟁점이었고, 크게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다.
 
첫째, ‘심의’는 어떻게 하느냐 였다.
이 자리엔 방송설명을 위해 마산MBC 김용근PD가 참석 했는데, 그가 시원하게 잘라 말했다. “사전·사후 심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심각한 문제제기와는 다르게 결론은 쉽게 났다. ‘심의’는 없다. (덧붙임 : 며칠 뒤에 이 심의에 관해서는 시민사회단체 대표 2인, 마산MBC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1인, 시청자영상제작단 2인, 변호사 1인으로 구성된 ‘시청자제작 프로그램 운영협의회’를 만들어서 운영하기로 했다.)
 
둘째, 질과 양의 문제가 제기됐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을 촬영하는 것조차 힘겨워 하는데 어떻게 방송물을 만들어서 공급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시청자영상제작단을 확대 개편해서 잘 활용하자는 결론을 냈다. (시민단체가 기획하고 시청자영상제작단이 촬영·편집을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강화해서 시청자가 지원을 요청하면, 기술력을 지원한다. 꼭 방송물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서도 협력·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혼자 기획에서 편집까지 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기로 했다.


이 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제기 됐지만 쉽게 해결방안을 찾았고, ‘퍼블릭액세스’를 기회로 지역시민사회단체와 시청자가 잘 결합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 이라는 기대와 함께 모임을 마쳤다.
 
#3  2005. 4. 13  이름을 지었다.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 ‘보물상자’다.

TV가 바보상자가 아닌, ‘보물상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후로 현역PD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우리가 만드는 건 다 바보상자냐?” 
 
#4  2005. 4. 14  시청자 PD단 발족


 ‘보물상자’는 100% 시청자 방송이다. 기존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이 여건상 방송사 프로그램에 꼭지로 나가는 게 전부였지만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대부분 방송국이 틀을 짜고 진행을 하고, 시청자 작품으로 내용을 채우는 것이 한계였다.) ‘보물상자’는 통째로 시청자가 다 만드는 방송이다. 그래서 시청자PD가 연출하고 시청자MC가 진행하고, 시청자 스태프들이 촬영과 편집을 하는 방식이다.


이런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하기위해 시청자영상제작단에서 13명의 시청자들로 1기 시청자PD단이 발족했다. 이 시청자PD단에서 돌아가며 한달씩 시청자PD를 맡기로 했고, 첫 번째 시청자 PD가 탄생했다. 함안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1남 1녀의 엄마, 송미미씨다. (송미미씨는 미디어센터 교육프로그램인 ‘시민영상제작과정 7기’를 마쳤고, 격투기를 배우는 자기 아들의 이야기를 영상물로 제작해서 방송한 경험이 있다.)
이후로, 시청자PD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일정한 과정을 거쳐 시청자PD로 활동 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5  2005. 4. 15  제작비 문제를 의논했다.

  작품 지원금은 ‘방송위원회’에서 나오는 채택료가 있고, 시청자PD · 시청자MC · 시청자 작가 · 기술 스태프 · 진행비 등을 마산MBC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방식은 처음이다 보니 얼마가 적정선인지 고민이다. 많이 받아야 할텐데.

사실 제작비 문제는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에서 꼭 풀고 가야할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 방송사가 잘못 이해하면, ‘퍼블릭액세스’는 방송을 쉽고 싸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정도로 인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몇몇 방송사들은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을 단지 외주VJ의 역할을 시청자로 바꿔서 (그 비용은 방송위원회에서 채택료가 나오니까) 한 프로 쉽게 갈 수 있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퍼블릭액세스’는 그냥 시청자들이 만든 작품을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가 방송을 만들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 까지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6  2005. 4. 16  보물상자 예고편 방송

‘이제 여러분이 전파의 주인입니다’

‘시청자가 연출하고 시청자가 진행하는 100% 시청자 방송 보물상자!’
‘시청자PD와 시청자MC를 찾습니다’
 
#7  2005. 4. 18  시청자PD 현장교육

  5월의 시청자PD 송미미씨가 현장실습에 나섰다. PD의 역할은 뭔지, 방송제작 현장은 어떤지 경험해 보기 위해서다. 마산MBC 얍! 활력천국 제작현장을 사나흘 뛰어다녔다.

14일에 있었던 시청자 PD단 모임에서 대부분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심각한 문제였다. 몇 분은 탈퇴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날, 시청자 PD의 권한과 임무에 대해서 토론했고 내린 결론은, 그 주의 작품을 선정하고, 대본을 짜고(가능하다면), 직접 기획한 작품을 제작하고, 현장을 지휘하고, 보물상자의 도덕적 책임을 지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막중한 일들을 직장 다니며, 애들 키우며 충실히 해낼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이 많다.)   
어쨌든 송미미씨는 며칠을 열심히 뛰어다녔고, 처음보다는 얼굴이 좀 나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묻는다. “실장님, 어떻게 해야 되죠?”
 
#8  2005. 4. 19  시청자MC 탄생

  첫 지원자와 미디어센터에서 만남을 가졌다. 경남종합사회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서효정씨 였다. 선뜻 결정 내리기가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이뻤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도 잘하고.

시청자MC를 찾기 전에 내부적으로 의논한게 있었다. ‘시청자 MC는 평범할 것’. 나중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날 격론이 벌어졌다. 시청자PD가 계속 나를 다그쳤다.
“아니, 도대체 어떤게 평범한 건데요?”
된통 당했다. (속으로만 생각했다. 최소한 사회적 약자라야 하고, 평범한 이웃이라야 하고... 하지만 이것도 편견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말하기 어려웠다.)
결국 지원자를 더 만나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9 2005. 4. 21  첫 제작회의

   시청자PD 송미미, 메인 촬영을 맡은 최태윤씨 (시청자영상제작단, 시민영상제작과정 1기), 작가 황남순(미디어센터 정책지원담당) · 나, 종합편집 엄태영 (미디어센터 교육담당), 그리고 시청자MC 서효정씨 (사회복지사)가 모였다. 회의내내 어색해 했다. (아이고, 앞으로 매번 스태프들이 바뀔텐데 매번 이러면 어떡하나 고민이 된다. 어쨌든 뒤에 방송을 맡을 팀들은 자주 만나고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야겠다.)
 
#10  2005. 4. 26  거창 시청자영상제작단 발족


미디어센터 식구들과 거창에 갔다. 마산에서 차로 두 시간 반이 넘는 거리다. 이곳은 지난 1년 동안 무단히 왔다갔다 했다. ‘찾아가는 미디어교실’을 거창에서 1년 동안 진행했고, 그 결과 거창지역 시민단체와 미디어센터 회원들이 거창시청자영상제작단을 발족시켰다. 지금 거창 시청자영상제작단은 거창지역에 미디어센터를 만들기 위해 뛰고있다.
오는 7월에 ‘보물상자’를 한달동안 거창에서 진행하기로 의논했다.
 
#11  2005. 4. 27  첫 촬영


첫 대본이 나왔고, 6mm 캠코더 1대 (소니 PD-170), 무선 마이크, 반사판을 들고 방송국 밑에 있는 동네에서 메인 촬영을 시작했다. 서로 새로운 형식을 부단히 의논했지만, 그냥 평범하게 찍는 것조차 어려워보였다. 아침 9시에 시작한 촬영이 저녁 먹을 무렵에 끝났다. 돌아오며 다들 한마디 한다. “아이고, 평소에 TV 좀 많이 볼걸.”   


 
#12  첫 방송이 끝난 며칠 뒤 (미디어센터)


시청자영상제작단이 모였다.
 회원 1 : “왜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요?”
          “너무 비효율적이잖아요.” “방송국에 좋은 장비 다 내버려두고....”
회원 2 : “기술적인 독립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다른 곳에서도 ‘보물상자’처럼 방송을 만들 텐데, 일일이 방송국에 가서 할 수는 없잖아요.”
회원 3 : “너무 비효율적인 건 맞아요.”
회원 2 : “비효율적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너무 효율을 따지면 안돼요.”
          “효율적으로 따진다면 뭣하러 퍼블릭액세스 합니까? 그냥 방송국에서 시청자 데리고 만들지...”
  다른 모임 (시청자PD단 아이템 선정회의)
 회원 1 : “왜 꼭 이런것만 고르죠?”
          “재미있고 평범한 얘기, 뭐 그런 것도 많은데...”
회원 2 : “일요일 낮인데 좀 밝게 가야하지 않을까요?”
          “너무 어색하지 않을까요?”
회원 3 : “퍼블릭액세스에서 너무 재미 찾으면 안돼요.”
          “남들 안하는 얘기 해야죠. 아니, 남들 못하는 얘길 해야죠.”
회원 4 : “그 ‘통일 중공업 해고 노동자’ 얘기는 불만이 많던데요. 그냥 짧게 뮤직비디오 처리를 해서.”
회원 5 : “쉽게 하려고 했죠. 너무 완벽하고 어려우면, 작품 내기 어려워서 어떡해요.”
회원 3 : “난 좋던데. TV에서 노동가요 한곡 제대로 듣는게 어딥니까.”
          “너무 완벽하게 가지 마세요.”
          “1분짜리 제보가 나오기도 하고 3분짜리 뮤직비디오도 나오고,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도 나오고 해야지.”
          “VJ특공대처럼 내레이션 넣고 어쩌고 하면 우리같은 초보들은 뭘 하라구요.”
 
마치면서 


100% 시청자제작 프로그램 ‘보물상자’가 지난 5월 1일 첫 전파를 탔다. 100%라는 자극적인 말을 쓰는 건 정말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각오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방송을 준비하던 때나 첫 방송을 끝낸 지금까지 계속 듣는 이야기는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이유가 기술적으로 방송사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굳이 MC 나 PD, 작가, 스태프들을 매번 바꾸고 이 얘기 저 얘기 수용하느라 시스템이 자꾸 변하고 그래서 뭔가 잘 안갖춰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퍼블릭액세스는 그렇게 효율적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효율적으로 가기위해, 잃어버릴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방송을 만들기 위해 지역 사회가 서로 소통하고 다듬고 합의하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퍼블릭액세스’가 단순히 시청자가 방송을 만들어내는것만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나누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물상자’는 방송을 방송답게 만드는 역할을 해낼 것이라 믿는다.   
 
덧붙임 1.


마산MBC 시청자미디어센터는 방송문화진흥회가 장비를 제공하고 마산MBCRK 운영하는 공공미디어센터다. 지난 2000년부터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라디오액세스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이 성과로 2003년 11월에 세워졌다. 이후로 지금까지 매주 1편씩 라디오액세스 프로그램 (매주 목요일, 마산MBC 라디오광장), TV 액세스 프로그램 (매주 금요일, 마산MBC 얍! 활력천국 - 시청자영상발전소)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보물상자’생긴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보물상자>
마산MBC 매주 일요일 오후 1시 ~ 1시 30분

제작 - 마산MBC 시청자미디어센터
www.masan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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