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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2호 미디어교육]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 미디어 수용 환경의 변화에 따른 미디어교육 실천의 변화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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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22호 / 2005년 6월 30일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 
미디어 수용 환경의 변화에 따른 미디어교육 실천의 변화 방향
 
박 수 경 ( 의정부 송현고등학교 교사 )
 
I.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 미디어교육의 중심 이동
 
“텔레비전은 어린이들의 정신력을 약화시켜 그들이 건강한 인류로 자라나는 데 필요한 자연스럽고 정서적인 발전을 파괴한다. 또 어린이들 스스로 주체적인 목소리를 발전시키기 못하게 방해하며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부정한다. 또 아이들 자신의 이미지들을 지워버리고 의지를 약화시킨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자아와 조용한 대화를 하지 못하게 한다.”
- Barry Sanders의 “철자법도 모르는 한심한 아이들(A is for Ox)” 가운데
"이 새로운 기계는 청소년들을 훨씬 더 세련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문화와 리터러시에 대한 그들의 관념조차 바꾸어 버린다. 이 때문에 인터넷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청소년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그들에게 새로운 의미의 정치적 자아를 불어넣어 줌으로써 이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정부와 검열에서 독립된 세계를 둘러싼 가장 삼엄한 요새와 포탄을 뚫고 빛나고 있는 것처럼 어린이들은 이제야 처음으로 사회적 관습의 숨막힐 듯한 경계를 넘어서 자신들에게 이로운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어른들의 완고한 편견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 John Katz의 “가상 현실(Virtuous Reality)” 가운데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아이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의 문제는 미디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위의 이야기 가운데 Barry Sanders에게 있어 텔레비전과 컴퓨터라는 미디어는 아이들의 정신력을 약화시키고 상상력을 파괴시키는 해로운 기제일 뿐이다. 이에 반해 John Katz에게 있어 디지털 미디어는 어린이들을 어른들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고 이로부터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주는 긍정적인 기제로 작용하게 된다.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 우리의 아이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미디어와 만나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려고 할 때 위의 두 가지 이야기는 명백히 대조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친 보호주의든 지나친 낙관주의든 이러한 두 입장은 모두 그 출발이 기술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즉 기술이 우리의 사회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우리의 정신적 기능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지식과 문화에 대한 기본 개념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결정적으로 이런 맥락 속에서 배움의 의미와 아이들의 정체성의 의미를 변화시킨다고 생각하는 기술 결정론적 입장에 근거하는 것이다.1)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미디어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이야기할 때 이와 같은 기술 결정론적 입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기술이 변화하고 미디어가 변화함에 따라 미디어에 대해 가르치는 미디어교육의 방향과 내용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디어교육이 미디어의 영역과 교육의 영역이 함께 만나서 이루어지는 장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기술 결정론적 입장은 근본적으로 미디어교육의 본질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미디어교육은 달라지는 미디어 기술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단순한 지식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미디어를 접하면서 갖게 되는 여러 가지 경험과 미디어와 맺게 되는 다양한 관계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미디어에 대해 이해하고 미디어를 통해 표현하고 소통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나라의 미디어교육이 특정 매체나 학문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어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냈던 것을 생각한다면2)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의 미디어교육은 끊임없는 발전하는 미디어나 테크놀로지에 대한 분석이나 연구로부터 출발하기 보다는 이러한 미디어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의 삶과 문화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그 중심을 이동해야 할 때이다.
 
II. 문화를 생산하는 즐거운 미디어교육
 
“자살을 조장하는 자살 사이트, 원조 교제의 온상인 채팅방, 자퇴를 부추기는 자퇴 사이트, 그리고 학원 폭력을 조장하는 조폭 사이트에 이르기까지 최근 인터넷은 온통 위험천만한 지뢰밭으로 묘사되고 있다. 언론은 인터넷에서 지뢰를 밟은 청소년들의 사건 · 사고를 부지런이 실어 나르고 부모들은 마치 우물가에 내놓은 아이들처럼 인터넷에 접속한 자녀들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인터넷은 위험한 공간인가?”
- 사이버문화연구소의 “인터넷의 아이들” 가운데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의 미디어는 글자 그대로 무언가를 전달하는 매개체나 통로로서의 좁은 의미를 넘어서서 새로운 공간과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아이들은 오프라인의 세계만이 아닌 온라인 세계에서도 생활하고 있으며 사이버 공간은 가상이 아닌 실제의 장으로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이 외계어를 걱정하고 자살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고 유해 사이트 접근을 막을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고민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이러한 사이버 공간 안에서 여러 가지 문화적 실험을 경험하고 있다. 핸드폰 카메라로 ‘얼짱’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여러 이미지를 합성하여 ‘딸녀’를 유행시키며 미니 홈피와 블로그를 통해 자신만의 미디어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의 복제와 합성이 자유로운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사이버 공간은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문화적 실험의 장이 되어 가고 있다. ‘즐거움과 놀이’ 이 두 가지가 디지털 시대를 사는 아이들의 미디어 경험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이다. 3)
오프라인의 학교가 엄숙함과 진지함의 공간이라면 온라인의 사이버 공간은 이러한 엄숙함과 진지함을 벗어날 수 있는 즐거움과 놀이를 위한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 안에서는 ‘정답 찾기’로 대변되는 이성에 근거한 합리성 보다는 모순과 패러디를 통한 ‘비틀어 보기’가 힘을 얻게 된다. 아이들은 즐거움을 찾으려는 욕망을 거부당하고 억제당했던 오프라인의 기억을 넘어서서 사이버 공간 속에서 그러한 욕망을 드러내고 표현하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즐거움의 표현 역시 현대의 소비 문화에 의해 조장되고 만들어지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뉴미디어는 기존의 미디어와 테크놀로지가 줄 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적 실험의 가능성을 아이들에게 열어주고 있다.
여기에서 미디어교육은 디지털에 기반한 새로운 문화적 실험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아이들이 이러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에 미디어로 맺게 되는 즐거움과 재미가 개인적으로 파편화되고 소모적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문화적 의미를 창조할 수 있도록 미디어교육이 문화적 체험과 공유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III. 참여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미디어교육
 
“박정희식 새마을 운동이 노동자와 도시 빈민들의 소외를 빚어냈다면 정보화의 찬란한 금자탑 이면에도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인간 소외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그것은 첫째 정보 격차로부터 발생하는 소외이다. 둘째 사이버 공간에서 날로 가속화되는 인간 관계의 분절화 · 파편화로 인한 소외이다. 셋째 현실과 다르지 않은 위계적 인간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소외이다. 넷째 다수의 힘의 논리로부터 배제된 소수자들이 겪어야 하는 소외이다.”
- 주간 iWeekly 131호, ‘정보화 새마을 운동의 종착역과 네트의 인간 소외’ 중에서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고 사이버 공간이 확대되면서 사람들은 그 속에서 맺게 되는 다양한 인간 관계와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가상의 공동체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 우리 사회가 혈연과 지연, 학연을 중심으로 하는 닫힌 공동체 사회였음을 생각해 보면 사이버 공간에서 열린 공동체의 성장과 확대는 사람들에게 현대 사회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는 듯 했다.4)

그러나 사이버 공동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통합적 인간 관계보다는 오히려 비슷한 세대,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끼리 그들만의 배타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그 안에 들어가 그들만의 자유를 만끽하는 장이 되고 있다. 10대 청소년의 93.3%가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50대 이상은 8.3%만이 이에 접속하고 있다.5) 발달된 디지털 기술로 말미암아 집집마다 인터넷 선을 연결하여 누구나 컴퓨터만 켜면 사이버 공간에 접속할 수 있지만 한 집안 내에서도 인터넷을 주도하는 10대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50대 사이에 정보 격차(Digital Divide)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이러한 정보 격차는 단순히 인터넷에 접속하고 접속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하여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 인터넷, 초고속 네트워크 등과 같은 기술의 광범위한 접근은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보에 소외되어 있는 계층들이 스스로 정보를 구성하고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6)

기존 사회의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빈부 격차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디지털 뉴미디어 사회의 정보를 중심으로 하는 빈부 격차가 새롭게 중첩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결국 사이버 공간 역시 힘과 강제의 논리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현실 사회에서 자본에 의해 소외되었던 소수자들이 디지털 뉴미디어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서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디어교육은 이러한 정보 격차를 줄이고 소외 계층과의 소통을 모색하는 참여의 기회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마련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 스스로가 디지털 기술에 접근하여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구성하는 능력을 키우며 누구든지 소외되지 않고 미디어를 체험하며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디지털 뉴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 속에서 공통의 관심사를 이끌어 내며 소외된 사람들과의 소통을 시도함으로써 기존 사회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참여적이고 대안적인 힘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IV. 디지털 뉴미디어의 맥락(Context)에 주목하는 미디어교육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국가, 경제, 시민 사회라는 세 가지 영역은 디지털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 내는 공간은 일종의 전자적인 영토이며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들 역시 통치의 대상인 국민으로 설정된다. 그래서 국가는 법과 권력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디지털 기술을 규제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한편 자본의 입장에서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 내는 공간은 새롭게 형성된 거대한 시장이며 그 안의 사람들 역시 소비자 집단이다. 그러므로 자본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에 전력을 기울인다. 반면 시민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 내는 공간은 현실 세계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공간으로 간주되며 이 속의 사람들은 자유와 자율을 영위하고자 하는 전자적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 사이버문화연구소의 “사이버 현상과 새로운 문화 형성의 과제” 가운데
TV CF에서 볼 수 있는 디지털 뉴미디어의 사회는 언제 어디서나 개인이 원하는 정보를 자유롭게 얻을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사람과 연결이 가능하며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표면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를 조망할 경우 그 사회는 장밋빛으로 가득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일에 명과 암이 있듯이 디지털 뉴미디어가 변화시킬 사회의 모습 또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중요한 것은 디지털 뉴미디어 기술 자체만이 아니라 그러한 기술이 디자인되고 생산되어 시장에서 분배되는 미디어 맥락에 대한 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개인의 모든 일상적 삶이 끊임없이 관찰되고 감시당하는 ‘판옵티콘’의 사회가 현실화되는지7),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네트워크을 통해 흘러가는 정보는 어디까지 접근하고 공유할 수 있는지, 디지털 뉴미디어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등 디지털 기술과 뉴미디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둘러싼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맥락들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디지털 뉴미디어가 특정 소수의 다국적 기업들 사이에서 거래되고 합병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보급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이 속에서 발달된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그 테크놀로지를 소유하고 그에 대한 접근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권력을 부여하는 비민주적 방식으로 움직이게 된다면 이 역시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에서 또 다른 불평등을 낳게 될 것이다.8)

여기에서 미디어교육은 아이들에게 이러한 디지털과 뉴미디어를 둘러싼 정치적, 경제적 맥락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디지털과 뉴미디어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가 표면적인 기술의 변화 과정과 그것이 가져올 긍정적인 변화의 모습에만 치우쳐 있을 때 미디어교육은 그 이면에 내재해 있는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의사 소통 구조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디지털 뉴미디어가 “개방과 공유”가 아닌 “보다 더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상업적 이윤 추구와 “변화와 자율”이 아닌 “보다 직접적이고 강력한” 국가의 통제를 그 기본으로 하고자 할 때 미디어교육은 아이들에게 보다 민주적이고 지유로운 미디어 환경과 이를 위한 참여적이고 문화적인 사회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생각했을 때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의 미디어교육은 미디어 중심의 기술 변동에서 출발하는 입장이 아닌 아이들의 미디어 문화와 삶에서 출발하는 입장으로 그 중심을 이동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즐겁게 문화를 생산하고 참여적 공동체를 구성하며 미디어 맥락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디어교육의 과정을 통해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의 올바른 사회 변화의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기성 미디어에 착 달라붙어 무력하게 만든 뒤 대안적이고 저항적인 세계관을 퍼뜨리기도 한다.”는 Douglas Rushkoff의 미디어 바이러스의 가능성처럼9)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의 미디어교육은 참여와 소통의 경험을 통해 문화적 힘과 즐거움을 키울 수 있는 ‘즐거운 저항’10) 의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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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uckingham, David(2004), “전자매체 시대의 아이들”. 우리교육
2) 박혜미 외(2004). “공교육에서의 영상미디어교육 체계화를 위한 교육 과정 연구”.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여기에서는 우리 나라의 영상미디어교육을 둘러싼 지형과 담론들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채 여전히 언론과 영화, 시민 사회 단체와 학교 현장, 학회 등 대학의 분과 학문적 구조를 답습하면서 제도화만을 추진하려고 하는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3) Buckingham, David(2004). “미디어교육 : 학습, 리터러시, 그리고 현대 문화”. jNBook
4) 홍성욱 외(2001). “2001 싸이버 스페이스 오디쎄이”. 창작과 비평사
5) 한국인터넷정보센터(2002). “국내 인터넷 이용자의 연령별 분포 현황”
6) 사이버문화연구소(2001). “Cyber Is : 네트에서 문화 읽기”. 역사넷
7)판옵티콘은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을 합성한 것이다. 번역하면 ‘모두 다 본다’는 뜻이다. 원래는 죄수를 교화할 목적으로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벤담(Jeremy Bentham)이 1791년 처음으로 설계하였다. 그러나 벤담이 설계한 뒤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5년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Michel Foucault)가 그의 저서《감시와 처벌(Discipline and Punish)》에서 판옵티콘의 감시 체계 원리가 사회 전반으로 파고들어 규범 사회의 기본 원리인 판옵티시즘(Panopticism)으로 바뀌었음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8) Trend, David(2001). "문화 민주주의 : 정치, 미디어, 뉴테크놀로지“, 한울
9) Rushkoff, Douglas(2002). "미디어 바이러스“. 황금가지
10) Darley, Andrew(2000). "디지털 시대의 영상 문화“. 현실문화연구
문화이론가 John Fiske는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면서 주도적인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고 스스로 의미를 생성하려고 하는 수용자들의 ‘즐거운 저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이 글은 <10회 연속 화요 공개세미나> - '뉴미디어 난개발! 그 현실과 대안' 中 제3회 '뉴미디어에 대한 교육 정책'에서 발표된 발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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