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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4호 특집] 공공성 구축 통해 민주적인 사회 소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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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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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24호 / 2005년 9월 1일 

 

 
공공성 구축 통해 민주적인 사회 소통을
 
원 용 진 ( 서강대 신방과 )
 
신자유주의 뉴 미디어 시대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뉴 미디어의 시대는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부인키는 어려울 듯 하다. 방송통신융합이 탈규제, 시장, 대자본, 컨텐츠 상품, 윈도우 효과, 멀티미디어 기업 등의 개념과 한 몸처럼 논의됨을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과거 방송에 관한 한 작은 목소리를 내던 정보통신부가 스스로를 경제부처라 부르며 융합과정에서 활개를 치고 있음으로 미루어보더라도 가히 틀린 시대 규정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뉴 미디어 시대가 오면 수용자 편의가 더 도모될 것이라고 말은 신뢰를 주기 힘들어 졌다.
지금의 뉴 미디어 시대가 아니더라도 신기술이 수용자 편의를 도모할 거라는 약속은 늘 있어왔다. 이른바 장밋빛 미래 속으로 수용자 편의를 밀어 넣는 일은 반복되어 왔다. 뉴 미디어 시대를 맞아 생산자 중심의 논의를 만개시키고 있음에도 수용자라는 개념으로 신자유주의적 행태를 포장하고 있다. 디지털기술, 멀티미디어기술, 쌍방향기술 등등의 개념을 들어 수용 환경의 발전과 복지를 말하고 있다. 수용자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 거라며 입 선전을 하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해 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뉴 미디어 시대는 신자유주의, 경쟁하는 생산자 등과 가족적 유사성을 갖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사안을 시장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실천하도록 유도해내고 있다. 그 안에서 수용자의 편에 서는 공공성의 개념은 그야말로 공염불이다. 신자유주의자들에게 공공성은 오직 시장으로부터 비롯될 뿐이다. 시장의 바깥이 없는 상태에서 시장과 관련되지 않은 공공성을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시장 바깥에 공공성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을 저해하는 것이므로 사라져야 하거나 타파의 대상이 될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사회적 소통에 대한 고민
 
신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뉴 미디어 시대의 도래는 공공성의 위기를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더 구체적으로는 사회 내 소통의 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즉 공공성의 위기로 인해 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소통의 질과 양이 자본에 의해 잠식된다는 말이다. 한번 잠식된 사회적 소통은 공공성 회복을 위해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자연히 공공성의 위기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소통의 위기는 공공성의 위기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점에서 사회적 소통의 양과 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일은 뉴 미디어 시대의 공공성 발휘와 관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소통은 개인의 소통, 개인 간 소통, 작은 집단 내 소통, 집단간 소통, 매체를 통한 소통 등을 포괄하는 총체적 개념이다. 오랫동안 매체에 소통을 내 맡겨 온 근대사회는 점차 매체 외 소통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매체, 국회 등과 같은 대의제도가 제대로 시민들의 의사를 대의를 해낼 수 없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대의제도를 거치지 않은 채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려는 욕망이 충만해가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대의적 형식이 아닌 형태의 제도를 만들어내는 일도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소통에 대한 논의는 매우 소중한 의제가 되었고, 사회적 소통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의 배양에 대해서도 고민들이 많이 늘고 있다.
사람들 앞에서 직접 표현하려는 일, 혹은 대의제 형식인 매체의 대의능력을 높이기 위한 매체에 대한 개입, 직접 매체를 소유하여 표현하려는 일 등등과 같은 사회적 소통을 위한 노력들은 공공성 개념을 더욱 확장시켜 주고 있다. 단순히 매체에 대해서 권리를 요구하던 과거에 비하면 더욱 적극적으로 공공성 요청, 소통에 대한 요청을 해내고 있다 하겠다. 비교적 소극적이던 과거의 공공성 요청으로부터 적극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현재의 공공성 요청까지를 정리해보면 대체로 3개의 시기구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누구든 매체(특히 전파매체)로부터 차별받지 않을 권리인 보편적 서비스권에 대한 요청 시기, 누구든 매체에 접근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퍼블릭 액세스권을 요청하던 시기, 그리고 기존 매체가 아닌 형태로 (대안적 / 지역 공동체) 매체를 만들어 직접 소통하고, 서로 나눌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권 (문화권이라고도 불린다) 요청의 시기 등으로 나뉜다. 앞의 두 권리는 기존 대의적인 매체에 대한 권리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의 커뮤니케이션권 혹은 문화권은 전혀 새로운 매체를 설립하고, 직접 소통하기를 요청하며 자신들의 소통능력을 제고할 수 있는 더욱 적극적인 권리라 하겠다.
 
세 권리
 
매체에 대한 권리 중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대중매체에 대한 부편 부당한 서비스 요청인 보편적 서비스(universal service)권이다. 보편적 서비스 권리란 균등하게 매체로부터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말한다. 이 개념은 원래 미국의 1934년 통신법이 “보편적 서비스의 원활한 제공”을 목적으로 제정됨으로써 공식화되기 시작했다. 이 개념은 이후 각 나라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고 있으나 대체로 방송과 통신으로부터 누구나 차별 없이 보편적으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근거하는 개념으로 해석되고 있다. 좀 더 적극적인 해석을 하자면 그 같은 서비스 받을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매체 복지적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함까지 포괄한다고 하겠다. 보편적 서비스권은 주로 방송과 통신의 인프라 구축을 통한 차별 없는 매체 접근권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를 보다 더 확대 해석하자면 방송과 통신 내용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을 권리 또한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보편적 서비스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형태의 수용자 권리가 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권이다. 이는 수용자들이 매체의 시간이나 공간을 빌어 자신들을 알리는 좀 더 적극적인 권리라 하겠다. 퍼블릭 액세스 권리는 매체 환경이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사기업화되고 있음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공적 영역의 위축까지는 막아내지 못한다는 위기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시장이 잠식해 재봉건화되고 있는 공적 영역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일이 필요한데 수용자들이 대중매체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음으로써 그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보편적 서비스를 받을 권리는 송신자로부터 복지적 혜택을 제공받을 권리 주장이라면, 퍼블릭 액세스권은 매체에 다가가 직접 매체를 활용해 권리를 챙기는 좀 더 적극적인 권리주장인 셈이다.
퍼블릭 액세스권이 보편적 서비스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수용자 복지 형태라면 커뮤니케이션권은 퍼블릭 액세스권에서 진화한 수용자 권리라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권은 흔히 제3 세대 권리라 불린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제 1세대 권리라면, 교육권, 주거권 등은 제 2의 권리에 해당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며 문화를 향유하는 권리가 제 3세대 권리에 속한다. 커뮤니케이션권은 공동체 유지와 문화향유를 위한 보다 더 적극적인 권리로 볼 수 있다. 이 권리에 따른 수용자/매체 운동은 기존 매체를 벗어나 수용자 스스로 매체를 보유하고 제작을 거쳐 서로 나누는 것에까지 목표를 두게 된다. 커뮤니케이션권은 공동체가 기존 매체에 대안적인 매체를 통하거나 직접 소통을 통해 자신들의 관심사를 나누고 그 나눔을 통해 공동체를 다시 공고히 해나가는 명실상부한 공적 영역을 만들 권리를 말한다. 기존 매체 중심의 매체 환경을 균형 잡힌 매체 환경으로 혹은 다원화된 소통 환경으로 바꾸는 권리 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비판의 여지는 있겠지만 세 차원의 수용자 복지권을 진화론적 선상에 배치해볼 수 있겠다. 즉 수용자의 매체 혹은 소통에 대한 참여폭을 기준으로 그 같은 배치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 차원의 권리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상호 교접되는 부분도 있으며 한 개념이 다른 개념을 포함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동시에 발생할 개연성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퍼블릭 액세스권의 보장과 함께 커뮤니케이션권이 보장되면 기존 매체에의 참여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전혀 새로운 대안적 매체를 이용해 수용자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전파하는 일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세 차원의 권리는 따로 혹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데 그 수준과 정도는 사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사회는 수용자 권리를 퍼블릭 액세스권과 연관짓는 수준에서 마감할 수도 있고, 다른 사회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커뮤니케이션권의 보장까지 요청할 수도 있다. 과연 한 사회의 수용자 권리의 수준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권리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들
 
대중 매체에 대한 수용자의 참여 정도, 가능한 운동의 수준을 논의할 때는 적어도 몇 개의 논의 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대중 매체 그리고 사회적 소통의 성격에 가변성을 주는 헤게모니 과정에 대한 논의 축이다. 대중 매체나 사회적 소통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논의할 것이 아니라 정치계와 경제계 그리고 시민사회계의 힘의 균형에 맞추어 수용자의 몫과 개입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얘기다. 시민 사회계의 역량과 현재 그것이 정치계와 경제계와 맺고 있는 관계 정도에 따라 참여를 요구하는 수위 조절이 이루질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수용자의 가용 자원에 대한 논의 축이다. 이는 대체로 대중매체의 기술적 발달과 관련되는 축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 매체의 내용을 제작하는 기술이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고, 수용자의 근접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면 수용자의 매체 (직접) 참여는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대로 내용 제작과 수용자의 참여가 용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 참여 욕구, 직접 소통도 늘어나게 될 것이고, 매체의 제한 의지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축, 세 번째 축은 참여를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가용 자원에 대한 논의 축이다. 참여 욕구와 참여 기술의 가능성이 사회적으로 뒷받침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축인 셈이다.
세 가지 논의 축으로 수용자의 매체 참여를 가늠해보면 대체로 퍼블릭 액세스권 행사를 위한 기반은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겠고 더 나아가 커뮤니케이션권 행사를 통한 집단적 문화 창출의 가능성도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퍼블릭 액세스권과 커뮤니케이션권의 행사를 어떻게 적절히 결합시키는 것과 전 단계의 권리라고 인식되어 왔던 보편적 서비스권까지 포괄하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안을 내놓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 서구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커뮤니티 매체 운동, 사회 소통을 위한 운동들은 그런 점에서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지만 우리 실정에 비추어 그 운영이 지나치게 서구적인 환경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아직 자발성을 유도할 만한 사회적 동인이 많지 않으며, 수용자 참여에 드는 비용을 참여자가 스스로 지불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구와는 다른 형태의 제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체 환경에 맞춘 새로운 참여 방식의 개발 그리고 그 개발을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의 구체적 활용 등에 관한 구체적인 제도의 마련이라 하겠다.

 
사회적 소통의 공공성을 위하여
 
수용자의 매체 참여를 선의로 해석하는 이유는 현재의 대중 매체들이 경제계나 정치계에 영속되는 정도가 가속화되어 공적 영역이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용자들의 자발적이고 공개적인 토론이 벌어지는 공적 영역이 축소되고 있음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문화를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각의 발휘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분출시킬 수 있는 출구를 봉쇄하는 폐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수용자의 매체 참여 수준을 진화적 순서에 따라 단계를 나누어 놓고 어느 한 방향으로 수렴해갈 것을 주장하는 이유도 공적 영역의 극대화를 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고픈 욕망 때문이다. 이제 수용자 참여를 통한 공적 영역의 확보, 확대, 극대화를 위한 구체적인 제안만 남은 셈이다.
누군가에 의해 자신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것(representation)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자신들의 의사를 펼쳐내는 것(expression)은 직접 민주주의, 표현 방식, 주장 내용을 모두 익히는 잠재적 교육기관의 역할도 해낸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거대한 흐름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공적인 토론장을 경험하게 된다. 비록 퍼블릭 액세스권을 향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인프라가 어느 정도 제공되고 있으나 이에 멈출 수만은 없다. 보다 더 적극적인 액세스권인 커뮤니케이션권, 문화권의 확보와 그를 기반으로 한 미디어 센터의 설립을 통해 새로운 공론장의 확충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이 땅의 사람들에게 중요도 순위로 따져서도 결코 뒤로 밀려져서는 안 되는 과제 중의 과제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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