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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8호 이슈와 현장] <나는 꼼수다>에서 배우고 조금 달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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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13. 3. 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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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8호 이슈와 현장 2012.4.17]

<나는 꼼수다>에서 배우고 조금 달라지기
- 우리들의 새로운 대안 미디어를 위하여

나비(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사무국)

<나는 꼼수다>, 너 아직도 그걸 모르니?

  언제였을까. <나는 꼼수다>가 아이튠즈(iTunes)의 상위 순위에 랭크되고 너도 나도 “재밌어! 한 번 들어봐!”라는 말을 주고받던 때. 그런 때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벌써 1년이다. 나 역시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할 때나 긴 출장길에 <나는 꼼수다>를 빠지지 않고 들었고, 때로 이해가 가지 않는 회차는 반복해서 듣기도 하고, 목요일이면 대체 왜 ‘꼼수’가 올라오지 않는가? 새벽까지 몇 번이고 확인하며 작년의 한 때를 보냈다.

  그렇게 우리가 <나는 꼼수다>에 중독되어 있는 동안 <나는 꼼수다>를 둘러싸고 수많은 일들이 있었으며 ‘나꼼수’라는 이상한 현상을 두고 여러 가지 분석도 많았다. 그리고 최근 ‘나는 꼼수다’의 멤버 중 하나였던 김용민은 급기야 다른 멤버인 정봉주의 지역구에 출마함으로써 그들이 이야기 하는 ‘닥치고 정치’를 넘어서는 ‘진짜 정치’의 영역으로까지 들어섰다. 처음에는 네 명의 아저씨들의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시작했던 <나는 꼼수다>는 이제 진지한 진담이 되어버렸다. 이들이 불러온 ‘나꼼수’ 열풍. 이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와 별개로 <나는 꼼수다> 자체와 미디어운동과의 관계를 두고 무언가 이야기 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꼼수다>의 영향력, 미디어 운동을 하고 있는 우리도 <나는 꼼수다>의 영향력에 매료된다. 소위 말하는 진보 미디어들은 이러한 영향력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꼼수다> 현상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팟캐스트라(Podcast)는 새로운 소통방식이 등장하고 난 이후에도 우리의 의제가 <나는 꼼수다>가 전달하는 만큼의 대중성을 가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우리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들의 대중성을 따라갈 수 있을까? 그들은 물론 대중적이다. 그리고 대안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들의 ‘대안’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그들의 대안의 속성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 그 대안성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꼼수다>가 발휘하는 영향력에 매료되어 있던 마음을 잠시 진정시키고 그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영향력 그 자체가 그 미디어의 진보적 속성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나는 꼼수다>는 왜 매력적인가?  

  <나는 꼼수다>가 이렇게 폭발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반MB’라는 정서로 통칭되는 한국사회의 정치상황과 더불어 스마트폰의 등장이라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일 것이다. 굳이 묻지 않아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피식거리며 ‘나꼼수’를 듣고 있겠구나 싶은 사람들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오죽하면 <나는 꼼수다>를 듣고 있을 때에는 새끼손가락으로 서로 사인을 하자는 농담까지 나왔겠는가. “아, 저 사람도 ‘나꼼수’를 듣고 있구나!”라고 알 수 있게 말이다. 그 땐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지? 라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그래.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지?  


▲ 「나는 꼼수다 - 에피소드 1」 표지 (2012, 시사인북)

1) 단순한 목적과 대중성

  <나는 꼼수다>가 향하고 있는 지점은 간명했다. ‘가카 헌정 방송’이라는 단순한 목적,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헌정’이라는 것은 당연히 역설이다. ‘헌정’이라는 것은 사실 가카의 꼼수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다양한 방식의 경로로 알고 있던 가카의 꼼수는 ‘가카 헌정 방송’이라는 하나의 기획과 목적을 중심으로 일목요연하게 재편되었다. 비비케이(BBK), 인천공항 매각, 남북회담을 위한 뒷거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고 있었지만 결국은 ‘이명박’이라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한 일련의 운동으로 재편되었다. 이 방송의 목적은 일관되게 하나의 주제를 향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반엠비(반MB) 그리고 반한나라당이다. 이러한 단순성에 대중들은 쉽게 설득되고 그것 때문에 방송의 설득력은 견고해지게 된다. 그것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대중성을 얻는 정치적 지향이며 대중이 가장 편하고 접근하기 쉽다고 생각하는 정치 참여의 방법이다. <나는 꼼수다>가 원하는 지점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그들은 대중에게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이명박을 심판하기 위해 함께 투표를 하면 된다. 이것이 <나는 꼼수다>가 가진 단순한 목적성이다.

  대중들에게 <나는 꼼수다>에서 가장 중요한 매력 중 하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오리지널리티’였다. 그들이 어떤 정치적인 폭로와 뒷담화를 이야기할 대 그 정보는 마치 그들만이 알고 있는 어떤 사실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들의 정보력이 나름 발휘되었던 순간들도 있었고, 나름의 디테일로 승부를 걸던 그들의 정보가 주는 잔재미도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 정보는 그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들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새롭게 재편할 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정보의 재편은 그것 자체로 나름의 오리지널리티를 형성했다. <나는 꼼수다>만의 정보라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대중들은 이것을 <나는 꼼수다>표 정보, 지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들의 책이 각기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많은 판매를 기록한 맥락과도 유사하다. 뒷담화가 진실이 된 것이다.

2) 소통하는 방법과 태도    

  <나는 꼼수다>는 ‘홍준표 특집’과 ‘떨거지 특집’등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정치적 포지션을 가진 정치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 방송을 만들었다. 이런 경험은 모두에게 생경한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같은 편끼리’ 소통하는 데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물론 토론이라는 형태로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이 부딪히는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그런 입장의 부딪힘 너머 서로를 하나의 매력 있는 파트너로 인정하며 소통하는 방식의 말하기는 이제까지 시도된 적이 없었던 분명 새로운 방식의 소통 방법이었다. 물론 그것이 결국은 그들의 목적으로 수렴되는 방식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다른 입장마저 포괄할 수 있는 여유라는 것은 그들이 가진 기획, 운영 능력의 탄탄함과 나름의 카리스마를 지닌 캐릭터 덕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아주 자연스레 청취자들을 방송에 참여시켰다. 물론 그들의 표현은 “우리 마음대로 할 거야!”였지만 청취자들은 로고송을 만들고 <나는 꼼수다>의 티셔츠 디자인을 하고 <나는 꼼수다>를 후원하기 위해 기꺼이 많은 비용을 감당하고 콘서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들은 청취자들과 함께 광장으로 나왔고, 그들을 기꺼이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 운동 세력들과의 교류의 지점을 만들기도 했다. 청취자들은 이렇게 방송의 내용을 통해서 이루어진 소통뿐만 아니라 방송 외부, 특히 방송을 듣는 경험을 통해서도 사람들은 집단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나는 꼼수다>를 들으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소통할 수 있었다. 초기 라디오 운동의 사례에서처럼 함께 무언가를 듣고, 그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방송을 통해 확인되었던 이와 같은 팟캐스트 ‘듣기’ 경험의 집단화는 ‘나는 꼼수다’를 더욱 더 사회적인 요소와 요인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듣는 것 이후에도 각자가 방송을 들었던 경험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또 다른 행동을 기획해 나가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는 꼼수다>가 애초에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팟캐스트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라는 지금의 소통방식 하에서 가능해진 진화의 방향이었다. 그리고 <나는 꼼수다>의 주체들은 이런 상황에 영리하게 적응했다.  

3) 미디어의 영역을 넘어 현실을 새롭게 재편하기  

  이러한 집단적 '듣기'의 경험과 그에 기반 한 ‘나꼼수’의 실제적 영향력은 콘서트 등에 모이는 ‘나꼼수’ 팬들의 숫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많은 꼼수 폐인들을 만들어 내며 지속되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꼼수다>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도 늘어났고, 그에 따라 비판하는 목소리도 늘어났다. 방송과 공적인 자리에서 했던 ‘나꼼수’ 멤버들의 발언 하나 하나가 화제가 되었고, 그 발언들은 때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들의 말 하나 하나가 편집되어 기사화 되었다. 팟캐스트 방송으로 소소하게 시작한 <나는 꼼수다>는 주류 미디어의 영향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티브이(TV)와 라디오 중심의 주류 미디어에 팟캐스트 방송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추가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현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팟캐스트는 방송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이런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정권은 <나는 꼼수다>는 규제하거나 통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미디어의 힘. 팟캐스트라는 형식이 가지는 힘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디어 형식 자체의 힘 뿐 아니라 <나는 꼼수다>는 그 내용 안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는 행보를 지속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꼼수 출연자들의 개개인의 발언을 그들은 다시 방송 안으로 끌고 들어와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 비판을 끌어안고 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마이크가 있었고 절대적인 지지층을 기반으로 한 방송이 있었다. 이것이 그들의 힘이었다. 다른 미디어를 통해 상처받은 그들의 이미지를 그들이 가진 미디어를 통해 벌충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어느 틈엔가 방송은 오프라인에서의 <나는 꼼수다> 멤버들의 활동을 공유하는 형식이 되기 시작했다. 정봉주가 구속되기까지 <나는 꼼수다>에게 오프라인에서의 콘서트와 사인회 그리고 연설회 등은 중요한 활동이 되었다. 이런 행사나 활동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나는 꼼수다>를 상대로 한 ‘가카’의 정치적 탄압이 점차 노골화 되어 갔기 때문이다. <나는 꼼수다>가 발휘하던 막강한 영향력과 그것이 다루고 있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그것을 규제하고 검열하려는 권력의 욕망과 함께 긴장을 이루어 갔다. 그렇지만 팟캐스트는 그렇게 심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발신과 수신이 일정한 시간에 이루어지지도 않고 듣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심의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부는 정봉주를 물리적으로 가둠으로써 그의 입을 막는다. 물론, 그 후에도 정봉주를 주축으로 한 <나는 꼼수다>의 전략은 지속되고 있지만 말이다. 정봉주의 구속과 함께 <나는 꼼수다>는 현실에 대한 정치적 개입력에 더 힘을 쏟게 된다. 정봉주의 구속에 항의하는 행동을 조직하고 급기야 김용민이 실제로 정치에 뛰어들 게 되기까지 <나는 꼼수다>는 하나의 팟캐스트 방송이 발휘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현실에 대한 개입력을 확장해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안 미디어’는 어때야 할까?

  <나는 꼼수다>는 분명 대안적이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기존의 미디어가 포괄할 수 없는 부분을 포괄하고 있고 앞에서 언급했던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강점을 살리며 진화해왔다. 그렇지만 <나는 꼼수다>의 성격에 대해서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다. 그것은 거꾸로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대안 미디어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꼼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토대로 우리의 '대안 미디어'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거꾸로 질문해보려고 한다.  

- 독점된 정보에서 다양한 이야기로  

  <나는 꼼수다>는 이른바 뒷담화의 형식을 띠고 있고, 그것이 ‘나꼼수’의 아주 매력적인 특징이지만 우리의 대안 미디어의 전제는 ‘정보의 균등함’이다. 그리고 그 정보는 일반적인 것이어야 한다. 처음 접하는 정보들이 있다고 해도 적어도 평범한 이들이 접근 가능한 정보들이어야 한다. 권력의 숨겨진 실체를 폭로하는 것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들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우리에게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정보들을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 속에 녹아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대안 미디어가 아닐까?

  더 확실하게 이야기 하자면 우리의 대안 미디어는 새로운 정보를 얻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그 보편적인 정보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목소리를 형성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진정한 대안성은 그 일반적인 사실 속에서 그리고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정서’ 속에서 나올 것이다. 그 정보를 모르면 대안적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 속에서 충분히 건져 올릴 수 있는 공감할 수 있는 대안성이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 미디어의 성격일 것이다.

  미디어 운동은 지속해서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의 중요성을 얘기해왔다. 각각의 주체가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적 미디어의 성격이다.

  <나는 꼼수다>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머물렀다. 낄낄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하던 경험의 즐거움을 우리의 대안 미디어는 ‘스스로 말하면서 얻는 즐거움’, ‘일상에서 건져낸 자신의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타인과 소통하는 즐거움’으로 바꾸어 가야 할 것이다.

- 반대하는 대안성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드는 대안성으로

  <나는 꼼수다>의 대안성은 A에 대한 비판에 머무르고 A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적 대안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A를 거부하기 보다는 B를 이야기 하는 방식,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방송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이만큼의 대중성을 얻기는 힘들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무엇에 대한 반대는 매우 쉽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러한 대안성은 사실은 양적으로 절대적인 지지를 얻기는 힘들다. 그 대안은 힘든 것이고 함께, 오래 걸려 찾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대안성은 강력하며 그런 경험은 어떤 때에는 한 사람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그 대안 미디어에 직접 참여할 수 있고, 거기서 듣는 사람이 아니라 발언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사회와 자신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대안 미디어의 힘이 되어야 하며 변함없는 대안 미디어의 원칙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 팟캐스트라는 형식

  <나는 꼼수다>의 열풍 이후에 팟캐스트가 많이 고민되고 있다. 지금도 엄청난 사람들이 스스로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고, 그것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 역시 이 팟캐스트라는 특성에 맞는 대안미디어의 형식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물론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에서도 현재 <복지갈구화적단> 등을 통해 이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이 <복지갈구화적단>의 시작은 기존의 퍼블릭 액세스의 한계적인 구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할 테고, 우리가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실험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 그 방송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될지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숙성되지 않았다. 이제 막 걸음을 시작하는 우리의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우리의’ 대안미디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자. 폭로전이 아닌 평등한 정보의 접근권 속에서 가능한 이야기를 하는 방송, ‘너희 빼곤 다 괜찮아’ 류의 반대가 아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의미로서의 방송, 그리고 ‘나꼼수’의 장점들을 받아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며 점점 괜찮은 대안을 창출해 나가는 방송, 미디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송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이제부터 시작하자,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  

[필자 소개] 나비

황새울 방송국 <들소리>로 처음 미디어 운동 영역에 발을 디딘 후 여성영상집단 반이다로 활동하며 <개청춘>, <송여사님의 작업일지>를 만들었다. '감독님'이라고 불리던 어색한 시간을 지나 다시 새롭게 활동가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현재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사무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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