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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8호 이슈와 현장] 오겡끼데스까?! 저는, 아니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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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3. 3. 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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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8호 이슈와 현장 2012.4.17]

오겡끼데스까?! 저는, 아니 우리는...

넝쿨(오겡끼데스까 멤버)

1. 매력적일 ‘수’도 있는.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오겡끼데스까’의 첫 모임은 청주에서 이루어졌다. 몇 몇 아는 얼굴들과 처음 만나는 얼굴들이 뒤섞여 이제 막 트림을 시작한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 모여 앉았다. 우리가 서로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서로를 탐색하고, 왜 ‘이 동네(미디어운동판)’에서 얼쩡거리게 되었는가를 말하는 것이었다.(물론 공룡과 전미네 사무국에서 준비했던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미디어운동이랄까 운동이랄까. 아무튼 그런 것에 약간 싫증이 나고, 침체되어 있던 시기였다. ‘운동하면 뭐하나...’ 싶었던 때랄까. 그래서 왜 아직 여기 남아있나, 왜 이런 활동을 계속하고 있냐는 질문을 해야 했을 때 긍정적인 이야기 보다는 부정적이고 좌절스러운 이야기가 더 많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사실 어떤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이러 저러한 사정 때문에 그런 좌절감이나 무력감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겡끼데스까의 첫 모임을 하고 나는 사실 조금 놀랐다. 아무리 친근한 사람들이 몇 있다고 하더라도 처음 만난 사람들, 어떤 역사와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지 모르는 자리에서 내가 그런 이야기를 훌훌 털어냈던 것이다.

아마도 오겡끼데스까의 첫 인상이 좋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내가 했던 고민들, 활동들을 평가하고 판단하기 전에, 먼저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마음속의 외침이 이곳에서라면, 이 사람들에게라면 전달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건 그냥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때문에. 원대한 꿈이라도, 사소한 고민이라도 서로 비웃거나 평가할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왠지 이 모임에서는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 2010. 7. 23 오겡끼데스까 in 청주

2. 하지만 의심스러운.

그러나 좋았던 첫인상도 잠시, 나는 다시 회의적인 시각으로 오겡끼데스까를 보게 되었다.

오겡끼데스까의 기본 프로그램인 지역방문은, 각 지역의 ‘젊은’ 활동가들과 만나기 위함도 있지만,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위 ‘선배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 더 큰 이유였다. 말하자면, 오겡끼데스까에 모인 멤버들은 ‘가르쳐 주세요, 삐약삐약’하는 느낌이였달까?(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추진해야하는지, 그런 것들을 처음부터 배우는 사람들의 입장에 우리를 세웠다. 물론 이런 과정을 통해 배우고, 자기 발언을 능동적으로 해보자는 취지가 있었다. 그래도 이렇다 보니, 오겡끼데스까에 모인 멤버는 어딘지 모르게 어리고 허술한 느낌이랄까(물론, 실제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게 있었다.

게다가 여기 모인 우리는 다들 각자의 지역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었다.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 매일 매일의 활동도 허덕허덕 하는데, 고작 한 달에 한번 만나서 하는 이 모임이 얼마나 탄력을 갖고 자기 활동을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물론 각지에 있는 활동가들이 꾸준히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어딘가로 1박 2일을 가는 것이 매우 힘든 기획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 2010. 8. 31오겡끼데스까 in 부산

그래서 사실, 서로의 존재 확인하기, 친해지기, 네트워크 만들기 이외에 ‘오겡끼데스까가 미디어운동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활동가들의 유입통로나, 활동가 학교로 기능하기에는 너무나 느슨하고, 그렇다고 다른 ‘액션’을 짜기에는 아직 ‘선수’들은 아니지 않나. 물론, 이러한 단상들이 내가 오겡끼데스까에서 활동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기로에 서게 하지는 않았다. 일단 나는 이야기를 하고, 들어줄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좋았고, 일단 ‘만남’ 자체로 오겡끼데스까의 의미는 컸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오겡끼데스까는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청주, 부산, 대구, 안산, 부천 등지를 다녔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2010년도 하반기부터는 제대로 참석하지 못해서 청주와 부산, 부천 정도에만 다녀올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부산에서 4대강 관련 취재를 하고 삘(feel) 받은 활동가들은 활동력을 넓히고 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4대강 레알 살리기 프로젝트 江,원래>라는 옴니버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 오겡끼데스까의 구체적인 활동들에 대해 나왔던 평가는 하지 않겠지만 다양한 과정을 통해 오겡끼데스까에서 더 이상 너무 궁극적인 질문들이나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에 대한 탁상공론 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액션’과 그것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의 다른 활동들과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는 것만을 밝혀둔다.

3. 그런데 이거, 어째 점점...

이렇게 어찌어찌 하다보니 세월이 흘러, 2010년에 시작했던 오겡끼데스까의 활동도 이제는 2년 남짓이 되었다. 일정한 시간을 넘어서자 오겡끼데스까 내부에서도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 그 성격에 대해서 분분하고 활발한 이야기가 오갔고 여전히 오가고 있다. 그리하여 오겡끼데스까가 전미네 사무국의 활동 중 하나라기 보다는 특정한 네트워크로 기능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江,원래>처럼 외연을 확장했을 때부터 독립적인 네트워크의 기능이 실현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江,원래>는 다른 층위에서 논의해야 할 부분인 것 같고, 오겡끼데스까 자체의 역량은 이제 꿈틀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가을의 모임을 기점으로 자체역량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은근슬쩍 결합했던 활동가들이 본격적으로 기획팀을 꾸리게 되었다. 이것은 꾸준히 오겡끼데스까의 활동에 참여해왔던 참여자들이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난 요구이기도 하고, 고민이기도 하다. 이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왜 이 동네에 남아있는지에 대해 무한루프로 돌아오는 질문들만으로는 우리의 ‘만남’이 더 이상 신선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궁극적 질문병에 걸린 걸까. 올해 초에 했던 신년회에서 우리는 결국 다시, 궁극적인 질문으로 돌아갔다. 오겡끼데스까는 무엇이며, 어떤 성격, 목적, 지향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활동이 그것에 적합한 활동인지에 대해 다시 치열하게 정리해야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던 것이다. 그래서 기획팀이 제안하려고 만들어간 제안서는 다시 궁극적 질문들 앞에 물러나고, 그 궁극적 질문을 위한 기획팀을 또 다시 꾸리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똑같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서로가 갖고 있는 지향을 확인하고, 일단의 합의를 얻은 또 다른 활동을 기획해볼 여지도 남았다. 그래서 올 해에도 오겡끼데스까는 공사가 다망하실 예정이다.


▲ 2012. 3. 1 오겡끼데쓰까 신년회

4. 네트워크, 새로운 ‘우리’로.

사실 계속해서 ‘우리’라는 표현을 썼지만, 오겡끼데스까가 ‘우리’로 묶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마음 한 켠으로 고민하며 글을 써내려왔다. 여기에 모인 우리는 각자의 역사도, 감각도, 층위도, 이 안에서의 관계지형도도 각자 다르다.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이 즈음에 와서야 비로소 ‘우리’라고 묶을 수 있는 무엇이 생겨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의 요구에 의해, 스스로 지향과 방향을 설정하고, 그것을 함께 논의해나갈 수 있는 관계가 된 것 같다. 기획했던 사람이 제시하는 방향, 목표 등을 받아 안아서 실행하고,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 기획 자체를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고 서로의 의견을 보태고 조율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재창조해 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고 오겡끼데스까는 그것을 할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과정은 비효율적일지도 모른다. 너무 꼼꼼히 따지고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갑갑하고 지난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는 영 다른 모양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겡끼데스까는 하나의 의미를 더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네트워크의 뜻, 의미, 그림들은 잘 모르지만,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주체가 되고, 그래서 각자의 다름과 치우침이 존중되고 어우러져 하나의 모양을 형성하고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어렴풋한 이미지는 갖고 있다. 이 지난하고 꼼꼼한 과정들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친구, 새로운 미디어 활동뿐만 아니라 새로운 네트워크의 다른 상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여전히 사무국 활동가들에게 기대는 부분이 많지만, 계속해서 무한루프하는 궁극적 질문을 던지며 자기 방향성을 놓치지 않고, 다른 활동, 활동가와 연계하며 오겡끼데스까가 꾸준히 자가증식 하길 빌어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마음으로 빌고, 머리로 생각하고, 손으로 일을 해야겠지만! □

* 관련 사이트

- 오겡끼데스까의 탄생 배경이나 취지, 과정은 <ACT!> 72호(2010.12) 전미네 지역방문 프로젝트 ‘오겡끼데스까’에 대하여와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사무국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필자소개] 넝쿨(오겡끼데쓰까 멤버)

2006 년부터 얼떨결에 미디어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리저리 흐르며 마음 닿는 곳에서 활동을 하다가 전국미디어운동 네트워크를 만나게 되었고, 오겡끼데스까를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이리저리 흐르며 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고, 올 해는 개인적인 활동과 오겡끼데스까의 활동을 잘 조합해서 열심히, 잘 하고픈(!)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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