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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32호 국제미디어운동] 전세계 노동 미디어 운동 네트워크의 구축을 위하여 : 케이프타운 국제 노동 미디어 회의 참가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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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32호 / 2006년 5월 30일



전세계 노동 미디어 운동 네트워크의 구축을 위하여

: 케이프타운 국제 노동 미디어 회의 참가기 -1
 
김명준 (미디액트소장)
 
 
지난 4월 4일부터 7일까지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는 국제노동교육협회가 주최한 국제 노동 미디어 회의 (International labor media conference) 가 열렸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노동미디어 활동가의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설정하고 열린 이 회의에는 미디액트의 김명준 소장과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이지영 감독이 참여했다. 아직 그 출발은 작지만 원대한 미래를 목표로 삼은 국제회의의 참관기를 통해서 노동 미디어 운동의 새로운 국제 연대 가능성을 점검해본다. 말이나 상상으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으로서...
 
1, 피부색만 바뀐 신자유주의
 
암울한 풍경
싱가폴 에어라인을 타고 가는 20여시간의 비행시간은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개인별 VOD 시스템은 비록 되감기 기능은 별로였지만 지키고 앉아서 영화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만큼 충분히 편리했으니까. 그저 그런 영화들로 시간을 때우던 와중에 국내에서도 개봉한 바 있는 <뻔뻔한 딕과 제인, Fun with Dick and Jane>은 알고 보니 파산한 기업 엔론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였고, 마지막 대사에서 엔론이 언급된 후 시작된 자막의 첫 번째 묶음은 파산한 대기업들의 목록이었다. 사실 엔론은 공공의 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과 연관해서 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경로를 밟은 기업으로서, 민영화의 극단적인 결과인 캘리포니아 정전 상태 당시 전기를 거래소에서 캘리포니아 주 외각으로 빼돌려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곳이기도 하다. 하여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조롱이 제국의 심장부에서조차 공공연히 언급되고 있음을 씁쓸한 느낌으로 확인하는 가운데, 특유의 민둥산이 두드러져보이는 케이프 타운의 원경이 좁은 창문을 통해서 어렴풋이 드러났다. 이곳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어떤 삶을 또다시 파탄에 빠뜨렸을까...
10년만에 다시 찾은 케이프 타운은 (10년전, 지금은 사라진 국제 비디오 운동 네트워크 비디아지무스의 정기 총회가 이곳에서 열렸었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첫 번째 느낌은 참담함이었다. 공항으로부터 도심으로 들어가는 도로옆에는 판자촌이 줄을 잇고 있었고, 도심의 부유층 거주지에는 개발붐이 한창이었다. 사실, 비행기안에서도 이미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지만, 흑인의 빈곤은 여전했다. 같이 타고 비행기를 타고 간 사람들의 대다수는 백인이었으며 나머지는 아시아계였고, 중간 기착지인 요하네스버그에서 비행기안에 들어와 청소하던 피곤에 찌든 노동자들은 모두 흑인이었다. 아프리카 대륙 최초로 개최될 월드컵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다. 마치 우리의 상계동이 그러했듯, 케이프타운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은 관광객을 위한 콘도로 건물을 개조하려는 소유주들에 의해 무더기로 퇴거당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방문했던 퇴거 지역의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남아공 정부는 지금 월드컵을 앞두고 엄청난 돈을 축구 경기장에 투자하고 있죠, 게다가 세계최고의 해군을 만들겠다고 첨단 무기를 만드느라 혈안이 되어있구요, 하지만 주민들은 살 곳이 없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경제발전입니까?”
어두운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거리에서 버스를 찾아볼 수가 없기에 도대체 왜 이려냐는 질문을 던지자, 회의를 주최한 활동가중 하나인 마틴 (노동자세계미디어프로덕션) 은 7시가 넘으면 대중교통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용주들은 밴 등을 빌려서 노동자들을 집까지 퇴근시킨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요하네스버그와 프레토리아를 잇는 고속철도 건설계획이 시행중이라고 하니, 모든 정책은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품을 위해서, 자본을 위해서 시행되고 있었다. 노동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법적으로는 주 45시간을 근무하며 주당 10시간까지 연장 근로가 가능하도록 되어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법을 어겨가며 훨씬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으며, 그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은 실업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피부색만 바뀐 지배계급과 정부, 그리고 병든 노동조합
이런 참담한 상황에 제동을 걸어야 할 정부, 그리고 운동세력의 상황도 답답하기 이를데 없다. 고속철도의 경우 정부의 정책에 대해 의회가 반대했지만 사업은 막무가내로 진행 되고 있으며, 이렇게 의회 권력보다 행정 권력이 우위에 서가고 있는 현상에 대해 활동가들은 자본 집중이 낳은 권력 집중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해방의 전제조건이었던 백인 자산의 인정과 IMF와 세계은행이 강요한 구조조정 및 긴축 정책의 수용 등은 남아공의 계급관계를 부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오히려 악화시키고 만 것이다.
게다가, ANC(아프리카 민족회의 = 집권세력), 그리고 전 COSATU(노총)간부들의 부패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번 회의 직전에도 한 자본가가 암살당하면서 엄청난 스캔들이 터졌다. 그가 사망한 후, 그가 ANC의 청년조직 간부에게 많은 돈을 송금했고 그 돈중 일부가 (일부라는 것을 보면, 배달사고도 있었던 셈이다) ANC계좌에 이체된 것이 드러난 것이다. 더 심한 아이러니는 그의 장례식이 그동안 많은 열사들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성당에서 열렸으며 많은 ANC 지도자들이 심심한 조의를 표명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정권의 교체가 가져온 운동의 부패와 후퇴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퇴거 문제의 경우에도, “혹시 이런 퇴거민들을 지원하는 빈민조직은 없나?”라는 질문에 대해, 한 활동가는 한숨만 내쉬었다. 빈민조직은 있지만, 이미 대표적 빈민조직은 ANC에 소속되어 정부와의 협동 프로젝트만 하지 이런 어려운 주민들의 투쟁은 지원하지 않고 있으며, COSATU역시 사회운동 부분의 초기 발전 과정에는 기여했지만,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사회운동이 정부에 대해 비판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점차 사회운동과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보수화의 배경에는 COSATU 조직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도 했다. 민주노총과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관계가 그러하듯, COSATU는 40%에 이르는 실업률을 고려해서 실업노동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지만, 실업자에게 COSATU는 그림의 떡과도 같다. 조합비를 내지 못하면 자격은 자동으로 정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COSATU는 21개 산별조직에 150만 조합원을 가지고 있으며 노조 조직율은 65%에 이르지만, 정부와의 유착관계, 그리고 실업노동자들을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 그리고 비판적 좌파들을 억압하는 내부의 관료주의로 이미 상당히 무력해져버린 것이다.
분노
그런 점에서, 10년전보다 지금 상황은 악화되어 있었지만, 한가지 확연한 차이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대중적 분노였다.
회의 첫날 저녁, 참석자들은 모두 함께 버스를 타고 COSATU 지역 사무소를 방문한 후 근처의 극장에서 개막되는 노동 영화제에 참석했다. 우리의 노동영화제에 비해 상영작의 수는 적었지만 (한국이 25편 정도인데 반해 남아공 노동영화제는 5편 정도), 이런 행사가 처음이니만큼 관심과 열기는 뜨거운 듯 했다. 극장안에는 약 500명 정도의 관객이 모여있었고, 한국에서도 이미 노동영화제를 통해서 상영된 바 있는 <인터내셔널가의 역사와 전망>,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등 두편의 작품은 적극적인 호응 속에서 상영되었다.
그리고 영화 상영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자유 토론 시간에는, 수많은 관객들이 앞다투어 발언하며 정부 및 정부와 유착된 노조를 성토했다. 10년전 당시, 정권 교체 직후 막연한 기대와 낙관이 지배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이런 모습은, 이제 ANC의 신자유주의 정책 및 노조와 정부의 유착관계에 대한 대중적 비판과 분노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었다. 문제는, 이 분노를 어떻게 운동의 힘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어떻게 좌절을 넘어 희망을 만들어갈 것인지에 있을텐대, 그를 위해 운동이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노동미디어 회의
 
그런 운동의 재구성 과정에서 반드시 포함되는 실천의 한축은 당연히 국제연대의 모색일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 모두가 목격하는 빈곤과 전쟁이라는, 한국의 맥락에서 보자면 FTA와 평택이라는 두가지 서로 긴밀하게 결합된 참혹한 현실과 그에 대한 분노는 모두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연관되어 있고, 전지구적 대응을 조직해가지 않는다면 희망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남아공의 현실은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으며, 국제적 모색은 한 나라 안의 운동과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갈 수 밖에 없다. 이번 회의는 그런 점에서 심각한 긴장 속에서 그러나 우리 활동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누가 주최하며, 어디서 후원하는가 ?
언제나 어떤 행사는 그것을 주최한 조직이 무엇인지에 따라 그 지향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번 회의의 주최단체는 1947년에 설립되어 이제 65개국의 120개 조직에 회원단체를 지니고 있는 국제노동교육협회의(IFWEA)였다. IFWEA는 전지구적 조직이면서 페루, 홍콩, 잠비아, 불가리아, 파리, 아랍 등에 지역 지부를 갖고 있으며, 각 지부는 중앙의 감독과는 무관하게 자율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유일한 중앙 상근자는 영국 맨체스터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 이 조직이 진행중인 주요 프로젝트는 노동자 권리 증진을 위한 전지구적 네트워크 조직화, 비공식경제부문 관련 프로젝트, 국제 스터디 서클 등이며, 이번 회의가 기존 활동과 차이를 지니고 있는 것중 하나는 협회 사상 처음으로 조직한 ‘미디어’에 관한 회의이자 비회원조직 (미디액트나 노동자뉴스제작단은 회원조직이 아니다)을 대거 초청한 회의라는 점이다. 그리고, 만만치 않은 자금이 소요되는 재정 후원은 네덜란드의 최대 노총인 FNV-Mondiaal (120만명, 14개 연맹) 이 담당했다. 이 FNV-Mondiaal은 민주노총의 프로젝트들을 지원하기도 한 바 있는 노총이다.
여기까지는 공식적인 정보다. 언제나 그렇듯, 조금 더 현실을 뚫고 들어가면 주의깊게 봐야할 측면들이 있다. 이 회의를 실질적으로 준비한 주체이자, 회의 장소를 유럽이 아니라 남아공으로 끌어들인 것은 WWMP(노동자세계미디어프로덕션)의 마틴 젠슨을 미롯한 남아공 활동가들이었다. 짐작을 좀 해보자면 (어느 정도 확인도 한 셈이지만), 협회는 이번 회의 등을 계기로 유럽중심에서 제3세계 중심으로 그 축을 이동하는 듯 했으며, 운동의 재구성을 위한 활동가들의 노력이 맺은 첫단계의 결실중 하나가 바로 이번 국제회의였다.
목표와 의제, 요약하자면 두가지 과제
회의는 크게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목표를 내세웠다.
첫째, 노동자 미디어 제작자 및 교육자간의 협력 부족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정보기술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둘째, 모든 현태의 미디어를 동원해서 어떤 형태의 착취에 대해서도 반대하며 노조의 국제 연대를 고무하는 방식의 세계화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촉진한다.
셋째, 이미 제안된 바 있는 ILMNC (국제 노동 미디어 네트워크와 협력기구)를 포함한 실제적인 협력을 위한 방안을 점검한다. 여기서 ILMNC는 교류와 공유를 위한 웹사이트 기획을 포괄한다.
넷째, 다양한 매체를 활용함으로써 대중적 기초를 지니는, 정보와 관점을 교류하고 민주적 개입을 보장하는 이러한 과정에 IFWEA 회원단체 및 파트너 조직, 특히 국제노조연맹의 참여를 조직한다.
다섯째, 앞으로 2년내에, ILMNC를 설립하고 이러한 프로젝트의 목표를 홍보하기 위한 조직적 틀을 마련하는 국제 노동 미디어 회의를, 완벽하게 참여가 보장되는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제기하고 가능성을 타진하고 계획을 수립할 것인가를 점검한다.
번역하기도 골치아팠던 이 어수선한 표현들을 다시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게 모인 김에 노동 미디어 및 노동 교육 활동가의 교류를 확대하고, 새로운 국제적 네트워크의 가능성을 토론하고, 2년내에 국제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실질적인 준비에 착수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회의는 동시에 두가지 과제를 끌어안으며 시작되었다. 첫 번째 과제는, 참석자들이 어떤 형장에서 어떤 활동을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벌이고 있는지를 서로 공유하고 확인하는 것이었으며, 두 번째 과제는 그러한 상호 확인에 기초해서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기 위한 실질적인 계획을 섬세하게 마련하는 것이었다.
매우 단순해보이지만, 사실은 쉽지 않은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단 3일이었다. 그 과정은 힘겨웠고, 때로는 날카로운 대립각도 드러났지만, 성과는 없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그리고 각국에서 노동 미디어는 어떤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지는 지면관계상 다음 ACT!로 넘기도록 하자.□
 
** 참가기 속편의 목차
 
2, 노동 미디어 회의
노동자 교육과 미디어 : 미국, 인도, 남아공의 사례를 중심으로 
  우여곡절끝의 합의사항 : 전세계 노동 미디어 운동 네트워크의 구축을 위하여
3, 본론만큼 소중한 부록 - 남아공의 공동체 라디오와 TV
공동체 라디오
  공동체 TV
  미디어와 노동운동
4, 맺으며

** 추신 
: 6월에는 또다른 국제회의들이 있다. 하나는 광주 비엔날레의 한 섹션으로 채택된 남미 혁명적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한 베네주엘라 카라카스의 모임이며, 다른 하나는 인터넷을 비롯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어떻게 진보적 컨텐츠를 소통시키고 공유할 것인가를 논의할 로마의 트랜스미션 (Transmission) 회의이다. 한국의 활동가들이 참여할 이 두 회의의 참관기 또한 다음호 ACT!를 통해서 소개할 계획이다. FTA와 군사주의라는 두 개의 망령과 맞서는 과정에서 이 회의들이 국제적 연대를 조직하며, 각국의 미디어 운동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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