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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33호 여성미디어운동] 여성주의 미디어를 배급하고 지원한다는 것 - 우먼메이크무비즈(Women Make Movies)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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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33호 / 2006년 7월 6일

 

 

여성주의 미디어를 배급하고 지원한다는 것


- 우먼메이크무비즈(Women Make Movies)의 활동
 
이진행 ( ACT! 편집위원 )


우먼메이크무비즈(Women Make Movies, 이하 WMM)는 여성주의 영화와 비디오 작품을 다양한 경로로 배급하고 지원하는 세계적인 비영리단체이다. 500여개에 달하는 여성주의 미디어 작품을 배급하고 프로모션하는 동시에, 새로운 여성 제작자들을 지원하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어 여성주의 영화 제작자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이상적인 모델로 자주 언급되고 있기도 하다.
WMM의 다양한 활동을 살펴보면서,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도 가능한 활동은 무엇인지 힌트를 얻어보자.

WMM이 처음부터 배급과 제작자 지원에 주력했던 것은 아니었다. 1972년, 서구 사회를 휩쓴 신사회운동, 특히 여성운동의 전면화 흐름 속에서 탄생한 WMM은 설립 당시 여성 필름/비디오 제작자를 양성하기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 까지 수백 명의 여성들이 WMM의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70여편의 결과물을 남겼다. 그러나 WMM은 이렇게 훈련을 통해 양성된 여성들이 만든 영화를 배급하고 공개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현실에 직면하고, 1970년대 후반 배급 서비스를 시작했다. WMM의 배급활동은 이들의 근거지인 뉴욕에서 진행되는 여러 상영회에 작품을 제공하고 두 번의 여성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80년대 중반에 들어서 라틴아메리카 여성들의 미디어를 발굴하는 전시를 개최하고, 여성과 미디어에 대한 컨퍼런스 (1987년, '관점들: 여성, 문화, 미디어에 관한 회의'와 1997년, '여성과 멀티미디어 예술에 관한 회의‘ 등)를 개최하고 국제적인 여성영화제(1985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유엔여성회의의 행사의 일환인 영화제인 ’필름포럼 '85'와 뉴욕에서 열렸던 '베이징 플러스 5 유엔회의'에서의 '여성 2000 영화축제')를 함께 만들어갔다. 이와 같은 활동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WMM의 20주년, 25주년, 30주년 행사는 미국 전역과 전세계에 걸친 전시 및 상영회로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배급 활동
 
WMM은 여성들의 전통적/비전통적,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미학적 관점이 주류미디어에 의해 거의 반영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 착목하여, 여성의 경험을 반영하고 다양하고 복합적인 여성들의 삶을 담아내는 독립 미디어를 배급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활동의 근저에는, 미디어가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과 미디어가 지배적 관점을 바꾸어내고 행동을 촉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웹사이트에서 밝히고 있는 배급 활동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 여성들의 영상제작을 지원하고 독려하기 위함
- 여성 미디어에 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관객층을 확대하기 위함
- 여성 미디어의 다양성과 평등에 대한 공공 교육을 수행하기 위함
- 여성과 관련된 국제적 이슈들에 대한 토론과 논쟁을 일으키기 위함

△ WMM의 2006년 카달로그
이러한 철학적 배경과 목표 속에서 이루어진 WMM의 배급 활동은 지난 30년 간 발전을 거듭해왔다. 현재 WMM의 아카이브에는 전세계에서 제작된 500개 이상의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애니메이션, 극영화, 혼성장르의 영화들이 포함되어있다. 이 중에는 ‘제인 캠피온’이나 ‘트린 티 민하’와 같은 국제적 명성을 가진 감독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그러나 이들의 아카이브의 상당 부분은 레즈비언, 장애여성, 장년 여성들에 의한, 그리고 이들에 대한 작품들로 이루어져있다. 이 작품들은 미디어교육 기관/단체, 미디어아트센터, 박물관, 대학, 병원, 교도소, 노동조합 등 다양한 비상업적 공간으로 배급된다.
WMM에서 배급하는 작품들은 △ 여성이 직접 제작하거나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고 △여성의 삶이나 여성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들을 주제로 한 영화라는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에 부하는 것들이다. 또한, 형식적으로 참신하고 내용적으로 유색인종 여성, 여성 장애인이나 성적 소수자 등 여성 중에서도 사회적 소수자인 주체들이 제작한 작품들이 이들의 배급작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WMM의 배급 사업의 의미를 인정하고, 당신의 작품이 위의 조건들에 부합한다고 생각되면, 웹사이트를 방문하여 신청서를 작성하여 우편이나 팩스로 보내보자. 당신의 작품이 주제와 표현 방식 면에서 WMM의 아카이브로 적합하다고 판단된다면, 작품을 한번 볼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을지도 모른다.
 
제작지원
 
WMM의 주요 활동 영역 중 하나는 제작지원이다. 제작지원 제도는 여성독립제작자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199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이는 주로 재정적인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크게 보면 재정 후원과 워크숍으로 나뉜다.
재정 후원이란, 글자 그대로, 특정 미디어 프로젝트에 대한 재정 지원 프로그램이다. 세금 감면 등을 위해 기부를 하려고 하는 재단이나 사업자들이 개인 제작자를 지원하기에는 쉽지 않은 구조이지만, 큰 비영리 조직을 통해서라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살려, WMM은 개별 프로젝트-제작자에 대한 비영리 면세 상부 단체로 기능하면서 기부자들을 조직한다. 기부자들에게 기부금을 받고 다시 제작자들에게 분배하는 과정은 양자의 동의 속에서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다, (기부자는 실질적으로 작품 제작을 지원하지만, 형식적으로는 비영리 단체인 WMM을 거침으로서 법적으로 세금 감면이 되는 것이다. 연말정산 때 시민사회단체나 정당에 대한 기부금에 따라 세금 환급이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해보면 훨신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러한 지원을 통해 제작된 작품에 대한 모든 권리는 물론 제작자가 갖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제작자들은 이전까지는 불가능했던 곳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며, 혼자서 투자-제작-연출 등 일인 다역을 해야만 하는 힘겨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편, WMM은 개인들이 직접 쉽게 기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웹사이트를 통해 개별 후원 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http://www.wmm.com/filmmakers/sponsored_projects.shtml) 웹사이트에 접속한 개인들은 WMM이 미리 선정해둔 작품들을 검토하여 일정 금액을 온라인으로 결재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라고는 스틸 사진 한 장과 불과 몇 줄의 소개( 반 정도는 제작자의 웹사이트로 가는 링크가 제공되기도 하지만...) 뿐이지만, 기부문화가 발전되어있다는 미국에서는 꽤 큰 효과를 노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WMM은 150개가 넘은 영화와 비디오를 후원해왔다고 한다. 그 중에는 ‘줄리 대쉬’의 [먼지의 딸들]이나 ‘킴 피어스’의 [소년은 울지 않는다]처럼 주류에서도 비평과 흥행에서 성공을 거둔 작품들도 있다는 것은 WMM가 즐겨 이야기하는 자랑거리이다.

△ 개별 작품에 대한 개인 후원을 위한 웹페이지.
또 하나의 제작 지원 영역인 워크숍에 대하여 조금 살펴보자. WMM의 워크숍은 여성 제작자들을 위해 일년에 두 차례, 봄과 가을에 개최된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작 기획, 제작 자금 조달, 기획안 작성 등 작품의 제작과 비즈니스의 측면에 대한 현실적 정보와 훈련을 제공한다. 올 봄에 있었던 워크숍의 제목들을 슬쩍 살펴보자. WMM 워크숍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될 것 같다. △ 영화제에서 TV 방영까지, 배급 옵션의 모든 것 △ 독립제작자를 위한 방송과 DVD 배급 교실 △ 작품 판매와 국제 시장 △ 성공적인 기획안의 비밀 △ 대안적인 펀딩 : 유익한 새 접근법 등. 개별 워크숍은 두 시간 정도 이루어지며, ‘성공한’ 독립 제작자들이 이러한 워크숍을 이끌어나가게 된다. 비용은 40~50$ 정도(미국의 물가 수준이 파악되지 않아, 이 정도의 비용이 WMM에서 홍보하고 있는 것 처럼 정말 ‘저렴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워크숍에 참여한 제작자들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 이러한 워크숍의 또 하나의 매력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활동이 필요하다.
 
WMM은 여성 미디어운동의 발전에 대한 그림 속에서 공백을 찾아 독립적인 여성주의 미디어를 배급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데에 매진해왔다. 이들이 보여준 활동의 폭과 성과는, ‘배급’이나 ‘재정 지원’ 활동의 가능성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와 필요성을 실천적으로 확장해내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전반적인 독립/대안 미디어 운동 진영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여성주의라는 의제를 가지고 동시대인들과 소통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러한 활동은 무척이나 절실한 문제인 것이다.
미디어에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확장되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여성의 미디어, 여성주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미디어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종합하는 활동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매년 개최되고 있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여성영화 아카이브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작품만으로는 한계-2006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국제 포럼에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현재 1년에 한번 치러지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행사만을 감당하기에도 재정과 인력 면에서 벅차, 지역 여성영화제들을 일일이 지원하기는 힘들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역 여성영화제들과 여성단체들의 기획사업으로 진행되는 ‘여성노동영화제’, ‘여성인권영화제’ 등의 영화제 역시 소중한 공간이지만, 이들의 활동이 지속될 수 있는 아카이브와 배급의 기반이 조성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각 지역의 힘든 상황을 개별적이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돌파하던가, 한 해 이상 지속되지 못하는 이벤트성 사업으로 남길 수 밖에 없는 현재의 한계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여성주의 미디어의 다양한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아카이빙하고, 이러한 미디어들을 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이 작품들을 가지고 교육과 토론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알맞은 작품들을 적시에 공급하고, 적극적으로 조직해내는 활동을 전문적으로 벌여내는 단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

  • 참고 
    WMM 웹사이트 http://www.wmm.lfchosting.com/
    - 데브라 짐머만, 30주년을 맞은 우먼메이크무비즈(Women Make Movies): 페미니스트 영화 배급의 역사와 정치학, 2002년 서울여성영화제 국제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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