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40호 미디어인터내셔널] <미디어 개혁 회의 The national conference for media reform> 참관기 ①
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0호 / 2007년 4월 9일
<미디어 개혁 회의 The national conference for media reform> 참관기 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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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미디액트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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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멤피스, 마틴 루터 킹, 그리고 성장하는 미디어 운동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미디어 운동은 활동가들이 모이는 여러 가지 전국 규모의 회의들을 갖고 있지만, ‘미디어 개혁 회의’는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올해로 세 번째가 되는 이 회의의 출발점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화당이 지명한 위원이 과반수를 점하던 FCC(연방통신위원회)는 미디어 산업의 규제를 풀어서 대자본의 미디어 독점을 보다 쉽게 하려 했고, 이에 맞서서 다양한 미디어 운동 주체들의 투쟁과 로비가 이어지면서 마침내 FCC의 결정은 의회에 의해 뒤집히게 된다. 이때 이러한 투쟁을 전국적인 규모로 벌여가기 위해 최초의 미디어 개혁 회의가 위스콘신에서 개최되었고, 이후 2005년 세인트루이스에서 두 번째 회의가 열렸으며, 올해 세 번째 회의가 성사된 것이다. 회의의 공식적인 주최 단체는 프리프레스(http://www.freepress.net)이다. 미디어 분야의 진보적 학자로 널리 알려진 밥 멕체스니가 설립한 이 단체는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미디어 개혁을 위한 정책 연구 및 조직화, 로비 사업을 하고 있는 곳으로 미디어 개혁 회의의 성공을 계기로 그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공식적인 주최조직이 프리프레스이긴 해도, 실제로 이 회의는 다양한 미디어 운동 주체들의 참여에 의해서 조직되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한 단체의 전유물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프로그램이나 발표자 리스트는 때로는 프리프레스와 다른 활동가들의 시각차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활동가들의 제안에 의해 그 내용이 풍성해지기도 한다. 2005년 열렸던 두 번째 미디어 개혁 회의에 참여했던 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올해 회의는 그 장소 및 개최 시기의 성격이나 규모에 있어서 그전과는 다른 차이를 보였다. 우선 개최장소와 시기의 선택은 미디어운동과 현장운동의 결합 필요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회의가 열린 멤피스는 60년대 민권운동의 중심 지역이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청소 용역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방문했다가 피살당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민권운동을 기념하는 박물관이 있으며 (박물관은 킹 목사가 암살당한 여관을 개조한 것이다) 회의 종료 후 많은 사람들이 이 박물관을 방문했다. 아울러 회의가 열린 주말 바로 다음날은 킹 목사가 탄생한 날로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다음으로, 회의의 규모는 더 이상 확대하기 어려울 만큼 커져버렸다. 공식적인 참가자만 3500명을 넘어섰고, 논의의 주제는 미디어 소유 규제, 미디어와 선거, 광고와 상업주의, 미디어 정의를 위한 전세계적 운동, 미디어 소유에 있어서 인종과 젠더의 문제, 인터넷 구하기, 미디어 콘텐츠에 있어서 왜 미디어 정책이 중요한가, 독립 미디어의 설립과 유지, 미디어와 이주의 권리, 미디어 리터러시 훈련, 조직화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미디어 모니터링, 독자적 미디어 인프라 구축하기, 전지구적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정책, 음악과 미디어 개혁, 여성주의 미디어, 청소년 미디어 등 상업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분석으로부터 독립미디어 운동의 전략 구상에 이르기까지 있을 수 있는 대부분의 영역이 포괄되었다. 게다가 공화당이 선거에서 참패한데다가 (뒤에서 설명할) 네트워크 중립성 투쟁이 막 첫 번째 승리를 거둔 뒤라 그런지 참석자들은 무척 낙관적인 분위기 속에서 고양되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미디어 운동이 새로운 연대의 문화를 만들어가면서 성장하고 있음은 분명해보였다. * 프로그램 목록은 http://www.freepress.net/conference/files07/2007-program.pdf 을 참조하기 바라며, 홈페이지에는 일부 동영상 기록 및 속기록, 그리고 모든 프로그램의 MP3 오디오 파일이 올려져 있다. 2. 명망가로부터 풀뿌리 운동에 이르기까지, 미디어 개혁 혹은 미디어 정의를 위하여 (media reform or media justice) 운동의 성장은 모든 참석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플레너리(plenary)에 등장한 연설자들의 면면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연설자들의 명단은 다채로웠다. 제인 폰다, 대니 글로버, 지나 데이비스 등 할리우드 스타로부터 무소속 좌파 상원의원인 버니 샌더즈, 제시 잭슨 목사, 공영방송 PBS에서 쫓겨났다가 이번에 복귀가 결정된 방송인 빌 모이어즈, FCC 위원인 조나단 아델스타인과 마이클 콥스, 이주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독자적 공동체 라디오를 건설한 에루비엘 발라다레스 까란자, 급진적 청소년 미디어 운동 조직 활동가 말키아 시릴, 흑인 미디어 활동가인 밴 존스 등의 발언은 현재 미국 미디어 운동이 포괄하고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엿보게 하는 흥미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발언들 중 일부를 인용해본다.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바로 이곳 멤피스에 청소 용역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러 왔다가 암살당했다. 농업노동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투쟁을 통해서 스스로 써내려간 것이며, 킹 목사는 그러한 노동자 투쟁과 연대하려 한 순간 암살당한 것이다. 그러나 비록 총탄이 그를 쓰러뜨렸지만, 그 총탄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죽이진 못했다. 민중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그 이야기를 죽일 수 없는 것이다.” (빌 모이어즈) “미국의 제도권 미디어는 킹 목사를 오직 비폭력 시위를 주장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서 조명한다. 그러나 킹 목사가 미국의 구조 자체를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체제 유지(status quo)를 교란하게’ 된다. 개들에게 물리고 말발굽에 차이면서 그는 ‘반격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러자 제도권 미디어들은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찾던 그런 지도자다’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그가 백인 남성 우월주의를 공격하고, 그 제도와 전쟁 정책에 도전하자 그들은 킹 목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제시 잭슨) “우리의 운동은 아래로부터 지도력을 형성해야 한다... 지역의 주체들을 강화하고 진정한 풀뿌리 운동을 형성하기 위해 보다 더 많은 자원과 주의가 배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말키아 시릴) “전국적 규모의 텔레커뮤니케이션 정책에 있어서 우리는 지닌 수십 년 간 다음 세 가지에 주목해왔으며 지금도 그 실현을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보편적 서비스, 지역주의, 그리고 다양성이다.” (에드워드 마키 - 민주당 상원의원) “이제 월요일이 되면 (킹 목사 탄생 기념일) 주류 미디어들은 킹 목사를 거품을 물며 칭찬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베트남전을 반대했고, 말년에는 경제 정의를 위해서 피부색의 차이를 넘어서는 인종 간 연대를 주장했다는 사실은 주류 미디어에는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운동은 미디어를 주요한 정치적 의제로 만들었다. 이제 이 운동을 통해서 자본의 미디어 통제를 끝장내자.” (버니 샌더즈 - 이번에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무소속 의원) “우리가 미디어 개혁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힘 있는 자들을 위한 미디어가 아니라, 힘없는 자들을 위해 발언하는 미디어, 세상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이들을 위한 미디어, 잊혀지는 이들을 기억해내는 미디어, 그런 진정 힘 있는 미디어를 창조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진정 강력한 미디어는 전쟁을 시작하는 미디어가 아니라 전쟁을 끝장내는 미디어다.” (제인 폰다 - 최근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여성미디어센터를 설립함 : http://www.womensmediacenter.com 설립 목적) “FCC에서 나쁜 규칙이 제정되면, 그걸 단순히 파묻지 말자. 6피트 깊이로 땅을 파서 묻어버리자! FCC가 미디어 소유 규제를 완화시키려 하면, 여러분들의 힘을 합쳐서 의회를 압박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자! ... 우린 주파수를 개방해서 소출력 FM라디오와 소수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더더욱 공익을 위한 방송 규제를 복원하고 강화해야 한다. 액세스 채널을 실질적으로 유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브로드밴드(광대역 인터넷)를 - 지자체가 직접 망을 깔아서라도 - 모든 사람들에게 값싸게 공급해야 한다. 인터넷의 개방성은 당연히 유지되어야 한다.” (이 전투적인 발언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FCC 위원 조나단 아델스타인이다.) “멤피스에서는 현재 매우 중요한 투쟁이 진행 중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계 최대의 민영 감옥을 지으려는 정부의 시도를 저지하려는 지역 단체들의 운동이다. 그러한 투쟁을 진행 중인 그들이 있는 도시에서 이 회의를 하게 된 것이 자랑스럽다.... 이제 서로를 감싸 안으며 운동을 함께 낙관적으로 끌고 가자. 킹 목사는 “불만, 비판이 있다”고 하지 않고 “꿈이 있다”고 했다. 우리의 눈으로 미래를 그리며 연대하며 나아가자.” (밴 존스) 발언을 통해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미디어 개혁 회의는 현재 미디어 운동의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포괄하면서도 상당히 급진적인 지향을 포괄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도 긴장은 있다. 그 긴장은 ‘미디어 개혁’과 ‘미디어 정의’라는 용어의 차이로도 드러난다. 마치 ‘개량’과 ‘혁명’의 차이를 연상시키는 이 용어의 차이는, 풀뿌리 민중과의 강력한 연대를 기초로 보다 급진적 지향을 지니고자 하는 운동 진영이 자신의 의제와 지향을, 상층 로비 중심의 부분적 개혁에 머무를 우려가 있는 ‘개혁’ 운동의 그것과 구분 짓기 위해 ‘정의 (justice)’의 개념을 주장하면서 비롯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회의 그리고 미국 미디어 운동의 현 상황은 급진적 경향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면서 전체 운동이 ‘개혁’으로 표현되는 과도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내부 역학이 어떻게 앞으로 전개될 것인지도 주목할 지점의 하나이다. 3.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터넷을 위하여 : 네트 중립성 이제 보다 구체적인 이슈들을 점검해보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회의는 너무도 광범위한 주제들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논의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다만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이슈를 뽑아본다면 그 중 첫 번째는 무엇보다도 ‘네트워크 중립성’ (Network neutrality)이다. 하나TV가 서비스되는 과정에서 네트워크 중립성 이슈가 불거진 한국의 경우와는 달리 미국의 경우 네트워크 중립성을 둘러싼 각축전은 전체 인터넷을 관통하는 원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 모으면서 전개되어왔다. 우선 개념부터 정리해보자. 안타까운 점 한 가지는 이 네트워크 중립성의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이며 여전히 논쟁중이라는 것이다. 벨 사우스와 합병하려던 AT&T가 미디어 운동의 네트워크 중립성 보장 요구에 대해 처음 내어놓은 대답은 “규정할 수 없는 것은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네트워크 중립성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 중 한사람인 팀 우는 이번 회의에서 이 문제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인터넷 중립성의 이슈는 매우 복잡해보이지만 간단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인터넷의 특수한 성격, 다른 미디어와 구별되는 성격을 유지하고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내가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인터넷의 특수성은 민주적이고 (간섭 없이 누구나 이 공간에서 말할 수 있다), 창조적이며 (마치 전기 코드를 아무 전원에나 꽂으면 되듯이 누구나 어떤 장비나 접속해서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접속하는 누구도 차별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이슈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 인터넷의 본질과 관련된 것이다.” 팀 우가 이 이슈를 둘러싼 논쟁에 뛰어들게 된 개인적 계기를 살펴보면 더욱 이해가 쉬울 것이다. 팀 우는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터넷 네트워크 관련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시 팀 우는 어떤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심각한 회의에 빠져들었다. 그 프로젝트는 다름 아니라 “인터넷 내부의 특정한 콘텐츠 혹은 트래픽을 차별적으로 취급하는 기술 개발” 프로젝트였으며, 그 발주자들은 인터넷을 정치적으로 통제하고자 하는 중국 정부,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보다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하는 전화회사였다. 이런 류의 기술이 개발된다면 현재의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인터넷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며, 게이트 키퍼(출입자를 통제하는 기관)에 의해 다른 매체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이라고 본 팀 우는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인터넷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인터넷 중립성을 둘러싼 논쟁은 인터넷의 미래를 놓고 벌이는 한판 승부라고 할 수 있는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투쟁 과정이 매우 창조적인 대중적 참여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슈는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보다 이해하기 쉬운 내용으로 가공되었고, 이를 접한 더 많은 현장의 예술가, 제작자, 평범한 시민들, 특히 그동안 “정치적으로 활동적이지 않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뮤직 비디오, 패러디 비디오 등을 제작 배포하고, 나아가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항의방문 등을 조직하면서 네트워크 중립성 보장 투쟁은 보기 드문 대중적 투쟁으로 발전해갔다. “의회를 뒤집은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지역 주민들의 총회(townhall meeting)였다.(아담 그린)” 이러한 대중적 항의에 의해 FCC 역시 기본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고 결국 AT&T는 합병 승인을 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중립성 보장을 합병의 조건으로 내걸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규정할 수 없다고 우기던 이 거대 자본은 대중투쟁에 의해 다른 어떤 활동가들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네트워크 중립성을 스스로 정리해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투쟁은 일차적으로는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많은 발표자들이 얘기했듯이 투쟁은 지금부터인 셈이다. 우선, AT&T의 이번 합의는 기한이 2년으로 되어있으며 2년 후 이 규제는 재평가되고 수정될 예정이다. 따라서 남은 2년 동안 새로운 차원의 투쟁이 없다면 이번의 승리는 물거품이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이번 합의에서 AT&T가 새롭게 구축할 프리미엄망은 규제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 프리미엄망은 IPTV 서비스와 (이 부분 때문에 국내에서도 IPTV에는 네트워크 중립성이 적용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할 예정이며 그런 점에서 이번 승리는 절반의 승리였던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투쟁은 인터넷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투쟁이면서 동시에 사회 전반의 사유화와 독점을 강화하는 자본의 공세를 꺾어내는 포괄적 의미를 지닌 투쟁이다. 한 발표자가 지적했듯이, “AT&T 사장의 취미는 자기 목장의 나무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것이다. 이들은 미친놈들(crazy maniacs)이며, 우리는 전쟁, 지재권, 환경 등의 이슈에 있어서 언제나 똑같은 악당들과 싸운다.” 하나의 전선에서의 승리는 전체 투쟁에 영향을 끼친다. 한국의 경우 네트워크 중립성 이슈는 우리의 인터넷 환경을 재해석하면서 재검토해야 하는 이슈이며, 보다 많은 연구와 정책 대응이 필요한 주제이다. 미국의 선례를 참조하면서, 특히 그 대중적 운동으로부터 배우면서, 동시에 미국의 정책적 대응이 지닌 한계인 자본에 대한 통제력의 취약성을 극복하면서 우리 나름의 싸움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캠페인 과정은 http://www.savetheinternet.org 을 참조하면 된다. 뮤직 비디오, 캠페인 통계 등을 포함하는 각종 정보가 인상적이며, 올해 활동의 목표는 네트워크 중립성을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4. 공영답지 않은 공영방송의 개혁, 두 가지 방향 인터넷 시대이다 보니 아무래도 상당 부분의 논의는 인터넷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상당수 참가자들의 관심을 불러 모은 것은 공영방송의 개혁 혹은 혁신에 관한 것이었다. 이 주제는 미국의 경우 오랜 숙원 사업과도 연결된 주제였는데, 이 주제에 대한 워크숍은 공화당이 선거에서 참패한 것을 계기로 어느 정도 정책적 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배경 설명을 한 가지 할 필요가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미국은 공영방송 관련 제도에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엄청난 후진국이다. 비록 <POV>나 <인디펜던트 렌즈>처럼 한국 방송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비판적, 실험적 독립영화 지원 프로그램이 PBS에 있긴 하지만, PBS는 재원의 상당 부분을 기업의 스폰서쉽에 의존하며 프로그램의 상당수가 매우 (선정적이라기보다는) 상업적이며 보수적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에는 아직도 시청료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상업방송이 먼저 채널을 확보한 상태에서 나중에 공영방송 PBS가 설립되었으며, PBS는 비록 법적 기구이긴 하나 시청료를 재원으로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재원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의회의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도 못하다. 그래서 이번 회의에서는 이제야말로 미국에도 시청료에 기반 한 공영방송 구조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자연스럽게 제기되었고, 일부 해외 참석자들 역시 자신이 거주하는 국가들의 사례를 들며 미국의 후진성을 성토했다. 하지만 동시에 제기된 한 가지 질문은 이것이었다. 한 참석자의 질문을 인용해보자. “아니, 이렇게 엉망으로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이 채널의 재정구조를 탄탄하게 해준다고 그들이 과연 프로그램을 혁신시킬까? 결국 걔들 이권만 보장해주는 것만 되는 것은 아닌지...” 제도 영역에 대한 개입이 지닌 근본적인 딜레마를 반영하는 이런 우려에 대해 미디어 모니터 전문 단체인 FAIR (Fairness and accuracy in reporting : 보도에 있어서 공정성과 정확성을 위하여) 소속 발표자는 결국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재정 구조의 혁신과 민중에 복무하는 조직구조 및 편성원칙의 재구성을 동시에 제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원칙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KBS의 시청료 문제 역시 이러한 원칙적인 제안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역시 공영방송의 구조와 편성의 구체적 혁신 방안을 위한 논의를, 단순한 기존 시스템의 방어가 아닌 혁신이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주류와 독립/공공 미디어 영역을 아우르는 포괄적 미디어 실천의 조직이라는 차원에서 새롭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개혁적 인사들이 공영방송의 수장이 된 이후에 드러나고 있는 현재의 한계들은 매우 정치적인 한계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혁신 계획과 연대의 공백이 빚어낸 한계이기 때문이다. * <미디어 개혁 회의 The national conference for media reform> 참관기 2부는 ACT!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2부 5. 위기 혹은 기회를 마주한 퍼블릭 액세스 6. 미디어 운동의 독자적 인프라 7. 전국적 연대 그리고 국제주의 8. 현장과 함께 하는 정책 연구와 실천 9. 부럽기도, 아쉽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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