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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3호 미디어인터내셔널] TV를 보지 말라!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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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3호 / 2007년 7월 6일

 

 

TV를 보지 말라! 만들어라!

 

최세진

지난 2005년 베네수엘라의 빈민 공동체에 잠시 머물면서 활동가들과 함께 지냈던 경험이 있었던 탓에 요즘 주변에서 "베네수엘라에서 언론탄압 어쩌고 했다는 게 무슨 이야기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게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우며, '언론탄압이다 아니다'라는 식으로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지내는 동안 베네수엘라 활동가와 빈민들로부터 직접 듣고 경험했던 것들을 들려주는 것 밖에 없었는데, 이 글은 제가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먼저 최근 일어난 그 '언론탄압 어쩌고'하는 이야기는 지난 5월 27일 베네수엘라 정부가 극우 언론 RCTV의 방영권(방송 전파 사용권)의 재인가를 거부한 사건입니다. 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논란이 요란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주로 미국의 언론과 의회에서는 차베스 군부 독재에 의한 언론탄압이라 주장하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2002년 군부 쿠데타 당시 주요한 역할을 맡았던 RCTV의 보도 행태나 평소 선정성, 폭력성 등을 내세우며 베네수엘라 법률에 의한 합법적이고 당연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논쟁이 국제적으로 펼쳐지는 상황이니까, 베네수엘라 혁명을 한번쯤 들어봤던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관심을 가질만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그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언론탄압인지 아닌지' 보다는, 도대체 왜 베네수엘라 정부는 왜 진작에 그 쓰레기 같은 RCTV를 폐쇄하지 않았으며, 또 혁명 헌법이 들어선지 거의 10년이 지난 현재 모든 권력을 다 움켜진 상황에서도 극우 언론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다니게 할 수 있는지, 그 인내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현재까지 베네수엘라에는 극우 상업 방송 3개가 아직도 방송중이며, 대부분의 주류 신문은 모두 극우 상업신문들입니다. 80%의 주류 언론이 극우라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2005년 제가 베네수엘라에 머물 때도 이 극우 방송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었는데, 대통령을 부르는 명칭은 아예 '살인마 차베스'였고, 낮이고 밤이고 포르노 못지않은 선정적인 방송을 틀어대고 있었습니다. 야밤에 나오는 성인 방송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이 한참 TV를 볼 시간인 오후 5시에 이런 장면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10대의 글래머 여자애들이 비키니를 입고 나와서 온몸에 휴지를 둘둘 감고 일렬로 서 있으면, 남자애들이 나와서 여자애들에게 물총을 쏘고, 가슴과 몸에 물총을 맞는 여자애들은 꺅꺅 소리를 지르면서 즐거워합니다. 온 몸에 물총을 맞으면 휴지가 흘러 녹으면서 여자애들의 몸매가 드러나고, 가장 먼저 휴지를 다 녹인 남자애가 이기는 게임입니다. 이런 방송을 오후 5시에 하더군요.

베네수엘라의 메이저 상업언론들을 보면, 조갑제 같은 극우 찌질이들의 논평으로 가득 찬 뉴스와 스포츠 신문에 실리는 선정적인 광고물 같은 쇼들이 하루 종일 반복해서 나오는 거라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소위 '혁명 정부'라는 현재 베네수엘라 정부는 도대체 이런 쓰레기같은 방송들을 10년이 넘도록 내버려 둔 이유가 뭘까요?

[사진 왼쪽 : 베네수엘라의 주요 일간지 중 하나인 < El Mundo(세계, 세상) >의 건물을 통째로 뒤덮고 있는 광고물. '앞서가기 위해 세상을 가져라' 오른쪽 : 차베스 탄핵투표 당시 차베스 탄핵에 찬성하라는 우익들의 광고]
차베스 정권은 2002년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그 주동 세력이었던 우익 군부들을 처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쿠데타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 조직하고, 지원했던 우익 언론들에 대해 전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역사에 유래가 없는 수준으로 계속 그들의 '언론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해 왔습니다. 초기에 차베스 정권은 이러한 유화 정책을 통해 반혁명세력들이 혁명진영으로 흡수될 것을 기대했지만, 쿠데타 직후 제거되었어야 할 이 우익 언론들은 바로 다음날부터 차베스를 '살인마'라고 부르면서, 다시 2003년 자본 총파업을 주도하고, 2004년 차베스 탄핵 투표에 앞장섰습니다.

물론 베네수엘라에도 그 쓰레기 언론의 폐쇄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계속 있었습니다. 보통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마치 차베스가 혁명을 지도하고 있으며, 전 민중이 차베스를 절대적으로 추종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차베스 정권과 민중운동진영 사이에는 의외로 많은 논쟁들이 있으며, 상호 비판을 통한 긴장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긴장관계는 차베스 정권 초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데, 베네수엘라의 많은 민중들과 활동가들은 차베스가 베네수엘라의 혁명을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니고, 차베스야 말로 민중 투쟁의 결과물이라고 보고 있으며, 전체 혁명의 대오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우익에 맞설 때는 차베스와 함께 하지만, 그 내부적으로는 차베스 정권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과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진보진영이 분열되었다던가, 차베스가 알고 보니 우익 포퓰리스트라더라 같은 문제가 아니고, 변혁 과정에 있어서 당연히 있어야 할 건강한 비판과 긴장관계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사진 설명 : 대검찰청 앞에서 독립 미디어 활동가들이 우익 상업 언론들을 처벌하라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속 왼쪽의 하얀 피켓에는 '베네비션(Venevision, 상업방송 중 하나)은 쿠데타 참가자'라고 쓰여 있고, 가운데의 붉은 포스터에는 '텔레비젼을 보지 말라. 만들어라!'라는 독립 방송 까띠아 떼베(Catia TVe)의 유명한 구호가 쓰여 있다. 이 집회는 독립 방송인 까띠아 떼베가 우익 집회를 취재하러 갔을 때, 상업 방송의 카메라맨이 까띠아 떼베의 카메라를 빼앗아서 부셨던 사건 때문이다. 이에 화가 난 독립 미디어 활동가들이 이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대검찰청 앞에서 열고 검찰청장과 면담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
만일 민중들이 우익 언론과 차베스의 입 사이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차베스 정권이 아무리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고 해도 현재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만일 차베스 정권이 민중을 지도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민중들도 차베스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면, 차베스 정권은 결코 여유로운 유화정책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차베스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지역 공동체 등을 통해 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민중들은 차베스의 지침을 기다리기 보다는 자신들의 직접 투쟁을 통해 스스로 언론의 자유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공동체의 공동체 라디오나, 모든 동네주민이 참가해서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 신문들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베네수엘라 민중과 차베스 정권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다른 종류의 상상력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민중들은 스스로 투쟁했고, 차베스 정권은 언론 권력을 무력으로 강탈하기 보다는 민중들에게 실질적인 언론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서 극우 언론을 고립?무력화 시켜갑니다. 그것은 바로 아래로부터 형성된 '민중 언론', '공동체 언론'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베네수엘라는 언론의 자유가 언론사의 자유가 아니라 민중들의 자유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으며, 극우 언론에 맞서서는 것은 공권력이나 권력자의 입이 아니라 민중들에게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2002년 쿠데타 직후 베네수엘라 정부는 기존의 언론을 맞서서 물리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먼저 공영방송 채널을 하나 더 늘렸습니다.(Vive TV 2003년 11월 발족) 그리고 우익 쿠데타 기간에 군부에 의해 박살이 났던 Catia TVe(까띠아 떼베)가 방송 시설로 사용할 수 있도록 건물 한 채를 50년 영구 임대해 주었습니다. 또한 공동체 , 자유 , 대안 미디어 전국연합(Asociacion Nacional de Medios Comunitarios, Libres y Alternativos, ANMCLA)에 예산을 지원하고, 미션 꼬무니까시온(Mision Communicacion)을 통해 공동체 미디어를 강화해 나갑니다.

 

이번에 RCTV의 재인가 취소 또한 바로 이러한 정책의 연장선에서 진행된 것입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RCTV의 경영자나 기자들을 탄압하거나, 회사를 몰수하지 않았습니다. 베네수엘라가 선택한 정책은, 자본이 독점하던 공공의 재산인 방송 전파를 민중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되찾은 RCTV의 채널에서는 그 다음날부터 TVes(떼베스, 베네수엘라 사회 텔레비젼(Televisora Venezolana Social)의 약칭으로서 Te Ves (당신 자신을 보라)와 발음이 같음)라는 공공 TV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TVes는 베네수엘라 국내의 문화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독립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방송 시간을 할애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늦게나마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RCTV의 전파를 되찾아 언론의 자유를 향한 투쟁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을 전 세계 민중들과 함께 축하하며, 다른 극우 언론들도 곧 민중의 손에 의해 그 입을 닫게 될 날을 기다립니다.

한편 겉으로는 조중동에 날카로운 칼을 치켜드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언론사의 자유를 무한정 보장해주면서 '닫힌 채널' 사태, '인터넷 실명제' 등 민중들의 자발적 언론을 개발바닥의 때만큼도 취급하지 않는 소위 '참여정부' 노무현 정권이 이번 베네수엘라의 사건을 통해 조금이라도 교훈을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물론 진정한 언론의 자유는 누구도 우리들을 대신해서 찾아줄 수 없습니다. '참여정부'가 아니라 '혁명정부'가 들어선다고 할지라도 언론의 자유를 찾아오는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베네수엘라의 민중들을 향해 박수를 치는 바로 그 손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RCTV를 위해서 울지 말아요 (Don't Cry for Venezuela's RCTV)

글쓴이 : 찰리 하디 (Charlie Hardy), NarcoSphere 
번역 : 최세진

이 글을 쓰면서 나는 1992년 2월 10일에 발간된 베네수엘라의 신문 < El Diario >를 읽고 있다. 2번째 페이지가 절반 이상 비어있고, 4번째 페이지는 통째로 지워진 편집판이다. 이 기사들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까를로스 안드레스 뻬레스(Carlos Andres Perez)에 의해 검열당한 것이다.

그 신문은 베네수엘라에서 ‘예외적’으로 민주적인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차베스 정권이 들어서기 전 수많은 끔찍한 기억 중 하나일 뿐이다.

미국의 신문들은 베네수엘라가 한 때 자기들이 현재 베네수엘라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 하는 바로 그와 같은 상태였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베네수엘라에서 22년째 살고 있지만, 베네수엘라 인민들이 현재 차베스 정권 아래에서 누리고 있는 것 같은 이런 자유를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 자유에는 정보의 자유도 포함된다. 지난 22년간 어떤 대중 매체도 차베스 집권 기간 동안 부여된 자유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누구든지 반 차베스 신문이나, 반 차베스 평론가들로 가득한 방송과 텔레비전 채널을 거리에서 자유롭게 사거나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 5월 27일 베네수엘라 정부는, 50년 넘게 방송을 해왔던 RCTV의 방영권을 재인가 하지 않을 것이다. RCTV의 사장인 마르시엘 그라니에르(Marciel Granier)는 그동안 곧 방영권을 잃을 것이라면서 전 세계를 돌면서 우는 소리를 해왔다. 심지어 미국 의회의 갑부들도 그라니에르가 방영권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재미있게도, 그라니에르는 1992년 < El Diario >가 검열 당했을 때 그 신문사의 사장이었다. 그라니에르는 당시 불평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신문을 샀고, 그는 돈을 벌었다.

미국의 신문 기자들이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과 미국 의원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수십만의 베네수엘라인들이 오늘 밤에 RCTV 방영권이 종료된 것을 밤새 축하할 것이란 사실이다. 그들은 베네수엘라의 곳곳의 시내 광장과 골목에서 전파가 누구의 소요인지, 텔레비전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방영되어야 할지 논의해왔다. 베네수엘라인들은 부자라는 이유로 민중의 전파를 20년 동안 살 수 있다는 것이 진실로 공정한 일인지 묻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미디어 독재자였던 그라니에르의 허락이 없이는 독립 제작자들이 프로그램을 선보일 기회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라니에르는 성인(聖人)도 아니고, 그의 채널은 성스러운 지상 천국도 아니었다. RCTV는 차베스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도 베네수엘라 정부에 의해 5차례나 중단된 일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81년에는 24시간 동안 중단된 적이 있었는데, 음란한 장면을 방송했기 때문이었다.

2002년 RCTV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전복하기 위한 쿠데타에 참여하기 위해 베네수엘라인들을 대통령궁을 향해 행진하게끔 적극적으로 부추겼다.

마르시엘 그라니에르는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뉴스의 책임 프로듀서에게 쿠데타 당일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어떤 정보도 방송하지 말라고 명확한 지침을 내렸다.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였다면 이런 행동을 묵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차베스가 권력으로 복귀했을 때, 그 채널에 대한 어떤 보복도 없었다.

아니다. 5월 27일은 베네수엘라의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슬픈 날이 아니다. 그러니 RCTV의 방영권이 재인가 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그라니에르씨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말라. 그는 아직도 케이블이나 위성 방송을 통해 방송을 할 수 있고, 그의 프로그램을 다른 방송국에 판매할 수도 있다. 그 대신, 수년간 한 부자에 의해 통제되었던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된 수천의 베네수엘라인들과 모든 독립 제작자들과 함께 기뻐하라. 5월 28일은 베네수엘라에서 축제일이 될 것이다. 그 날은 전 세계에서 자유를 기념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출처 : Venezuela 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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