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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0호 이슈] 문화다양성협약, 대안세계화 문화운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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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0호 / 2007년 4월 9일

 

 

문화다양성협약, 대안세계화 문화운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최준영 /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ptrevo@jinbo.net 

문화다양성에 대한 이질적인 이해들
‘문화다양성’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감성적이고 심미적인 세계화의 과정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국경 바깥을 향하고 있으며, 물질적인 생산관계나 권력관계보다는 탈정치화된 욕망의 추구라는 관점으로 ‘문화다양성’을 긍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벽시간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를 생중계로 볼 수 있고, 외국의 패션과 요리를 길거리에서 언제든지 마주칠 수 있으며 또한 해외 뉴스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는 ‘접근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문화다양성의 가치와 필요성은 긍정되고 있다. 이러한 순수 문화주의적인 접근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양한 문화들 간의 소통의 문제는 적극적으로 옹호해야 할 우리의 권리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접근의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는가라는 점을 사고할 때, 문제는 달라진다. ‘문화다양성’을 ‘다양한 문화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게 되면 글로벌과 로컬 간의 긴장관계나 문화상품의 생산과 소통과정을 장악하고 왜곡하는 자본의 문제,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직,간접적인 수단, 전략으로 활용되는 문화다원주의의 문제 등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실제 세계 문화산업 시장을 몇몇 국가 및 초국적 자본이 주도하고 있는 현실, 그리고 문화 생산물들의 소통 또한 초국적 미디어자본이 장악한 상황에서 ‘순수하게 문화적인 과정으로만’ 문화다양성을 바라본다면 그 결과는 오히려 문화다양성의 파괴(=획일화)로 이어질 개연성이 큰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이렇게 ‘문화다양성’이라는 말의 실제 쓰임 속에는 공존하고 경쟁하는 이질적인 개념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구체적인 현실 - 제도, 생산관계, 권력관계 등 -에 대한 분석 속에서, 자본이 강요하는 ‘획일화된 다양성’이 아닌 대중들의 자율적인 소통이 전제되는 다양성, 그리고 이를 가로막는 제약들과의 싸움 속에서 ‘형성되는 문화다양성’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지는 문화다양성의 개념에는 한 사회와 공동체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국가적,민족적 또는 로컬 차원의 ‘문화’에 대한 존중과 공존의 개념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이 발효되다,

따라서 우리는 얼마 전 발효된 - 하지만 한국의 국회비준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 유네스코의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협약>)을 이해할 때에도 이러한 실천적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문화다양성협약>이 형식적인 존재감‘만’ 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왜곡되는 ‘문화다양성’을 둘러싼 현실의 갈등과 싸움의 장으로 <문화다양성협약>을 끌어내는 기획과 실천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 체결을 전후로 한 실천과제를 고민하기 위해 먼저 <문화다양성협약> 체결 과정에서의 부침을 살펴보자.
지난 3월 18일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이 드디어 국제적으로 발효되었다. 200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회원국의 압도적인 지지 - 찬성 148개국, 반대 2개국(미국, 이스라엘) - 로 채택된 이후 각 국은 <문화다양성협약의 국회 비준절차 등을 거쳤고, 협약에 명시된 대로 30번째 비준 국가의 비준서가 유네스코에 도착한 3월 18일 협약의 효력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현재 비준국가는 50개가 넘는다). 탈퇴한 유네스코에 다시 가입하면서까지 <문화다양성협약> 체결을 저지하려했던 미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화다양성협약>은 결국 국제적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국회 비준을 거치치 못해 <문화다양성협약>의 효력이 발생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외교통상부는 협약을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로써 연구보고서를 발표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기까지 하다. 국회 천영세 의원실의 발표에 따르면, 얼마 전 외교통상부가 발표한 <문화다양성협약> 관련 연구용역보고서에는 국회 비준절차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즉 “국회동의 절차를 명시하고 있는 헌법 제60조의 조항은 <문화다양성협약> 중 의무조항인 제8조, 제9조, 제18조에 대해 유보안을 낸다면 저촉되지 않는다”라는 법률검토 의견을 낸 것이다. 다시 말해 협약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의무조항’을 지키지 말자는 말인데, “이럴 거면 애초에 뭐 하러 협약 채택에 찬성했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문화다양성협약>의 주요 내용

그렇다면 과연 <문화다양성협약>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겨 있을까. <문화다양성협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 1)
- 국제법 하에서 문화상품 및 서비스가 가치관, 정체성, 의미를 갖는 수단으로서 독특한 특성을 지님을 인정한다.
- 국내적으로 문화적 표현의 진정한 다양성을 실현하기 위한 문화적 정책을 채택할 수 있는 국가의 권리를 명확히 보장한다.
- 국제법 하에서 본 협약이 갖는 법적 지위는 무역협정을 포함한 기타 국제협약의 그것과 동일하다.
- 국가들이 기타 국제협약 이행 시 뿐만 아니라 자국이 체결한 협약을 적용, 해석할 시에도 본 협약의 조항을 고려하도록 장려한다.
- 분쟁 해결 메커니즘을 적용함으로써 무역협정에서 문화가 어떠한 식으로 다뤄지는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문화정책 관련 결정사항을 수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기른다.
- 선진국이 개도국의 신흥 문화산업 육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포함한다.

<문화다양성협약>은 특히 국가적 수준의 고유한 문화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문화다양성협약>이 다른 무역협정 등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미국이 <문화다양성협약>에 주목한 것이 이 때문인데, 세계 문화산업을 독점하고 있는 자국의 초국적 문화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는 일국 차원의 고유한 문화정책의 수립을 보장,장려하는 <문화다양성협약>의 무력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조항으로 들어가 이 문제를 살펴보자. <문화다양성협약> 제6조 국가적 차원의 당사국 권리는 다음의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6조 국가적 차원의 당사국 권리
1. 각 당사국은 제4조 제6항에서 정의된 문화정책과 조치의 틀 내에서 자국의 특수한 상황과 필요성을 고려해, 그 영토 내에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조치를 채택할 수 있다.
2. 그러한 조치는 다음 사항을 포함한다.
a)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규제 조치
b) 문화 활동, 상품 및 서비스에 이용되는 언어에 대한 규정을 포함하여, 당사국 영토 내의 모든 문화 활동, 상품 및 서비스 가운데 자국의 것이 창조, 생산, 보급, 유통, 향유될 수 있는 기회를 적절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조치
c) 비공식 부문의 독립적 문화 산업과 활동이 문화 활동, 상품 및 서비스의 생산, 보급, 유통수단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마련한 수단
d) 비영리 조직, 공공, 민간기관, 예술가 및 기타 문화전문가들이 생각, 문화적 표현, 문화 활동, 상품 및 서비스를 자유롭게 교환하고 유통할 수 있도록 하고, 또 그들의 활동에 창조적 정신과 기업가적 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장려하는 조치
e) 적절하고 공공기관을 설립하고 지원하기 위한 조치
f) 예술가 및 문화적 표현의 창조에 관여하는 사람들을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한 조치
g) 공영방송 이용을 포함하여 미디어의 다양성 증진을 위한 조치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와 구분되는 문화적 표현물의 특수성”이 인정되고, 그러한 문화적 표현물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고유한 문화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보장되면서 이러한 내용이 “다른 무역협약과 동등한 지위”를 얻는다는 <문화다양성협약>의 ‘3박자’가 제대로 갖춰진다면, WTO 및 FTA 등 자유무역협상에서 문화를 서비스산업에 포함시켜 시장개방과 규제철폐를 도모하고 있는 현재의 국제무역질서와는 배치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문화다양성협약>이다.

한미FTA와 문화다양성, 문화다양성협약

미국의 <문화다양성협약> 체결 저지 시도나 한국의 외교통상부가 연구용역보고서를 발표한 것도 바로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은 미국과의 FTA 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한미FTA 협상을 채 시작도 하기 전에 ‘4대 선결조건’의 하나로 스크린쿼터를 반토막 내어 버린 상황에서, ‘당사국 영토 내의 모든 문화 활동, 상품 및 서비스 가운데 자국의 것이 창조, 생산, 보급, 유통, 향유될 수 있는 기회를 적절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조치’를 채택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다양성협약>을, 한미FTA 체결을 앞두고 비준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렇다면 <문화다양성협약> 국회 비준이 지지부진 미루어지는 이유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스크린쿼터만이 아니다. 한미FTA 협상 경과에 대한 제한적인 정보 속에서도 한미FTA가 문화영역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력이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자료(주 2)에 따르면, 미국은 ① 외국 프로그램의 월별 공중파TV 방영비율 20% 상한선에 대한 해제, ② 외국 프로그램의 연간 공중파TV 방영률 중 영화 75%, 애니메이션 55%, 대중음악 40%의 상한선 해제, ③ 외국인의 공중파TV 투자금지 조항의 해제, ④ 케이블TV의 경우 채널당 외화 방영시간이 총 방영시간의 50%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제의 해제, ⑤ 외국인의 케이블TV와 관련된 시스템 사업자,네트워크 사업자,프로그램 공급자의 지분 49% 상한선 조항 해제, ⑥ 외국 프로그램의 위성 재송신을 원할 경우 한국방송위원회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는 규정 해제, ⑦ 외국 재송신 위성채널의 수를 총 위성채널 수의 20%로 제한한 규정의 해제, ⑧ 외국인 재송신 채널의 광고와 더빙에 대한 규제 해제, ⑨ 한국방송광고공사의 해체 등 방송시장에 대한 사실상의 전면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방송 이외에도 국공립문화예술기관의 민영화, 교육시장 개방으로 인한 문화예술교육의 축소, 지적재산권 강화로 인한 공연예술의 기반 붕괴 등 기초예술분야에서의 직,간접적인 피해도 상당할 전망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WTO 협상의 출범과 함께 ‘문화’가 ‘무역이 가능한 상품과 서비스’로 분류되어 국제 자유무역체제를 구축하는 협상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농업, 지적재산권, 문화서비스 등이 초국적 자본의 주요한 이윤창출 수단이 되어 WTO, FTA 등 무역협상에서의 중요 의제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다양성협약>의 고민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90년대 중반 이후로 “문화는 상품이 아니며, 문화의 논리로 교류되고 소통되어야 한다”는 기본 정신 아래 국제문화NGO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협약의 체결을 추진하였고, 그 성과가 유네스코를 통한 <문화다양성협약>으로 맺어진 것이다.

<문화다양성협약>의 의미와 한계, 이후 과제

<문화다양성협약>을 고민하게 된 애초의 출발점이 바로 WTO와 같은 자유무역질서에서 문화영역을 예외로 하자는 주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다양성협약>의 체결이 곧바로 WTO, FTA 등 자유무역질서와의 경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두에 언급한대로 ‘문화다양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질적인 이해가 존재하는 상황이므로, 우리는 초국적 자본의 문화독점에 맞선 싸움의 과정에서 <문화다양성협약>의 의미를 획득해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싸움의 과정이 생략된다면, <문화다양성협약>은 형식적이고 상징적인 의미 이상을 가지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문화운동은 <문화다양성협약>을 전후로 한 적극적인 실천을 기획하고 조직해내야 한다. 이는 결국 초국적 문화자본의 운동 - 제도 개악, 생산 및 재생산영역에서의 문화독점, 자본에 의한 미디어의 장악 등 - 에 맞선 총체적인 저항과 대안 생산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질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삶과 의식까지도 자본에 의해 전유되는 질서다. 한미FTA 체결이 가져올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피해 - 정체성, 다양성, 공공성의 상실과 파괴 - 에 대한 대중적인 저항의 조직과 함께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민중의 세계화, 대안세계화 문화운동의 구성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삶이 아닌 민중적, 대안적 삶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생태적이고도 문화적인 삶, 독점과 소유가 아닌 교류와 공존에 기반 한 삶, 소수자의 문화가 차별받지 않는 삶의 질서를 창출하는 것만이 자본의 세계화가 강요하는 생산과 소비의 확대 메커니즘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1. 출처 :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2. 「한미FTA가 영화와 문화예술에 미칠 악영향」, 『한미FTA 국민보고서』(그린비, 200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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