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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2호 이슈] 인터넷 감시사회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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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2호 / 2007년 6월 6일

 

 

인터넷 감시사회의 길목에서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어떤 나라의 얘기다. 그 나라에서는 국민이 인터넷을 이용할 때마다 그 이용 내역을 일일이 노트에 적도록 한단다. 언제, 어디서, 어느 사이트에 접속했고, 어떤 게시판을 읽었고, 어떤 파일을 내려 받았고, 몇 번 게시물을 썼는지 시시콜콜하게 기록하도록 한단다. 이런 법을 만든 나랏님들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불법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기록이 있으면 나중에 누군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추적하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란다. 1년치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인터넷에서 어떤 것에 관심을 가졌고 누구를 만났는지 앉은 자리에서 일목요연하게 훑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나라 사람들이 이 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을 때, “범죄자는 잡아넣어야지”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렇지만 “어쩐지 기분이 좀 나쁘다”고 덧붙인다. 아직은 어느 누구도 범죄자가 아닌데 범죄자로 취급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퀴즈! 이 나라 사람들이 침해받고 있는 인권은 무엇일까?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 한 다.”헌법 제18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 권이다. 국민이 어느 누구로부터도 감시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상대방과 자유롭게 편지를 주고받고 전화를 쓰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다는 권리. 우 리는 이것을 ‘통신의 자유’라 부른다. 그런데 국 가가 수사상 필요에 의해 국민의 통신의 비밀과 자유 를 제한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범죄 수사의 명목 으로 감청을 하거나 통화 내역을 살펴볼 수 있는 것 이다. 그 때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통신의 자유를 침 해하지 않기 위해 그 대상을 한정하고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많은 국가들에서 헌법에 국민의 ‘통신의 자유’를 명시하고, 이 기본 권을 지키기 위한 법률을 제정해 두었다. 우리나라에 서도 지난 1993년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되었다. 

다음으로 두 번째 퀴즈! 정말 인터넷 이용 기록을 일일이 기록하도록 강제하는 나라가 있을까?

전 국민의 인터넷 이용기록을 감시지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불행히도 우리가 그 나라에 살게 될 것이다. 노트 대신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기록하도록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지난 3월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심사소위원회에서 공개된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서는 제15조의2 제5항에 ‘전기통신사업자는 1년의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간 동안 통신사실확인자료를 보관하여야한다.’라로 규정했다. 그리고 ‘통신사실확인자료를 보관하지 아니한 자’는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하였다.(제20조) 여기서 ‘통신사실확인자료’란, 통신한 일시, 장소, 상대방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흔히 ‘통화 내역’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최근 여기에 ‘컴퓨터통신 또는 인터넷의 로그기록자료’라는 것이 포함되었다.(제2조)


로그기록이란, 누가 언제 어떤 게시판을 읽고 어떤 게시물을 썼는지 등 인터넷 이용 상황을 나타내는 기록이다. 모든 인터넷 서버는 인터넷 로그기록을 자동으로 남긴다. 
또 로그기록의 일부인 IP주소는 ‘255.456.255.2’처럼 4개 그룹 숫자로 되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어디서 접속했는지를 알려 주는 위치정보를 담고 있다. 인터넷은 그 특성상 컴퓨터마다주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IP주소를 알면 해당 접속자가 어느 
지역 어느 집에서 접속했는지를 알 수 있다. 경찰은 전국 PC방의 자리번호까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인터넷이 익명의 공간이라는 것은 잘 모르는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그럼 이것이 흉악한 범죄자만의 문제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수사선상에 오르기만 해도 추적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인터넷 로그기록을 요구하는 경찰 공문을 자주 받는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명예훼손 분쟁에 대한 것이다. 즉, 게시판에서 말다툼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고소했을 경우, 고소를 접수한 경찰이 그 상대방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는 사건이 흔한 것이다. 
물론 명예훼손도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수사기관은 권리 침해 사건을 수사해야 할 것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터넷 추적의 대상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흉악범’의 경우만이 아니라, 게시판의 사소한 분쟁에 휘말린 나 자신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6년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기무사 등 수사기관의 요구에 따라 통신사업자가 제공한 통신사실확인자료 건수는 150,743건 정도이다. 그중 인터넷이 41,681건을 차지하고 있다. 이 4만 여 건과 당신이 전혀 관계없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게다가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나마 범죄자만을 대상으로 해 왔던 수사기관의 추적과 감시가 전 국민에게 확대된다. ‘언제 범죄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이유로 모든 인터넷 사업자가 모든 인터넷 이용자의 모든 인터넷 이용 기록을 보관하도록 한 것이다. 전무후무한 제도라 아니할 수 없다.

통신비밀보호법이 개선되기는커녕...

사실 우리나라에서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해프닝 하나가 있다. 1992년에 ‘초원복집’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법무장관과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초원복집’이라는 식당에 모여 여당 후보에 대한 지원 방안을 은밀히 모의했는데, 그 대화내용이 녹음되어 유출된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 후 정치인들은 자신의 대화 내용이 누군가에게 도청당하고 유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고, 통신비밀보호법을 신속하게 제정하게 된 것이다.

인권적 요구보다 정치적 맥락에서 제정된 배경 때문인지, 통신비밀보호법은 일반 국민의 통신의 비밀을 보호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 왔다. 국민의 기본권보다 수사기관의 수사 편의
를 더 많이 봐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많은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 ‘긴급 감청’이라는 제도이다. 원래 수사기관이 감청이나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요청할 때는 법원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감청은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야 하고, 통신사실확인자료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 뿐 아니라 대개의 나라에서 이처럼 수사기관이 법원의 통제를 받도록 한 것은, 심증이 있다고 하여 범죄 혐의가 뚜렷치 않은 국민을 대상으로 감시를 남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우리 통신비밀보호법에는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수사기관이 36시간 동안 법원의 허가 없이 감청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 말인즉슨, 36시간이 넘지 않는 감청은 법원에게 전혀 알릴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수사기관의 국민 감시를 제한하기 위해 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독소조항을 추가했다. 우선 휴대폰 감청을 합법적으로 개시하도록 했다. 수사기관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전화 사업자로 하여금 휴대폰 감청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한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휴대폰 도청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소위 ‘안기부 X파일’ 논란으로 그 주장이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사실은 지난 2002년 3월까지 국가정보원에서 자체적인 장비를 이용해 국민의 휴대폰을 불법적으로 도청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사과와 제대로 된 진상규명도 없는 상태에서 휴대전화 감청의 재개는 국민에 대한 감시의 확대일 뿐이다. 수사기관의 감청 요건이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상황에서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휴대폰의 감청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도록 한 것은,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누구에 대해서든 상시적 감청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실명으로 개인 휴대폰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통신비밀의 보호가 과거 유선전화 시절보다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인데도, 우리 정부와 국회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인터넷 로그기록 보관 의무이다. 특별한 보안책도 없이 모든 국민의 인터넷 이용 생활에 대한 추적 자료를 1년간 보관하도록 한 것은 결국 수사기관이나 전기통신사업자에 의한 남용이나 누설 위험성을 한층 높여 놓은 것이다. 1년 ‘이상’ 자료를 보관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는 점에서, 관련 사업자들은 관련 자료를 ‘최소’ 1년 간 보관하고 그 이상의 기간도 보관하면서 자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용할 것임이 명약관화하다. 최근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수집, 유출로 인한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 사업자가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즉각 삭제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시급한데도 불구하고, 개정안은 오히려 개인정보 보호에 역행할 것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처럼 포괄적이고 엄격한 개인정보보호기본법률과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개인정보보호감독기구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는 국민의 개인정보가 장기간 유출되고 남용될 가능성을 매우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수사기관의 편의에 밀린 통신의 자유
법안이 논의되는 과정 또한 큰 문제이다. 이 법안은 형식적으로 지난 2005년부터 상정된 7개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통합하여 국회에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정부 차원의 공청회도 거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그 이면에서는 법무부,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이 법안 개정 과정에 깊이 개입해 있다. 이 점은 법안을 심사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속기록에 잘 드러나 있다. 특히 국가정보원에서는 법률안을 빠른 시일 내 처리할 것을 강력히 주문하였다. 그러나 국민의 통신의 비밀과 자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와 같은 법안이 국민의 여론 수렴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처리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신은 인터넷에서 자유로운가? 너무 자유로워서 악플이며 범죄가 판을 친다고 생각했는가? 그러나 이 개정안이 침해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자유와 비 밀이다. 더욱이 올 7월부터 실시될 포털의 실명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와 대 통령선거를 앞두고 실시될 선거시기실명제(공직선 거법)가 인터넷 로그기록 추적과 결합할 경우, 인 터넷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 시는 실종될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인터넷 감시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이대로 가만히 지켜보고 만 있을 것인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에 반대하면 이 내용을 널리 알려주시기 바란다. 법안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빠른 데다 제도 언론의 외면으로 사실이 많이 알려져 있 지 않다. 자신의 블로그, 커뮤니티로부터 시작해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시라. 기본적인 자료는 다음의 블로그(http://blog.jinbo.net/1984)에서 참고하실 수 있다.

** 편집위의 행동제안 - 통신비밀보호법개정 반대 스티커 만들기!!
1. 색깔별로 골라 아래의 이미지를 출력한다. 
2. 뒤편에 양면 테잎을 붙인다. 
3. 통신비밀보호법개정반대 스티커가 완성. 마음 가는 곳에 붙인다. 
4. 국회의사당 벽에 붙이면, 잡혀갈지도 모르니 조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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