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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5호 이론의 여지] 수신료 인상 논쟁의 결정적인 틈새 - 공영방송의 혁신을 위한 모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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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5호 / 2007년 9월 12일

 

 

수신료 인상 논쟁의 결정적인 틈새 

- 공영방송의 혁신을 위한 모색 -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
 
수신료를 인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고, 우리는 수신료 인상을 계기로 무엇을 고민하고 제안해야 할까? 시야를 좁혀본다면,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다. 현재의 수신료가 그동안의 물가인상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러 있고 디지털 전환에는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로부터 번져가는 논쟁과 계산은 복잡하다. KBS를 좌파 방송으로 바라보거나 혹은 비효율적인 집단으로 평가하게 된다면 인상이 아니라 구조조정이 필요할 것이고, 지금의 KBS 운영 및 경영구조가 크게 변화하지 않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논쟁의 구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은 현재 진행 중인 논쟁의 구도 그 자체를 바꿔보기 위한 작은 시도다. 구체적인 해답을 정리하기 전에, 문제인식의 틀을 다시 잡아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인식의 틀을 바로잡기 위한 출발점은, 현실의 변화에 부응하는 방송의 혁신을 위한 계기로서 수신료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수신료를 인상한다는 것은 공영방송을 지탱하는 주요한 축 한 가지를 변화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공영방송의 혁신을 위한 흔치 않은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 논쟁을 새로운 발전 전략을 만들어보는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혁신의 방향을 미디어 운동 진영조차 제대로 지니고 있지 못한 지금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제대로 하는 것이며,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기 위한 밑그림 혹은 그 목차를 그려보는 것이다.


방송은 잘 혁신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방송 (지난 수십 년간 그 본질적 성격이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주류 미디어의 중심을 형성해온, IP-TV와 같은 선형, 비선형적 방송의 복합체 이전의 방송) 모델은 잘 혁신되지 않는다. 이것은 관료화, 상업화에 따른 보수화의 경향만을 지적하는 표현이 아니다. 하나의 채널로서 2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동안 선형적 편성을 통해서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전통적 방송, 그중에서도 공영방송은 그 혁신의 계기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방송구조의 급격한 전환이 이루어지는 계기들이 주로 재허가, 경영진의 교체, 디지털 전환 등과 같은 내외의 변수들로 구분된다는 점에 주목해본다면, 군부독재가 끝장난 이후 한국에서 그 혁신의 계기는 두 차례에 걸쳐 주어졌다. 그 첫 번째는 1999년 방송법 개정을 전후로 한 국면이었다. 군부독재 하에서 공영의 탈을 쓴 국영채널로 살아온 KBS는 법 개정을 통해서 몇 가지 변화를 겪게 된다. 방송의 독립성 및 시청자주권의 강화 등을 최고 의제로 삼아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재편되고, 시청자위원회가 만들어졌으며,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 신설되는 등 정권의 나팔수에 불과했던 이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를 수도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KBS에게 제공되었다.
두 번째 계기는 디지털 전환 국면이었다. 첫 번째 계기에 비해 이 두 번째 계기는 구조의 혁신과는 무관하게 소모되었다. 제작 및 송출의 기술적 형식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꾸는 이상의 변화 혹은 그에 대한 사회적 논쟁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채 미국식 전송방식의 채택이라는 왜소한 결과만을 낳은 채 이 국면은 지나가버렸다. 다시 말하면, 미국식이나 유럽식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에만 제한된 논란은 결국 기존 방송의 전반적인 혁신 및 새로운 채널 배정의 가능성에 대한 모든 토론을 배제한 상태에서 진행되었고, 그 결과 기존 채널의 기득권을 보장한다는 암묵적 전제는 확고하게 정착되었다.


그런데, 왜 혁신이 필요할까 ?

현재 진행 중인 수신료 인상을 둘러싼 논란도 이미 지나가버린 두 차례의 계기와 비교할 때 그 양상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이것이 돈을 둘러싼 논쟁인 만큼 논의의 강도는 한편으로는 두 번째 계기에 비해서는 심각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논의의 범위는 첫 번째 계기에 비해서는 부분적이다. 다시 말하면, 방송법개정 국면과 비교해보자면 혁신의 담론은 약하고, 디지털 전환 국면과 비교하자면 선택의 방향이 모호하다. 그렇다. 논쟁의 범위, 변화의 수준과 폭은 결정하기 나름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왜 굳이 현재의 국면에서 ‘혁신’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써야 하는지 말이다.
이미 앞서 흘러간 두 가지 계기에 대한 간단한 평가에서 이미 드러나듯, 수신료 인상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의 전체 사회, 미디어 구조에 대한 냉정한 평가 속에서 묵은 과제를 털어내고 새로운 과제를 해결해가기 위해 반드시 ‘혁신’의 수준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최근 수년간 진행된 전체 사회의 급격한 변화, 그리고 미디어 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점점 부각되고 있는 공영방송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해소하는 실험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인식 : 민주화 + 세계화 = 공공성은 위축되고 있는 것일까 ?

지금 한국의 공영방송(사실 따지고 보면 공영방송만이 아니라 전체 방송)은 두 가지 서로 충돌하는 경향 사이에서 배회하고 있다.
그 하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공공성의 축소와 공영방송의 위축 경향이다. 자본에 의한 미디어 장악에 대해 약간이라도 비판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은 ‘공공성이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고, 초국적 자본, 정보통신 자본, 신문 자본 등의 공세와 그를 뒷받침하는 정책과 법제에 의해 공영방송의 위치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지난 수년간 경쟁구도에 진입한 공영방송의 확대 전략은 계속 앞뒤로 협공 당한다. 가만히 머물러있으면 변화하지 않는다는 질책이 쏟아지고,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도 힘을 발휘하기 위해 신규채널들을 출범시키면 불공정경쟁을 한다는 비판이 힘을 얻는다.
다른 하나의 경향은 첫 번째 경향에 부분적으로 힘입은 것이면서 (민주주의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와 상반된 지향을 지닌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그 전과는 다른 새로운 민주적 질서 혹은 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토대가 강화되는 경향이다. 이 경향은 공영방송의 위상 강화, 시청자권익 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의 도입, 경영진의 교체 등의 변화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시야를 방송이 아니라 전반적인 미디어 영역으로 확대해본다면, 사실 변화의 폭과 깊이는 넓고 깊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민중의 자기표현과 소통, 대안적/독립적 미디어 영역의 확대, 그리고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정착은 분명 민주주의를 확대시키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공공성의 위축’이라는 표현은 총체적인 현실을 설명하는데 그리 적절하지 않다. 말하자면, ‘공영방송’은 위축되고 있지만 공공적 담론의 구조는 부분적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사회 전반의 표현의 자유와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그 절대적 수준에 있어서는 분명 강화되었다.


이중의 압박 속에서, 아직까지는 고립을 벗어나지 못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강화의 수준이 신자유주의의 위세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으로 열세에 머물러 있으며, 전통적인 공공 미디어와 새로운 공공 미디어가 영역별로 고립된 채 각개격파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입장에서 봤을 때 특히 안타까운 것은 전혀 다른 질을 지닌 이 두 가지 경향이 모두 ‘위축’의 방향으로만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참여와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미디어 구조의 확장이 대의제 방송의 전통적인 한계를 부각시켰으나 아직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공영방송의 독자적 실천과 연대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민중의 자기표현과 소통이 부분적으로만 가능했던 시대에, 민중의 보편적 이해를 대변하는 대변자이자 교육자이자 정보전달자로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공영방송의 위상이 끝나가고 있지만 새로운 출발은 미약한 것이다. 이제 방송을 둘러싼 근본적인 조건이 변화했지만, 공영방송은 여전히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터와 같은 위치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공공적 기능과 설득력을 계속 상실하고 있고, 공영방송의 바깥에 있는 주체들과 공영방송의 결합, 그리고 공영방송의 현실에 대한 ‘다른’ 접근을 통한 새로운 시너지의 창출은 아직 그 ‘가능성’조차 검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작지만 큰 실험, 그러나 아직 혁신의 계기가 되지는 못한 <열린 채널>

그 척박한 현실의 한 단면을 살펴보자. 방송이 현실과 방송의 외부 주체에 대해 열린 태도를 새롭게 실험하는 최초의 기회, 다시 말하면 민중의 자기표현을 확대해가는 경향이 방송과 최초로 조우하게 된 계기는 <열린 채널>이었다. 공중으로 하여금 직접 발언하게 하며 그 과정에서 소수자의 목소리, 비판적, 실험적 목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그것이 지금 당장 지닌 사회적 의미만이 아니라 이후 있을 수 있는 다양한 방송 구조에 대한 상상력을 확대시키는 중요한 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만큼의 결과를 낳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런 상황이 초래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KBS는 애당초 이 프로그램이 자신의 혁신을 위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본 일이 없으며, 그를 위한 어떤 제대로 된 평가나 제안도 해본 적이 없다. 퍼블릭 액세스의 철학이나 사회적 의의보다 훨씬 앞서 KBS에게 포착된 것은 퍼블릭 액세스가 자신의 고유한 편성 시간을 빼앗고 공중파에 어울리지 않는 조악한 프로그램들이 부끄럽게도 자신의 채널에 들어와 있다는 피해의식 뿐이었다.


몇 가지 단서들 = 참여와 다양성의 확대를 목표로 하는 재편, 그리고 공공성의 재구성

<열린 채널>을 리트머스 시험지로 삼아본다면 (퍼블릭 액세스의 확대만이 혁신의 내용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여전히 혁신에 대한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혁신이 필요한지 논쟁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당장 현실화되기 힘들더라도 운동의 목표를 가늠해보는 계기는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신료 인상을 둘러싼 논쟁과정에서 반드시 KBS 내부의 주체, 그리고 미디어 운동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몇 가지 초점들을 간단히 목차를 정리해보는 수준에서 짚어보도록 하자. 그것은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의 흐름도를 혁신하는 것에 주목하는 것으로서, 크게 제작 및 평가의 주체와 시스템을 재편하고 그와 동시에 방송사의 내부 및 지역 네트워크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이며, 그를 위해 방송의 존립 근거이자 운영목표로서의 공공성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우선 첫째, 제작 주체 및 제작 참여 구조의 재편이다. 여기서 주요한 초점은 공적 미디어는 대중이 직접 발언하게 함으로써 가능하다는 (Public broadcasting by public in all of its diversity, speaking for itself - <Public broadcasting and the public interest> 9쪽에서) 잊혀진 명제의 복원 혹은 대의제 방송으로서의 전통적 딜레마의 극복이다. 이것은, 민중의 자기표현의 확대 및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의 확장을 어떻게 방송사 내부에서 총체적으로 구현하며, 지상파 채널 이외의 새로운 매체로 어떻게 확장할 것이며, 아울러 그러한 지향의 외부 매체들 및 주체들과 어떤 파트너쉽을 형성할 것인가라는 세 가지 발전 전략을 정리하는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서 특히 내부의 편성을 통한 구현과 관련하여 이미 몇 차례의 실험과 제안서들을 통해서 정리된 재편의 방향은 참여와 다양성의 확대를 목표로 퍼블릭 액세스 및 독립제작 시스템이라는 두 개의 제작 및 편성 시스템을 실험하는 것이다. 퍼블릭 액세스가 방송사 외부 주체의 권리를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추며 이를 지원하는 기관으로서의 공영방송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독립 제작 시스템은 콘텐츠의 다양성과는 무관하게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의해 도입된 외주 시스템을 비판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외부 독립 제작 주체의 참여와 확장을 강화하고 육성하며 그들과 방송사의 긴밀한 연대 및 상호 교육을 보장하는 구조로 대체하는 것이다.
둘째, 시청률에 의해 프로그램의 평가가 집약되는 구조를 넘어서는 다층적 평가 구조의 개발이다. 무엇이 좋은 콘텐츠인지 어떤 콘텐츠가 어떤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지니는지를 규정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수동적 시청자를 적극적 지지자이자 비판자로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어떤 실험도 단기적 시청률에 의해 좌초될 수밖에 없다. 그리 복잡한 얘기가 필요 없이,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채널을 선택했는지”만을 따지는 현재의 시청률 측정 시스템은 콘텐츠의 성공 여부 및 개편 방향을 결정짓는 요소의 하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해당 프로그램의 사회적 의제 설정 기능, 특정한 시청자 그룹에 대한 소구력 및 의제 설정 기능, 관행적 제작 시스템 및 스타일을 넘어서는 혁신적 성격 등 다양한 차원의 양적 질적 평가를 할 수 있는 평가 구조가 마련되어야 하며, 그러한 평가의 시스템은 시청자위원회 및 평가원 제도의 재편과 맞물리며 데이터 방송을 포함하는 새로운 기술적 솔루션의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는 방향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아울러, 프로그램의 다양성에 조응하는 개별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 시스템이 제작 시스템과 통합적으로 운영되는 구조의 개발이 필요하다. 특수한 타겟과 목표를 지닌 프로그램이 시청률만으로 평가된다는 것은 콘텐츠의 효율적 활용 및 제작자의 자기 성찰과 훈련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시스템의 구축을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은 대안적 콘텐츠 평가 지표의 구체적 개발이다. 이 정도의 역사와 이 정도의 자원을 보유한 한국의 공영방송이, 자신의 채널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들이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어느 정도 의미 있게 편성되고 있는지 특정한 프로그램의 방영 회수 말고는 별다른 지표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셋째, 평가 주체 및 평가 참여 구조의 재편이다. 특히 시청자권익 보호와 관련된 현재의 시스템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이미 수년간의 실험을 통해서 드러난 결과를 토대로, 방송법에 의해 보장된 시청자위원회 및 평가원 제도 등은 그 긍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 역할이 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제도적 장치들이 빠뜨리고 있는 공백이 없는지 재검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청자위원회는 그 회수나 운영방식에 있어서 권한 및 기능이 형식적인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며 논의 수준은 개별 위원들의 인상비평을 넘어서서 경영, 편성, 사업 전반, 조직운영 등에 대한 전문적 자문 및 감시 및 비판 기능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평가 지표 및 평가 구조의 개발과 함께 시청자위원회의 권한과 임무 및 운영방식이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되어야 하며 이를 포함하는 다양한 구조들이 공영방송 전체에 대한 총체적 감시, 비판, 자문, 협력, 지원의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넷째, 위에서 언급한 구조의 재편과 함께 가야하는 것은 참여와 다양성을 확대시킬 수 있는 방송사 내부의 제작 및 편성 시스템의 재편이다. 그것은 크게 외부와 소통하며 평가 시스템을 내부에 함축하는 자체 제작 시스템의 변화 (예를 들어 특정 공동체의 이슈에 집중하는 공동체 프로듀서 시스템의 도입 등) 및 그와 함께 진행되어야 할 제작주체의 재훈련 프로그램의 확충, 외부 제작 주체 및 시민사회 주체와의 일상적인 파트너쉽을 통해 기획과 프로그램 수급을 채워나가는 시스템의 구축, 방송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장르별 교류의 활성화, 나아가 방송사 외부의 제작자 및 여타 미디어 구조의 콘텐츠 생산주체를 아우르는 제작자 네트워크의 구축에 대한 지원 및 그 일부 구조의 방송사 내부 시스템으로의 편입 등을 포함한다.
다섯째, 지역과의 관계 및 역할 재규정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수도권 및 여타 지역 간의 격차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지역 미디어 민주주의 확대의 구심으로서 공영방송 지역사의 역할 재규정의 문제이다. 그 초점은 소속 지역사의 역할을 지역 제작지원 및 시청자 지원센터로 다시 자리매김하며, 그러한 재편의 결과를 통해 생산되는 새로운 콘텐츠들을 전국과 지역에서 서로 소통시키는 것이다. 열악한 외주제작과 서울 중심의 콘텐츠 생산 시스템은 지역에 밀착한 독립 제작 부분 및 퍼블릭 액세스를 아우르는 제작주체의 양성과 그에 조응하는 편성의 변화 없이는 결코 극복될 수 없으며, 거꾸로 지역주민과 밀접하게 결합된 지역의 공공적 콘텐츠 생산주체의 확대는 전국 방송의 위상을 강화한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이러한 재편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입안하고, 그것을 설득력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체된 구조를 합리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전통적인 공공성 개념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대의제적 성격의 방송이 유일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었던 시대, 수동적 시청자와 우월적 방송사의 관계라는 계도적 프레임만이 강조되던 시대에 형성된 현재의 공공성 개념은 이제 참여와 다양성을 강화하는 쌍방향적 공공성, 시청자주권과 표현의 자유가 이상한 대칭점에 서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보장하는 총체적인 공공성으로 재편되어야 하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대중적인 공론장에서 논쟁되고 새롭게 합의되어야 한다.


열려야 할 채널 = 연대를 통한 창조와 혁신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면, 현재 공영방송은 한편으로는 과거의 유물에 의해 고통 받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조응하지 못함으로써 뒤처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수신료 인상을 계기로 바라보는 공영방송의 혁신은 공영방송의 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광고 수익의 청산, 경영 효율성의 제고, 정치적 독립성의 확보 등 묵혀왔던 과제들을 청산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아직 시작되지 않았거나 혹은 시작되었지만 제대로 그 의미와 발전방향이 규명되지 않은 새로운 과제들을 확인하고 합의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울러 그러한 논의 과정의 필수적인 전제는 변화를 직시하는 개방적 태도와 콘텐츠의 생산과 수용의 주체로서의 시민사회 및 차별적 콘텐츠의 생산과 소통 주체로서 독립 미디어 운동 주체와의 실질적 연대다.
문제는 그러한 합의를 위한 논의, 새로운 재편 전략을 만들기 위한 연구와 논쟁이 필요한 만큼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그러한 답보 상태는 현재 한국사회가 드러내고 있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후퇴, 대중적 정치의식의 정체, 시민사회운동의 위기 등 부정적인 징후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개척해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으면서 게다가 그러한 노력을 할 수 있는 자원을 지닌 공영방송은, 사회 전반의 혁신을 선도하고 그럼으로써 생존을 위한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꿔내기 위해 스스로를 혁신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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