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5호 / 2007년 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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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피랍관련 미디어 보도 비판 |
여옥([전쟁없는세상] 활동가) |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이 납치되었다가 40여 일 만에 풀려난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크나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7월 말, 협상시한이 주어지면서 어떻게든 금방 끝날 것만 같았던 피랍사태는 쉽게 풀리지 않았고 TV, 라디오, 인터넷 등 온갖 매체들은 쉴 새 없이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납치된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풀려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걱정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 문제가 어떤 상황과 배경에서 생겨난 것인지,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테러집단에 의한 납치’에만 초점을 맞추는 언론의 보도에 또 다른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언론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어떻게 보도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테러의 나라 아프가니스탄? 납치사건에 대해 보도하던 긴 시간 동안 화면으로 보여준 것은 사막에서 총을 들고 훈련을 하는 무슬림 남성들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들은 모두 뉴스나 신문,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 접한 것이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9월 11일에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 빈 라덴과 무장단체의 훈련모습, 자살폭탄테러, ‘부르카’를 쓴 억압받는 여성들. 언론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이런 반복되는 이미지와 기사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아프가니스탄=테러’라는 생각을 주입시켰다. 이런 생각들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작용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주 일어나고 또 언론을 통해서 자주, 때로는 자세히 보도되는 자살폭탄테러의 현장을 떠올려보자. 혼잡한 상점가로 돌진한 차량의 폭탄,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뒤엉킨 시체들, 피 흘리며 울고 있는 아이, 죽은 사람을 붙들고 통곡하는 사람, 충격에 휩싸여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일이다. 그런 사건을 자세히 보여주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이 얼마나 나쁜지 판단하게 한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 일을 저지른 잔인한 놈들을 막아야한다는 여론을 형성하게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떠오르던 ‘자살폭탄테러’는 미국에게 유리한 뉴스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과 나토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어린이와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있지만 그런 기사는 잘 보도되지도 않을 뿐더러 그들의 공격은 ‘테러’가 아닌 ‘공격’이나 ‘군사작전’으로 표현되고 보도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7년째 점령전쟁을 벌이며 수천, 수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국민의 3분의 1을 난민으로 내몰고 있는 미국의 행동은 ‘테러’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하지만 언론의 눈에는 미국의 공격으로 죽은 사람들보다 자살폭탄테러로 죽은 사람들이 더 잘 보이나보다. 그런 언론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일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보도에서 본 것을 믿게 되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그런 태도를 갖게 되고,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한 쪽으로 치우쳐진 ‘사실’에 대하여 2001년 9월 11일,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빼앗아간 911테러는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과 공포로 남아 테러와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테러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린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 일이었지만 그에 대한 보복공격으로 인해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린 것 또한 똑같이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다. 특히 911테러와 같은 절망과 분노에 뿌리 내린 극단적인 행동의 배경에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수 없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미국과 나토군의 침공 이후, 계속되는 전쟁으로 사망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수는 집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고, 2006년 한 해 동안 적어도 4천명 이상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사망한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거나 기억하지 못한다. 혹시나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더라도 테러리스트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언론의 보도내용을 보면 주로 사건 위주로만 보도할 뿐, 그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나 의도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똑같은 사건이 벌어져도 좀 더 자주 보도되는 사건이 있는가하면 거의 보도되지 않는 사건이 있다. 실제로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그 현장이 어떻게 되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어떤 세력인지도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사건을 해석하고 보도하는 사람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보도의 내용은 많이 달라진다. 아프가니스탄에 선교하러 간 기독교단체가 문제의 핵심인지,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에 파병으로 동참해서 테러의 대상이 된 것이 문제인지는 분명 다른 지점과 다른 시각에서의 해석과 보도가 가능하다. 기독교의 해외선교에 대한 비판 역시 충분히 가능한 것이고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911 이후 미국이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한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다는 이유로 그곳에 폭탄을 퍼부어 지금처럼 삶의 터전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테러와의 전쟁'의 본래 모습임을 조명하는 시선이나, 이 전쟁의 동맹국으로서 국익을 위해 파병 중인 한국의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선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언론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번 납치사건 발생 이후 한국 정부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하여 입국을 금지시키고, 정부 허락 없이 입국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해서 기자들의 출입마저 단절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한국의 언론들은 외신보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대부분의 정보는 미국, 영국 등 강대국들의 보수적인 메이저 언론사를 통해서 들어온다. 많은 언론들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미국과 함께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게 되고 그들의 입장에서 보는 해석을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아들여 협박하는 비인간적인 탈레반만 보일 뿐이지, 이미 오랜 세월동안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대부분의 사회기반시설이 파괴되어 일상을 살아가기조차 힘들만큼 처참하게 고통 받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천연가스와 석유에 대한 송유관 사업과 관련이 깊다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나토군이 저지르는 온갖 살인과 폭력, 그리고 미국이 세운 현 정권의 부패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적대감을 키웠고, 그 결과로 탈레반이 성장해왔다는 배경도 보이지 않는다.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며 납치된 사람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생명은 관심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 시선은 그대로 우리 사회로 옮겨오게 된다. 요즘 FTA 반대, 미군철수, 파병반대 등 정부의 정책이나 미국의 입장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 없이 언론의 보도대로 받아들여 무조건적인 거부감이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동안 몰랐던, 또는 알기 힘들었던 아프가니스탄과 미국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911테러를 핑계 삼아 원했던 석유?가스 송수관 건설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했고 아직까지도 점령을 위해 내전을 계속해온 미국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면, 자살폭탄테러를 일삼는 무자비한 테러집단인 탈레반의 입장을 지지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인질들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탈레반의 행동을 비판하면 미국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것 같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둘로 나누어진 사고방식은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장 차이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런 이분법적 사고로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오히려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언론에 갇혀있던 시각에서 탈피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미국의 거대한 패권전략과 전쟁에 고통받아온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문제 해결에 한발 더 다가서는 길이 아닐까? 개인의 책임보다는 정부의 책임을 탈레반 무장 세력에게 납치되었던 사람들이 피랍 41일 만에 석방되었다. 무사히 돌아오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지만,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두 분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 이제 언론의 관심은 구상권과 기독교의 책임론에 맞춰져 있다. 벌써 이번 납치사건의 원인이 미국의 점령전쟁에 한국이 무책임하게 동참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듯이 보인다. 침략이 테러를 부르고 테러가 또다시 전쟁을 부르는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그 원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 없이, 오늘날까지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고 국익과 평화재건을 운운하며 미국의 대태러전에 동참했던 정부의 책임은 매우 크다. 그리고 중동이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해 없이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인 보수 언론들의 정보왜곡에 대한 책임도 반성해야할 것이다. 한국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 선교와 교회나 개인의 잘못으로만 그 책임을 전가하고자 한다면, 지금의 파병정책이 지속되고 제국주의의 침략과 점령이 지속되는 한 이와 같은 일은 또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평화가 아닌 분쟁과 갈등을 확산시키고 있는 파병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이,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이런 논의마저도 서서히 잊혀질 것이다. 그리고 가끔 아프가니스탄과 관련된 뉴스를 접할 때마다 그동안 떠올리던 911테러와 빈 라덴, 테러와의 전쟁, 자살폭탄테러, 무슬림 등등의 이미지에 ‘한국인 납치’라는 좀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기억이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건, 전쟁과 점령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으며 한국 사람의 목숨만큼 소중한 아프가니스탄 사람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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