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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5호 이슈] 어느 정도까지? -청각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에 대하여 (방송, 영화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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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5호 / 2007년 9월 12일

 

 

어느 정도까지? 

-청각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에 대하여

(방송, 영화를 중심으로)


 
손경화 (RTV 미디어로 여는 세상 제작자)
 

누군가의 손이 슬쩍 올려 진 느낌

몇 달 전에 만들었던 방송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글로 정리하자니 더욱 모르겠다. 그래서 그 당시 제작을 하면서 들었던 느낌에 대한 이야기로 먼저 시작하겠다.
미디어로 여는 세상 26회 차 방송으로 시각 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어 28회 차에서 청각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많은 농인들을 만나 농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내 손이 한 번도 닿아본 적 없는 내 등 한가운데에 다른 누군가가 슬쩍 손을 올려놓는 느낌이었다. 너무 슬쩍 올려놓아서 ‘헉’소리를 내기도 뭐하고 떨쳐내기도 뭐한, 그렇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생소한 느낌이라 은근히 설레기도 한 그런 느낌.
한 인터넷 카페에서 본 다양한 수화 영상들이 내 등에 올려 진 손이었다. 소리는 거의 없고 아나운서가 나와 수화로만 이야기하는 농뉴스, 그리고 어디서 웃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수화 유머 영상, 그 외에 수많은 영상들이 있었지만 청인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간간이 등장하는 자막이나 그림이 무척 반가웠다. 또 내 등에 올려 진 손은 데프미디어 (농인독립영상제작집단)의 회의현장이었다. 수화로 진행되는 회의. 옆에서 뮤지컬 연습이 진행 중이어서 무척 시끄러운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회의를 진행하는 데프미디어 사람들의 모습도 낯설었지만, 회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더욱 낯설었다. 모두 웃고 있는데 왜 웃는지 알 수 없었다. 궁금했지만 회의의 흐름을 깰 수 없어 묻지 못했다. 수화 통역사분의 도움 없이는 인터뷰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 내 손이 닿지 못했던 등 한 가운데 누군가의 손이 덥썩 올라오는 느낌은 바로 소수자가 된 느낌이었다. 나는 분명 그 회의 자리에서 그리고 인터넷의 카페에서 수화를 모르는 소수자였다. 그들 사이에 통용되는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느낌이 너무 낯설어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왠지 모를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촬영이 남아 있었지만 그 현장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 장소를 나와 수화 통역을 거치지 않고도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서넛 만나고 나서야 그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이,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있는 것이 그토록 답답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불안을 느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과연 방송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뒤늦게도) 그제야 알았다. 내가 잠깐 느낀 답답함과 불안감, 심지어 열 받음을 농인들은 매일 느끼고 있다는 것을. 같은 사회에 살고 있지만 청인들을 대상으로만 만드는 방송과 영화들을 보면서,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운 미디어들을 보면서. 미디어의 홍수라고 하지만 농인들에게는 가랑비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미디어를 좋든 싫든 일상적으로 접해야 하는 농인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빈틈이 많은 자막해설과 수화통역
KBS1의 프로그램의 편성표를 살펴보니, 그 날 방송되는 31개의 프로그램 중 21개의 프로그램에서 자막해설을 하고 4개의 프로그램에서 수화통역을 한다고 나와 있다. 약 78% 정도의 프로그램이 자막해설이나 수화통역을 한다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방송이 4%도 안 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그만하면 되지 않았냐고 얼마 되지도 않는 농인들을 위해 그 정도면 많이 한 것 아니냐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우선 자막해설방송 이야기하면, 예전에 비해 방송되는 비율은 높아졌지만 온전히 이해하며 TV를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자막방송은 자막이 많이 끊기고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느려서 따라 읽기가 불편하다. 또 똑같은 위치에 모든 자막이 뜨기 때문에 어떤 인물이 말하는 것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오타도 많다. 대사가 아닌 음악이나 현장음에 대한 자막은 없어서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 때도 많다. 최근에는 오픈자막(방송 프로그램의 자체 자막)이 많아져서 수신기를 통해 받아보는 폐쇄자막(수신기를 설치하지 않은 일반 TV에는 보이지 않음)과 겹치는 경우도 많다. 또 많은 농인들이 문자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 빠르게 올라가는 자막해설을 무용지물인 것이다. 농인들에게 익숙한 수화통역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하루에 3-4개 프로그램만 통역되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수화통역이 나오는 뉴스를 보다보면 화가 난다. 수화통역을 보라고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그 창이 너무 작다. TV에 바짝 붙어서 수화통역창만 뚫어지게 보고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대형 TV는 좀 나을지 모르겠지만. 촬영을 하면서 만난 농인들은 정말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답답함을 호소했다. 수화통역창이 화면의 절반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자막해설이나 수화통역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항상 듣는 답변은 예산과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니 그러면 예산을 늘리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면 되잖아! 라고 말해보아도 소용없다. 자신은 TV 없인 못 살고 작은 차별에도 발끈하면서, 일상적으로 소외되는 농인들의 문제에는 공감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2004년 10월 고흥길 의원이 발의한 영화진흥법개정안(자막 및 수화통역 방송을 방송사업자들의 의무로 규정)도 2년 동안 국회에서 계류하다가 폐기되고 그러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히 알 수 있다. 일본은 말하는 사람에 따라 자막의 위치가 다르게 나오고 오픈자막과 겹쳐지지 않게 자막이동도 가능하다고 한다. 또 음악이 나올 때는 음표가 나오는 등 농인들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자막해설을 하고 있다. 프랑스의 수화 방송 프로그램은 내레이션이 나오면 기존의 영상이 작아지면서 수화 통역사가 전면에 등장한다. 조금만 농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도 쉽게 바꿀 수 있는 부분인데... 이왕 하는 거 좀 더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랑스 수화 영상 화면 사람이 직접 화면에 등장하여 수화로 내레이션을 한다.
 
케이블이나 위성방송, 그리고 한국영화는 더욱 심각하다지금까지 언급한 것들은 그나마 자막해설과 수화통역을 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에 관한 이야기였다. 케이블과 디지털방송, 지역방송, 위성방송 중에 자막해설이나 수화통역을 하는 곳이 거의 없다. 지상파 방송의 자막해설, 수화통역 비율이 몇 년 전에 비해 높아졌다고 해도 케이블이나 디지털, 위성방송이 늘어가고 있는 비율을 따져보면 실질적으로 농인들의 방송 접근성이 높아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농인들은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볼 수 없다. 2005년부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한국영화 한글자막, 화면해설 상영’을 하고는 있지만 전체 한국영화의 30% 정도이고, 전국적으로 6개 극장에서만 시행되고 있어 아직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영화관에서 자막해설 영화가 상영되기 위해서는 자동 자막기를 영사실에 설치해야 하고 매표소에도 수화가 가능한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윤을 추구하는 영화관에서 법적인 의무조항 없이 자발적으로 협조할리 없다. 다만 현재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이 영화를 제작하거나 수입할 때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과 자막해설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발의를 준비 중이라고 하니, 머지않아 농인들도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쉽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반가운 소식은 청각장애인을 고려해 모든 음성내용을 문자로 서비스해야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에 내년 4월부터는 지상파 방송의 모든 프로그램의 자막해설을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또 TV 자체에 자막수신기능을 포함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자막수신기가 따로 없어도 자막해설을 볼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수출한 TV에만 자막수신기능을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단지 자막해설과 수화통역을 하고 있다는 생색만 내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농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듣고 시행하는 과정에서도 계속 피드백을 받아서 정말 소통을 위한 자막해설과 수화통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자막해설과 수화통역이 늘어나 기존 방송과 영화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다고 해도 사실 기존 컨텐츠들은 청인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농인들이 완벽하게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존 컨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이와 동시에 농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과 영화도 풍부해져야 온전히 미디어 접근권을 확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농아인협회나 각 지역의 복지관에서 농인들을 대상으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고 또 농인들이 만든 소리 없는 영화도 만들어지고 있으니 여기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면 이런 한계들이 조금씩 해소될 것이다. 그래서 그 컨텐츠들이 많은 청인들에게 보여 지고 소통될 때 농인들의 미디어접근권도 확보될 수 있지 않을까?
독립제작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미디어로 여는 세상의 두 회 차 방송으로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들었던 고민은 제도권의 방송이나 영화는 둘째치더라도 우리가 직접 제작하는 미디어로 여는 세상은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한 회 차는 어설프나마 화면해설에 가까운 내레이션을 했고 한 회 차는 역시 어설프나마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크게 수화 통역창을 만들었다. 또 사회자 부분은 농인들의 요청에 따라 수화 통역창을 화면의 절반으로 하였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화면해설과 수화통역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화면해설을 하자니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고 수화통역을 계속하자니 우리 제작팀의 진행비로는 무리였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자니 시청각 장애인들의 미디어 접근성을 떨어뜨리는데 일조하는 것이고... 몇 주 동안 고민하고 토론한 끝에 우리 팀이 내린 결론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자막! 인터뷰와 내레이션이 많으니 자막을 치면 농인들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물론 수화통역만 이해하는 사람과 시각장애인은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결정이었지만, 그것이 우리 팀의 제작여건상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었다. 앞으로 여건이 허락 하는 대로 조금씩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뿐만 아니라 독립제작자들이 시청각장애인과 소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자막과 수화통역이 있는 버전을 따로 만들고 화면해설이 있는 버전을 따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런 여건이 가능한 독립제작자들이 얼마나 될까? 몇 몇 영화제에서는 화면해설이나 자막해설을 한다고 들었다. 이제 그것을 영화제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영화단체와 시청각장애인단체들이 연계하여서 독립제작자들이 원한다면 자막해설, 수화통역, 화면해설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개인제작자들이 엄청난 고민 끝에 화면해설과 수화통역 버전을 만들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고 실제로도 어렵지 않게,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될 수 있으면 좋겠다. 보는 사람들의 수에 비례해 화면이 할당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권력에 비례하여 화면을 내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원한다면,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언제든지 방송과 영화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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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농아복지수화뉴스 2006.12.31.일자
한국농아방송 NG모음 
미디어로 여는 세상 28회차


*참고 사이트 
-한국 농아인협회 
http://www.deafkorea.com
-데프미디어 
http://www.deafmedia.net
-월드데프미디어뉴스카페 
http://cafe.daum.net/DEAFnew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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