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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5호 현장] 마지막 도마뱀들의 신나는 축제 - 제 2회 이주노동자영화제 [무적활극-無籍活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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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5호 / 2007년 9월 12일

 

 



마지막 도마뱀들의 신나는 축제 

- 제 2회 이주노동자영화제 [무적활극-無籍活劇] -


 
김 윤 진 (ACT! 편집위원회)
 
마지막 도마뱀
“도마뱀 한 마리가 잠에서 깨어 자기가 세상에 살아남은 마지막 도마뱀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족도, 친구도, 죽어버렸다. 싫어하던 사람, 학교에서 도마뱀을 괴롭히던 이들, 다른 도마뱀들까지 모두 죽어버렸다. 
마지막 도마뱀은 혼자라서 너무 외롭다. 가족과 친구가 그립고, 심지어 적들까지도 그립다. 혼자일 바엔 적에게 둘러싸인 것이 차라리 낫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미시마 유키오, 소설 <마지막 도마뱀> 중에서

2회 이주노동자 영화제가 시작한 8월 31일, 친구와 함께 [고스트(Ghosts)]와 [이주여성이 직접 들려주는 영상 이야기], 이렇게 두 편의 작품을 본 뒤 서울아트시네마를 나와서 생각했다. 여기에도, 마지막 도마뱀들이 ‘있다’고. 다만 미시마 유키오의 마지막 도마뱀과 다른 건, 적(敵)이 있지만 머무를 적(籍)은 없는 이들의 현실이라고. 
물론 [고스트(Ghosts)]의 중국 이주노동자들과 [이주여성이 직접 들려주는 영상 이야기]의 이주여성들에게는 친구도,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리고 적(敵)도 있다. 하지만 간혹, 혹은 자주, 그들은 세상에서 철저하게 혼자가 되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단지 그들이 속한 세상과는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높은 벽 바깥으로 혼자 내몰리는 순간, 그들은 세계의 마지막 도마뱀이 된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적(敵)은 있을지 모르나 온전히 머무를 적(籍)은 없다. [이주여성이 직접 들려주는 영상 이야기]는 이주여성들이 직접 캠코더를 들고서 찍은 자신들의 첫 작품이자 한국에서 살고 있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신이 직접 제작한 그 작품들을 통해 이주여성들은, 그래도 자신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희망이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이주여성들이 작품을 찍어가는 과정을 담은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들의 작품 속에서 꿈꾸던 행복과 희망은 그들의 현실에서 조금 멀리에 있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들 현실의 삶은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고달픔과 혼자 이국에 떨어져 있다는 고독 위에 있었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3분에서 10분 사이의 필름에 담은 작은 행복이지만, 그들 자신의 삶은 그 몇 분 남짓한 필름의 풍경 사이에 온전히 머무르지 못한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고스트]의 중국 여성 에이 퀸 린은 어린 아들과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2만 5천 달러를 빌려 브로커에게 지불하고 화물 박스에 숨어 영국으로 밀입국한다. 방 두 칸에서 다른 이주노동자 11명과 빡빡하게 살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빚진 돈을 갚기 위해 점점 더 위험한 노동 현장으로 내몰리게 되고, 결국은 다른 동료들의 죽음을 뒤로한 채 혼자 살아남은 에이 퀸 린이 중국으로 강제소환 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실화를 다룬 이 영화가 보여주듯, (한국의 경우를 포함하여)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죽거나 떠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온전하게 머무를 적(籍)이 없다. 무적(無籍)이주자, 머무를 곳이 없다는 사실이 이들에게는 현실이었다.


Super Migrants

하지만 이러한 현실 안에서 제 2회 이주노동자 영화제는 이주민들의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여전히도 이주와 이주노동의 삶은 힘들지만, ‘죽거나 떠날 수밖에 없는 무적(無籍)-이주노동자들의 어두운 삶의 모습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생동감이 넘치는, 그야말로, 어떤 영화보다도 ‘스펙터클’한 활극(活劇)적인 모습들에 주목’하길 원했고, 이번 영화제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축제, 그리고 누구나 참여하여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만들려 하였다.


그런 기획 아래 영화제는 모든 영화를 무료로 상영함으로써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제를 열어두려고 노력하였으며, 영화제 전체적인 컨셉과 영화제 기간 사이사이에 마련한 부대행사들은 그런 영화제의 기획의도를 적절하게 반영하며 이루어졌다. 너무 무겁지 않게, 오히려 즐겁게 풀어갔던 개막식은 인도에서 찾아온 특별공연팀 [Sua-Rang Ensemble]의 축하공연으로 시작하여 자원봉사단의 귀여운 깜짝 이벤트까지 이어졌으며, 미국 내 라틴계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코믹한 상황설정으로 다룬 [멕시코인이 사라진 날]이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다. 
또한 영화제의 밤을 열광적인 분위기로 만든 둘 째 날의 DJ Mix Party를 비롯하여 사흘 동안 계속된 영화상영 이후의 뒤풀이는 영화제의 기획팀과 자원봉사자들,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영화제를 찾아온 관객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울며 떠들 수 있는 자리였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소통하며 감정을 나눌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이 이주노동자영화제가 지향하는 바이며 존재하는 목적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이번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마붑 씨는 ACT!와의 인터뷰에서 ‘2회 이주노동자영화제에서는 이주노동자의 직접제작을 주된 기획으로 삼았으며, 그런 직접제작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부족한 공간을 스스로 넓혀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제를 기획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기획 아래, 9월 15일 안산부터 10월 28일 김해까지의 지역상영회 준비와 동시에 지역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프로그램이 공동 진행 중이며, 이 프로그램에서 직접 제작한 영상을 다음 이주노동자영화제에서 상영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인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다양성이 존재하는 문화 공간’으로서 이주노동자영화제가 위치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제 2회 이주노동자영화제는 나름대로 그 의도를 충실하게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무적의 이주노동자이지만 스스로 활극의 무대를 만들어가고, 그들이 만든 축제 위에 누구든지 스스럼없이 끼어들어 함께 즐길 수 있게 열어두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축제는 빛날 수 있었다.


나 그리고 당신



하지만 영화제의 고민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제 마지막 날에는 [아시아 액티비스트 네트워크]와 [포럼] 시간을 마련하여 아시아 영상 활동 네트워크를 위한 논의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Gabriela Krista Lluch Dalena([총알의 함성]의 감독)의 ‘필리핀 미디어활동과 국제 연대’에 관한 발제를 비롯하여 조동원 씨(미디어문화행동 활동가)의 아시아 독립미디어 네트워크 제안 등 국내의 상황에 고립되지 않고 다양한 현장의 독립미디어들이 서로를 연결하는 것의 의미를 영화제 안에서 풀어보려 한 것이다. (비록 다소 미흡한 준비와 시간 제약으로 그 자리에서는 포럼을 끝마치지 못했으나, 논의에 대한 필요성으로 이 포럼은 다음 날인 9월 3일에 수유+너머 연구실에서 계속되었다.) 
이러한 ‘스스로 미디어 되기’를 넘어 ‘서로를 연결하기’를 간절히 욕망하는 움직임은 2회 이주노동자영화제에서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집행위원장인 마붑 씨는 ‘한국의 미디어는 국내에서 갇혀’ 있기 때문에 국외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국내의 이야기를 알리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작지만 그런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이 영화제의 역할 중 하나라고 얘기한다. 
당신의 문제가 나의 문제이기도 하는 까닭은, 우리가 발 딛으며 사는 세상이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도마뱀들끼리의 연결, 그것은 세상을 지금과는 다르게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이주노동자영화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또 다른 중요한 이야기였다.


마지막 도마뱀들

“마지막 도마뱀은 일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아무도 없다면, 삶의 의미가 뭘까, 생각했다.
하지만 ‘당신’이 마지막 도마뱀이 되었을 땐 이런 생각조차 의미가 없다.” 
- 미시마 유키오, 같은 책에서



[고스트]의 에이 퀸 린도, [이주여성이 직접 들려주는 영상 이야기]를 만든 이주여성들도 모두들 마지막 도마뱀이라고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구든 마지막 도마뱀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나 또한 마지막 도마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혹은 이미 나도 마지막 도마뱀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사는 건 아닌가. 외로운 도마뱀은 활자 안에서만, 극장 안의 영상에서만 꿈틀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마지막 도마뱀들의 작은 꿈틀거림을 여기저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영화제는 그런 마지막 도마뱀들에게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소중한 지점을 마련해주는 작은 통로가 된다. 
이주노동자 40만 시대, 결혼과 2세의 출산 등을 통한 이주민의 숫자까지 더한다면 외국인 100만의 한국. 어쩌면 이미 내가, 그리고 당신이 외로운 도마뱀이며, 동시에 마지막 도마뱀들이고, 그래서 서로 함께 해야 할 생명들일 것이다.

그런데 혹시 아나. 지금 뒤를 돌아보면 무적의 마지막 도마뱀들이 당신의 뒤에서 활극을 펼치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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