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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6호 이슈] 제2회 이주노동자 영화제 - “아시아 영상 활동가 네트워크 포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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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6호 / 2007년 10월 19일

 

 

제2회 이주노동자 영화제 

- “아시아 영상 활동가 네트워크 포럼” -


홍드릭스 (이주노동자의 방송)
 
올 8월부터 시작된 집중 단속은 이주노동자들의 팍팍한 삶의 무게를 가중시키고 있다. 피부에 와 닿는 전근대적인 폭력은 그 절박함만큼이나 우리의 대응을 경직되고 단순한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주노동자의 역사는 그리 단순하게 뭉뚱그려지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의 존재는 이미 한국사회와 깊이 섞여버려 있으며 그만큼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기 때문이다.
1. ‘다문화’를 넘어 삶과 문화를 소통하고 생산하기

엄청난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이주노동자의 팍팍한 삶을 살짝 지운 채 그들을 우리의 친근한 이웃인 것처럼 전시하는 문화 행사들에는 유독 ‘다문화’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이런 저런 독특한 음식과 말과 춤.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한 자리에 나열되어 있을 때의 화려함과 재미를 강조한 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문화라는 것은 원래 그 안에 ‘다양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본적으로 그들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문화’ 행사에서만 별다른 고민 없이 사용하고 있는 ‘다문화’라는 말은 어딘가 불편하다. 
우리는 ‘파키스탄의 문화’와 ‘아이보리코스트의 문화’를 편의상 국경으로 구분하지만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러한 문화들은 또 다시 더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다른 토양에서 자라온 문화들이 ‘다문화’라는 국경을 넘어 자연스럽게 섞이며 새로운 문화를 생산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겠다며 휴가 때마다 열심히 해외여행을 떠나고 또 국제적인 교류를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훨씬 더 강력한 힘으로 이미 국경을 허물고 있는, 우리 안의 이주민들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살펴보지 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2007년 현재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자들은 다양한 활동으로 새로운 문화를 생산하고 있다. 이를테면 필리핀 공동체 카사마코(Kasammako)나 버마 행동(Burma action) 같은 단체의 경우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그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고향의 민주화를 위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필리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인권 탄압과 현재 미얀마에서 자행되고 있는 끔찍한 대량 학살을 지금 이 곳과 소통시킨다. 언론에서 잠깐 스치고 마는 ‘먼 나라 소식’이 그들을 통해 우리와 연결되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동시성의 감각을 강렬히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르지만 강렬하게 섞이는 문화, 공간을 뛰어넘는 거울이 되는 먼 나라의 싸움은 우리들의 삶을 환기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 질문하게 한다. 그 질문들은 작지만 다양한 목소리들을 잊지 않고 함께 갈 때 훨씬 풍성해진다.

제 2회 이주노동자 영화제에서는 ‘문화공감’과 ‘아시아 영상 활동가 네트워크’ 섹션이 새로 만들어졌다. 한국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단속과 불법체류자에 한정되어 있을 때 문제는 온전히 풀리지 않는다는 고민에서였다. 이주노동자들이 자라난 고향땅의 감성과 색깔, 그리고 그들이 지금 발 딛고 선 한국 땅의 문화가 서로 섞이고 새로운 바람으로 통하는 창문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질문은 훨씬 다채로워지고 싸움은 더욱 힘찰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기도 하다. 
이번 이주노동자 영화제는 그동안 우리가 귀 기울이지 못했던 소식들. '가난한 나라, 제3세계 국가'라고 불리며 잊혀왔던 곳의 문화와 환경, 정치, ‘이주’를 강요하는 고달픈 삶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으며 그것이 지금 여기와 어떻게 섞이고 있는지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말은 쉽지만 실제는 거참 어렵다!)

‘아시아 영상 활동가 네트워크’ 또한 그런 다채로운 삶, 본질적으로 시끄럽고 바글거릴 수밖에 없는 삶과 정치, 문화의 자리들을 연결하고, 그런 지점들을 응시한 결과물들을 공유하기 위한 고민이었다. 다양한 나라의 이주민들이 이미 다채로운 삶을 펼치는 동시에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2007년의 대한민국이 그런 링크의 접점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또한 가지고 있다.

2. 각국의 독립미디어 운동 현황과 연대를 위한 모색

작년 12월 서울에서는 방글라데시의 비디오 액티비스트 그룹 "브레이크 쓰루"와의 연대를 위한 상영회가 있었다. 서울의 많은 사람들이 "브레이크 쓰루"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고, 방글라데시 미디어 활동의 어려움을 공감했으며 그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그 광포한 속도를 더해가고 미디어 제국주의가 통제하는 현실 속에서 대안적 미디어의 연대와 네트워크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번 심포지엄은 각국의 독립미디어활동 상황을 점검하고 네트워크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다. 토론회에는 ‘아시아 영상활동가 네트워크’상영작 두 편의 감독과 한국인 네트워크 활동가가 초대되었다.
 
 
방글라데시 ‘칸삿’지역에서의 농민 투쟁을 다룬 영화 “포효하는 칸삿”의 감독인 Akramm 씨는 방글라데시의 국내 상황으로 인해 이번 영화제에 참석할 수 없었다. 불안정한 인터넷과 네트워크는 방글라데시에서 발제문을 보내는 것마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러한 ‘순간’들은 정치적인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서 목숨마저 걸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열악한 제 3세계 국가의 미디어 활동 상황을 어떤 발제문보다도 정확하게 보여준다. 방글라데시의 비디오 액티비스트 그룹 “브레이크 쓰루”에게 돈을 모아 카메라를 마련해줄 수는 있었지만, 그 이후 그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들의 성과물을 네트워킹 하지 못한다면 제3세계 국가들의 폭압적인 정치적 상황 속에서 목숨을 건 그들의 활동은 죽거나 고립될 수밖에 없다. 저마다 다른 상황과 조건 속에서의 지속가능한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까.한편, 필리핀의 독립영화 “총알의 함성”의 감독인 GABRIELA KRISTA LLUCH DALENA은 표면적인 표현의 자유를 획득한 이후 오히려 빠르게 상업화된 필리핀의 미디어 운동에 대해 전달하고 있다. 주류 영화 산업조차 할리우드에 대항하기 위해 고유한 투쟁을 해야 하는 필리핀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대안적인 영화는 이른바 “독립 미디어 활동가”의 헌신적인 운동에 의해서만 가능했다고 한다. 태생적으로 식민주의자들의 매체였던 영화를 변화를 생산하는 미디어로 변화시키기 위해 활동가들은 분투했으며 무엇을, 누구를 찍을지, 누구를 위해 영화를 만들지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싸워야 했다고 KIRI씨는 전한다.
그러나 모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1970년대의 마샬 체제에서도 정의와 민주화 투쟁을 기록하며 움텄던 대안적인 영상 활동은 독재정권이 끝난 이후 빠르게 힘을 잃었다. 통제로부터의 해방이 오히려 미디어를 상업화시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류로 구성된 미디어 조직들은 비즈니스 조합의 형태가 되었고 미디어는 사회저명인사와 스캔들을 비추기 시작한다.
방글라데시와 필리핀의 현실은 마치 우리가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경험했던 일들에 대한 일종의 복귀처럼 느껴지지만 지금 우리는 과거에 상상도 못했던 네트워킹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급격히 늘어나는 이주(노동)는 전지구화의 일상적인 경험과 권리투쟁을 확대시키고, 문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선 대항 민중문화 연대의 가능성을 비춘다. 한국의 미디어활동가 조동원은 이러한 가능성을 지난 2006년 가을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아시아 독립 미디어 네트워크’의 경험을 중심으로 전했다. 대만, 일본,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여러 나라의 대안 미디어 단체들의 네트워크인 ‘아시아 독립 미디어 네트워크’는 아시아 각 지역의 활동가들이 서로의 작업과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하며 무엇보다도 새로운 의사소통의 형식과 내용을 창조하고자 하는 실험이다. 온라인 플랫폼의 구축이라던가 여러 가지 이슈를 통한 공동 제작/ 배급/ 상영작업의 기획, 각 단체의 결과물을 순회상영하거나 퍼블릭 액세스 채널에 방영하는 것, 다언어 자막 DVD를 제작하는 활동들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에는 언어적 한계와 기술적 인프라의 문제, 인력과 돈의 문제 등 현실적인 한계가 남아 있다. 이에 발제자는 한국 내에서의 아시아 국제연대를 위한 영화제나 아시아 사회운동 영화들의 지역 공동체 상영회 조직을 제안하는 한편, engagemedia.org등을 활용한 온라인 배급 인프라의 구축을 제안하고 있다. 실제로 각 영화제의 포럼이나 워크숍을 활용한 직접 교류의 장이 한국 이주노동자 영화제나 대만의 철마 영화제 등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온라인 배급 네트워킹을 위한 국제 워크숍이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한계와 물질적 어려움을 뛰어넘는 네트워킹의 가장 훌륭한 사례들은 다시 아시아 지역의 공동 투쟁 현장에서 창출될 것이다. 2005년 홍콩에서의 WTO투쟁이 그러했듯이.

3. 작지만 구체적인 활동으로 연결하기

토론회는 부족한 준비와 미흡한 진행으로 인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필리핀의 Kiri 감독과 미디어 문화행동의 조동원씨를 중심으로 미디어 활동 교류에 대해 이야기하는 후속 모임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번역을 통해 각국의 활동들을 공유하고 교류하고자 하는 서울 번역모임 Seoulidarity와 토론회의 주최였던 이주노동자의 방송 MWTV가 함께 했다. 모두 다양한 언어와 대안 미디어, 국제적인 교류와 연대, 작은 움직임들의 연결을 통한 공동행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집단들이다. 거창한 제안을 통한 큰 그림보다는 우선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들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Kiri씨가 소개하는 필리핀의 정치상황에 대한 다양한 영상 중 선별하여 번역과 자막 작업을 통해 국내에 소개하기 위한 계획들이 준비되고 있다. DVD 제작은 미디액트의 제작 지원공모를 이용할 예정이다.
 
 
각지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들은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살고, 싸우고 있다는 소박하고 절실한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그 모든 싸움들이 고립되지 않고 연결될 때 우리는 훨씬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개개인과 작은 단체들의 활동이 맞닥뜨리는 한계들은, 어쩌면 한 번도 직접 만나지는 못할지도 모르는 먼 곳의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연결됨으로써 돌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작은 토론회가 만들어낸 후속 작업들이 새로운 링크들을 만들어내며 또 다른 한계를 돌파해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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