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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5호 이슈] 다큐멘터리는 언론이 아니라고? -독립다큐멘터리의 취재의 자유를 보장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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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5호 / 2007년 9월 12일

 

 

다큐멘터리는 언론이 아니라고? 

-독립다큐멘터리의 취재의 자유를 보장하라 -


 
김미례 (다큐멘터리 감독)
 

다큐멘터리를 시작한지 어느 덧 9년째가 되고 있다.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처음으로 담기 시작했던 것은 1998년 한국의 경제위기가 시작되던 때였다. 카메라를 들고 처음으로 내가 담은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어서 테이프를 찾아보니, 우리 동네 시장골목이었다. 김장시장이 시작되고 있었고, 배추와 무를 쌓아놓고 추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할머니, 불 쬐는 짐꾼들, 그들의 빨갛게 언 얼굴들에 새겨진 깊은 주름들, 바닥에 짓이겨진 배춧잎들...

내가 비디오카메라로 보았던 최초의 세상풍경. 그것이 고스란히 첫 테이프에 남겨져있다. 그렇게 나는 비디오카메라를 먼저 들었고, 찍힌 사람들에게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편집을 해서 함께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서로에게 즐거운 일이었다. 함께 보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 그런 것들이 노동현장으로 이어지면서 그들의 투쟁을 기록하고, 남기고, 편집을 통해서 정리해서 함께 보는 일이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갔다. 당시 기록했던 촬영본들은 쌓여갔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소중한 자료가 되어갔다. 당시 그들의 생존과 노동기본권을 위한 사회적 행동들, 외침들이 서툴게 기록되긴 했지만, 아주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카메라를 세상을 향해서 들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말하고 있는가, 카메라를 통해서 무엇을 어떻게 소통하고 싶어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이 시작되었다. 또한 다큐멘터리는 무엇인가? 저널리즘이면서 영화이기도 한, 그래서 지식으로 알아야할 것도 많지만, 현장에서 생생하게 배우는 것도 많아서 흥미롭고도 어려운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좀 더 진지하고 치열하게 카메라를 들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딪히고 극복해나가야 할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다.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통해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었고, 말걸기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당신은 왜 비정규직이 되었나? 왜 시위하는가? 왜 해고시켰는가? 법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그것은 공평한가? 공평하지 않다면 그것은 누가 누구를 위해서 만들었는가? 많은 인터뷰와 행동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진실에 접근하는 것은 어렵고, 진실임을 판단해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진솔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역시 어려운 상황에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데, 게다가 그들의 목소리조차 중앙언론을 통해서 외면당하고 심지어 왜곡되어지는 사람들이었다.
다큐멘터리는 사회 정치적인 문제들에 접근을 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시를 이야기하며 자연과 우주의 신비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무엇을 이야기하든,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한 전문적이고도 특별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는 저널리즘이기도 하다.
나는 요즈음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하고 있다. 올 초 여성노동에 대한 기획을 위해서 취재를 하던 중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을 만났다. 적게는 몇 개월에서 많게는 4,5년을 계약직으로 일하던 그녀들이 계약만료 시점에서 자동적으로 재계약되던 것이, 이번 해 7월 1일 비정규직 법안 시행을 앞두고 갑자기 계약해지통보를 받거나, 심지어 근로계약서에 계약기간이 위조되어 해고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녀들의 고용에 대한 불안감과 용역업체로의 전환은 생존권의 위협으로 다가왔고 순식간에 총파업의 불길을 당겼다.
이랜드 회사의 뉴코아 노조와의 불성실한 교섭, 외주화 발표와 임금동결, 심지어 이랜드 일반노조에 대한 불인정 등으로 총파업은 점거농성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이 사회의 여성과 여성노동의 문제를 다뤄보고자 했고, 집중적으로 촬영에 들어가면서 점거농성장에도 함께 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그녀들의 투쟁현장을 기록하는 카메라들은 우리 팀과 진보적 미디어뿐이었지만, 점거농성이 계속되면서 그녀들의 문제는 사회적인 이슈로 크게 떠올랐고 많은 언론들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월드컵 홈에버 상암점 점거농성이 10여일을 넘기면서 농성장에는 상주하는 기자들이 늘어났고, 3사 공중파는 중계방송 차까지 동원하면서 경쟁적인 취재에 열을 올렸다. 이랜드 사측과의 교섭이 시작될 무렵에는 교섭 장소와 농성장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기자들은 처음 본 것 같았다. 이들 중에는 경찰이나 사측의 프락치로 의심되는 자들도 보였지만 나로서는 어떤 조치를 내릴 수없는 입장인데다가, 더군다나 그들이 완장처럼 차고 다니는 프레스증 하나 없는 처지였으니 점점 그들의 취재영역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결국 공권력에 의해서 농성장의 통제가 시작되었고, 기자들만 농성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상황을 지휘 통제하는 곳은 서울시 경찰청이었으며 그들이 말하는 기자들은 한국방송기자협회와 한국신문기자협회, 인터넷기자협회 소속의 기자들로 기자증을 소지한 자들이었다. 나는 계속 이랜드의 노동문제에 대해서 작업을 해왔던 사람이며 직업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설명을 하고 출입을 요구했지만, “기자증이 없으면 다큐멘터리는 안 돼!!!”라는 소리만 들을 뿐이었다.
이것을 공권력의 무지라고 말해야하는 건지, 오만이라고 말해야하는 건지, 노동자들의 파업과 점거농성을 무조건 불법이라고 말하며 출입금지의 이유를 단지 “위에서 지시”라는 말만 반복하는 현장 담당경찰관의 구차한 변명, 그리고 그 “위에서 지시”하는 사람의 “다큐멘터리는 안 돼!!!”라는 상황에 어떤 말도 통하지가 않았다.
공권력이 나름대로 언론이라고 판단한 기자들을 선별해서 출입을 시키는 가운데에는 조.중.동 기자들도 있었다. 농성장 대오를 지휘하는 지도부가 농성 당사자들의 취재와 사진촬영을 거부하는 동안, 이들은 당당하게 출입하면서 그 많은 취재원들 속에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었다. 농성장 안과 밖에서 프레스 완장을 차고 경찰들과 친밀하게 지내던 이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다시 한 번 공권력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주된 언론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결국 7월 20일 그녀들은 농성장에서 강제 연행되었고, 치열하게 취재전쟁을 치르며 촬영을 했던 그들의 보도는 ‘불법 점거하던 농성장이 경찰에 의해서 강제해산‘된 것으로 한결같이 보도되었다. 그들의 취재대상이 되었던 그녀들은 분노했지만, 그녀들의 분노는 힘없이 사라질 뿐이었다.

지금은 미디어 시대라고 한다. 이전에는 힘 있는 권력에 의해서만 독점되었던 언론이 인터넷, 디지털 카메라, 소형비디오카메라의 등장이라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누구나 쉽게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내고 세상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또한 필름처럼 고가장비나 고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힘 덕택에 개인적으로도 작업이 가능해졌다. 이제 우리는 보다 넓고 다양하게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사실을 알리거나 문제들에 대해서 미디어를 통해서 말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언론으로 규정되는 곳은 힘 있는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서 지배되어오던 방송사나 신문사이다. 이 참여정부는 또한 언론 통제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공권력을 지시하는 그 “위에서” 있는 사람이 인정하는 그들의 언론은 무엇인가? 언론의 사전적인 의미는1. 개인이 말이나 글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는 일. 또는 그 말이나 글. 
2.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나는 아직도 이 작업을 진행 중이고, 위의 출입통제사건은 공권력의 과잉통제로 국가 인권위에 민원으로 접수되어 조사 중에 있다. 이후에도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부딪혀야할 공권력에 의한 현장 통제는 작업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킬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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