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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5호 연재] 화려한 정보화(情報化) 속의 빈곤한 정보화 (2) : 정보화의 숨은 원천(源泉), 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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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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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5호 / 2007년 9월 12일

 



화려한 정보화(情報化) 속의 빈곤한 정보화 (2) 

: 정보화의 숨은 원천(源泉), 책 이야기


 
윤 상길 (꿈꾸는 미디어史家, cyrus92@dreamwiz.com)
 

4. 인류사회 정보화의 진정한 원천인 서적(문화)

(편향된 ‘커뮤니케이션-미디어-정보’ 개념群에 기반하여) 정보화를 ‘정보설비의 보급과 확산’으로만 이해하는 인식방식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어, 전자미디어의 선두주자라 할 전신(telegraph)의 등장은 결정적이었다. 전신이 그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 (전신 그 자체에 그 원인을 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서구사회의 경제성장과 인구성장을 그 사회적 배경으로 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정보의 빠른 원거리 전송’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합해야 하였기에, 능률과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여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정보를 사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구체적인 방편으로서 (언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 알파벳이나 활자의 잉여를 제거하는 방식이 활용되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내일 6월 3일에 도착하겠습니다’와 같이 열일곱 개의 음절로 구성된 전보(telegram)는 ‘내일 도착’이라는 네 개의 음절로 구성된 전보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19세기와 20세기의) 정보통신 이론가들의 일차적인 관심거리는 그들이 사용하는 코드의 잉여성을 최대한으로 제거하고 코드의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데 있었다”(*주1). 이와 같이 전신은 커뮤니케이션의 기계적 모델(*주2)과 그에 따른 (정보량을 재기 위한 단위인 비트(bit)로 대변되는) 정보의 수량화 시도를 지배적인 경향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20세기 정보화의 기폭제였던 컴퓨터의 등장은 정보전송의 영역에 국한되어 있던 커뮤니케이션/미디어/정보의 기계적 모델과 수량화 모델을 정보처리의 영역으로 확장시켜준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정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정보에 있어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향성(*주3)의 등장이 (이미 앞서 다니엘 헤드릭이 언급한) 새로운 정보시스템의 등장시기인 1700-1850년 이후부터라는 사실이다(*주4). 이는 단순한 시기적 선후관계를 넘어서 중요한 이론적 쟁점을 함축하고 있다. 전신의 등장을 필두로 그 이전 시기에 성립하였던 정보시스템의 전환이 새롭게 이뤄졌는가? 아니면 이전 시기 정보시스템의 단순한 연장(延長)인가? 만약 이전 시기 정보시스템의 단순한 연장이라고 한다면, 그 정보시스템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사적 계기가 된 미디어는 무엇인가? 이들 질문들에 대해선 세계사적 범위의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점차 검증해야 할 문제이겠지만, 최소한 세 번째 질문과 관련해서는 기존 연구에 근거하여 어느 정도의 추론적 대답이 가능하다. ‘정보의 역사’를 서술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다니엘 헤드릭(Daniel Headrick)과 피터 버크(Peter Burke)(*주5)에 의하면, 서구사회에서 정보가 분류되고 조직?변형되는 방식 상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에 영향 받은 서적 문화를 기반으로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5. 필사테크놀로지 기반의 서적, 인쇄테크놀로지 기반의 서적

인류역사 상의 소위 ‘정보혁명’(*주6) 중 첫 번째는 문자의 발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문자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해 정보의 저장과 보존이 용이해 졌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충분하다. 물론 문자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정보나 지식의 저장과 보존은 가능하긴 하였다. 어찌 보면 가장 오래된 미디어라 할 인간 그 자체,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인간의 머리, 즉 인간의 기억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력의 한계로 인해 지식/정보의 저장과 보존이 온전한 형태로 이뤄질 수도 없을뿐더러 영구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저장과 보존의 매개체인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이다(*주7).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음성언어(즉, 말)를 시각화하는 테크놀로지인 표음문자의 등장은 바로 정보저장과 보존에 있어서의 혁명이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자의 등장은 인간을 기억의 강박증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논리적 사색에 더 적합하도록 “인간 의식을 재구조화”(*주8)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문자의 등장은 인류에게 그에 대한 댓가를 요구하였다. 그 댓가는 음성언어의 수행행위, 즉 말을 하는 행위에 더 많이 부여되어 있던 ‘자연스러움’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월터 옹의 지적대로, 자연스럽게 구술로 하는 말하기와는 대조적으로 (글)쓰기는 완전히 인공적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쓰는 것은 누구도 할 수 없다. 구술적인 말하기(oral speech)는, 생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장애가 없는 한, 어떠한 문화 속의 어떠한 인간도 말하기는 배운다는 의미에서 얼마든지 자연스러운 것이다”(*주9). 그렇다면 이러한 문자성의 발휘에 수반되는 이 ‘부자연스러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것은 문자나 글쓰기 모두가 말을 기술화(technologizing)하기 위한 방식이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인간에 소속되지 않은 하나의 외적인 ‘기술’(*주10)(technology)인 까닭에, 그 기술을 내면화시키는 별도의 훈련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리터러시’(literacy, 문해력)라 일컫는 용어도 하나의 기술에 대한 내면화 과정을 일컫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글쓰기에 수반되는 ‘부자연스러움’은 사회권력의 원천이 된다. 글쓰기 기술을 내면화시키기 위해선, 우선 생존을 위한 노동으로부터 일정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 오랜 기간의 시간적 여유뿐만 아니라, 부가적으로 “철필이나 모필이나 펜, 종이나 가죽이나 나무껍질과 같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표면, 잉크나 페인트 등의 여러 가지 장치나 도구의 사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자문화의 혜택은 인쇄테크놀로지가 도입되기 전까지 일부 부유계층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문자와 글쓰기의 등장으로 인해 야기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양식(환경)으로의 변화는 일부 특정 사회세력들에 대한 ‘선호’”(*주11)로 이어졌다.
이렇듯, 문자의 발명은 지식/정보의 저장과 보존, 축적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인류사회가 정보화로 향해 가는 초석으로 기능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접근이 일부 사회세력에만 허용되었다는 측면에서, 이때의 커뮤니케이션 양식은 레이몬드 윌리암스가 제시한 바 있는 3가지 유형의 커뮤니케이션 양식(*주12) - 1) 확장적(amplificatory) 양식, 2) 보존적(durative)/저장적(storing)/도구적(instrumental) 양식, 3) 대안적(alternative) 양식 - 중 ‘보존적 양식’이 나머지 두 개의 양식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정보의 전파와 확산, 교류에 적합한 ‘확장적 양식’이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선 문자를 대량생산하고 복제하는 인쇄테크놀로지의 등장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보존적 양식’이 나머지 두 개의 양식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는 말이, 인쇄술 등장 이전시기엔 서적(책)이 순전히 정보저장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거리 통신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 새로운 정보를 전달 받아 획득하는 주요한 방법 중의 하나로서 책이 가지는 유용성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다만 인쇄술의 도움을 얻기 전까지, 필사(손필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서적복제의 제약으로 인하여 서적이 가지고 있는 정보확장성은 상당부분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필자는 얘기하고자 함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정보의 저장기능 뿐만 아니라 확장기능까지 두루두루 갖춘, 즉 지식이나 정보, 혹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텍스트)을 문자 형태로 저장/공표할 목적으로 대량 복제된 “근대적 의미의 책이 형성되는 시기는 문자가 출현해 3500년이 지나고 인쇄술이 등장하는 약 1000년 동안이다”(*주13).

6. 서적 미디어성 실현의 조건

(앞서도 지적했듯이 정보화의 궁극적인 의미가 ‘정보’를 조직화하고 다루는 인간능력의 강화,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정보[미디어]시스템의 균형적 발전에 있다고 할 때) 인류의 정보화에 있어서 서적이 그 역할과 의의를 제대로 실현시키기 위해선, 인간의 주체적인 정보 조직화 욕구에 대비하여 다른 사회제도 - 가령 교육제도 등 - 와의 관련성 속에서 서적관련 사회제도를 어떻게 배치시킬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쇄테크놀로지의 도입으로 인해 서적의 정보저장성과 정보확장성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이지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현실화시켜 주는 것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서적은 스스로 커뮤니케이션하지 않는다. 단지 저자와 독자, 혹은 정보의 생산자와 가공업자, 소비자 사이를 연결시켜서 그들 간의 공통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한 매개체 - 말 그대로 그냥 중간에 있는 물체 - 일 따름이다. 그리고 서적은 단지 사람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할 무대와 기회를 제공해 줄 뿐이다. 때문에 서적 속에 담긴 정보의 가치를 주체적으로 인식한 사람에서라면 서적의 미디어성은 현실화될 수 있겠지만,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그저 베개 대용이나 커피컵 받침정도의 효용 밖에는 없는 ‘단순한 물체’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결국 서적의 미디어성 내지 커뮤니케이션적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수 있을지의 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은 서적의 정보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이를 뒷받침해 줄 사회제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적 관련 사회제도 중에서 특히 필자가 주목하는 부문은 서점과 같은 서적의 ‘유통’(*주14)을 담당하는 사회제도나 행위자들이다. (최근 디지털기술과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로 인해 그 성격이 다소 퇴색하긴 했지만) 아날로그 시대 서적이 가지고 있는 ‘물체적 속성’(물체성, 物體性)은 책의 탄생 이후 지속으로 유지되어 왔기에, 서적유통담당 사회제도는 물체로서의 서적을 생산자로부터 소비자(혹은 독자)에게 전달시켜 줌으로써 이들 사이를 ‘재매개’(remediation)(*주15)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들 사회제도나 행위자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미디어일 뿐만 아니라, 정보 확장의 중요임무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래 출판 산업은 인간의 내적인 정신활동의 소산을 요구하는 ‘문화성’과, 또 한편으로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경제성’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양가성(兩價性)을 가지고 있다”(*주16). 여기서 이율배반적이라 함은 서적을 파는 사람은 상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상인일 수밖에 없으나, 동시에 그의 주된 목표가 가치 있는 정신문화재의 선택과 그 장려에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출판 산업의 ‘경제적 성격’이든 ‘문화적 성격’이든, 그 본래 가치를 실현시키는 데 있어서 서적유통경로를 올바르게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서적의 미디어성 실현의 중요한 관건으로서 유통경로에 관심을 가질 때, 독자에게 가장 가까운 특정 지역에 위치하게 되는 - 그런 점에서 지역밀착형인 - 서적 유통기관인 소매서점의 지역별 분포는 지역정보화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점이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경우, 17세기까지는 서쾌(書?) 혹은 책쾌(冊?)라고 하는 서적중개상이 사대부가를 돌아다니며 책을 판매하였다. 이렇게 서적판매가 떠도는 행상을 통해 이뤄진 것은 비단 조선만의 특이한 현상이라기보다 동서양을 막론한 전세계적인 현상이었지만, 서양과 달리 조선에서 오늘날의 서점에 해당하는 민간 서사(書肆)의 발달이 더뎠던 이유는 “유교의 양반문화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았다. 책을 팔고 사는 대상이라 여기는 의식이 없었던 데다가 관청에서 필요에 의해 무료로 나누어 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기에 백성들이 비싸게 책을 구입할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주17). 어찌보면, (인문학자 김민희도 지적하고 있듯이)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고 물류 체계가 정립되어 있지 못한 제한적 환경에서 책쾌와 같이 전국을 떠돌면서 서적을 판매했던 서적중개상의 존재는 정보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필수불가결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19세기 초 최초의 민간서사가 등장하고, 개항이후 밀려오는 서구문물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요구에 발맞춰 서적에 대한 발행과 욕구가 많아짐에 따라 19세기말에 이르러 많은 서포(書鋪)들이 설립되었다(*주18). 따라서 구한말 보부상의 쇠퇴와 마찬가지로, 떠돌아다니며 서적을 판매하는 서적중개상의 입지가 근대적 서점의 등장으로 인해 점차 좁아졌음에는 부인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볼 점은 정보 확장의 측면에서 서점들이 지역적으로 얼마나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19세기말에 한국을 방문한 모리스 꾸랑의 증언에 의하면, “서점은 전부 도심지대에 집중되어, 종각으로부터 남대문에 이르기까지 기다란 곡선을 그리고 나아간 큰 길가에 자리잡고 있었다”(*주19).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1906년 즈음 지방에 서적판매를 전담하는 서포가 점차 생기기 시작할 때까지 거의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주20). 일제시대 서점의 지역별 분포에 대한 연구가 없어 확언할 수 없지만, 방효순이 정리한 일제시대 서점목록표를 언뜻 보더라도(*주21) 소매서점의 대다수가 서울에 집중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1935년 당시 대략적으로 1,400-1,500여명이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봇짐장수들과 서적중개인들의 활동(*주22), 그리고 근대적 우편제도 및 교통기관의 도입 등의 요인들이 소매서점의 지역적 편중을 일부 상쇄시켰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정보 확산을 위한 사회제도로서 서점이 담당해야 될 안정적인 역할은 기대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은 어떠할까? “서점의 지방분산 정도를 보면, 한국의 경우 서울집중이 23%이며, 일본의 경우 동경 집중이 10.8%여서......(중략).....한국의 경우는 서점의 지방 분산화 정도가 일본에 비해 휠씬 저조하며 지방의 서점망 확보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주23)는 1986년도 당시 어느 출판인의 진단에서 보듯이, 이러한 소매서점의 서울 집중 구조는 (비록 다소 완화되긴 하였더라도) 그다지 많이 개선된 듯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1997년도에 발행된 한국출판연구소의 《유럽 도서유통에 관한 고찰》보고서에서의 진단, 즉 유럽의 도서유통이 “초대형 출판사들의 자체 전문유통시설에 의한 출판사 공급대행업, 독립 도서유통 자본에 의한 공급대행업, 도매업, 체인서점들의 유통시설, 북클럽 등에 의해 대부분의 물량이 처리되고 있”(*주24)는 상황에서 “주로 도매업에만 의존해 왔던 우리에게는 (일본에서 미처 발전하지 못한) 출판사 공급대행업 형태의 유통회사가 중간기구로서 얼마나 합리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파악이 없었”(*주25)다는 자기성찰이 지금의 인터넷 강국 한국에서 실현되고 있는 듯하다. 예전의 서울집중 구조가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을런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7. 나가며

지금까지 필자는 정보화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며, 그리고 그러한 의미 속에서 서적이 스스로의 미디어성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해당 사회가 어떠한 사회제도적 조건을 마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거칠지만 문제의식 중심으로 서술해 왔다. 하지만 ‘정보화’와 ‘서적’ 간의 관련성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여전히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래도 정보화의 핵심이라 할 ‘인간주체의 정보조직화 능력’에 대한 부분과, ‘서적을 통한 정보축적’의 사회제도인 도서관,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적의 정보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부재로 인해 버려진 쓰레기 더미 속에서 다시금 서적의 가치를 발견하여 사회적 약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헌책방을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필자는 아직도 외국 모대학의 도서관과 21세기 최첨단 인터넷 시대에도 수 백여개의 헌책방들이 성업 중인 유명한 헌책방 거리를 방문했었을 때 느꼈던 낯설음과 경이감을 잊을 수 없다. 비록 허름한 건물이지만 정보적 가치가 충분한 책들이 충실히 소장되어 있는 도서관, 그리고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오히려 더 비싸게 팔리는 헌책방.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경이었기에 처음엔 낯설음으로 다가왔지만, 잠시 후 낯설음은 경이감으로 바뀌었었다. 그 나라사람들의 정보를 대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경이감을 느끼게 했던 이유였다. 이번에 다루지 못한 주제에 대해선 차후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다루어 볼 생각이다.
* 주
1) 로베르 에스카르피 (1976), 김광현 역(1996),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서울: 민음사, p.57
2) 앞서에서 사용한 용어로 보자면, 커뮤니케이션의 전파적 관점이 이에 해당한다.
3) 이와 비슷하게, 유명한 뉴미디어의 철학자인 마크 포스터(Mark Poster)는 새로운 언어유형을 구성하는 전자적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매개되는 사회관계를 일컬어 ‘정보양식’이라 지칭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마크 포스터 (1990), 김성기 역(1994), 《뉴미디어의 철학》, 서울: 민음사
4) 전기적 전신(electrical telegraph)이 발명된 것이 1844년이라는 점을 상기해 보라.
5) Burke, Peter (2000), Social History of Knowledge: From Gutenberg to Diderot, 박광식 역(2006), 《지식 : 그 탄생과 유통에 관한 모든 지식》, 서울 : 현실문화연구
6) 어빙 팽(1997)에 의하면, “혁명이라는 단어는 갑작스럽고 때론 폭력을 동반한 변화를 떠올리기 쉽지만, 혁명은 수 십년 혹은 수 백년에 걸쳐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올 수도 있다. 그리고 정보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선 이미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의미를 제공할 매개체(즉, 미디어)가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pp.11-12). 그가 언급한 여섯 차례의 정보혁명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어빙 팽(1997), 심길중 역(2002),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역사》, 서울: 한울 아카데미
7) 그런 까닭에, 사회 내 권위는 많은 경험과 기억을 지니고 있는 노인층에게 부여되었고, 지식/정보의 전달과 전수는 사람의 목소리에 직접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음성언어, 즉 구술에 의존하던 구술문화시대의 특성에 대해선 월터 옹의 책[월터 옹 (1982), 이기우, 임명진 역(1996)《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서울: 문예출판사]을 참고하기 바란다. 
8) 월터 옹 (1982), 이기우, 임명진 역(1996)《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서울: 문예출판사, pp.123-178
9) Ibid, pp.129
10) 여기서, 레이먼드 윌리암스의 용어정의를 참고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윌리암스에 의하면, ‘기술적 발명품’과 ‘테크놀로지’라는 용어를 동일한 것으로 사용하는 것은,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그 자체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활용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명확한 사실을 애매모호하게 만든다고 한다. 특히 이러한 모호함은 형용사적인 용법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가령 우리는 특정한 장치(device)의 발전요소로서 ‘기술적 문제’, ‘기술적 돌파구’란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테크놀로지(technology)와 기술(technique)을 구분하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여기서 기술은 특정한 기능(skill, 技能), 혹은 그 기능의 적용(장치)이다. 그럴 때 ‘기술적 발명품’은 곧 그런 기능의 발전이나, 혹은 장치의 발전을 의미하게 된다. 반면에, 테크놀로지는 우선, 그런 기능과 장치의 발전에 알맞은 ‘지식의 통일체’(the body of knowledge)와, 둘째 일단의 장치들에 대한 실질적 사용과 적용을 위한 지식의 통일체와 조건들을 의미한다(Williams, Raymond (1989), 'Communications, Technologies and Social Institutions', What I Came to Say, The Estate of Raymond Williams, London: Hutchins Radius, p.172-173).
11) 로널드 디버트(1997), 조찬수 역(2006), 《커뮤니케이션과 세계질서 : 양피지, 인쇄술, 하이퍼미디어》, 서울: 나남, pp.75. 이의 대표적인 역사적 예로서는 인쇄술의 등장으로 인해 야기된 중세 종교지배세력의 퇴조가 있다.
12) 레이몬드 윌리암스에 의하면, 즉각적인 인간의 물리적 자원에 의존하는 커뮤니케이션 양식과 인간에 속하지 않은 물질을 변형시키는 것에 의존하는 커뮤니케이션 양식을 구분해야 하며, 인간에 속하지 않는 물질을 변형시키는 것에 의존하는 커뮤니케이션 양식은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확장적 양식에는 확성기로부터 직접 전송되는 라디오나 텔레비전까지 포함된다. 인간의 즉각적인 물리적 자원과 관련하여, 보존적 양식은 비교적 최근에야 발전되어 왔다. 몇몇 종류의 비구두적 커뮤니케이션은 그림이나 조각에서 저장되는 것이 가능했지만, 말(speech)은 사운드레코딩의 발명이후에만 보존이 가능했다. 다른 한편, 대안적 양식은 인류사 초기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서, 물질적 대상을 기호로 변형시키고 사용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Williams, Raymond (1980), 'Means of Communication as Means of Production', Problems in Materialism and Culture : Selected Essays, London: Redwood Burn Ltd. pp.55). 
13) 브뤼노 블라셀 (1997), 권명희 역(1999), 《책의 역사》, 서울 : 시공디스커버리, 
14) “본래 유통이란 ‘재화의 공급주체와 수요주체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경제활동’으로, 산업과 소비 사이의 정보, 수량, 장소, 시간적 분리를 결합시키는 것이다”(윤형두 (1989), 《출판물유통론》, 서울: 범우사, pp.24). 
15) ‘매개의 매개’란 의미로 사용되는 이 개념은 “미디어를 선형적 발전역사 차원에서 보지 않고 ‘관계적 계보(genealogy)차원’에서 보려하는” 발상에서 나왔는데, 기본적으로는 뉴미디어가 올드미디어를 매개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개조(refashion)하기 까지 한다고 본다. 이에 대해선, 박기순(2000), 《인간, 매체, 커뮤니케이션》,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pp.217-242
16) 윤형두 (1989), 《출판물유통론》, 서울: 범우사, pp.23
17) 이민희 (2007), 《16-19세기 서적중개상과 소설?서적 유통관계 연구》, 서울 : 도서출판 역락, pp.119.
18) 김봉희 (1999), 《한국 개화기 서적문화 연구》,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pp.
19) 모리스 쿠랑, 김수경 역 (1946), 서울 : 범장각, pp.4. ; 이민희, ibid, pp.119에서 재인용.
20) 김봉희, ibid, pp.81-91.
21) 방효순 (2001), 《일제시대 민간 서적발행활동의 구조적 특성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 대학교 박사학위논문, pp.184-197
22) 방효순, ibid, 26-29.
23) 윤형두, ibid, pp.61-62
24) 김종수 (1997), 《유럽 도서유통에 관한 고찰》, 서울 : 한국출판연구소, pp.10
25) 김종수, ibid, p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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