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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7호 미디어인터내셔널] 일본의 시민미디어센터 건설의 현황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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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7호 / 2007년 11월 29일

 

일본의 시민미디어센터 건설의 현황과 과제

 

이영채(일본 시민미디어센터 MEDIR 준비위원회 운영위원)

 

1. 한국 독립미디어운동의 조사보고와 일본 사회단체의 반응

 

2006년 3월 일본의 활동가들 13명이 미디액트 및 참세상, 진보넷을 방문하여 한국의 미디어운동의 현황을 조사하였다. 대학생, 미디어운동가, 신자유주의 및 세계화반대 활동가, 청년노동 운동가, 의원보좌관, 시민단체 상근자 등 사회운동의 각 분야의 젊은 활동가들이 한국의 미디어운동의 현황을 직접 경험한 것은 역사문제를 넘어선 새로운 한일연대운동의 모색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 방문팀은 돌아와서 4월말에 일본 죠오지대학에서 미디어활동가 및 대중조직 대표자들 약 60명 정도를 초청하여 한국의 독립미디어운동의 현황에 대해서 보고회를 가졌다. 오마이뉴스로 대표되는 한국의 인터넷 독립미디어의 성장과 특히 2005년말 홍콩 WTO각료회의에 참가한 농민들의 투쟁이 미디어운동단체에 의해 인터넷에 생중계된 것 등 운동미디어로서의 성장에 대해서도 깊은 감명을 받은 일본의 사회단체들에게 한국 미디어운동의 현황이라는 주제는 매우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된 테마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간단히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고회의 참가자들 중에는 한국의 독립미디어운동의 활발한 활동에 감탄하면서도 일본에서의 실현은 무리다라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류미디어의 사장을 국가가 직접 임명하는 한국의 언론구조와는 달리 일본의 미디어는 권력으로부터 중립적이다라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시민 미디어에 대한 인식이 깊게 깔려있고, 아직까지도 주류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언론은 관제언론이고 적이다]라고까지 인식되어왔던 한국의 미디어에 대한 인식과 일본시민사회의 미디어에 대한 중립성의 전통적인 인식의 차이는 일본의 시민미디어센터의 대중적인 운동을 저해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70년대 독립다큐멘터리의 열풍이 개인 다큐멘터리 감독의 양성으로는 이어졌지만, 한독협 같은 조직이나 미디액트와 같은 대중적인 미디어센터로 발전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는 패배감, 거대한 자금이 필요함에도 공적자금에 대한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의 부정적인 시각, 시민미디어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대중적인 신뢰 부족, 사회운동토양의 붕괴 및 젊은 활동가들의 부재로 인한 운동단체내의 여유 부족 등도 중요한 이유로 거론할 수 있다.

 

이라크전쟁 반대, 평화헌법사수, 미군기지 반대, 비정규직 문제 등 인권과 평화에 집회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주류언론은 일관되게 배제하고 보수층의 여론만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등 일본 제도 언론의 극단적인 보수화를 통제할 길이 없는 현 미디어의 상황 속에서 활동가들은 독립미디어의 필요성과 그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술한 몇 가지 이유들로 인해 미디어센터 설립을 위한 운동에 개인적인 전망을 갖고 투신하는 활동가들을 찾아보기가 거의 어렵다.

 

일단 보고회에서는 일본 사회운동에 새로운 미디어운동의 필요성이란 문제의식이 제출되었고, 일본 미디어운동의 전체적인 현황을 공동으로 진단하는 심포지엄을 기획하기로 결의하였으며, 한국미디어운동 조사 및 보고팀을 그 준비주체로 승인하면서 보고회는 마쳤다. 하지만, 이후 참가자들 중에도 자신의 인생을 걸고 미디어운동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 사람들도 생겼고, 각 조직의 내부로 돌아가 한국의 현황을 보고하면서 각 조직별 미디어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의 확산은 가져왔지만, 공동의 실천은 여러 이유로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단 방문팀은 해체되었다.

 

레이버넷의 Y씨를 중심으로 대학생들이 편집강좌를 열면서 4-5회 교육 및 실천 강좌를 가졌지만 개인적인 경험 이상의 조직적인 전망까지는 내지 못하고, 주체 및 전망의 부족으로 그것도 유야무야 되어버렸다. 또한 한국 방문팀은 대부분이 이론가이고 활동가여서 미디어편집 및 제작의 실질적인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도 실천을 어렵게 하였다. 방문팀 중에서 미디어운동에 전망을 걸겠다는 한두 명의 젊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다시 우에노의 공동센터 노동정보(전통일 건물의 4층, 노동운동 내 각 정파연합 기관지 발행사, 30년) 내부에 공간을 확보하면서 2006년 10월부터 노동정보의 30주년 기획이벤트로 매달 노동영화제 및 국철노동자 대회에서의 노동영화제, 아시아태평양 미군기지 반대 회의에서 [대추리 전쟁] 등을 상영하면서 영상에 관심 있는 젊은 층을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은 야스쿠니문제를 다룬 [안녕 사요나라] 실행위원회 및 노동자의 대중적인 평화단체인 평화포럼과 함께 2007년 2월에는 한국 독립미디어 영상의 힘을 전달하기 위하여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기획하였고, 그 영화제에서 [안녕 사요나라] [대추리 전쟁]을 상영함과 동시에 장애자, 이주노동자, 여성을 주제로 [버스를 타자], [계속된다], [소금]을 상영하고, 해당 작품의 감독인 박종필, 주현숙, 박정숙씨를 초청하여 일본의 해당 분야별 관계자들과 함께 독립 미디어활용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이 영화제 준비는 준비단계에서부터 이후 성과를 대중적인 미디어센터 건설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것을 표방하면서 전국단체 및 각 지지자들의 기부를 요청하였고, 아사히, 도쿄 신문 등에서도 주목을 받으면서 당일 250명이 참가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사무국으로 30명 이상의 젊은 대학생들이 참가하여 한국의 독립미디어운동의 현황과 마이너리티에 의한 당사자의 미디어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하였다.

 

 

 

 

 

하지만 이들을 중심으로 사회단체의 주요기관지에 미디어운동에 대한 투고와 전국시민미디어 회의, 일본변호사 협회 등에서의 강연회 등을 통해 일본 내에서의 미디어센터의 실현을 독려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일본사회에서 시민미디어센터의 커다란 흐름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는 게 현황이다.

 

 

2. 일본의 시민미디어운동의 확산과 문제점

 

작년 3월에 미디어운동 조사팀이 미디액트 및 참세상, 진보넷, 시민 방송국 RTV 등을 방문했을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 시민미디어라는 단어는 아직 대중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시민미디어운동은 괄목할 만한 성장 과정에 놓여있다. 당시에는 예를 들어 지역 케이블TV에서 퇴직한 노인들이 만드는 비정치적인 시민영상 및 유치원 입학식 등의 영상이 시민영상의 수준이었고, 인터넷신문 쟌쟌, 닛칸 베리타 등 언론인 출신들이 만든 인터넷 신문 등이 네트시민미디어의 마켓형성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재정적인 측면과 기사의 질적 측면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동 시기에 야후재팬의 자금을 받아 시작된 [오마이뉴스 재팬]이 등장하면서 시민미디어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또한, 미디액트와 유사한 시민 미디어 리터러시의 교육장을 오픈한 our planet tv, 독립 언론 [아시아 프레스]의 와세다 대학 내의 미디어 리터러시 강연 등이 기획되었다. 출범한 지 4년째를 맞고 있는 [전국시민 미디어대회]도 폭넓은 시민미디어 관계자들이 참여하면서 대중적인 장이 되고 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재팬은 야후재팬의 재정에 의존하면서 시민미디어의 상품화의 길을 달렸고, 시민기자가 예상보다 확보되지 못했으며, 특히 이슈에 있어서 천황제 등을 옹호하는 극우세력의 글들이 그대로 게재되면서 저항적인 시민미디어의 가능성을 스스로 폐쇄해버렸다. 시민에 대한 미디어리터러시의 교육장을 표방했던 our planet은 생방송 시스템까지 확보하는 등 외형적인 구조는 갖추었지만, 사회운동단체와의 조직적인 네트워크로 이어지지 못했고, 재정지원에서 일본재단이라는 극우단체의 재정을 일부 활용함으로써 운동단체의 접근 보다는 미디어 분야의 취직을 위한 젊은 미디어지망생들이 모이는 공간의 성격이 강해졌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한 전국 시민미디어대회는 매년 수많은 시민미디어 관계자가 참가하는 등 규모 확대와 테마의 다양함이 존재하지만, 정치, 노동, 환경, 여성의 테마가 빠진 “순수한” 시민미디어의 기능이 주로 논의되는 장으로 전락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한편 운동미디어분야에서는 레이버넷을 중심으로 노동미디어운동의 확산을 위한 노력이 지속적인 성과를 내고 있고, 유튜브를 모방한 레이버튜브, 비정규직 젊은 층의 노동조합운동에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예스 유니온 캠페인], [빈곤반대 네트워크] 구축 등 미디어를 통한 사회운동의 재건을 위한 구체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 이외의 분야까지 확대되거나, 활동가 이외의 젊은 세대의 교육 및 지속성을 위한 재정적인 기반이 매우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이외에도 피스보트 출신들이 시작한 미국의 [데모크라시 나우 인 재팬]의 설립운동,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퍼블릭액세스를 도입하고자 하는 히도츠바시 대학의 노동미디어 연구센터 등이 운영되는 등 전체적으로는 1년 사이에 일본 내에서 놀라울 정도의 시민미디어운동의 흐름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러한 급격한 시민미디어운동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운동 속에서 미디어활용의 전략적인 진지를 어떻게 만들면서 각 분야별 미디어운동을 강화시키고 이들을 네트워크 시켜나갈 것인가, 지속적인 미디어운동이 가능하기 위한 인재양성을 어떻게 할 것이며, 일회적인 정세대응이 아닌 준비된 역량으로 예를 들어 헌법9조의 개정 저지 등 정세에 대응하는 대중적인 독립 미디어 운동을 어떻게 전국적으로 만들어 낼 것인가 등의 미디어 전략을 가지고 실천하는 미디어 운동의 분야를 현재까지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게 일본의 미디어 운동의 현실이다.

 

또한, 시민미디어는 저항공간이기 보다는 주류미디어에서 불만을 가지고 내려온 저널리스트들이 시민들을 활용해 기사의 콘텐츠를 축적하는 [자영언론업]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측면이 강하고, 회비로 운영하는 대부분의 사회운동진영은 재정의 부담을 느끼면서 미디어담당자를 고용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디어를 활용하려는 단체들은 일단은 내부의 조그마한 부분부터 미디어로 실천하자라는 흐름이 지배적이어서 미디어를 통한 아시아와의 연대나 네트워크까지 사고하기를 요구하기는 무리가 있다. 이처럼, 일본 미디어운동의 전략형성의 부재는 현재의 시민미디어운동의 성장이 시민의 자기표현, 정보발신의 확대, 마이너리티의 미디어액세스 향상을 통한 시민사회의 새로운 저항공간의 창출보다는 버블로 끝나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깊다. 

 

 

 

 

3. 일본의 시민미디어센터의 가능성은 있는가

 

퍼블릭액세스에 의한 시민미디어센터의 필요성을 공감하기 시작한 일본사회이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미디어센터 건설을 추진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대학 내의 연구모임. 노동조합내의 교육시설로서의 미디어센터 등의 제안은 있지만, 대학 내의 연구모임은 연구결과에 머무를 가능성이 많고 특정단체의 미디어센터 추진은 단체 내부의 프로세스를 형성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이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참가를 어렵게 하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시민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관련법의 개정을 통한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퍼블릭액세스의 제도화를 요구하는 정당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전국시민미디어대회를 추진하는 관련 교수들을 중심으로 퍼블릭액세스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의 연구는 사회적 마이너리티의 미디어 액세스 권리의 확대라는 측면보다는 비정치적인 영역으로 한정하는 퍼블릭액세스 법안으로 전락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디어운동의 이념을 표방하는 이상, 위로부터의 공적자금의 가능성은 부재하고, 여러 단체들의 네트워크에 의한 대중적인 미디어센터 건설이 장기적으로 유효함에도 불구하고 조그만 차이에 의한 네트워크 회의의 분열은 다시는 그러한 운동을 제안하기 어려운 악순환을 반복하게 하기도 한다. 일단은 조그만 규모가 되더라도 시민미디어센터의 시범적인 공간을 실현하여 미디어센터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제안해 나갈 필요가 있다. 시작은 느리지만 그 필요성에 공감하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일본사회의 특성상 이후 미디어센터의 대중화는 의외로 간단히 확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사회 및 노동단체의 미디어리터러시가 한국과 비교하여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을 고려하면 방문연구 등을 통한 미디어교육은 사회단체 내부의 지원에 의해 시범적인 미디어센터의 지속성의 가능성도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일본사회에는 의외로 콘텐츠가 있으면 기부를 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어느 정도의 규모는 미디어센터의 콘텐츠를 확정하면 기부로도 충당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조건만 갖추어지면 일본사회 내의 미디어센터 운동도 대중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경험과 자신감이 부족한 일본 시민사회의 미디어운동의 확산을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미디어운동의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새로운 타입의 한일연대운동이 절실하다.

 

한국사회의 보수화 및 일본사회의 보수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특정 국가만의 민주화운동은 그 자체의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해 온 것이 냉전붕괴 이후의 동아시아의 현재이다. 각 국의 경계를 넘어, 민족주의의 한계를 넘어 어떻게 상호 연대할 것인가. 미디어를 통한 각 국가 간의 네트워크 형성이야말로 미래 사회운동의 중요한 토양이 될 것이다. 아시아 각 국의 미디어센터 네트워크를 통한 미디어운동의 인식 공유야말로 향후 본격적인 동아시아 연대운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일본의 미디어센터 건설은 동아시아의 네트워크라는 한국의 미디어센터의 새로운 역할이 생기는 것과 같다. 70년대, 80년대 한국의 민주화는 일본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지지와 연대 속에서 가능했다. 이제 미래를 위한 한국미디어운동의 연대와 협력을 호소한다. □

 

[관련기사]

일본의 시민운동도 미디어를 활용하고 싶다 - 한국 미디액트를 방문하고 나서 / 엔도 사토코 (시민활동가)(번역:이영채) / 진보적 미디어운동연구저널 ACT! 32호, 2006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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