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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7호 미디어인터내셔널] 한국의 버마활동가가 미디어활동가들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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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7호 / 2007년 11월 29일

 

[편집자주] 
이제는 언론에서도 조금 잠잠해졌지만, 미얀마 민주화 항쟁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촛불집회를 비롯해 버마민주화를 촉구하는 움직임들을 보면서, 얼마 전까지 함께 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에 참여했던 버마 이주노동자들이 떠올랐습니다. 거리상으로는 멀리 떨어진 곳의 일이지만,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버마의 민주화 투쟁에서 한국의 미디어활동가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함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버마행동의 대표이자,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 활동가이기도 한 뚜라씨에게 원고를 부탁했습니다. 한국에서 함께 살아가는 버마 출신의 이주노동자이자, 미디어활동가로서 뚜라씨가 우리에게 제안할 수 있는 일은 없을지, 그래서 함께 풀어갈 수 있는 일은 없을지 들어보았습니다. 이곳에서 함께 숨쉬고, 함께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와의 연대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미디어교육이나 영상 제작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 문제를 고민하고 투쟁하는 것과 함께 국제적으로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그들 국가에서의 민주화 문제 역시 함께 고민하고 연대해야 할 것입니다. 뚜라씨의 글이 그런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 조금 서툴거나 잘못 쓰인 표현은 가능한 수준에서 편집자가 수정했습니다.)
 


한국의 버마활동가가 미디어활동가들에게 보내는 편지
뚜라(버마행동 대표, MWTV 활동가)
 
지난 8월 15일. 
갑작스럽게 일어난 기름 값 인상 때문에 대부분의 많은 버스들이 운행을 못했고 또한 운행한 버스들의 과도한 버스 요금을 요구하기 때문에 버마의 수도인 얀곤과 대도시에 이동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따라서 물가도 인상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과 불만들이 많았습니다. 바로 태풍 오기 전 상황이었습니다. 8월 16일부터 시위들이 곳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결국은 전 국민들이 참가하는 군부를 저항하는 평화적 대규모의 항쟁이 일어났습니다.지난 1년 전.
17년 동안 감금되어 있다가 석방된 88세대 학생지도자들의 국민운동이 석방되자마자 빠른 속도로 얀곤과 대도시에 있었습니다. 화요일마다 빠짐없이 하얀색 셔츠를 입고 파고다에 가서 아운산 수지와 정치수감자들의 석방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인간으로 태어난 때부터 있는 권리, 인권이란 것을 알리고 다니는 인권운동가들의 끝없는 지역 활동, 법에 따라서 공평하게 국가발전과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자연스럽게 하면서 먼저 법을 어기는 군부에 법적으로 항의하는 인권변호사들의 용감한 모습들,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AIDS 환자들에게 머물 곳까지 마련해서 건강까지 챙겨주면서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냈던 사회활동가들, 새벽부터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죽도록 일해도 받은 돈이 교통비 빼면 밥 한 끼 사먹을 돈이 안 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픈 목소리를 종이판에 써서 도시 가운데서 일인 시위하는 사람들,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념일들이 있을 때 살아계신 독립운동가들로부터 신세대 학생 운동가들까지 참가한 가운데 오늘의 버마문제를 고민하는 해결책을 찾는 모임들, 감금되어 있는 운동가들의 가족들에게 힘 되어주기 위해 찾아간 88세대 지도자들의 수감자 가족방문들, 이 모두가 10년 이상 억압과 탄압 속에 조용해졌던 버마에 민주화 운동가들의 또 다른 국민적 운동들입니다. 88세대 지도자들께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한다는 말 한 마디만 해외라디오방송을 통해서 들어도 국민들이 스스로 따라했습니다. 
대규모 시위나, 항쟁이나, 혁명. 이 모든 단어에 해당하는 일들이 멀지 않은 시기에 버마에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88세대 학생지도자들은 시민들과 다름없이 훈련하고 준비했습니다. 시민의 마스크를 쓴 정치폭력조직인 <USDA-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Association>의 폭력적인 방해를 받았을 때 화가 난 시민들에게 “우리는 폭력을 안 한다. 질서 있고 평화롭게 대한다. 이 사람들도 밥 한끼 먹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 배고픈 국민들끼리, 탄압과 협박을 받은 국민들끼리 싸울 필요가 없다. 우리의 길을 막는다면 있는 자리에 앉아서 오늘 이 나라에서 온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평화롭게 보여주면 된다”라고 하며 민주화가 된 이후의 새로운 버마로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최대한 피를 흘리지 않은 변화의 길을 국민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지도자만 잡아 놓으면 문제 해결이 된다고 생각한 군부의 지도자들에게 한 말은 “버마는 이 고통과 배고픈 그리고 모든 면에 있는 문제점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국가적 통합(수십 년 동안 무장투쟁하고 있는 소수민족들과의 평화, 소수민족들로부터 지지받은 야당인 NLD와의 정치적 이해관계 및 문제 해결)을 먼저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군부는 꼭 소수민족, NLD 와 민주화를 향하는 정치적 회담을 가져야 한다. 버마의 문제는 아운산수지를 잡아서 또는 모든 지도자들을 잡아서 감금만 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국민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지도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지도자다. 군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버마의 곳곳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지도자이며 민주화를 꼭 쟁취하겠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전국 여기 저기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버마에 이번 항쟁이 시작하기 1년 전에 있었던 일들입니다. 또는 8888항쟁 이후 국내, 국경, 해외 3가지 위치에 깃발을 내리지 않고 민주화 투쟁의 길에 행진하고 있는 8888세대들과 버마국민들의 준비과정입니다.
지난 상황들을 다시 이야기한 이유는 이번 버마항쟁이 외신에 나온 것처럼 기름값 인상 때문에 갑작스럽게 분노가 터져서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선 일반적인 시위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름값 인상 때문에 일어난 항쟁이 아니고, 88년 이후로부터 계속 준비해왔던 19년만의 군부에 저항하는 계획적인 또는 평화적인 질서적인 민주항쟁이란 말을 하고 싶습니다.
불교 국가인 버마의 운동 역사에는 스님들이 빠진 때가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스님들만의 평화적 행진들이 있었지만 야만적인 탄압으로 스님들까지 죽였습니다. 식민지 시대에도 없었던 일들이, 상상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9월 20일이 지난 때까지 국민운동집행본부의 지도하에 스님, 학생, 시민, 노동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대규모의 시위들이 전국에 일어나고 있지만 군부는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며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갑자기 외교부장관이 중국에 갔고 어떻게 의논되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9월 26일부터 총을 쓰고 무자비한 탄압을 했습니다. 이후 유엔 안보리에서 버마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결정한 회의에서는 중국이 절대적으로 반대했습니다. 버마의 민주화투쟁은 가면 갈수록 경제적 이익에 눈먼 나라들이 개입하고 있어서 사막에 길을 잃은 사람 같았습니다.
총칼을 들면서 안전하지 않은 군부는 평소에도 10가구에 일인단 감시자가 있고, 밤 깊으면 집에 쳐들어온 군인들이 가족명단을 확인하며 명단에 빠진 식구나 명단에 없는 친척, 친구가 있으며 국가보안법중 의심스럽다는 조항에 따라 잡혀가는데, 자신들에 저항하는 대규모의 항쟁이 일어나자 수도를 비롯해서 모든 도시를 전쟁터로 생각하며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깊은 밤을 이용해서 전국에 있는 사찰에 강제로 진입하여 수 천 명의 스님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큰스님들을 죽이고 절에 있는 물건들을 홈치고 건물까지 부셔서 모든 스님들을 잡아갔습니다. 감옥이 모자라서 대학교들은 감옥으로 변하고, 그곳에서 스님들을 감금하고 심각하게 고문하고 강제로 승복을 벗겼습니다. 스님들이 비운 절은 군부와 잘 어울린 스님들로 채웠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을 매일 같이 잡아가고 있는데 잡으려고 한 사람이 없으면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온 가족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야만적인 군부와 관계자 모두를 불교신자로 받아줄 수가 없다고 하며 스님들은 군부와 관계자들이 준 밥을 공양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요구하는 종교적 모든 것을 해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죽어도 제사를 지내줄 수가 없다는 종교적 투쟁“복발”을 하고 있기에 감금되는데다가 단식투쟁까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잡혀가지 않은 절에 남은 스님들도 밖에 못나가고 있습니다. 공양을 못한 스님들에게 물을 갖다준 사람들은 2년의 형을 받았습니다.
이번 항쟁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버마 내에서 일어났던 모든 탄압과 모든 일에 대해서 정보 및 사진, 영상 등을 실시간으로 받았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군정에서 정보차단을 하고 있어도 우리는 실시간의 모든 일에 관한 정보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외신 기자들에게서 받는 것 아니었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일반 시민들의 인터넷 블로그와 그들이 우리 네트워크를 보내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블로거들과, 정보를 보내준 시민들을 정보원 및 비밀경찰들이 한명도 잡지 못했습니다.
해외로 정보를 보낸 사람들을 잡으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무식한 독재자들은 서버 자체를 부셔버렸습니다. 버마에는 인터넷을 운영하고 있는 큰 서버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일반시민들과 사업자들이 사용하는 서버입니다. 부셔버린 서버는 일반 시민들이 사용한 서버이기 때문에 며칠간 정보가 끊겼지만, 바로 다시 연결됐습니다. 이유는 호텔, 정부기관, 인터넷카페 등에서 몰래 무선 안테나를 설치해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시민기자들은 거의 경찰들이 생각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시민기자들 때문에 우리는 군부의 비인간적인 탄압을 실시간에 매스컴을 통해서 세계시민들에게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군부의 전략도 'IT로 공격을 받았다면 IT로 다시 공격해야한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군부는 많은 공무원 및 군부세력들에게 인터넷 블로그 운영을 가르치고 시민들의 블로그처럼 속일 계획이며, 국내 시민기자들을 절대적으로 탄압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IT 기술 때문에 우리가 한발 앞서서 군부의 살인자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줬습니다.
이번 항쟁에 희생당한 사람은 1000명 이상이라고 명령을 어기고 국경지역으로 피해온 시위대를 탄압한 명령을 받은 부대의 대령이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실종자는 확인이 잘 안 되고 있지만 수 백 명이 실종되고 있습니다. 감금된 사람들이 6000명이 넘는데 그 가운데 스님은 1000명 이상입니다.
고대문화의 역사와 불교문화가 튼튼히 자리 잡고 있는 나라, 착하고 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이 나라 버마에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여기서 버마의 역사까지 설명할 수가 없어도 20여 년 동안 싸우고 있는데 버마의 군부라는 이 독나무가 왜 죽지 않았을까? 버마는 자원이 풍부한 나라입니다. 반세기 동안 국제사회와 경제적인 관계가 없어도 배고프지 않을 정도 내부자연과 자원이 풍부합니다. 하지만 경제를 모르는 군부는 국가자원을 팔아먹는 일 그 외에는 모릅니다. 90년 이후로부터 시장경제를 하면서 해외투자들을 받았습니다. 나라를 제대로 팔았습니다. 모두 자원을 팔아서 군의 세력을 50만까지 확대했습니다. 군부에게 들어온 모든 돈이 총칼로 변해서 총알이 되어서 국민들의 가슴에, 머리에 박혔습니다.
우리는 19년 동안 독나무가 자랄수 있는 모든 뿌리는 잘라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만을 생각하고 우리가 잘라낸 뿌리보다 더 영향력이 많은 새로운 뿌리를 연결해준 나라들이 있었기에 군부라는 독 나무는 아직 단단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들이 이처럼 비인간적인 일들을 하고 있냐 하면, 아세안+3이라는 아시아 국가들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나라가 중국, 인도, 싱가포르, 일본, 한국입니다. 인도는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요즘 들어 군부와의 관계를 잘하고 있지만 버마 민주화에 힘쓰는 일들도 했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싱가포르는 최근에 입장을 바꿔서 버마 군부에게 민주화하라고 강력히 자기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아직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경제적인 이익인가? 가스개발에 생길 이익 때문에 개발자체가 독나무의 큰 뿌리인지 알면서도 불구하고 살인할 수 있는 무기수출, 무기 기술전달과 공장까지 세워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가 깊이 고민해야 할 일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는 군부에 저항하면서 오래 세월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버마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한국사회에 같이 살아가고 있답니다. 독재자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희망했던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는 한국이 버마의 민주화에 누구보다 앞서서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때때로 한국에서 나가라고 법무부에서 쫓아낸 그 때 외에는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언젠가는 한국의 멋진 모습을 볼 것이라고 생각만 했었습니다.
외신에는 군부에 저항하는 버마의 시위대가 아쉽게도 끝났다는 보도들이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 시대의 역할을 우리 세대가 끝내고 가야합니다. 죽어도 살아도 군부는 버마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도 열심히 투쟁하겠지만 국제사회가 함께 해주셔야합니다. 국제사회라고 하면 서양국들보다 동양국들이 더 중요합니다. 군부는 지구촌의 다른 쪽에 있는 서양국들을 조금도 신경 안 씁니다. 그러나 아시아국들이 강하게 나오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 항쟁은 국내에서도 저항이 있었고, 국제사회 특히 아시아국들이 강하게 압력을 하니 자신이 먼저 정치적 회담을 하자는 말을 했습니다. 진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진실이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압박을 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저항을 해야 합니다.
버마에 많은 피가 흐르지 않고, 평화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희망은 소수민족, NLD와 민주화를 향하는 정치적 회담뿐입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활동들을 연대해서 할 겁니다. 그 중 하나의 계획은 버마 내에서 시민기자들을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실시간의 정보를 얻어내서 정보 네트워크를 구성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에는 우리가 계획한 것보다 시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그랬었지만 앞으로는 군부도 제대로 준비를 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우리도 제대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버마 내에서 정보 네트워크 구성을 단단히 만들어서 활동하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국내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기자재를 설치해주어야 합니다. 녹음기부터, 디지털 사진기, 캠코더 등을 그들 손에 넣어줘야 합니다.
미디어 활동가들은 인터넷, 신문, 방송, 웹진 등을 통해서 버마의 민주화항쟁에서 미디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공유하며 버마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주세요. 이제 우리와 함께 해주세요. 여러분의 목소리에 한국정부가 변화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매주 화요일마다 종각역 1번 출구에서 12시부터 1시까지 free burma campaign을 하고 있습니다. 버마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활동지원과 탄압받은 부상자, 희생자, 정치수감자들을 위해 모금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http://cafe.naver.com/freeburma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시민기자들에게 필요한 기자재를 지원하고 싶은 분은 아래 연락처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뚜라 : 010 6740 5218.
사무실 : 032 -654- 5218

버마행동은 버마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버마민주화 운동 단체입니다. 11명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 내 연대와 많은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거주한 버마인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진행, 신문배포, 방송, 캠페인, 버마국경지역 난민지원, 버마 국내 활동가 지원, 버마 국내 어린아이 교육지원 등의 사회적 활동들도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내 모든 버마단체들과 함께 “버마국민운동촉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국제적인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주] 1988년 8월 8일에 랑군(양곤)의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반군부 민주화 요구 투쟁이다. 평화시위로 출발하였으나, 국가평화발전위원회가 장악한 군부의 유혈진압으로 시민과 대학생, 승려 등을 포함 수천 명이 희생되었고, 1988년 9월 18일 종료되었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8888_%ED%95%AD%EC%9F%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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