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2호 / 2008년 6월 19일
멈출 수 없는, 표현의 자유 - 표현의 자유 확대와 영비법 개정을 위한 공동행동을 제안하며 |
이원재 (문화연대) |
1. 요즘 한국 사회는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니 얼마나 유쾌하고 위력적인 존재인지 새삼 깨닫고 있다. 매일 저녁 시민들은 권력과 자본의 사유지였던 광화문, 시청광장 등을 산책하며 결코 멈출 수 없는 표현의 자유를 분출하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의 거리 곳곳에 감히(?) 대통령“님”에 대한 욕지거리를 적어두는 것은 기본이다. 온갖 상상력이 거침없이 실현되는 열린 공간 속에서 시민들은 상상력에 대한 어떠한 검열도 없이 급진적인 정치가이자 공공예술가로 거듭나고 있다. 살벌한 공권력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표현 방식이 무엇이던 시민들은 스스로 미디어가 되고, 관객이 되어주며 즐거워한다. 어둠이 사라지고 새날이 밝아오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이번 광우병 정국 또는 촛불항쟁의 과정에서 우리는 표현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의 중요한 구성요소라는 것을, 이러한 표현의 자유는 결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획득하고 열어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지금까지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감시와 통제 그리고 억압에 시달려 왔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시민이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활용할 때 “도로는 산책로와 만남의 광장이 되고, 전경 버스의 차벽은 스케치북이 되고, 광장은 놀이터이자 문화공간이 되고, 인터넷은 직접민주주의의 토론장이 되고, 집회는 동문회 또는 가족 야유회가 되고, 나아가 누구나 미디어 그 자체가 되는” 경이로운 풍경을 우리는 지금 경험하고 있다. 2. 시간의 태엽을 몇 개월 전으로 감아보자. 아주 조금만... 표현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심의라는 이름 아래서, 더욱이 청소년 보호, 음란물, 사이버 테러, 인터넷 실명제, 도덕적 해이 등의 온갖 치사한 이유 속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은 국가 권력의 상대적, 형식적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는 표현과 재현을 둘러 싼 국가 정책, 다시 말해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삼엄했던 검열제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군사독재에 대한 기억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 ‘검열'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심의'가 대체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정치사상의 자유 등을 정당하게 누리고 있는가? 분명 한국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확장되었다. 국가보안법의 실질적인 사문화(어이없게도 여전히 법률로서 존재하며 가끔씩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가 권력의 입장과 대응 방식은 크게 변화했고, 수많은 국가 검열기관들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각종 위원회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사회에서 검열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검열의 질서”를 “심의의 질서”가 제대로 대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에서 그러하다. 먼저 검열을 심의가 대체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적 선택의 의미가 아니라 표현과 재현을 둘러 싼 사회적 접근 방식의 철학과 지향 자체가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심의 과정은 여전히 “다소 부드러운 검열 제도” 또는 “더욱 세련된 검열 장치”의 수준일 뿐, 표현과 재현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접근의 철학과 정책방향을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심의라는 개념은 심의 자체의 개념과 의미보다는 검열의 개념과 질서를 고스란히 내재하고 있는 다른 “무엇”에 불과하며, 시대적 변화에 조응하기 위한 좀 더 “편안한” 수사로 선택되었을 뿐이다. 다음으로 한국 사회에서 검열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었다는 주장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한, 국가권력의 1차적 폭력 장치로서의 검열 완화”라는 맥락에서만 일부 가능하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의 검열제도는 국가권력을 가로질러 자본에 의한 검열(정확하게 말하자면 표현 자체의 구조적 봉쇄)로까지 확장되고 있으며, 문화적 표현과 재현에 대한 구체적인 심의정책에 있어서는 청소년 보호 이데올로기, 가부장적 보수주의, 기독교 본질주의 등의 강화를 통해 오히려 일상적 통제와 검열의 질서를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사회적 표현 및 심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문화 영역에 있어 검열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과거 검열제도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완화하기 위한 알리바이로써, 국가권력과 자본주의의 도덕 및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유통창구로써 심의제도(검열의 다른 이름인 동시에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3. 검열제도로부터 실질적인 성찰과 단절에 실패한, 아니 끊임없이 “사회적 공공영역으로서의 실질적인 심의 과정”의 구현을 지연하고 있는 현행 심의제도는 다양한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다. 현행 심의제도는 심의에 대한 개념과 정책 방향 자체가 검열의 질서로부터 단절하지 못한 채, “감시와 통제” 또는 “규제와 처벌”이라는 검열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현행 심의정책은 문화적 권리의 사회적 확대와 청소년의 사회적 보호를 대립적이고 충돌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표현을 둘러싼 사회적 소통, 토론, 합의 등 문화민주주의의 과정을 지원하기보다는 법제도적 중심의 규제와 처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각종 심의기구의 비대화가 심의의 정상화, 민주화를 심각하게 가로막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얼마 전 제12회 인권영화제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거리 상영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인권영화제 사무국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이 요구하는 등급분류의 의무, 추천 면제 조항 등을 거부하고 거리를 선택했다. 제한 없는, 온전한 표현의 자유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더 많은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확대를 위한 불복종, 직접 행동을 선택한 셈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고민하고 실천해 온 많은 문화예술, 영화, 미디어 주체들이 함께했고, 최근 ‘표현의 자유 확대와 영비법 개정을 위한 공동행동(준)'(이하 공동행동)을 구성했다. 4. 공동행동은 앞으로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도록 영비법을 비롯하여 각종 심의제도, 검열 장치 등에 대한 불온한 도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먼저 공동행동은 해외 대부분의 사례처럼 심의제도 자체가 강제적 행정제도가 아니라 선택적 정보서비스로 전환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영상물 등급정책은 영상물등급위원회라는 단일 기관을 통한 의무등급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단일기관에 의한 의무등급제도는 영상물의 사회적 통제라는 측면에서는 효율성이 높을 수 있으나 영상물을 둘러 싼 다양한 문화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점 또한 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복수의 등급 서비스 기관이 없는 환경에서 운영되는 의무등급제도는 창작자 및 생산자의 선택권을 애초부터에 박탈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법적으로 등급분류를 강제하고, 그 등급분류 기관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현행 의무등급제도는 강요된 등급분류제도를 경유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권리와 가능성을 크게 제약하고 있다. 특히 상업적인 목적이나 시장성과 관계없이 실험적, 공공적으로 제작되는 각종 독립 영상물, 비상업 영상물 등의 경우 장기적으로 문화 공공성 및 다양성 등의 측면에서 다양한 사회 진출 통로가 적극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그리고 영상물을 둘러 싼 특정한 전문 공간(독립영화 전용관, 예술영화 전용관, 각종 미디어센터 등)에서 상영되는 영상물에 대해서도 의무적인 등급분류를 면제하고 자율등급으로 상영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관련하여 현행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29조 상여등급분류 조항은 “대가를 받지 아니하고 특정한 장소에서 청소년이 포함되지 아니한 특정인에 한하여 상영하는 소형영화·단편영화”, “영화진흥위원회가 추천하는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 “국제적 문화교류의 목적으로 상영하는 영화 등 문화관광부장관이 등급분류가 필요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하는 영화”만을 등급분류에서 면제될 수 있는 영상물로 지나치게 좁게 한정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의 등급분류 면제 조건에 대한 완화가 필요하며, 나아가 비상업적인 영상물과 상영 공간에 대한 적극적인 선택등급제도의 도입을 통해 등급분류에 대한 선택권과 다양한 사회 진출 경로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공동행동은 영비법에 선택등급제도 또는 등급면제제도를 도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영비법이 포괄하고 있는 심의 기구, 심의 기준 등 표현의 자유 전반에 대한 개선을 위해 활동할 것이다. 나아가 공동행동은 영비법만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과 연대하며 “제한 없는 표현의 자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할 것이다. 영상물을 비롯하여 사회적 표현과 재현의 방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국가와 지배계급은 언제나 통제와 관리의 관점에서 심의제도를 접근하고 있다. 덕분에 디지털 기술의 발달, 뉴미디어의 보급 등에 따라 확장되고 있는 직접 민주주의, 문화 다양성 등의 잠재력이 올드(!)한 정치 감수성과 구조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결국 표현의 자유를 향한 스스로의 직접 행동만이 우리에게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에 공동행동은 더 많은 시민들과 표현의 자유의 사회적 의미를 공유할 수 있도록 각종 영화제에서 표현의 자유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며, 지속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정책연구 및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물론 공동행동의 진짜 주체는 멈출 수 없는 표현의 에너지와 상상력을 장착한 바로 당신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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