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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7호 읽을거리] 매개 - 물신 - 소통의 문화사 『한국의 미디어 사회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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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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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7호 / 2008년 12월 8일

 

 

매개 - 물신 - 소통의 문화사
『한국의 미디어 사회문화사』 




김학재(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박사 수료)
 


인간은 소통한다. 관계를 맺고, 사회를 이루고 교감을 나누며 살아간다. 소통엔 매개가 필요하다. 글과 말과 매체를 통해 뜻과 이념과 감정을 전달하고 표현한다. 근대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을 매개하는 어떤 물건들은, 그 자체로 물신이 되어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기도 한다. 방송이 전쟁을 선동하고, 신문이 민족을 만들어내며, TV가 우리를 보고, 핸드폰이 일상을 지배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소통의 내용만큼이나 사회적 소통의 형식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의 소통양식이 이렇게 변해온 과정이 곧 인간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역사는 기록이다. 기록된 역사에는 인간의 경이로운 업적들도 남겨져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누추한 일상의 모습들도 담겨 있다. 인류 문명의 진화는 놀랍고 화려하지만,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는 인간의 오랜 실수와 반복된 실패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은 말과 글, 인쇄와 전신, 영상과 인터넷에 이르는 미디어들을 만들어 내어 문명의 구조적 변동을 이끌어 내기도 했지만, 뿌리 깊은 일상의 관습들을 수 만 년 간 전혀 변화시키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항상 역사를 통해 무엇이 변했으며 그 변화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평가해야하고, 동시에 무엇이 변하지 않았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동시에 물어야 한다. 어떤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충격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도 있고, 어떤 것은 과장된 수사에 비해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변하지 않은 반복된 실패는 도대체 무엇이 이 실패를 반복하게 만드는가를 절망적으로 되묻게 하며, 어떤 변화에도 굴하지 않는 끈질긴 관계와 정서들은 희망의 근거들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특히 문화라는 영역은 인간의 다층 다면적인 모습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모두 담겨져 있는 영역이다. 문화는 경이로운 문명의 차원에서부터 인간관계의 갈등과 내적 감정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영역이다. 문화는 정치 경제적 권력의 부수적 결과물이기도 하고 문명의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삶의 에너지들이기도 하며, 동시에 새로운 변화의 흐름이고 나아가 그 자체로 완전히 독립된 별도의 차원을 구성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자본으로 환원 되고 보수 정치세력들이 현재의 권력을 바탕으로 미래와 과거를 독점하려는 지금, 한치 앞도 전망하기 어려운 세계사적 격변이 도래하고 있는 이 시대에, 기록되어 우리의 거울이 되어줄 역사와 여전히 우리 곁에 인간의 얼굴을 하고 남아있는 문화는 중요한 성찰의 자원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미디어 사회문화사』(2007)는 인간의 역사 중에서도 미디어와 관련된 인간의 문화적 풍경들을 역사적으로 그려내려는 시도이다. 사실 한국에는 아직까지 ‘언론사'나 ‘방송사' 등 특정 매체사를 제외하고는 ‘미디어사'라고 할 만한 시각의 작업이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미디어의 ‘문화사'는 정치사나 사회사적인 작업에 비해 언론학계에서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시도되지 않았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곧 미디어의 형성과 소멸의 역사이기도 하고 수많은 미디어가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고 있는 21세기의 한국에서 미디어의 역사에 대한 토론과 연구의 필요성은 절실한 것이다. 수십 년 전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문맹이던 이 공간에서 우리는 와이브로와 핸드폰으로 무장한 똑똑한 군중(smart mob) 수백만 명이 정부의 무책임하고 일방적인 정책 결정과 주류 매스 미디어의 권력 지향적 보도에 대해 대대적으로 저항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지 않았던가?
외래 문화로 도입된 음반과 영화, 일제시기에 통치와 경비를 위해 도입한 전신, 군사 정권의 선물로 도입된 텔레비전, 그리고 여전히 치열한 정치적 갈등의 장이 되고 있는 언론과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왜 이러한 현상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역사적 검토는 충분하지 않았다. 한국은 왜 이렇게 첨단 기술에 대한 물신적인 소비가 지배적인가, 한국인의 국민(nation)으로서의 시공간적 공통감각(common sense)은 왜 이렇게 강렬한가, 그리고 과연 우리는 이 많은 매체들에 둘러싸인 지금이 이전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반민주적이고 불평등한 미디어 권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고 무엇보다 어떤 미디어와 미디어에 대한 수용방식이 우리에게 대안적 희망을 제공할 것인가? 우리는 미디어와 사회의 관계, 문화와 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본질적이고도 긴 호흡으로 지금의 우리를 조망해 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이루어진 시론적 작업들을 통해 비로소 미디어와 관련된 한국 사회의 변동과 사회의 변동에 따른 미디어 문화의 양상을 폭넓게 조망해 볼 수 있는 디딤돌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직은 시작단계이지만 노력하기에 따라 우리가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정보들과 흥미로운 기록들, 값진 교훈들을 얻어내기엔 충분한 분량과 구성으로 서술되어 있다.
사실 문화사를 제대로 서술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문화 영역은 대중의 집합기억(popular memory)과 가장 근접한 영역이기에 모두에게 친숙한 영역이면서도 가볍게 소비되어 ‘진실'의 영역에서 손쉽게 멀어지고 심지어 은폐해버릴 수도 있는 힘 아닌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가 그 자체로 정치 경제 권력의 숨겨진 진실인 경우도 있지만, 모순과 심층적 진실을 덮는 가림막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경험들과 작은 에피소드들에서 거시적인 구조와의 연관을 찾아내고 문화의 정치적 성격이나 경제적 구조의 영향, 사회의 성격과 관습의 변화 등 정치, 경제, 사회적 함의를 파악할 수 있는 감각과 깊이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미디어와 관련된 역사속의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을 소개해준다는 것인데, 독자들은 이 책에 선택된 이 삽화들을 통해 복합적인 차원들로 시선을 넓혀갈 기회를 제공받게 된 셈이다. 눈 밝은 독자들은 우리가 눈뜨고 보고 있는 것 중에서도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유념하면서 이 책의 에피소드들을 저자들보다 더 섬세하게 기억하고, 더 확대되고 깊이 있는 해석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미디어 사회문화사』는 총 8개의 미디어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고 8명의 필자가 각 장을 저술했다. 어떻게 보면 개별 미디어에 대한 서술을 하나의 일관된 틀이나 관점으로 엮어내고 종합하는데 실패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지만, 덕분에 개별 미디어에 대한 서술의 독립성과 필자들이 그 미디어를 바라보는 관점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는 잠정을 취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전문 연구자들이 보기에는 조금 가벼운 구성이지만 그럼에도 만만치 않은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반영되어 있고, 대중적인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쉬운 서술과 다양한 사례, 사진과, 자료들이 배치되어 있지만 분량이나 내용이 쉽지만은 않다.
이 책은 책과 신문, 영화와 텔레비전, 라디오와 전화, 음반과 인터넷 등의 매체를 다루고 있는데, 이제부터 차례로 각 장들의 쟁점을 간략히 짚어보며 내용을 소개하고 평가를 덧붙여 보고자 한다.




1. 전근대 미디어의 사회문화사


먼저, 『미디어 사회문화사』가 제기하는 첫 번째 주요 쟁점은, 과연 한국사회에 미디어가 어떻게 등장하였으며 그것의 성격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사회는 대체로 조선후기부터 본격적으로 세계체제로 편입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 미디어의 등장과 도입으로 인한 문화적 양상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전근대와 근대', ‘서구와 우리'라는 구도의 쟁점으로 파악해 볼 수 있는 것이다.
1장이 다루고 있는 전근대 미디어의 사회문화사는 이 시기의 다양한 미디어들의 등장과 문화적 향유 양상을 통해 이 쟁점들과 관련된 부분적인 해답들을 얻을 수 있다. 미디어 역사에서 근대는 주로 19세기 말 이후 일본과 중국을 거쳐 도입된 사진, 유성기, 음반, 환등기, 신문, 잡지의 등장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1장은 이러한 근대적 매스미디어가 등장하기 전에 어떤 미디어들이 사회적 소통을 매개․확장하고 사회 부문들을 서로 연결시켰는지를 살펴본다. 이 장에서 다루는 시기는 비록 조선시대로 한정되어 있지만 한글 창제와 반포, 조보나 봉화, 파발, 역참제도, 인쇄술의 발전과 한글소설의 유행, 상소제도와 신문고 같은 다채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보급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과연 한글 창제와 관련된 역사적 진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다 못해 만든 주체와 만들어진 시기를 적시할 수 있는 매우 예외적인 문자 체계라는 특이성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이나 있을까? 수십 년 간 막연한 민족주의적 신화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왔던 문제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신화는 질문을 차단하며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과거를 상상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장에서는 연구 성과들을 반영해 조선의 내외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당성 확보와 유교적 생활 규범들을 보급하는 훈민(訓民)과 교화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더 분명한 규명과 아울러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탐구도 필요해 보인다. “스물일곱자 언문으로도 충분히 세상에 입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누가 어렵게 학문을 닦으려 하겠는가”라며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던 일부 집현전 학자들의 말도 통치 수단으로서의 학문과 사회에 구축된 질서,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언어의 진보적 변화의 가능성 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장에서는 한글이 만들어지고 보급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지배층 여성의 역할과 한문의 위상 변화 등을 다루고 있다.
서양의 인쇄문화와 동아시아의 인쇄술은 무엇이 다를까? ‘인쇄 혁명'에 대한 서구적 관점, 즉 인쇄술=금속인쇄=서양 인쇄혁명이라는 등식으로 한국과 동양권의 인쇄술의 등장과 영향을 파악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한국 등 동양의 인쇄술이 관부의 행정에만 쓰여 서양처럼 문화변동의 원동력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서유럽과 그 정도나 성격이 달랐을지언정, 조선에서도 인쇄술의 발전과 더불어 의미심장한 사회문화적 변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1장에서는 전근대적 미디어와 중앙집권적 행정체제의 관계, 인쇄술의 발전에 따른 한글소설의 발행과 수용 양상 등도 다루어진다. 양반층의 편지문화를 다루는 부분에서 500년 전인 1586년에 31세의 나이로 죽은 남편에게 보낸 부인의 한글 편지는 참으로 절절하다.




2. 통신의 사회문화사


2장은 원거리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 근대적 우편시스템과 전자 장치들을 포괄하는 통신미디어의 역사를 다룬다. 구체적으로는 우편 및 우체제도, 전신, 전화 미디어의 도입과 발달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이 글은 통신미디어를 다룬 본격적 연구로는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쟁점은 과연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했고, 무엇을 왜 소통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원거리 소통의 물질적 기반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러한 소통을 매개해 주는 미디어 시스템과 제도의 구축,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문화라는 두 개의 축이다. 미디어 시스템의 사회적 구성(social formation of media system)이라는 관점에서 미디어 제도의 형성과 사회적 수용 사이의 상호작용과 맥락에 따른 선택의 결과라는 궤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통신의 사회문화사를 ‘먼 거리에 있는 지역 내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문화'라고 정의하고 한 사회 속에서 살아나가고 있는 익명의 개인들의 몸짓과 외침을 포괄하는 것으로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통신이라는 소통 수단의 발전으로 비로소 ‘사회'라는 공간이 형성되고 사람들이 그 사회속의 ‘개인들'이라는 주체로 위치 지워진다고 할 때, 통신은 매스미디어 이전부터 등장한 ‘사회적 미디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신을 매개로한 사회적 소통의 양상이 ‘Talk Play Love'라는 광고 문구로 표현되는 핸드폰 문화로 변화하는 과정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일제의 식민통치 수단으로서 전신·전화가 신문에 비해 훨씬 체계적이고 빠르게 확산되어갔던 점을 지적했다. 1898년에 형성된 우편 네트워크는 실질적인 근대적 통신 미디어의 도입을 의미하는 일대 혁신이었고, 이때부터 우편사무를 집행하는 현업기관이 설치되었는데, 전신의 도입이 근대 우편제도 도입보다 10여년 빨랐던 것이다.
우편으로 시작되는 통신 미디어의 등장에 대한 당대인들의 인식과 대중의 수용 방식들은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이를 ‘통신지체'라고 부르며 기존의 가치체계와 근대적 문물의 도입으로 인해 요구되는 새로운 가치체계 간의 갈등과 충돌의 양상을 보여준다. 정비된 주소체계가 존재하지 않아 우체부들이 편지의 주인을 찾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다녔고, 사람들은 우체부를 박대하다 못해 집을 드나드는 ‘체전부'(당시의 우체부)들은 노상 매를 맞기가 일쑤였다. 이 에피소드 역시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100여 년간 이 사회에 존재해왔던 우편과 우체부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전무한 상황이며, ‘근대 문물'과 ‘전통 문화'의 충돌이라는 틀 이외에도 ‘편지 문화'와 ‘소통 노동'이라는 관점으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저자는 전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도 소개해준다. 최초의 전화기를 받을 때 사람들은 직접 대면할 때와 같은 예의를 갖췄는데, 예컨대 상투를 단정하게 하고 상대가 나오면 자신의 직함과 품계 본관 성명을 말하고 상대의 안부를 물은 후 당사자들의 부모 안부까지 묻고 안건을 말하는 식이다.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것과 매개된 소통이 다를 바 없었던 상황에서 대면하는 소통이 매개된 소통보다도 더 거리를 둔 상태로 비인간화 되어가는 오늘의 상황을 비교하고 과정을 추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장에서는 한국의 근대 언론의 등장이 곧 통신 네트워크의 성립과 밀접한 관련되어 있다는 중요한 사실도 지적한다. 근대 언론사는 항상 정치적 갈등과 언론자유라는 틀에서만 기술되어 있어서 근대 언론의 물질적 기반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밖에도 저자는 전신체계가 국가의 긴급통신 수단으로 도입되고, 그에 따라 동학혁명 때 전신 전선을 절단하는 저항이 있었던 것, 우편제도가 긴급통신인 전신과 다른 대안적 소통수단의 성격도 있었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또한 식민지 시기에도 전신 전화를 이용한 통신판매가 활성화되어 백화점 사이의 영업전쟁 수단이 되기도 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마지막으로는 1970년 9월 1일 등장한 배색전화와 청색전화가 전화라는 미디어 기술이 특권의 상징이 된 것에서부터 ‘휴대전화라는 신흥 종교'의 시기에 ‘최신 휴대폰'이 구별짓기를 통한 문화자본의 상징이 되어가는 측면도 눈여겨 볼만하다.




3. 신문의 사회문화사


3장은 신문의 사회문화사이다. 이 장은 기본적으로 기존 언론사가 그러하듯 언론자유와 식민·독재의 갈등이라는 정치사적 관점을 따라 서술되었다. 신문은 유난히 정치적 성격이 강한 매체이다. 지금은 스포츠 신문과 무가지가 범람하고 있지만 신문의 전성기는 그 정치적 기능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정치적 갈등의 역사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언론사'는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의 창간에서부터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의 등장, 식민지기 민족지의 저항과 탄압, 해방과 정론지의 갈등, 독재시기의 언론탄압과 기업화, 이후 상업화와 권력화라는 흐름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 책 역시 기본적으로 언론자유와 통제, 국가와 자본의 이분법과 같은 흐름과 틀을 따르고 있지만, 누가 독자였고, 신문의 수용양상은 어떠했는지도 보충하고 있다. 1903년 즈음에는 발행되던 신문을 독해가 가능한 사람이 읽어주는 신문종람소라는 곳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서 신문을 '들었던‘ 상황도 있었다. 신문구독은 문자해독 정도나 소득수준, 직업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1930년대부터는 점차 근대적 소비문화와 관련된 연재소설들이나 광고, 기사들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 밖에도 신문의 독자투고란의 변화나 독자들의 참여, 탄압을 받던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같은 사례들도 시기별로 다뤄지고 있다.
서구에서도 언론은 정치적 기능이나 그 평가에 있어서도 ‘공론장 public sphere'이라는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의 틀로 분석·평가되고 있고, 또한 민족이라는 '상상된 공동체‘를 만들어낸 근대성의 토대로서 분석되고 있다. 특히 ‘국어'의 확산이나 민족주의의 형성이라는 관점도 매우 중요한 분석틀이다. 언론자유와 통제라는 단순한 틀로만 언론사의 서술을 반복 해석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가 아닌가 싶다. 완전히 정리되어 더 이상의 질문을 차단하는 것이 기존의 역사서술이라면, 부지런한 독자들은 다양한 쟁점들, 특히 문화와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좀 더 풍부하고 다면적이며 동시에 거시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질문들로 나아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4. 영화의 사회문화사


4장은 한국 영화의 사회문화사이다. 영화라는 미디어 혹은 (저자가 말하는) 문화형태(cultural form)가 제기해주는 쟁점은 시각문화의 확산과 소비문화의 양상이다. 한국에 영화가 도입되었다는 것은 본격적인 시각미디어가 도입되어, 스펙터클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스펙터클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처럼 모든 곳에 스크린이 있는 ‘스크린 사회', 시각이 지배하는 사회와는 다른 감각 문화가 존재하던 오랜 역사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동시에 영화의 도입과 영화 수용의 역사는 시각 미디어 문화의 형성과 아울러 젊은 세대의 근대·소비·자본·문화 경험과 감수성의 변화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축이다.
이 장은 영화와 관련된 ‘최초'의 순간들을 잘 정리해주고 있다. 먼저 ‘활동사진'으로서의 영화의 전사는 사진의 도입이었다. 사진술은 1860년대에 중국으로부터 알려졌지만 절대 다수의 대중은 사진이나 카메라에 대해 무지했고 노골적으로 낯선 외래품에 대한 적대감이나 두려움을 드러내곤 했다. 사진에 찍히면 사람의 영혼과 정신이 빠져나간다고 믿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모든 미디어의 등장시기엔 그 미디어와 관련된 공포와 적대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 핸드폰과 관련된 다수의 공포영화나 Y2K와 같은 사례는 단지 미디어에 대한 반감 차원이 아닌 그 미디어가 가져온 사회관계와 일상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문제점을 암묵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등장한 영화는 신기한 볼거리였고 서구 과학기술의 총아인 동시에 불가해한 마술이었다. 한국에서는 1903년에 처음 영화가 대중을 상대로 상영되었고 1924년 비로소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최초의 극영화 <장화홍련전>이 만들어졌다.
이 글은 영화 자체나 관련 기술의 역사 보다는 극장이라는 공간과 극장가기라는 문화적 실천, 영화 관람과 관객성을 중심으로 각 시기의 영화관람 풍경을 개관하였다. 한국에 최초의 상설영화관인 경성고등연예관(우미관의 전신)이 을지로 입구에 설립되었고. 1907년부터는 변사가 등장했다는 기록들은 ‘뤼미에르'로 시작하는 서구 영화사에 비한다면 가깝고도 생생하며 독특한 우리의 경험으로 다가온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변사는 단순한 해설자가 아닌 ‘연예인'이었고 관중의 열띤 반응을 이끌어 내어 하나로 묶어 주는 구심점이었다. 미디어(media)와 사람을 매개하는 사람(mediator)들이 등장한 셈이다.
영화는 1920년대 이후 식민지 지식인들,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전유물이었으며 당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 기능해왔다. 그리고 1950년대에는 외화가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제임스 딘 등 외국 스타의 브로마이드를 구입하기 위해 사람들이 남대문과 종로, 서울역, 동대문 등지 극장가의 노점상에서 구매하였다. 특히 미국 서부극이 가장 인기를 끌었는데, 알다시피 서부극은 프런티어 정신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국가 정체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전후 냉전체제하에서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수용의 맥락과 아무 상관없는 ‘상상된 문화'에 열광하는 ‘문화적 현실'이 곧 냉전 하 우리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장은 196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에 등장한 청춘영화, 1970년대 청년문화 그리고 1980-90년대의 신세대 문화로 이어지는 문화지형의 변화를 영화를 중심으로 소개해주고 있다. 한편 1960-70년대 군사정권의 영화통제, 1980년대 중반 이후 영화업 자유화 정책이 이러한 변화의 구조적 배경으로 존재했다는 점도 놓치지 않고 있다.




5. 라디오의 사회문화사


5장은 라디오의 역사이다. 라디오는 2차 세계대전 전후로 그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며 군사적 필요성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도입되고 관리된 매체이다. 중요 매스미디어인 방송 매체는 대체로 이런 맥락에서 국가에 의해 도입되어 상업적 이윤을 남기기 위한 기업으로 변화해 성장해가는 수순을 밟았다. 따라서 라디오의 쟁점은 주로 매스미디어의 사회적 기능과 국가와의 관계라는 부분에 놓여있다. 

한국에서 라디오는 ‘무선전화'의 일종으로 도입되었다. 식민지기인 1915년의 실험을 거쳐 1924년에 ‘무선전화 방송'으로 시연되었던 것인데, 당시 라디오는 교육과 사회발전을 위한 문명의 이기라는 계몽의 수사와 더불어 보급되었다. 저자는 라디오가 식민 통치 도구로서 식민성과 양악과 새로운 대중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근대성의 창구라는 이중적 특성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일제시기에 대중의 필요와는 무관하게 식민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라디오 관행들이 기본 틀이 되었던 것처럼, 해방이후에는 미국의 지도하에 미국식 라디오 프로그램 포맷 도입과 상업화가 이루어졌다. 지금도 익숙한 연속극과 노래자랑대회, 퀴즈프로그램, 시청자 리퀘스트 프로그램과 DJ프로그램 도입이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착된 것이다. 이중 얼마 전 영화로도 만들어진 라디오 연속극 제작으로 당시 기생이나 방송국 여성 아나운서들, 예술가들이 스타가 되었다.
저자가 관심을 갖고 다룬 부분 중 중요한 것은 라디오 시보와 ‘국민보건체조'이다. 1933년 4월 26일부터 라디오가 시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이는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근대적 시간체제로 포섭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일간 신문들이 같은 공간과 시간감각이라는 공통성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면, 라디오는 통해 시, 분, 초로 이루어진 시간 감각을 더 넓은 공간에서 공유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동시대성의 체험을 본격화한 매체라고 볼 수 있다. 근대성의 중요한 요소인 이러한 시간감각은 곧 파시즘을 가능케 한 ‘일상'의 요소이기도 했다. 만주사변 발발후인 1937년부터 라디오에서는 매일 아침에는 궁성요배, 매일 밤에는 황국신민의 서사 방송을 했고, 1941년부터는 정오에 묵념시간을 만들어 사이렌을 울렸다.
1943년부터 시작된 국민보건체조는 원래 정해진 시간에 라디오 음악에 맞춰 맨손체조를 한다는 개인 건강증진 운동으로, 미국 생명보험회사가 보험가입자 건강을 증진시켜 사망자를 감소시켜 보험지급금을 줄이기 위한 상업적 목적으로 시작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파시스트 권력에 의해 도입되는 순간, 사람들의 신체와 건강은 모두 국가의 관심 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장에서는 라디오가 중산층 대중을 대상으로 뉴스, 영화나 무대연극을 각색한 방송극, 명창대회 등 중계방송 및 강연과 강좌 프로그램을 방송하며, 가정 오락의 매체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도 스케치해준다. 마지막으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광범위한 공통감각과 일상의 규율을 가능케 한 라디오가 국가의 집합기억(national memory)을 구성해내었다는 점이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바로 한국이 ‘광복절'로 기억하는 8월 15일이다. 사실 ‘해방'과 ‘패전'을 ‘8.15'로 기억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8월 15일은 국제법상의 어떠한 조약이나 패전·승전국 사이의 협정, 국제사회나 기구의 한국의 주권 회복인정 등 제도적 절차가 전무한 날이다. 단지 소위 천황의 ‘옥음방송' 즉, 항복선언이 라디오를 통해서 방송된 날일뿐인 것이다.




6. 소리 미디어의 사회문화사


6장은 대중음악의 사회문화사이다. 이 장은 주로 ‘기술'변화와 ‘대중음악'의 생산·소비라는 쟁점에 주목했다. 대중음악은 19세기말 유성기와 축음기, 음반과 라디오, 전축과 카세트테이프 같은 기술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는데, 이 장은 주로 음악의 수용과 관련된 기술적 변화를 중심으로 대중음악의 문화사를 기술했다. 이 밖에도 대중음악이 수용된 카페의 라디오, 극장의 악극, 미8군 쇼, 클럽의 DJ, 라디오의 음악프로그램, 노래방과 나이트클럽 같은 공간도 다뤄지고 있다.
한국사회에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도 기술의 영향은 확연했다. 저자는 일제 시대 레코드 산업이 가져온 세 가지 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먼저 양악, 국악, 대중음악이라는 구분을 확립시켰고, 다음으로는 한국인에 의해 창작되고 보급된 대중가요가 ‘유행가'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지금 ‘트로트'라고 불리는 장르는 유성기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인데, 당시 ‘유행가' 외에도 신민요, 민요, 재즈송 등 대중가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문인출신 작사가가 주로 하던 문예부장이 레코드의 품질과 상업적 흥행을 책임지는 음악 생산과 유통의 시스템의 중심적 존재가 되었다는 점이다. 

카세트와 워크맨의 등장도 중요한 변화와 맞물려 있다. 음악의 소비가 탈 가정화되어 개인적 소비와 수용을 가능케 된 것이다. TV의 등장도 대중음악의 생산과 소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1980년대부터 주류 음악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TV가 등장하고 쇼프로그램이 생기고 순위프로그램이 생겨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노래방이라는 공간의 확산도 음악의 생산 자체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노래방은 저작권 수입의 중요 통로가 되었을 뿐 아니라 듣는 노래보다 부르기 좋은 노래가 유행되게 했고, 노래하기 쉬운 국내 음악 선호도를 더욱 높였으며, 대중음악이 오래 불려지며 저장되는 창고 역할을 했던 것이다.




7. 텔레비전의 사회문화사


7장은 텔레비전의 사회문화사이다. 텔레비전은 지금 같은 다매체 상황에서도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매체인데, 이 장에서는 TV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이 알차게 잘 구성되어 있다. 텔레비전은 일종의 종합매체로서 시각문화와 소리문화, 뉴스와 오락 같은 기존 미디어들이 갖고 있던 모든 기능과 쟁점들을 포함하는 매체이다.
TV는 1956년 5월 종로 네거리 RCA 대리점 빌딩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당시는 ‘라디오와 활동사진을 겸한 매체'로 여겨졌다. 텔레비전이 보다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방송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 부터였다. 책에 서술된 것처럼 1961년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이 부족한 경제력과 전력에도 불구하고 할부제 실시, 전자산업 육성, 미국·일본 업체와의 제휴 등 국가 주도로 텔레비전을 확산시켰다. 그런데 TV나 라디오 보급대수를 곧 ‘국력'의 상징으로 보았던 것은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 정책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미국에서 1950년대 후반부터 만들어진 근대화 이론(modernization theory) 이라는 미국식 모델 겸 냉전체제하 동아시아 정책의 인식과 정책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당시 공보부장인 오재경은 1961년 12월 텔레비전 방송국의 개국을 ‘혁명정부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불렀다. 영상매체 도입은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보충해주는 과시적인 스펙터클이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신군부가 1980년 12월에 컬러 텔레비전을 실시하는 것에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의 케이블 텔레비전이나 2012년에 실시될 디지털 TV, 최근의 IPTV도 모두 국가가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동력은 산업과 수익이지만 수출기반의 산업성장과 그것을 위한 매체의 소비, 흥행으로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한 콘텐츠의 개발 역시 1970년대 이후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전형적인 양상이다.
수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텔레비전은 공공장소에서 집단 시청하는 것에서 점차 가족 텔레비전으로 변해갔다. 1960년대의 텔레비전은 중산층 가정의 상징이었고, 그에 따라 텔레비전 수상기는 사회적 욕망의 대상이 되어갔다. 소위 ‘안방극장'이라는 용어는 텔레비전의 연예오락과 여가 생활 기능이 가정과 집으로 들어오는 양상을 보여준다. ‘거실'이라는 공간이 텔레비전을 보는 공간으로 기능 부여된 것은 이 때 부터였다. 1970년대 <아씨>와 <여로> 같은 일일극의 성공은 이러한 문화를 사회 저변에 자리 잡게 했고, 1990년대 <여명의 시대>이후 소위 ‘웰 메이드 드라마'가 확산되어 한류와 ‘폐인'문화, 미드, 일드의 소비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내손안의 TV'라는 지금의 DMB TV는 마침내 TV도 개인시청을 하는 수용 형태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8. 인터넷의 사회문화사


마지막 8장은 인터넷의 역사이다. 인터넷은 기술과 수용방식 모두 현재도 진화하고 있고 도입되고 있으며 형성되고 있기에, 이 장에서는 이론적 분석이나 해석 보다는 진화 양상을 여러 각도에서 정리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 소개된 인터넷의 역사는 언제나 미국의 인터넷 역사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동안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던 인터넷 초기 기술의 국내 도입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 1982년에 서울대와 구미시의 전자기술여구소를 연결한 SDN으로 시작된 인터넷은 1990년 6월에 하나망이 인터넷 전용선으로 개통되어 전자우편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누구나 광범위하게 쓰고 있는 한글 E-mail은 1983년의 한 석사논문에서 처음 구상되었고, 1994년부터 하이텔, 천리안, 아이네트 등의 사업자가 인터넷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장에서는 PC통신 시절의 네트워크 문화나 전자게시판과 동호회 문화 같은 초기 인터넷 역사를 다루고 있고, PC방과 인터넷 게임, 디카, 미니홈피, 블로그 등의 최근 문화뿐만 아니라 인터넷 저널리즘과 포털 뉴스의 문제, 바이러스와 백신 같은 논쟁과 갈등의 영역도 간략하게나마 다뤄주고 있어 인터넷과 관련되어 진행 중인 쟁점과 그 숨 가쁜 변화의 여러 측면들을 조망해주고 있다.




매개에서 물신으로, 다시 소통으로


우리는 미디어 사회에 살고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매개된 사회(mediated society)로서의 근대사회에 살고 있다. 결과적으로 매개하는 물건이나 제도, 매개하는 매개자가 더 중요해지는 한편, 사람들은 서로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멀리 떨어져 공감하는 위치에 익숙해져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 역시 사회문화사적 관점으로 사람들의 일상 문화와 미디어 수용을 바라보려 했지만, 여전히 미디어를 중심에 두고 사회의 문화적 구조와 인간의 삶의 양식들을 살펴보려 한 측면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미디어 문화사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라는 가능성을 갖는 동시에 소통을 빌미로 문화를 물신화할 수 있는 위험성도 갖고 있다. 한동안 모던 보이나 라디오 연속극 등 문화사적 연구를 토대로 한 영화들이 제작되었지만, 대중의 호응도 얻지 못했고 사회와 인간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 감동을 주지도 못했다. 상품과 물신으로서의 문화사의 운명은 이런 것이 아닐까?
미디어도 넘쳐나고 미디어에 대한 연구도 수없이 쌓여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 우리의 삶에 과연 미디어가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답하려는 연구는 드물었다. 이 책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문화사적 관점을 견지함으로써 이러한 질문의 답에 접근하고자 노력했다. 책의 두께만큼이나 너무 많은 것을 다루려던 욕심으로 수많은 사례들이 나열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이 책은 지금까지의 성과를 공유하고자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풀어놓았고 이후의 해석과 쟁점의 발굴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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