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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5호 읽을거리] 우리는 ‘알권리’와 ‘읽을 권리’를 가지고 누리며... - 『빛을 만지다-점자촉각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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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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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5호 / 2008년 9월 30일

 

 

우리는 ‘알권리’와 ‘읽을 권리’를 가지고 누리며...
- 『빛을 만지다-점자촉각그림책』



안선정 (수원종합복지관 자원봉사자)
 



우리는 ‘알권리'와 ‘읽을 권리'를 가지고 누리며, 지식정보시대에 걸맞게 삶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손쉽게 습득하고 이야기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태어나면서부터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장애를 입어 기본적인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있다. 장애인들의 오랜 숙원이던 장애인 차별 금지법(4월 11일 시행)에서도 장애인의 정보접근에 있어 차별당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시각장애인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읽을 기회가 있으나 참여하지 않는 것과 그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단순한 동정심만으로는 이들의 기본적인 지식습득의 부족한 기회나 열악한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 중도실명자의 경우, 이제껏 의존했던 ‘보는' 감각을 버리고 새로이 손끝으로 만지는 점자를 익히고 청각에 집중해야 하는 모든 훈련들이 참으로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를 안고 태어난 시각장애아동의 경우는 그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이런 시각장애아동이 점자를 배우기 전에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그림을 표현한 책이 촉각도서이다. 또한 이 촉각도서는 시각장애아동 뿐 아니라 비시각장애아동의 촉각능력향상에도 도움이 되고, 책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는 효과가 큰 책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 없이 통합교육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그러므로, 촉각도서에 대한 관심은 시각장애인 관련자 뿐 아니라 비시각장애인 모두에게로 확대되어져야 하며, 그럴 때에야 비로소 서로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다.


점자촉각그림책은 비시각장애인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점자촉각그림책 제작은 시각적으로 정교하게 신경 써야 하는 작업인 동시에 예민한 촉각으로 보이지 않는 면까지 고려해야 하는 작업이므로 결국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의 협동에 의해서만 가능한 작업이다. 보이는 그림이 아니라 느껴지는 그림이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 스스로 시각장애인의 입장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주 눈을 감고, 손으로 질감을 만져보고, 그림이 촉각으로 사물을 잘 표현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시각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80%나 되지만 정작 인지가 이루어지는 순서는 촉각(그리고 미각), 후각, 시각, 청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나빠지는 감각의 순서는 오히려 또 그 반대다. 눈은 보통 13세부터, 청각은 15세, 후각은 20세, 미각은 29세, 그리고 촉각은 보통 60세 전후에 나빠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어쩌면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오랜 기간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감각기관이 촉각인 것이다. 이 책의 중간에 눈을 감고 손끝으로 점과 선과 면을 경험할 수 있는 페이지가 나온다. 눈을 감고 천천히 손끝에 만져지는 감각에 집중해도 구멍이 많은 네모인지 물결무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 페이지를 넘기면서, 많은 비시각장애인들이 한편으로는 촉각장애인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 더 이상 정상/비정상의 구분은 없다. 우린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책의 크기나 글자의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편견을 초월하는 열린 마음이야말로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과의 소통을 이루는 필수조건이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처음 만져본 점자촉각그림책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개미의 팔, 다리, 두더지의 털, 개미의 움직이는 경로... 전혀 새로운 감각의 경험이었고 웃음이 절로 나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어른인 나도 이럴진대 시각장애아동들은 이런 책을 만질 때마다 얼마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지 가슴이 뭉클하다.


촉각도서를 경험한 시각/비시각장애아동 세대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될 미래엔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의 재원들이 배출되어질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보다 한 발 앞선 일본에서처럼,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열린 마음으로 함께 작업할 수 있는 비시각장애인들의 많은 참여가 요구된다. 천천히 느리게 보는 법을 배우게 하는 촉각도서의 내실 있는 양산을 위해 우리 모두가 잰 걸음으로 서둘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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