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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4호 읽을거리] 이랜드노동자의 목소리가 담긴 『우?소?꿈』을 읽는 것은 나의 소박한 꿈을 응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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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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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4호 / 2008년 9월 1일

 

 

이랜드노동자의 목소리가 담긴 『우?소?꿈』을 읽는 것은 나의 소박한 
    꿈을 응원하는 것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이랜드 노동자 이야기』 
  권성현?김순천?진재연 엮음 / 후마니타스, 2008


양미(서울여성노동자회) 
 
1. 그/녀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이야기를 담아보자


2007년 여름 ‘아줌마'노동자들이 매장을 점거하고 20일이 넘게 버텨 냈을 때 참 많은 사람들이 감탄과 분석을 쏟아냈었다. 비정규투쟁의 상징, 조직되기 힘들다는 유통서비스 노동자, 그것도 대부분이 육아와 가사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회단체와 정당이 조직화과정부터 함께 한 투쟁, ‘비정규보호법'의 허구를 정면으로 드러낸 투쟁...지금은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수많은 의미 부여들... 그 무게들!


그런데 그 즈음 나와 이랜드일반노조월드컵분회 지원활동을 함께 했던 몇몇 사람들과 조합원들은 그런 분석들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들이 쏟아내는 그 수많은 분석들에는 정작 그 투쟁과 의미부여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그 수많은 의미부여와 무게감으로 짓눌려 있었는데도. 
그/녀들은 말했다. ‘자신들에게 그런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생존을 위한 소박한 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투쟁에 연대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우리에게 그런 무거운 짐을 지우지 말았으면 좋겠다'라고.



그래서 그/녀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이야기를 담아보자 그랬다. 20일간이나 자신이 일하던 매장을 점거하고, 그 후에도 2번에 걸쳐 점거농성을 감행하고, 물대포와 맞서고, 여름을 지나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여름이 되어도 포기하지 않는 투쟁을 지속하는, 지속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녀들의 목소리로 그 이야기를 담아보자 했다. 술자리에서, 거리에서, 점거농성장에서 우리들이 들었던 그/녀들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눈물과 웃음이 담긴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은 그/녀들을,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게끔 하고 싶었다. 일과 가사노동의 일상과 투쟁... 그리고 존재감이 없거나 잃어가는 그/녀들의 생생한 목소리.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것은 수많은 분석들이 아니라 그/녀들의 삶 그 자체라 여겼기 때문이다. 단지 살아내고자 하는 소박한 꿈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란 책이 만들어졌다.




2. 일상의 ‘고통'과 ‘모욕'을 견디며, 꿈꿀 수 있는 삶을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책을 펼치면 조희숙 조합원의 인터뷰가 나온다. 사실 이 책은 대부분이 그/녀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녀를 인터뷰한 김순천씨는, “처음에 나는 희숙씨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언어의 시계를 희숙씨에게 맞춰 느.리.고.깊.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을 변화시킨 일상 속에 깊게 박힌 ‘고통'에 대해서, ‘모욕'에 대해서. 그것은 너무 세밀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의미와 가치를 포착하기 힘든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일상 속에 깊게 박힌 ‘고통'과 ‘모욕'.... 우리는 이 책에서 그 일상 속에 깊이 박힌 고통과 모욕을 숱하게 접한다. “오후 4시부터 일이 시작돼서 정산까지 다하면 새벽 1시20분에 일이 끝나요. 집에 가면 2시가 넘어요. 씻고 나면 3~4시가 돼요. 애 학교 보내고 남편 내보내려면 6~7시에는 일어나야 해요. 식구들 밥해주고 나면 청소하고 빨래하고 시장보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가는 일상. “그래서 몸이 항상 예민해져 있고요. 게다가 서비스직이라 고객 컴플레인(불만)이 많아서 항상 긴장돼 있어요.” 그리고 그 일상 곳곳에 스며든 ‘모욕'들. “저희가 회사 안에서 일하는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회사에서 그때그때 정해 준 곳에 가서 일해야 돼요. ... 그런 상황이니 휴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가 상당히 힘들어요. 일하는 것도 조장이 마음대로 해요. 예쁜 애는 가운데 주고 미운 애는 앞 포스나 뒷 포스 소량 계산대 주고, 화장실 갈 때도 인터폰으로 조장에게 화장실 갈 수 있냐고 물어봐야 해요. 안된다고 하면 못 가요”. “(고객수가) 하루에 400명쯤, 적으면 280명 정도 되요. 그 정도 받으려면 여덟 시간 정도 서서 긴장하며 고객들 항의 들으면서, 두세 사람 몫을 혼자 감당하면서, 화장실도 못가고 쉬지도 못하면서 일해야 해요”. “안 웃었다, 봉투 한손으로 줬다, 귀걸이 했다” 이런 것 체크해서 점프 교육이란 걸 시키는 모니터링 제도에 시달리고, ‘킹 오브 진상' 고객을 만나 포스 안에서 쪼그리고 앉아 울고, 빨간 립스틱을 발라야 하고, 신년문자를 정규직에게만 보내는 모욕들. “어떻게 보면 일이 힘든 것은 그렇다 쳐요. 근데 저희가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차별일지도 몰라요.”


그러면서도 그/녀들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상에서의 고통과 모욕들이 어떻게 자신들을 파괴하고 다른 소중한 이들의 삶을 파괴할 지 안다. “일 끝나고 집에 오면 딸아이 자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봐요. 딸아이가 커서 힘들게 공부해도 어디다 써먹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요. 1년 있으면 직장에서 나가야 되고, 10년 동안 일하다 보면 일고여덟 번은 직장을 옮겨야 할 텐데. 아이들이 우리처럼 그렇게 살아갈 걸 생각하면 정말 슬퍼져요. 아, 아이들이라도 꿈꿀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근데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그런 세상은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싸운다.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꿈꿀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서.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녀들의 일상은 나의 일상과 많이 닮아 있고, 그/녀들의 모욕들은 내가 받았거나, 내가 다른 이들에게 주어 왔던 모욕임을 깨닫게 된다.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하루하루도, 직장에서 매일 감수해야 하는 장시간의 노동과 강도 높은 노동, 감시와 차별, 전쟁 같은 하루를 마치고 집에서 잠든 가족의 얼굴에 지금 나의 삶이 겹쳐지는 서글픔...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고통'과 ‘모욕'들. 그/녀들은 비로소 그냥 ‘이랜드 노동자'가 아니라 ‘희숙'씨의 모습 자체로 구체성을 띄고 나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술자리에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처럼. 나에게 속을 터놓고 말한다. 너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냐고. 그렇게 이 책은 이랜드 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 자본주의하에서 박제되어 창조성을 잃어버리고 기계화된, 통제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의 삶과 소박한 꿈에 조용한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3. 『우?소?꿈』을 읽는 것, 그것은 우리 자신을 응원하는 것!


지금 이 책은 8,000권 가량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곧 3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각종 온라인서점에 있는 리뷰들을 읽어 봤다. 안타깝게도 이 책을 소개한 책들도, 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대부분 이 책을 이랜드노동자들의 고단함과 투쟁에 대한 기록으로만 읽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랜드노동자에 대한 연민을 원했던 게 아니다. 나는 이랜드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유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거대한 의미부여여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연민이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들의 삶이 돈을 향한 경쟁과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사회적 조건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고문에 내 몰려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삶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랜드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켜본 어느 온정적 회의주의자가 이 책을 통해 밝힌 생각을 곱씹어 본다. “이마트나 롯데나 홈플러스나 이랜드에서 말하는 빡센 근무조건이나 비인간적인 거, 그런 거 비슷해요. 비슷하지만 다른 데는 그냥 구질구질 살고 있는 거예요. ...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내가 있는 데도 비슷할 거예요. 다만 기본적인 삶의 질이랄까 이런 게 좀 나은 거겠죠. 본질은 다르지 않다 해도 말예요.”. “내가 있는 데라고 개밥에 도토리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면에서 그분들하고 차원이 다른 거죠. 그분들은 심하게 말해 1분 자고 24시간을 일해도 노동조건이나 삶의 위치가 바뀔 가능성이 99퍼센트 없지만, 나 같은 조건에서는 사회적 조건이 나아질 가능성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할까. 회사나 조직에서는 그런 가능성을 이데올로기화하는 거고. 넌 할 수 있다. 넌 할 수 있다 하는 식으로요.”


우리가 상대적으로 더 사회적 조건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할 수 있다는 희망-비록 24시간 일하더라도-에 묶여 있고 그 희망이 우리를 돈을 향한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그 현실을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서글프게 웃고 있을 그는 어쩌면 지금 이 사회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대변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것을 읽어 낼 수 있을 때, 그때 우리는 진정 이랜드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하는 것이 나의 소박한 꿈을 응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알고 있으면서도 희망고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과 희망고문을 끊어내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다리를 놓아야 할까. 우선 당장은 마트로 가는 발길을 돌리는 것, 이랜드와 같은 나쁜 기업에 대한 불매를 선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된다면 이랜드일반노조의 홈페이지( http://www.elandtu.or.kr/ )에 들러 투쟁기금을 지원하는 CMS에 가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관심과 지원. 무엇보다 『우?소?꿈』을 읽고 이랜드노동자와 같은 자신의 소박한 꿈을 응원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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