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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0호 현장] 개인적이어서 조심스러운 이야기 - 퍼블릭 액세스와 RTV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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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0호 / 2009년 4월 22일



개인적이어서 조심스러운 이야기
- 퍼블릭 액세스와 RTV 다시 보기



이경희(대구영상공동체 이후)
 
[편집자주] RTV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한 시기인 2008년 초기부터 제작지원금 및 방송채택료 집행이 미뤄지고, 공익채널에서 배제되는 등 위기를 겪었습니다. 더군다나 방통위의 위성방송 시청자참여프로그램 ‘PP공모제' 도입, 스카이라이프의 ‘시민채널 위탁사업자' 계약 해지 통보는 공적지원금 비중이 높던 RTV에 직접적인 재정위기를 초래했습니다. 2009년 초에는 스카이라이프로부터 지원금이 끊기게 되어 운영하기조차 어렵게 되었습니다. ACT!는 RTV 위기 상황에서 ‘RTV와 퍼블릭 액세스 다시 보기'를 주제로 글을 싣고자 합니다. 그 시작으로 대구영상공동체 이후에 소속되어 있고, <노가다vs노동자> 영상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이경희 활동가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RTV를 통해 소통하자는 미완의 실험
 
RTV가 공익채널로 선정되고 케이블TV에 의무편성이 가능해지면서 지역에서도 케이블TV를 통해 RTV 시청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을 접한 게 2007년 하반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2008년 초부터는 대구지역 8개 행정구군 중에서 5개 행정구에서 케이블TV를 통해서 RTV를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오호! 요걸로 뭘 할 수 있을까?'하고 머리를 굴렸던 결과물이 대구건설노동자 영상 프로젝트 <노가다vs노동자>였다. (2008년 8월 첫방송을 시작으로 1년간 한달에 한번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 RTV를 통해 방영되고 있다.)
http://www.mediact.org/web/media/act.php?mode=emailzine&flag=emailzine&subno=228 
5&subTitle=%C0%CE%C5%CD%BA%E4&keyno=2291
  (다시보기 www.newscham.net )

 
 
일반적인 사업장 노동자들과는 달리 건설노동자들은 수개월을 주기로 공사를 찾아 이곳저곳 떠돈다. 며칠 전만 해도 그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를 다시 찾아가보면 다른 현장으로 가버려 소식이 끊기는 경우도 허다하고, 조합원이라 하더라도 어느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지 일일이 파악해야 하는 것이 건설노동조합 조직화 사업의 조건이다.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의 대명사라고 불릴 만하다.
 
단협에 노동조합 교육시간이 확보돼 있기는 하나, 큰 건설현장만 70군데가 넘는 현장마다 돌아다니면서 교육한다는 것은 노동조합 간부들이 입에 거품을 물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하며, 고된 노동으로 조합원들이 퇴근 후 노동조합 사무실로 발걸음 하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 행사 하나를 알리기 위해 6명의 노조상근자가 500명의 조합원들에게 하루종일 전화를 돌려대야 한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안되냐고? 문자메시지 삭제기능을 몰라서 메시지 저장함 용량이 초과해 소식을 받지 못하는 건설노동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상근자의 하소연을 듣는다. 본조 외에는 지역본부나 지부의 경우 홈페이지나 온라인 카페가 거의 없다. 많은 수의 건설노동자들이 인터넷을 힘들어하기 때문에 굳이 만들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한다.(*주1)
 
이런 노동자들이 퇴근 후 집에서 TV를 켜면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접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공감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또 다른 건설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면, 건설노동자들이 조직화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대부분 각 구마다 이런저런 케이블TV에 가입되어 있는 시청환경을 고려해볼 때, 위성방송에 굳이 가입하지 않아도,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건설노동자들도 ‘매달 몇 일 몇 시'라는 약속된 시간에 집에서 배깔고 누워서 TV를 켜고 리모콘을 돌려 RTV채널에 맞출 수 있다면 건설노동자들이 소통하고 교육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게다가 오프라인에서 홍보만 잘 되면, 비조합원인 대부분의 건설노동자들도 한번쯤은 RTV를 맞춰보지 않을까? RTV를 지역에서 볼 수 있게 됨으로써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소통접점을 RTV를 통해 형성하는 것이 가능한 조건이 열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2008년 하반기부터 PP공모제로 RTV에 불안한 기운이 돌더니, RTV가 공익채널 선정에 탈락함으로써 케이블TV와의 런칭이 어려운 조건에 처하게 됐고, 여타의 재정이 끊김으로써 케이블 런칭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제는 케이블을 통해 RTV를 볼 수 없게 됐다. 인터넷 생방송과 다시보기도 중단되었다. 이제 RTV는 위성에서만 머물던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아니 사정은 그보다 더 나빠져서 RTV 존폐를 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져있다.
 
케이블TV를 통해 <노가다vs노동자>를 보아왔던 건설노동자들도, 위성방송을 통해 보아왔던 건설노동자들도, 인터넷을 통해 보아왔던 건설노동자들도 아주 조심스러워하면서 내게 묻는다. “요즘 RTV가 힘들어졌다 카던데, 이제 ‘노가다'를 RTV에서 볼 수 없는 거냐”고. “글쎄요, 쩝. 당분간 위성에서는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답해버리고 나는 속이 상한다. 그래서 매달 방송이 나갈 때쯤이면 조합원들이 살고 있는 행정구에 따라 각각 RTV가 나오는 케이블 채널을 문자메시지를 넣으며 홍보하던 노동조합은 더 이상 이 일을 못하게 됐다. 다행히 최근 참세상에서 인터넷으로 볼 수 있게 배려를 해줘서 노동조합에서는 곧 홍보포스터를 찍어서 다시 건설현장 참집(식당)마다 돌아다니면서 부착할 계획이다. 그러나 RTV를 통해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을 소통접점을 만들어보겠다는 애초의 계획은 미완의 실험으로 끝내게 될 것 같다.
 
 
퍼블릭 액세스와 RTV를 다시 고민한다
 
어느 공동체든 소통매체의 구조와 방식이 있다. 활자신문이 될 수 있고 성명서나 유인물이 될 수 있고 인터넷이 될 수 있고 집단상영회가 더 적절할 수 있고 간단하게는 전화나 편지도 될 수 있다. 소통하고자 하는 집단이나 개인의 조건에 따라 주요한 소통도구는 선택될 것이며, 각각의 소통도구는 공동체 내에서 서로를 보완하며 소통의 효과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퍼블릭 액세스도 몇 년의 실험과 경험을 통해 이 역할에 복무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많은 활동가들이 동의할 것이다. 공동체 내외의 소통의 흐름과 경향을 발견하고, 그 관계망이 미약하면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만들고 구조화시키는 것, 적어도 우리들 내부에 퍼블릭 액세스를 ‘TV에 제작물을 방영하는 것'(*주2)으로 사고하는 활동가는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퍼블릭 액세스를 말할 때 그것은 TV라는, 아직도 매체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TV를 통해 소통에 복무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소통을 자극하겠다는 전략을 세운다면 그것은 퍼블릭 액세스라기보다는 다른 용어로 정립되어야 할 것이며,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효과를 상승시킬 수 있는 관계 맺기(TV와 인터넷이라는 상이한 경로로 유인된 시청자들을 서로 끌어당기는 전략)를 기획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무튼 TV를 공동체들이 소통의 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발상에 기대어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우리의 활동은 부침을 거듭하며 지속되어왔다. 불방사태를 비롯해서 프로그램 담당PD의 일방적 태도들, 누가 볼까 싶을 정도로 배당된 방송시간대, 방송국의 방침에 따라 프로그램이 존폐를 반복해야 하는 등 객관적으로 많은 난관에 부딪혀왔다.

그러나 <노가다vs노동자>를 액세스하는 과정에서 RTV는 적어도 이런 난관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방송국이었다. 담당PD와 액션V팀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역의 제작역량에 맞게 분량을 정하고 건설노동자들의 조건에 맞게 방영시간대를 토론하고, 컨텐츠의 방향을 논의하고, 공공기관 취재에 필요한 행정업무를 요청하면 처리해주고, 인터넷 다시보기조차도 바로 업데이트해서 리액션을 조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내가 유별나게 징징대긴 했지만 개별의 액세스 주체가 큰 고난없이 혼자서 액세스할 수 있는 조건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액세스채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니냐고 말한다면, 역으로 그런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아마 액세스하는 과정에서 지쳐 떨어져 나가는 주체들이 부지기수가 아닐까. 액세스 지원센터로서의 역할을 미디어 제작교육에 한정하지 않고 액세스 전후과정을 조직하는 데 투여하는 것, RTV의 마지막(?)에 이것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기도 하고 못내 아쉽기도 하다. 만약에 RTV가 생존할 수 없다면 이 역할을 나는 어디에서 기대할 수 있을까.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개인적 경험이 RTV가 꼭 생존해야 할 ‘이유'로 충족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RTV가 없어진다고 지역에서 액세스활동을 할 수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 지상파나 케이블에도 문이 열려 있다. 오히려 각 지역에서는 액세스 주체들이 좀처럼 발굴되지 않아서 열려져 있는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는 게 망설여지는 것 같다. 그리고 액세스 전후과정을 조직하는 역할은 미디어센터가 해도 되고 미디어운동단체에서 해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은 쉽다. RTV가 채널로서 동시에 액세스 지원센터로서 했던 역할을 나는 개인적으로 공동체라디오 외에는 경험한 적이 없다. 지상파나 케이블채널의 불안정한 조건은 공동체에 안정적 소통구조를 허용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액세스 실험을 자주 제악할 것이다. 그에 따라 우리의 액세스 활동도 이전과 같은 부침을 반복할 것이다. 그 채널들은 활용의 영역이지 결코 전략적 선택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미디어센터나 미디어운동단체가 액세스 지원센터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 경험이어서 조심스럽게, ‘잘 모르겠다'고 말해야겠다.
 
현재 RTV의 고민은 생존의 ‘이유'보다 생존의 ‘조건'인 것 같다. 지난 2월 'RTV 발전을 위한 미디어활동가 워크숍'에서는 RTV가 어떻게 거듭날 것인가에 대해 토론이 있었다. 여타의 방안이 논의되었지만 ‘인터넷과 결합된 대중적이고 참여적인 채널'(이렇게 정리해도 되나 싶긴 하지만)로 RTV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RTV가 최소한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공감대 하에 진행된 논의였다. 그러나 3월, ‘최소한 유지 가능성'의 조건마저 흔들리면서 RTV와 관련된 논의는 현재 실종된 느낌이다.
 
그러나 RTV 존폐 위기는 우리에게 ‘독립채널'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만든 것임에는 틀림없다. 독립채널은 필요한 것인가? 필요하다면 어떤 상을 가져야 할 것인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논의에 시사점을 줄 무수한 실험들을 일반화하고 자기의미화를 점검하는 지난한 과정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
 
* 주
(*주1) 사실 이런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이 비단 건설노동자들뿐일 것인가. 조합원들이 회사에 눈치가 보여 노동조합으로 결집하기 어려운 사업장들, 중소규모의 영세한 사업장이 몰려있는 지방산업단지를 끼고 있는 지역노조, 한 지역내에서도 지점 등 사업장이 여러 군데로 쪼개져있는 유통노조, 조직대상이 전국에 펼쳐져 있는 노조 등 노동자들의 소통구조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그에 기반한 단결의 조건을 갖추기 어려운 노동자들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주2) 방송국에 제작물을 납품하는 VJ들과 퍼블릭 액세스를 고민하는 우리와의 경계는 누가 이것을 볼 것이며, 보게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어떤 내용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제작되고 방송되어야 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이러한 활동이 그들의 소통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사고하는 것에 대한 차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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