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99호 릴레이 안부인사 2016.7.20]
릴레이인터뷰 - 공동작업실 탐방기(2)
작업실이 있으니 좋은 점은 작업을 한다는 거다
- 나바루, 선호빈, 조이예환 감독
진행 및 정리 : 민경 (자유인문캠프)
주현 (ACT! 편집위원회)
<편집자 주>
릴레이 인터뷰 시즌1:독립다큐멘터리 단체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시즌2는 공동작업실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최근에는 다큐멘터리 작업자들이 굳이 단체를 만들지 않고, 작업실을 공유하면서 따로 또 같이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에 대해 어떻게 봐야할까. 공동체가 와해되는 시대의 분위기가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에도 반영되는 것일까. 시대에 발맞춰서 공동체와 개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활동 양식일까. 큰 질문은 뒤로 하고 먼저 이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두 번째로 찾아간 작업실은 나바루 감독, 선호빈 감독, 조이예환 감독이 함께 쓰고 있는 곳이다. 인터뷰는 대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작업 중인 민경과 ACT! 편집위원회의 김주현, 차한비, 권은혜가 함께 했다.
작업실이라고 가르쳐 준 주소에 맞게 찾아온 것 같은데, 너무 크고 멀끔한 빌딩이 나타나서 당황했다. 정말 이런 곳에 작업실이 있는 걸까 신기해하며 로비를 서성였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승강기에서 등장한 나바루 감독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유명한 감독들도 아닌데 인터뷰해서 나올게 뭐가 있을까’
나바루, 선호빈, 조이예환 세 젊은 감독은 <ACT!> 취재진을 걱정해주며 말문을 열었다. 6월 중순 경 상암 DMC 첨단산업센터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늦은 오후에 시작해서 완전히 컴컴해진 후에나 끝났다. 인터뷰 구성은 세 감독의 소개를 먼저 한 뒤에 작업실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서른까지 살면서 유일하게 용기를 내 본 일이 그거였다” - 나바루 감독
△ 나바루 감독
2014년에 <바보들의 행군>을 연출하고 현재는 <바보들의 행군>을 배급하는 과정을 담은 두번째 다큐멘터리 <두번째 행군>을 작업 중이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준 나바루 감독은 2014년에 첫 작품으로 <바보들의 행군>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원래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막연하게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30살까지는 영화와 관련이 없는 다양한 일을 했다. 다큐멘터리를 시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고 한다.
나바루: 왜 어릴 때 그런 애들 있잖나. 말로만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애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감독이 되고 싶었다. TV에서 봤던 영화들이 되게 좋았고 보고 있으면 설렜다. 고등학교 때는 매일 축구하느라 운동장만 뛰어다녔다. 공부도 못했고 집안 사정도 별로여서 대학을 억지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이후 자연스레 몸 쓰는 일 위주의 일만 하게 되더라. 그렇게 서른까지 살았다. 하고 싶은 것들도 그 과정에서 많이 포기했던 것 같다.
원래 극영화가 하고 싶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좋아했는데, 그분들 작업이 다큐 같은 면이 있잖나. 그러다 우연히 다큐멘터리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되면서부터는 다큐에 흥미를 느끼게 된 거다.
그러던 찰나에 연극하는 친구들을 만난 거다. 이 친구들 재밌네, 한번 찍어볼까 싶더라. 서른까지 살면서 유일하게 용기 내 본 일이 그거였다. 그때 할머니가 나 장가갈 때 쓰라고 모아놓은 돈이 있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어머니한테 말씀드렸는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그런 돈이 있겠냐며, 본인 곗돈을 주시더라. 그 돈으로 카메라를 구입했다. 지금은 ‘프리미어’로 작업하지만, 처음에는 ‘무비메이커’로 편집했다. 모든 걸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되니 힘들었다.
그야말로 맨 땅에서 작업을 시작했다는 얘기에 다들 놀랐다. <바보들의 행군>을 보면서는 전혀 기술적인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련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촬영 역시 카메라의 초기 세팅 값을 조작할 줄을 몰라서 구입 후 기본 세팅 그대로 찍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재기발랄한 영화가 영화제에서 단 한 번도 상영되지 못 했다는 것이었다.
나바루: 영화제에 잘 안 맞는 작품이란 얘길 많이 들었다. 당시 나는 그런 건 몰랐으니까 억울하기만 했다. 심지어 내가 대학을 안 나오고, 영화판에서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건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 즈음 조이예환 감독을 만났다. 영화제에서 상영을 해주지 않으니 우리가 직접 배급을 해보자고 한 거다. ‘다큐유랑’을 함께 하며 상영 활동을 시작했다. '다큐유랑'은 독립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직접 배급을 해보고자 모인 곳이다. 지금까지 공동체 상영으로 <바보들의 행군>을 18번 정도 상영을 했는데, 관객이 한 명도 없을 때도 있었다. 영화는 결국 관객이 있어야 완성이 되는 거더라. 그걸 직접 부딪치며 깨달았다.
첫 상영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년 7월 1일이었는데, 사람도. 20-30명 정도로 많이 왔다. 사람들이 과연 ‘재밌어 할까?’하는 두려움이 컸다. 다행스럽게도 즐겁게 잘 보시더라. 그때 ‘아, 내가 틀리진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들의 행군>이 명작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그냥 관객이랑 놀고 싶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그 목적은 달성한 것 같았다.
“처음에는 너무 열 받아서 찾아갔다” - 선호빈 감독
△ 선호빈 감독
2011년에 장편 다큐멘터리 <레즈>를 완성하고 현재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B급 며느리> 제작 중이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다음 타자인 선호빈 감독의 얘기로 넘어갔다. 선호빈 감독은 대학교를 다니면서 당시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출교 사태를 다룬 <레즈>(2011)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선호빈: 대학생 시절 극영화 동아리에 있었다. 군대 다녀와서 복학해보니 학교가 너무 이상하더라. 이건희 회장이 명예 박사학위를 받더니, 그것을 막은 학생들의 출교 사태가 일어났고 해당 학생들은 농성 천막을 쳤다. 나는 학생운동을 하지는 않았는데 그때는 정말 너무 열 받아서 천막에 찾아갔다. 원래 학교에는 기대하는 게 없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너무 화가 나더라. 그때 즈음 학내에서 ‘일베’ 같은 집단이 형성되는 분위기가 무르익던 때 아닌가 한다. 어쨌든 카메라가 있으니까, 내가 이 사람들을 찍어줘야지 하고 갔다. 막상 천막에 가보니 안에서는 계란프라이 부쳐 먹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긴 했지만(웃음). 나중에 문정현 감독님이 하는 수업에서 촬영본을 보여드리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쫓아다니면서 다른 작품들도 보고, 편집 완성을 하게 되면서 다큐멘터리라는 걸 처음 한 거다. 해보니까 재밌더라.
ACT!: <레즈>를 보면 그 당시 대학교 학생사회의 분위기가 잘 담겨있었던 것 같다.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의 글을 인용하는 방식이 재밌었다. 극영화적인 느낌도 들고.
선호빈: 인터뷰 같은 걸 따서 넣어야 했는데 못했다. 나중에서야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게시판 글을 찾아서 넣은 거다. 선배들이 그러더라 내가 편집하는 방식이 다큐랑은 좀 다르다고. 극영화 동아리 출신이라 그런 것도 같다. 동아리 이름이 쿠벨바그(고려대+누벨바그?)였다(전원 폭소).
ACT!: 후반 작업 중인 <B급 며느리>에 대해 궁금하다.
선호빈: 첫 영화 끝내고 다음 영화를 찍으려고 하는데 결혼하고 아내가 임신도 했다. 차기작 만들려고 했는데 애 키우고 돈 벌고 하다보니 잘 안되더라. 처음에 촬영을 시작한 계기는 제 아내가 시어머니를 좀 찍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가 말을 바꾸니 증거로 찍었다가나중에 보여주자고. 촬영본을 유부남 감독들한테 보여주니까 재미있다고 한번 작품으로 만들어보라고 하더라. 2014년 10월 말 정도부터 촬영하고 있는데 그 전에는 너무 갈등이 심했다. 시댁에 안가겠다, 교류를 끊겠다 등등. 관계를 복구해보려고 노력하면서 촬영본이 쌓여서 진전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나바루가 촬영감독으로 일하고 있고. 반대로 <두 번째 행군>(<바보들의 행군> 이후 나바루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촬영을 내가 많이 했다. 그렇게 얽히고 서로 스텝이 되고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좋았다” - 조이예환
△ 조이예환 감독
2011년에 <사람이 미래다?>를 공동 연출했다
조이예환 감독은 2011년에 중앙대학교 구조조정 사태를 다룬 중편 다큐멘터리 <사람이 미래다?>(2011)를 만들었다. 2013년부터는 인디밴드를 소재로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4년째 작업 중이긴 하지만, 그동안 빡세게 작업만 한 건 아니었다. 작업에만 집중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생각날 때 마다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나바루 감독과 함께 ‘다큐유랑’을 하고 있고, <바보들의 행군>의 배급 PD로도 일하고 있다.
조이예환: 극영화에서 출발한 선호빈 감독이나 나바루 감독과는 달리 원래 다큐멘터리만 좋아했다. 다큐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좋았다. 2009년에 전역하고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다큐멘터리 수업을 들었지만 이후 2년간 직접 다큐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던 중에 <사람이 미래다?>(2011)를 같이 연출했던 친구가 자기 학교에서 퇴학당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거기에는 사실 내 생각이랄 게 별로 없었다. 투쟁 중인 두 사람(노영수, 김창인)을 소개하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다큐 속에서 영화적인 재미를 찾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 나는 이런 소재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자체만으로 가치를 두고 있었다. 완성 후에 운이 좋게 상영을 많이 했다. 영화제에서도 하고 대학교에서 공동체 상영도 하고. 덕분에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상영회 하면서 좋았던 것은 이 영화가 이야기의 발화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가 아니었으면 만날 일도 없었을 사람들과 얼굴 마주보고 다른 사람들이 다니는 대학의 상황은 어떤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학교들 간 분위기도 서로 공유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 자체를 알려줘서 고마웠다는 반응도 많았다. 한편에서는 영화적으로는 별로다, 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근데 나는 뭐 상관없다. 나에게는 내가 본 것, 좋아하는 걸 남들하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이지, 작가정신이나 그에 따른 인정욕구 같은 건 별로 없다.
최근에는 인디밴드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디’라는 개념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지금은 인디라는 개념이 산업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 메인 스트림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의미하는 것 같다. 즉 인디라는 것 자체를 문화상품으로 포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왼쪽부터 선호빈, 조이예환, 나바루 감독
작업실을 같이 쓸 뿐 가치관을 공유할 필요는 없어서 좋았다
세 감독 각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 각양각색의 개성을 가진 세 감독이 어떻게 한 공간을 함께 쓰게 됐는지 궁금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작업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조이예환: 2년 전 창의인재 사업에 참여할 때 혼자 쓰던 작업실이 있었다. 혼자 쓰지만 여러 명이서 같이 쓸 수 있는 넓이의 공간이라 아까워하던 차에 나바루와 다른 한 명에게 제안을 해서 셋이서 공동 작업실을 쓰기 시작했다. 선호빈 감독은 원래 여기저기 자유롭게 옮겨 다니며 작업하던 스타일이었고, 그 작업실에도 가끔 들러서 작업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당시 같이 작업실을 함께 쓰던 친구가 연신내에서 집을 구한 뒤, 그곳을 공동 작업실로 쓰자고 하며, 선호빈 감독에게도 제안을 했다. 그때부터 넷이서 같이 작업실을 쓰기 시작한 거다. 다만 그 친구는 그곳이 본인 집이고 우리가 좀 더럽게 쓰다 보니, 이후 트러블이 좀 있었다(웃음).
선호빈: 작업실을 같이 쓰자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 나에게 그런 제안을 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후 심하게 후회했다고 들었다(웃음).
조이예환: 트러블이 생겨서 그 친구에게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물으니, 당장 나가라고 하더라(일동 웃음). 그래서 우리 셋이 나온 거다. 합정역 인근에 작업실을 구해서 11개월 정도 함께 쓰다가 서울영상위원회에서 하는 창작공간지원사업에 지원해서 얼마 전에 이 건물로 옮겼다. 가격이 쌌기 때문이다.
선호빈: 공동 작업실이 좋은 건 작업실을 같이 쓸 뿐 가치관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우리의 장점은 그런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 같이 무얼하자 이런 이야기 절대 안 한다. 서로한테 짐을 딱히 안 주고 그냥 되는 대로 한다. 그래서 오래 가는 것 같다.
△ 인터뷰는 6월 중순 경 상암 DMC 첨단산업센터에서 진행되었다.
ACT!: 작업실 공유하고 나서 이전과 좀 달라진 점이 있나?
나바루: 혼자 고립되어서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다는 점은 있다. <바보들의 행군>도 나 혼자 붙잡고 있었을 때의 버전과 이 사람들을 만난 이후의 버전이 달라졌다. 작업을 위해서 서로 이용해먹기도 용이하고(웃음).
선호빈: 원래 작업실이 없었는데, 없다 있으니 좋은 점은 작업을 한다는 거다. 그 전에는 머릿 속으로 생각만 했었는데, 다른 사람들 있으니 자극도 되고. 알바 가져오면 같이 하고. 작업실에서는 가치관 이런 거 보다, 라이프 스타일이 잘 맞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게으르고 안 씻고 더럽고. 어 뭐야. 나보다 더 더러워 하면서(일동 웃음)
공동 작업실이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아도 그저 돈을 아낄 수 있고, 서로 눈치를 보며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정도라며 말을 했지만 실제로 이들은 훨씬 많은 것을 함께 하고 공유하고 있었다. 서로의 작업에서 촬영을 도와주거나 PD가 되어주거나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종의 감정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너무 척박하다. 돈도 별로 안 되는 작업들을 하겠다고 하는 독립다큐멘터리 작업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어쩌면 이 공동 작업실이 이들이 계속해서 작업을 할 수 있게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멘트를 본인들이 보면 오그라든다며 싫어하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는 것 같지만 이렇게 쓰는 것은 필자 역시 이 공간에서 작은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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